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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탈입니다.ㅠ 문제점을 알아야 고치고 앞으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ㅠㅠ 도와주세요
1.성장과정(1000자 이내)
<“온실 속의 화초보다는 길가에 핀 질경이가 되어라!”>
제가 거쳐 온 학창시절은 제게 자립심, 책임감, 부지런함을 길러주었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부모님 사업차 시골로 이사를 했습니다. 버스로 1시간거리를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혼자서 통학했습니다. 곱게 길러진 온실 속의 화초는 작은 변화나 시련에도 견디지 못하고 시들어 버린다는 아버지의 생각에 따라 저는 길가에 핀 질경이처럼 장거리 통학을 하며 홀로서기를 배웠습니다. 준비물을 가져오지 않거나 과제를 두고 와도 그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 졌기 때문에 더욱 철저히 준비하는 학생이었습니다. 지각을 하지 않기 위해 남들보다 먼저 일어나 하루를 맞이하는 습관이 지금까지 이어져 아침시간을 남들보다 조금 더 길고 알차게 쓰고 있습니다.
<인생의 큰 도전:15kg감량>
중국유학기간동안 체중이 많이 불어났습니다. 건강에는 문제가 생겼고 자신감도 없어졌습니다.
저는 몸에 대해 공부를 한 뒤 그에 따라 실천했으나 '인간의 가장 큰 적은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이다'라는 말처럼 도전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차츰 습관이 되니 즐거움으로 변했고 성공은 자연스레 뒤따랐습니다.
제가 깨달은 바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적과 나를 꿰뚫고 있는 자의 고지점령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실천 없이는 무용지물. 목표는 '아이디어-자료수집-계획-실천-결과도출'과 같은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달성된다고 생각합니다.
셋째, 즐기면 성공은 부수입이다. 긍정적인 마음가짐은 자연스레 좋은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저의 도전을 계속되고 있습니다. 업무에 임함에 있어서도 성공이라는 결과를 즐겁게 이끌어 내겠습니다. 이러한 긍정적 요소들이 모여 제가 앞으로 쌍용건설에서 고객을 대하거나 업무를 처리하는 데 있어서 빠르고 책임감 있는 마무리로 신뢰를 쌓는 좋은 바탕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2.생활신조 및 성격의 장단점(500자 이내)
<즐기자 그리고 사랑하자 그러면 삶이 행복해 질것이다.>
대학 시절 1년간 주점에서 일했습니다. 고객들과 친해지고 일이 익숙해진 후 일하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이즈음에 내 일터가 경쟁주점 보다 더 나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발전 점을 모색하게 되었습니다.
사장님의 동의를 얻어 고객 카드를 만들어 기념일에 문자를 보내는 맞춤 서비스를 하고, 퀴즈를 내고 맞힌 손님께 작은 선물을 하는 등 이벤트를 즐겨했습니다. 손님들께서는 좋아하시며 더 많은 손님을 모시고 찾아주셨습니다.
일이 즐거워지면 자연스레 일을 사랑하게 되고 그 와중에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주인의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인의식은 저에게 능동적 사고와 실천을 하게 만드는 매개체입니다. 저의 생활신조는 제가 매사에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게 해주고 다소 급한 제 성격을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게 해줍니다. 이제는 쌍용건설을 사랑하고 쌍용건설의 주인이 되겠습니다.
3.지원동기(500자이내)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의 자부심>
올 3월에 싱가포르 여행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을 뽑으라면 저는 망설임 없이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이라고 말합니다. 그 독특하면서도 웅장한 자태는 흡사 자연경관을 보는 것과 같았고 싱가포르 플라이어보다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에서 보는 야경을 적극 추천 받을 정도로 명실공히 싱가포르의 주인공이었습니다. 한국의 쌍용건설이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저도 모르게 미소 짓게 만들었습니다. 마치 내 것인 듯 친근감이 느껴졌습니다. 그때 결심했습니다. ‘비록 건축에 관한 문외한이지만 내가 잘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 바로 영업으로 글로벌 쌍용건설에 이름 석자 함께 올려보자’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현장에서 고객들과 만나며 세계일류 쌍용건설의 기술이 담긴 건축물에 제가 느꼈던 뿌듯한 마음을 함께 담아 고객들께도 전달하고자 합니다.
4.희망업무 및 장래의 포부(500자이내)
<글로벌 쌍용건설, 100년의 장인기업>
저는 쌍용건설의 일류 건축물을 고객께 전달하는 영업전문가가 될 것입니다. 고객과 가장 가까이에서 고객의 니즈를 적극 수용하고 회사에 건의해 실제 반영되도록 노력할 것이며 회사의 결과물을 고객께 적극 홍보할 것입니다. 입사하여 업무를 몸에 익히는 데 집중하는 동시에 언어 경쟁력을 높이겠습니다. 영어와 중국어 수준을 업그레이드하고 스페인어까지 도전해 탄탄하게 쌓은 실무능력을 바탕으로 해외무대에 진출할 것입니다.
영업은 전문직이 아니라고 합니다. 때문에 누구나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누구나 할 수 있는 것과 누구이기에 제대로 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00년이 넘은 기업들을 보면 공통점이 매사에 근본과 기초부터 다지고 그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으며 장인의식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쌍용건설이 향후 100년 200년 이어지는 장인기업으로 거듭나는데 함께 할 것입니다.
5.직장관(500자이내)
<함께 하는 어울림>
저는 직장도 사람들이 만드는 곳이며 제가 하고자 하는 영업도 사람과 사람사이의 만남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2009년도 대만에서의 인턴기간 동안 저는 맡은 일은 혼자 열심히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문화와 생각의 차이를 고려하지 못해 일이 더디어 지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곧 일도 사람이 우선돼야한다는 것을 깨닫고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가 동료를 넘어 친구가 되려고 했으며 함께 어울리는 동안 서로 다른 문화의 차이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마음이 통하고 나니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이를 통해 전체적으로 즐거운 분위기가 형성되면 일의 능률이나 좋은 성과는 당연히 뒤따르게 마련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때로는 리더로써 때로는 팔로어로써 함께 더 큰 가치를 창조하는 쌍용건설인이 되겠습니다.
다음에 제시되는 질문을 잘 읽고 답변을 구체적으로 작성해 주시기 바랍니다.
질문에 적합한 자신의 실제 경험을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기술해 주십시오.
가능한 한 최근의 경험을 선택해 주십시오.
각 질문의 세 가지 하위 질문에 초점을 맞추되, 글의 순서나 형식은 자유롭게 하시면 됩니다.
세 가지 하위 질문을 종합한 각 역량 별 작성 글자 수는 700~1000자로 제한합니다.
질문 1. 발상의 전환을 통해 문제는 개선하거나 해결한 경험을 골라 구체적인 상황, 자신의 행동, 결과 등을 기술해 주십시오.
A) 언제, 어떤 상황의, 무슨 문제였습니까? 어떠한 계기로 발상을 전환하게 되었습니까?
B) 그 발상은 무엇이었으며, 어떤 점에서 기존의 것과 달랐습니까?
C) 새로운 발상을 문제해결에 어떻게 적용했습니까? 그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작은 차이에 고객들은 주머니를 연다.>
저희 아버지께서는 주류 유통업을 하십니다. 막걸리나 동동주 같은 전통주를 취급하시는데 거래처에 물건을 납품 하실 때는 그에 따라 술동이와 잔도 함께 제공하십니다. 무한 경쟁시대에 끊임없이 발전 점을 모색하고 노력해야 하는 것은 어김없는 사실이기에 작년 여름 아버지께서 거래처에 제공하는 술동이와 잔을 다른 경쟁자들과 차별화 하고 싶다고 고민하셨습니다. 단순히 술 마시는 도구가 아닌 손님들의 눈길을 끌 수 있고 술 마시는 재미를 더 올릴 수 있는 매개체로 만들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 후 저는 외출 하던 중에 ‘곧 망할 집’이라는 술집 간판이 뒤집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주변의 평범한 간판보다는 재밌는 상호를 가지고 뒤집어져 있는 간판이 더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때 문득 아버지의 술동이와 연관해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저는 바로 아버지께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생각한 아이디어는 술동이와 잔을 일부러 삐뚤면서 안팎으로 울퉁불퉁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 하시던 아버지도 가마에 특별히 부탁해 울퉁불퉁하지만 정감 있고 재미있는 모양을 한 술동이와 잔을 받아보시고는 색다른 멋이 있다고 흡족해 하셨습니다. 아버지 거래처를 찾는 고객들의 반응도 참 좋았습니다. 기존의 반듯반듯한 술동이와 잔 보다는 서민의 술 막걸리를 마시는데 풍미를 더해준다며 좋아하셨습니다. 또한 고객들의 눈에 띄게 술동이와 잔을 진열해 놓으면서 호기심을 느낀 손님들이 막걸리를 주문해 매출이 1.5배가량 오르는 성과도 거두었습니다.
사람들은 익숙한 것에는 별 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상식의 틀을 벗어나도 호기심을 느끼고 흥미를 갖습니다. 이러한 사고의 전환이 고객들께는 즐거움을 저희 아버지께는 소득의 증대라는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질문 2. 자신이 속한 단체 혹은 가정에서 다른 구성원과 이해관계가 대립했던 경험을 떠올려 구체적인 상황, 자신의 행동, 결과 등을 기술해 주십시오.
A) 언제, 어떤 상황에서 일어난 일이며, 어떠한 이해관계가 대립하였습니까?
B) 그 상황에서 중요하게 고려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구체적으로 어떤 말과 행동을 취했습니까?
C) 그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발전의 원동력은 약점 인정하기>
대학 시절 학과 축제에서 중국어 원어연극을 했습니다. 당시 새로 시작한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알찬 대본을 찾는 일부터 무대 배경, 소품 마련까지 모두 팀원들과 함께 해결해야 했습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당시 연극을 준비하던 때를 적절히 표현하는 속담입니다. 연극을 함께 하던 친구들 모두 처음 접하던 연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 앞장서서 팀을 이끌어 나가려고만 했습니다. 6명의 팀원들 의견이 항상 달랐고, 타인의 의견은 수렴하려 하지 않으면서 서로 자신의 의견은 들어주지 않는다며 다른 사람을 원망했습니다.
왜 평소에는 친한 친구들이 연극 때문에 이렇게 서로 못마땅해 할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는 것이 힘들어 모두 자기 잘난 부분만 어필하려 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친구들에게 허심탄회하게 자기가 부족한 부분은 인정하고 도움을 요청하며 함께 협동하는 자세를 갖자는 것에 대해 건의했습니다. 제가 먼저 부족한 부분에 대해 시인하고 도움을 요청하니 친구들도 스스럼없이 서로 돕자는 저의 의견을 받아들였습니다. 그 후로 친구들보다 중국어 실력이 조금 더 나았던 저는 리더가 되어 팀원들의 대사 부분을 모니터링 해주고, 때로는 팔로어가 되어 제가 부족했던 연기 부분을 보충 받으며, 5개월을 5시간처럼 즐겁게 보냈습니다. 결국 6개월 뒤 학과의 교수님, 선후배들 앞에서 보람찬 결실을 선보일 수 있었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기를 싫어하지만 먼저 부족한 점을 인정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자신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고 극복하도록 도와 줄 사람들이 분명 있지만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기에는 용기가 따른 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제가 앞으로 할 조직생활에서도 이 교훈을 가슴 깊이 새기고 항상 발전해나가는 사람이 되도록 할 것입니다.
질문 3. 다른 나라의 문화나 관습, 가치관 등을 이해하는 안목을 넓히는 데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경험을 골라 구체적인 상황, 자신의 행동, 결과 등을 기술해 주십시오.
A)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에서 경험한 일입니까?
B) 그 상황에서 취했던 행동과 노력에는 어떤 것이 있었습니까?
C) 그 경험이 자신에게 미친 영향은 무엇입니까? 다른 나라에 대한 이해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습니까?
<한식으로 맺어진 친구들>
2008년도 1월부터 2009년도 12월까지 중국 천진대학교에서 교환학생으로 있었습니다. 당시 교환학생들은 모두 외국인 기숙사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1인실이라 모두의 사생활이 보장됐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기숙사에는 각국에서 온 학생들이 함께 생활했습니다. 기숙사 내에서 취사가 가능해 매 식사 시간이 되면 각국의 음식냄새가 복도를 가득 메웠고 방음이 전혀 되지 않는 기숙사 내에서 몇몇 유럽인들은 금요일 밤만 되면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파티를 즐겼습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학업에도 지장을 줄 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생활을 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밥을 함께 먹고 어울리면 쉽게 마음을 열게 된다는 점을 이용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저와 몇몇 한국인 친구들은 한식 통해 외국인들에게 접근하기로 하였습니다. 먼저 금요일 밤 한식 파티에 초대한다는 초대장을 게시판에 붙이고 몇 가지 한국요리 및 한국식 밥과 밑반찬 등을 뷔페식으로 준비하되 철저히 한국식으로 수저를 사용했습니다. 함께 밥을 먹고 친해지는 것 외에 한국문화를 알리고자 한 취지 때문이었습니다. 파티는 한식이라는 매개체로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친구가 되게 해주었고 서로 불편했던 점을 스스럼없이 털어놓게 만들었습니다. 모두 열린 마음의 젊은 대학생이었으므로 대화는 시원시원 풀려갔고 첫 파티는 밤새 이어졌습니다. 한번 그렇게 어울리고 나니 그들도 우리를 자신들의 금요일 파티에 초대하기도 하고 시험기간에는 공부도 함께 하며 맛있는 음식이나 자국 고유의 음식이 있으면 서로 나누어 먹기도 하였습니다.
어울리려는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다른 문화에 대해 거부감부터 갖고 내가 가진 문화나 습관에 반한다고 힘들어 했던 모습에 대해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꾸준히 어울리며 그 외국인 친구들을 통해 작은 세계여행을 했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 사람과도 마음만 열면 친구가 된다는 진정한 글로벌 마인드를 갖게 해준 계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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