초현실은 나의 꿈 / 이기철
나는 비둘기에게 언어를 가르치고 싶어
모음만 모아 평화어 사전을 편찬하는 사람
나는 바람의 날개를 타고 은하를 건너는 꿈을 꾸는
맨발이 아름다운 시인
어제 흘러간 강물을 되돌려와 풀잎을 세수시키고
바람의 맨실에 끝없이 입 맞추는 자연 예찬자
나는 아지랑이의 속살 속에 들어가 아이를 갖고 싶은 남자
기린의 목에 리본을 달아주고 싶은 어릿광대
수화기, 벨트, 핸들, 음이온 램프는 싫어
걸으면서 생각하고 시 속에서 천상을 꿈꾸는 이상주의자
구겨진 지폐를 꺼내 한 잎 들깨잎으로 만들고 싶은
불가능에 마음이 달은 철부지 환상가
나는 당나귀를 타고 옥수수밭을 지나
낙타가 생을 마친 머언 사막으로 가고 싶은
봉두난발의 가난뱅이 시인
나는 햇빛보다 달빛을 사랑하는 사람
나는 백년을 쪼개 하루의 길이에 보태는
초현실을 꿈꾸는 한국의 시인
- 이기철 시집 <가장 따뜻한 책>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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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둘기에게 언어를 가르치고 싶어"라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시인이다. 시인은 모든 것들에 관하여 경계가
없다. 경계가 없어 자유롭고 자유로워 항상 꿈이 불끈
치솟는다. 시인이라면 무엇에든 이름을 주지 못하고
어디엔들 서지 못할 곳이 있는가.
시인은 이 시에 말하듯이 "불가능에 마음이 달은 환상가"가
아니던가. 시인의 행보에는 누추함도 화려함으로, 절망도
희망으로 변환시킬 수 있는 마음의 기계를 갖고 있는
사람이 시인인 것이다. 이 시에서 궁극적으로 얘기하고자
하는 '자유로움'은 인간이 인간 본연의 근원을 찾아가는
길이요, 자연 속에 합일하고자 하는 당연한 생리일 것이다.
시인뿐이겠는가. 각박한 오늘을 사는 우리 모든 인간이
꿈꾸는 이상향의 극치가 여기에서 말하는 것이다.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호흡이 이 시를 절경에 이르게
하고 있다.
/ 정공량 시인
[출처] 이기철 시인 4|작성자 동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