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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없는 정부보다 정부없는 언론을 선택한다.
국내 크고 작은 신문과 방송(인터넷 신문 포함)이 약 2만여개에 달하고 있다.
간단한 자격만 갖추면 누구나 쉽게 언론사를 만들수있고 그리고 쉽게 누구나 기자가 될 수 있다.
이토록 많은 숫자의 언론사와 기자들이 제 기능을 하고 있을까 의문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모바일 기기가 보편화 되고 트위터와 소설 네트워크 서비스가 접목되면서 기존의 신문과 방송에 더해 포털(SNS.유튜브. 위쳇. 페이스북. 카톡. 라인 등)다양한 체널을 통해 수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어 우리사회에 대단히 영향을 미치고 있어 보도나 글을 올릴때 신중해야 하며 책임의식도 가져야 한다.
그만큼 언론이 사회를 움직이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중략》
언론이 중요한 이유는 간명하다. 언론은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정부와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며. 사회적 쟁점을 규정하여 쟁점에 관한 해설과 비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언론이 정치 권력 또는 특정 세력의 간섭과 영향력으로부터 독립되어 있는 것을 언론의 자유라고 한다.
언론의 자유는 헌법으로 규정하고 있고 제약을 할 수 있도록 뒤받침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언론은 정부의 권력 감시나 견제보다 국민들의 주목을 끌기 위해 어떠한 사실을 왜곡 보도하고 의도적으로 스캔들. 범죄의혹 기사라든지 보수와 진보에 따라 편파적인 기사로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제목을 붙이지만 정작 내용은 아니면 말고 식이다.
언론은 국민에게 사실을 전달하고 국민은 그를 기초로 여론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언론의 역할에 따라 한 국가나 기업을 유지할 수도 있고 뒤집어 버릴 수도 있다.
또한 과거에 비해 국민들의 의식수준도 많이 성장했고 정보의 수집방법도 다양해 지고있다.
언론이 왜 정도(正道)를 가야하고 정론직필(正論直筆)을 해야만 하는 가는 언론의 책임은 사회의 국민정서에 미치는 영향이 대단히 크기 때문에 신중한 보도와 방송을 통해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있게 사회의 길잡이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론의 지지를 받은 정책은 잘못이 있더라도 바로바로 수정할 수 있고 국민 모두 책임을 나눠지기 때문에 정권이 흔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권력자가 여론의 수렴 없이 강압적으로 밀어 붙이는 정책은 허점을 발견해도 해결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정부는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혹은 특정 세력의 간섭과 영향력으로 부터 독립을 해야만 한다.
언론의 책무는 공정성. 공익성. 객관성. 정확성. 책임성을 가지고 그 사명과 소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퓰리처 상을 제정한 조섭 퓰리처가 말한 것처럼 기자는 기사를 절대 꾸며내서는 안된다고 하였고 기자의 생명은 신속. 정확. 공정성에 있다고 하였다.
언론보도는 공정해야 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언론보도의 공정과 공평성 객관성을 잃지 않고 법테두리 내에서 보도해야 하며 만에 하나라도 공정성과 형평성. 객관성을 잃게 된다면 그것은 언론보도가 아니고 국민감정을 편파적으로 몰아가는 편향적인 선전일 뿐이고 정상적인 언론이 아닌 사이비 언론인 것이다.
사이비 언론은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독재정권으로 지향하도록 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이 권력을 자유롭게 감시하고 비판하는 권능을 부여받은 것은 언론이 숭고하고 완벽한 존재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언론보도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고쳐쓴 학술논문과 달리 본질적으로 불완전하고 정제되지 않은 대중적 소통인 것이다.
언론없는 정부와 정부없는 언론 중 주저없이 정부없는 언론를 선택하겠다는 토머스 제퍼슨의 말은 이처럼 무질서한 언론이 만들어내는 기적같은 위업을 강조한 것이다.
어떤 정부도 감시자가 없으면 안된다며 신문의 자유가 보장되는 한 정부는 항상 감시자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언론은 사회의 공기(公器)로서 정직하게 사실과 진실을 전달하여 사회정의와 올바른 여론조성을 실철하는 기능과 사명을 완수해야 하는 것은 언론의 명분이며 존재이유인 것이다.
아무리 신문이나 방송. 포털 등이 보도하는 뉴스가 힘이 강하다 해도 국민을 떠나서 존립 할 수 없고. 국민의 힘보다 강할 수도 없고. 보통 국민이 가지는 생각과 상식 및 법테두리를 벗어나 군림하는 신문이나 방송은 결국 존립할 수 없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 같은 언론의 본질과 역할은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
살아있는 지성이라고 불리는 촘스키는 언론의 뒤에는 자본이 버티고 있다고 하였다.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차갑고 냉정한 힘의 논리로 사회적 도덕을 저하시키고 부의 불평등을 가속화 시키는 일등 공신이지만 자본의 독식을 위한 위대한 슬로건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뉴스는 소식이다, 변화에 대한 이야기며 변화의 가능성을 예지해주는 성스러운 단초이기도 하다.
사회구조 속에서 만들어지는 자본이 왜곡과 조작을 통하여 스스로의 이익을 견고하게 하고 지속시키려는 형태가 바로 자본의 언론 잠식인 것이다.
자본권력에 옥죄어 있는 구조적 한계를 타파하기 위해 얼만큼의 노력을 했는지 특별한 것을 바라는게 아니다.
언론 본연의 기능과 역할을 조금이라도 생각해보면 무게를 두어야 할 곳은 분명해진다.
따라서 민중의 지팡이라는 기자들이 자본가들의 요구를 거부하지 못하고 보이지 않은 구석에 자신의 불만을 표출하는 것을 위안으로 삼고마는 이런 현실이 언론의 상태를 변화시켜야 한다.
어느 국가나 사회에서 진실과 거리가 멀고 삐뜰어진 편향적인 언론은 있어서는 안되는 해악으로 그 좋은 예가 특히 국내 종편과 조중동 신문의 보도형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민 일간지이며 민족신문이라 자처하는 조선일보. 동아일보 그리고 중앙일보 이들 신문은 한 때 국민들 절대 다수가 애독하고 사랑을 받았던 신문들이다.
일제치하때 부터 오랜 세월과 더불어 온 국민들의 희비애락을 함께 해온 민족신문인 조선. 동아일보는 세계적인 신문으로 이들이 있었기에 일본 강점기때에 해방 후 오늘날까지 우리 국민의 어려운 정치. 경제. 사회 아래서도 묵묵히 잘 견디었고 국가의 체면과 국민들의 자긍심을 그나마 세울 수 있게 하였다.
그런데 어쩌다 조중동이 신문이면 화장지는 팔만대장경이고 조중동이 신문이면 파리는 봉황이라는 아주 오래전부터 인구에 회자되었던 식상한 소리가 있다.
조중동 시리즈는 워낙 많아 식상한 감도 없지는 않지만 이들이 서로 일등 신문이니 민족지니 운운하는 데는 할 말을 잃게한다.
이들 언론은 일제 강점기때에는 황국신민화를 외치고. 박정희 유신정권을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찬양하고. 전두환이 권력을 찬탈하기 위해 나라를 지켜야할 군인들을 동원하여 백주 대낮에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하고 있을때 이들 메이저 언론들은 북괴의 폭도들이 난동을부린다 하고 저녁 9시만 되면 각하 찬양 땡전 뉴스를 시작할 때 우리는 이 언론들의 치부를 보게 되었다.
한마디로 독재정권 시절에는 독재권력의 편에 군사정권 시절에는 군사정권을 정당화 시켰던 신문. 친일. 친미 군사정권의 집합체인 국짐당에 대해 조중동의 처신은 관란(익숙해 습관이 됨)그 자체였다.
그 들은 이렇게 역사에 지은 죄도 모자라 권력에 붙었다 자본에 붙었다 그것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이제는 스스로 자본이 되어 권력위에 군림하고 있다.
이런 신문을 언론이라고 하기조차 민망하지만 이런 신문에마취된 사람중에는 이들의 논리가 진실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더해 공중파 방송인 종편은 한 술 더뜨고 있다.
방송용어로 종합편성채널을 약칭으로 종편. 또는 공중파 방송이라 부르고 있다.
종편 채널의 탄생은 이명박 정부시절 국민여론이 좌편향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보수정권의 나팔수 역할이 필요해 조선일보 TV조선. 동아일보 체널A. 중앙일보 JTBC. 매일경제 MBN 등 보수언론지만 공중파 방송에 참여시켜 보수정권이 영구적으로 권력을 유지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오늘날 민주당의 강력한 반대에도 탄생하게 되었다.
종편채널 방송의 특징은 경비 절약을 위해 지상파 방송의 프로그램에 비해 제작비가 적게 들어가는 토론 프로그램 방식이다.
여기서 여론을 오도시키고 있다. 공정하고 중립적이지 않은 사람을 방송 사회자로 내세우고 전문성도 자질도 부족한 특정 세력에 편향된 사람(Panel)들이 정치. 경제. 외교. 안보. 핵문제 사회문제 등에 대한 것들을 시사 논평이라며 시도 때도 없이 하루 온 종일 비난하게 되자 예수.석가. 공자도.그 어떠한 성인들도 이들의 비난에 살아 남지 못 할 정도이다.
종편 방송의 권력 나팔수들 발언을 온종일 청취한 우매한 국민들은 이들의 발언을 들으면서 미디어 학습과 미디어 중독에 빠지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종편을 처음 만들때 언론 소비자들이 미디어 언론 생태계 파괴라는 말이 회자 되었고 권력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막아놓고 알아서 스스로 권력의 비위를 맞추는 추태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본래 신문과 방송은 좋은 사회를 이룩하는 기초이자. 건전한 민주사회 건설을 만드는데 불가결의 요소이다.
좋은 언론환경이 되려면 기자의 양심이 살아있어야 하고 진실과 공정의 바탕 위에서 건전한 비판이 있어야 한다.
주관과 편견에 사로잡혀 있지 않은 부편부당 (不偏不黨)한 정신을 가져야 하며 어떤 문제나 사건에 편견이나 이해관계를 갖게 되면 그 문제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확한 판단을 못하거나 고의적으로 진실을 왜곡하면 피해를 입은 사람이 생기게 되고 피해를 입은 집단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국가나 사회의 사건 소식의 보도와 구성원들에 필요한 언론조성과 소통을 위한 미디어의 기능과 사명은 매우 크다 할 것이다.
그러한 언론의 기능과 역할은 국가와 사회구성원 모두의 바람직한 삶을 위해서 언제나 그런 사명과 기능의 의무와 책임은 매우 중요하다 할 것이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했다. 이 말뜻은 문필의 힘이 인간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고 위협적이며 무력보다 강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펜이 칼보다 강하다고 하는 것은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본래 펜은 칼보다 약하다.
이 실상적인 상식을 뛰어넘으려면 펜에 비상한 의지와 용기가 요구된다.
곡필(曲筆)이 아닌 정론(正論)을 쓸때 펜이 강한 것이지 그렇지 못 할때 칼은 쉽게 펜을 부러트릴 수 있다.
현대 생활에서 신문과 방송은 사회 구성원 전체가 이용하고 있는 도구이다.
그래서 사회의 공기(公器)라고 한다.
또한 세상 모든 사람들을 깨우쳐 바르게 인도할 사명을 갖고 있다해서 민중의 목탁(木鐸)이라고도 한다.
이것이 언론의 기능이요 역할인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시대 상황에서 더욱더 정확한 사실 전달과 사회적 쟁점을 규정해야 하며 냉정하게 정부나 기업을 감시 견제해야 하는 사명감이 더욱 커진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사실과 다른 정보나 허위정보를 통해 편협하고 비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위험도 존재한다.
세계 어느곳에서나 완전하고 흠이없는 언론매체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의도적으로 진실이 아닌 보도나 거짓으로 기만하는 행위. 호도하는 행위로 선량한 시민들을 혼동시켜 그들을 마치 가랑비에 옷졌듯한 세뇌 비슷한 수단으로 우민화 시키는 것은 자제되어야 할 것이다.
자신들의 특종기사나 사실을 알리겠다고 열정에 사로잡혀 올바르지 않거나 확실하지 않은 사실을 기사나 방송으로 혼란을 주는 것은 절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역사에서 우리는 변절한 언론과 언론인들을 너무나 많이 보아왔고 알고 있다.
어느곳에서나 신문과 방송의 매체가 공정하고 균형잡힌 보도와 계몽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면 그들은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각기 다른 언론매체들을 인간들이 경영하는 한 완벽 할 수
없고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전달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양심적인 국민과 지성인들은 언론의 이런 잘못 보도하는 행위들을 감시하고 방지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야할 것이다.
언론의 사명은 무엇인가? 언론의 여러 기능과 역할들 중에서 대부분의 언론학자들이 손꼽는 가장 중요한 기능은 권력에 대한 견제와 감시다.
그래서 권력에 대한 애완견(Lapdog)같은 언론이 아니라 권력에 대한 감시견(Watch dog)으로서의 언론의 역할은 정부의 통치행위와 사회를 감시하는데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민주주의 파수꾼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는 감시행위를 통해 정부가 국민들로 위탁된 정치권력을 오남용하는 것을 견제하고 동시에 사회의 부조리와 부정부패를 감시하고 비판함으로써 공공의 이익을 증진시켜야 한다는 신념을 토대로 한다.
언론과 정치권력은 항상 대치관계에 설 수밖에 없다.
권력을 비판하고 견제하는 것은 언론이 존재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그것이 올바른 가치관 위에 서있는 것이다.
권력은 항상 그들의 지지세력 홍보의 나팔수 가 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모든 정치의 과정과 결정은 국민의 감시와 비판. 참여 속에 이뤄져야 하고 권력과 언론은 유착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생명은 견제와 균형 책임감이다.
입법.사법.행정부는 각기 상호견제와 균형속에 책임감을 지고 있지만 권력 4부로 일 컷어지고 있는 언론은 권력을 누리기만 할 뿐 책임은 지지 않는다.
정. 관계는 말 할 것도 없고 심지어 시민운동단체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언론을 이용의 대상으로만 삼고 있어 언론에 대한 적절한 감시와 견제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언론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맹점을 이용하여 국민 위에 군림하는 무책임하고 오만방자한 작태를 보이고 있다.
국민은 현명하나 그들의 눈과 귀는 자신들의 죄악과 과오를 은폐하는 언론에 장악되어 있어 언론에 대한 정당한 응징을 할 수 없게끔 되어있다.
18세기 영국의 정치철학자 에드먼드 버크는 당시 사회의 주류 계급인 성직자. 귀족. 평민의 3계급에 이어 언론을 제4계급으로 명명함으로써 언론의 대외적 위상과 역할을 제시한 이후 대의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입법. 사법. 행정부에 이어 제4부 로서의 언론의 역할을 강조하는 전통과 그 맥락을 같이한다고 하였다.
제4부 권력이란 기자와 언론기관이 정치에 미치는 힘을 삼권분립에 빗대어 이르는 말이다.
곧 언론기관은 정보를 전달하고 퍼트림으로써 여론에 큰 영향을 미쳐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의 것에 비길만한 큰 권력을 가진다는 의미를 가리킨다.
그래서 언론을 가리켜 무관(無冠)의 제왕(帝王)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언론은 이와 같이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기에 자칫하면 그힘을 이용해 본래의 임무를 일탈해서 국민의 명예나 권리 그리고 인격을 침해 하기도 한다.
또한 언론이 권력이나 특정 세력과 유착할 경우 여론을 조작하고 민주주의를 저해할 수 있다.
언론이 권력과 유착해 주권자들의 인권을 유린하고 언론 소비자들을 기만했던 일이 어제 오늘이 이야기는 아니다.
과거 이승만 정권의 독재 부패에 저항하며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사상계)내용으로 제도언론이 하지 못한 글을 써 구속되었고 유신독재를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찬양하며 권력에 기생하던 신문을 보고 함석헌 선생은 과거 지성인의 잡지(씨알의 소리)창간호에 예수. 석가. 공자가 섰던 자리에 오늘날은 신문이 그 자리에 서있고 종교가 되었다고 개탄한 사실이 있었다.
함석헌 선생은 신문이 성인의 자리를 차지했다고 개탄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당시 함석헌 선생에 대한 소식은 모든 언론에서 금기의 대상이 되었다. 언로는 차단되고 독재는 날이갈수록 살벌해 졌다.
씨알은 제도언론의 문제점을 고발하며 언론이 바로서야 나라가 제대로 굴러간다며 타락한 거대 언론에 대항하는 게릴라 언론이 나와야 한다고 했던 말씀을 기억하고 있다.
진실을 왜곡하는 기사 하나로 언론사 전체가 파산하게 할 수
있는 강력한 시스템이 자리 잡는다면 언론을 자유롭게 풀어놓아도 공정성에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언론의 자유가 모든 자유의 근원이 된다는 것은 자유 민주주의 국가의 상식이다.
윤 대통령은 시간이 날 때마다 자유를 강조해왔다.
자신이 밷은 말과 행동을 부정하는 어리석은 지도자가 우리 국민들이 선택한 윤석열 대통령이다.
그의 언론관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윤석열 정부들어 언론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탄압과 무시는 MBC 사태를 보면서 언론이 자초한 일이 아닌가 싶다.
검찰을 비롯한 정권의 눈치살피기에 익숙한 기생 언론의 생리를 알아차린 현 정부가 마음놓고 언론에 대한 폭거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동안 우리 언론이 비판과 감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언제라도 아부와 굴종을 일삼을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 주었기 때문은 아닌지 언론 스스로 돌아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사태를 예견하고 민주당은 작년에 가짜 뉴스를 막기 위한 언론중재법 개정에 대해 언론노조를 비롯한 모든 언론 관련 단체가 반대하고 나선 사실을 똑톡히 기억하고 있다.
특히 언론탄압법. 언론족쇄법. 언론재갈법이라 강변하고 국제 언론단체까지 끌어들여 언론자유를 외치던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다.
현 정부의 무도한 언론 탄압 앞에 부도덕한 갈라치기와 길들여지기에 끌려다니지 않을지 철저하게 감시를 늦추어서는 안 될 것이다.
現在
(사)민주화추진협의회 조찬옥 사무총장의 글을 접하고 가슴에 와 닿는 전율을 애래 댓글로 진정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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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 언론ㆍ노조 없어보쇼.
생각만해도 끔찍해요.
이래서 날 보고 좌파라는데 아휴 빈익빈ㆍ부익부에 빈부갈등 이념갈등 지역감정 정치권 서로 칼질 권력, 공직자들 착복 더 말 않할께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