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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수르 왕에게 조공을 바침 18:13~16
13 히스기야왕 제십사년에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들을 쳐서 점령하매
14 유다의 왕 히스기야가 라기스로 사람을 보내어 앗수르 왕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나를 떠나 돌아가소서 왕이 내게 지우시는 것을 내가 당하리이다 하였더니 앗수르 왕이 곧 은 삼백 달란트와 금 삼십 달란트를 정하여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내게 한지라
15 히스기야가 이에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을 다 주었고
16 또 그때에 유다 왕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성전 문의 금과 자기가 모든 기둥에 입힌 금을 벗겨 모두 앗수르 왕에게 주었더라
예루살렘을 포위한 앗수르 18:17~25
17 앗수르 왕이 다르단과 랍사리스와 랍사게로 하여금 대군을 거느리고 라기스에서부터 예루살렘으로 가서 히스기야왕을 치게 하매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라 그들이 올라가서 윗못 수도 곁 곧 세탁자의 밭에 있는 큰길에 이르러 서니라
18 그들이 왕을 부르매 힐기야의 아들로서 왕궁의 책임자인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아삽의 아들 사관 요아가 그에게 나가니
19 랍사게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말하라 대왕 앗수르 왕의 말씀이 네가 의뢰하는 이 의뢰가 무엇이냐
20 네가 싸울 만한 계교와 용력이 있다고 한다마는 이는 입에 붙은 말뿐이라 네가 이제 누구를 의뢰하고 나를 반역하였느냐
21 이제 네가 너를 위하여 저 상한 갈대 지팡이 애굽을 의뢰하도다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그의 손에 찔려 들어갈지라 애굽의 왕 바로는 그에게 의뢰하는 모든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
22 너희가 내게 이르기를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의뢰하노라 하리라마는 히스기야가 그들의 산당들과 제단을 제거하고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명령하기를 예루살렘 이 제단 앞에서만 예배하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셨나니
23 청하건대 이제 너는 내 주 앗수르 왕과 내기하라 네가 만일 말을 탈 사람을 낼 수 있다면 나는 네게 말 이천 마리를 주리라
24 네가 어찌 내 주의 신하 중 지극히 작은 지휘관 한 사람인들 물리치며 애굽을 의뢰하고 그 병거와 기병을 얻을 듯하냐
25 내가 어찌 여호와의 뜻이 아니고야 이제 이곳을 멸하러 올라왔겠느냐 여호와께서 전에 내게 이르시기를 이 땅으로 올라와서 쳐서 멸하라 하셨느니라 하는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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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히스기야는 앗수르 왕이 유다 성읍들을 점령하자 성전과 왕궁의 은금을 다 내줍니다. 앗수르 왕이 보낸 사자들이 예루살렘에서 히스기야를 부르자 그의 신하들이 나갑니다. 랍사게는 히스기야의 약한 군사력과 하나님 의지하는 신앙을 비웃고, 하나님 뜻으로 유다를 멸하러 왔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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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수르 왕에게 조공을 바침 18:13~16
하나님만 의지하며 보호받던 히스기야에게 위기가 닥칩니다. 앗수르의 세력이 절정으로 치달으며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까지 쳐들어와 여러 성읍을 점령합니다. 산헤립은 블레셋의 통제권을 다시 얻고 유다를 정복하려 합니다. 산헤립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주요 관문인 라기스를 점령하자, 히스기야는 협상하려 사신을 보냅니다. 그리고 산헤립이 요구하는 막대한 조공을 마련하기 위해 성전과 왕궁 곳간의 은, 성전 문과 기둥의 금을 벗겨서 줍니다. 히스기야는 굴욕적인 태도를 취하지만, 이는 궁극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성도는 감당할 수 없는 위기 앞에서 하나님을 더욱 의지해야 합니다. 위기는 성도의 믿음이 성장하는 기회입니다.
● 더 깊은 묵상
히스기야는 앗수르 왕 산헤립의 맹공을 어떻게 방어하려 했나요?
감당할 수 없는 위기에 처할 때, 하나님이 내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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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을 포위한 앗수르 18:17~25
산헤립은 많은 조공을 받고도 예루살렘을 공격합니다. 산헤립이 보낸 장군들이 예루살렘으로 진격해 항복을 받고자 히스기야를 부릅니다. 랍사게는 히스기야의 신하들 앞에서 앗수르 왕을 ‘대왕’으로, 유다 왕을 ‘히스기야’로 칭하며 용기와 믿음을 흔드는 말을 쏟아 냅니다(19절). 그는 유다가 의지하는 애굽도, 하나님도 헛되다며 조롱합니다. 특히 예루살렘 제단에서만 하나님을 예배하게 한 일을 언급하면서 히스기야와 백성 사이에 불신을 조장합니다. 그는 유다의 미약한 군사력을 비웃고, 앗수르가 유다를 점령하는 것이 하나님 뜻이라고 하며 유다 백성을 선동합니다. 성도는 세상의 소리에 좌우되면 안 됩니다. 교묘한 선동을 분별하고, 진리에 귀 기울이며,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 더 깊은 묵상
유다 백성의 용기와 믿음을 흔드는 랍사게의 선동은 어떠했나요?
나를 흔드는 사람의 말은 무엇이며, 나를 붙드는 하나님 말씀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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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의 한계
무신론은 하나님의 빈자리를 채울 힘이 없다. 그들의 외침은 세상에 가득한 고통과 비극의 수수께끼를 풀어 주지 못한다. 인간은 희망 없이는 살 수 없는데 무신론은 철저히 절망의 철학이다. 무신론이 해결한 사회 병폐가 하나라도 있으면 말해 보라. 많은 사람이 무신론을 받아들이고 처음에는 만족하기도 하지만 결국 불신의 길이 얼마나 암담하고 절망적인지 깨닫게 된다.
오늘날 전에 없이 많은 사람이 저 벼랑 아래 심연으로 뛰어내리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무신론 책이 아무리 많이 출간되어도, 많은 무신론자 유명 인사가 교회를 욕해도, 종교적 자유를 억압하는 법이 많이 제정되어도, 하나님을 믿으려는 욕구를 세상에서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곧 인간 본성 자체를 없애려는 시도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1900년의 아프리카 기독교 인구는 약 870만 명에 불과했지만, 2025년에는 6억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당국은 공식적으로 무신론을 주창하며 종교 활동을 금하고 있지만, 2007년의 기록에 따르면 중국 기독교 인구가 전체 인구의 무려 5%를 차지했다. 반세기 넘도록 무신론을 강요하고 종교를 박멸하려 한 러시아에서는 현재 약 1억 명의 그리스도인이 살고 있으며, 2050년에는 그 수치가 두 배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은 초강력 고무 밴드 이상으로 탄력이 무한해서 어떤 경우에도 본래 형태로 돌아온다. 결국 십자가의 진리가 승리한다.
무신론자들의 마음속 / 앤서니 데스테파노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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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절묵상:열왕기하 18장 19절
앗수르 왕이 보낸 랍사게가 히스기야를 조롱합니다. 대체 무엇을 믿기에 그리 자신만만하냐는 것입니다. 객관적 전력만 비교하면 유다는 앗수르의 적수가 되지 못합니다. 당연히 항복하고 납작 엎드려서 살려 달라고 간청해야 합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상대적 우위에 있는 앗수르가 아니라 절대적 힘을 가지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합니다. 성도가 진정으로 두려워할 것은 대적의 힘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불신과 불순종입니다.
사역을 진행할 때 대부분의 큰 실수는 하나님의 일을 내 힘으로 하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 톰 레이너
오늘의 기도
하나님, “네가 누구를 의뢰하느냐?”라는 랍사게의 물음을 되새겨 봅니다. 눈앞에 어려움이 닥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고 계신 하나님을 더욱 굳건히 의지하는 믿음을 주소서. ‘하나님의 뜻’이라고 속이는 말에 현혹되지 않고 진정 하나님의 의중을 깨닫는 성도가 되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374 나의 믿음 약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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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9~12절 앞서 언급된 북왕국 패망의 역사가 다시 한 번 언급됩니다. 그 이유는 히스기야 역시 똑같은 도전에 직면해 있기 때문입니다. 기억되지 않은 역사는 되풀이됩니다. 히스기야가 북왕국의 과오를 되풀이할지, 아니면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극복할지는 그가 어떤 길을 선택하는지에 달려있습니다.
13~16절 산헤립이 올라오자 히스기야가 흔들립니다. 담대하게 앗수르와 단절했던 패기(7,8절)가 사라졌습니다. 천문학적인 은금을 바치며 산헤립을 달래보려 했지만, 그것으로는 산헤립의 탐욕을 만족시킬 수 없었습니다(참조. 17절). 산헤립은 예루살렘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시도가 좌절되고, 맞설 힘을 모두 소진했을 때에도 히스기야에게는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신 하나님이 함께 계십니다(7절).
17~21절 랍사게가 이스라엘 사신들 앞에서 히스기야를 조롱합니다. 히스기야가 전술도 없고 힘도 없으면서 말로만 자신만만하다고 모독합니다. 그러면서 “누구를 의뢰하느냐”고 반복해서 묻습니다. 애굽은 상한 갈대 지팡이처럼 무력하고, 오히려 그 지팡이를 잡는 자를 찔러 상하게 할 것이라고 무시합니다. 그의 말처럼 애굽은 이스라엘이 의지할 만한 대상이 아니었습니다(참조. 이사야 30장 1~5절; 31장 1~3절). 그러나 이스라엘에는 애굽은 견줄 수도 없는 분이 계십니다. 그가 히스기야와 함께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7절).
22,25,33~35절 랍사게의 도전은 핵심에 접근했습니다. 그는 이제 하나님을 공격합니다. 애굽은 그의 말대로 의뢰할 대상이 아니었지만, 하나님은 히스기야와 이스라엘이 전적으로 의지할 대상이었습니다. 이에 랍사게는 히스기야가 산당을 모두 허물어서 여호와가 돕지 않을 것이며, 자신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유다를 멸하러 왔다고 말합니다. 랍사게는 교묘한 말로 히스기야와 백성을 이간질합니다. 그는 더 나아가 어떤 신도 산헤립의 길을 막지 못했던 것처럼 여호와도 산헤립의 손에서 백성을 구할 능력이 없다고 조롱합니다(33~35절). 지금도 원수의 전략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게 만들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불신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요약
히스기야 왕은 앗수르 왕이 침략해 오자 은금을 다 내줍니다.
랍사게가 예루살렘으로 올라와 히스기야를 부르자 신하들이 나아갑니다. 랍사게는 히스기야의 약한 군사력과
하나님 의지하는 신앙을 비웃고, 자신들이 여호와의 뜻으로 유다를 쳐서 멸하러 온 것이라 말합니다.
오늘의 말씀해설
앗수르 왕의 유다 침공(18:13~17)
어떤 상황에서도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종교 개혁을 감행했던 히스기야는
앗수르의 침공을 받자 앗수르 왕에게 굴욕적인 모습을 보이며 조공을 바침으로써 이전에 보였던
믿음의 태도와는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그 결과 유다는 여호와의 전과 왕궁에 있는 은은 물론 성전 문과
기둥에 입힌 금까지 벗겨 앗수르에게 넘겨주는 참혹한 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한때 놀라운 믿음의 도약을
이루었어도 지속적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한다면 언제든지 넘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연약한 우리의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교만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깨닫고
겸손하게 성령을 의지할 때 자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게 됩니다.
- 묵상 질문: 유다가 비참한 상황에 처하게 된 원인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 적용 질문: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세상의 상식과 방법을 따르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랍사게가 전하는 모욕적 언사(18:18~25)
위기 상황에서 우리가 의뢰할 참된 구원자는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앗수르의 장군인 랍사게는
‘대왕 앗수르 왕의 말씀’을 전한다며 히스기야에게 모욕적인 언사로 도발합니다.
히스기야가 의지하는 애굽은 ‘상한 갈대 지팡이’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또
한 여호와를 의지한다는 히스기야가 왜 여호와께 제사드릴 산당과 제단을 모두 헐었느냐고 비웃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알지 못하는 앗수르 왕의 무지를 드러냅니다.
그러면서 그는 유다를 쳐서 멸망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며 자신의 공격을 합리화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을 좌절시키기 위해 사탄이 날리는 불화살도 이와 같습니다.
그럴 때 믿음의 방패를 높이 들고 하나님을 끝까지 의지하는 자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 묵상 질문: 랍사게가 전하는 모욕적인 언사의 수준은 어떠한가요?
하나님은 앗수르 왕의 교만한 말들을 어떻게 듣고 계실까요?
- 적용 질문: 참기 힘든 욕설이나 저주를 들은 적이 있나요?
모욕적인 말을 들을 때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한순간이라도 하나님을 떠나면 영적 전쟁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인생임을 알기에,
랍사게 같은 존재가 뭐라고 위협하든 저는 하나님만 의뢰하기로 결정합니다.
결코 꺾이지 않는 주님의 지팡이로 저를 안위하소서.
히스기야의 타협(13-16)
히스기야는 믿음으로 종교개혁을 행하였습니다. 하지만 앗수르의 침공 앞에서는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내게 됩니다. 왕궁 곳간에 있는 것과 하나님의 전에 있는 것을 모아서 앗수르 왕에게 조공으로 바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였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 줍니다.
히스기야의 연약함을 통하여 교훈을 얻게 됩니다. 아무리 좋은 믿음을 가졌다고 하여도 영구적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질 수 있음을 봅니다. 지금 믿음 생활을 잘 한다고 해서 교만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연약할 수 있는 존재인가를 깨닫는 것이 지혜로움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겸손함을 잃지 않고 하루하루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나 자신을 맡겨야 합니다.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런 삶이 가능할 때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믿음의 참 모습을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묵상하기
날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참된 믿음을 유지하며 사는가?
우리를 무시하는 자들
앗수르의 랍사게가 유다의 백성들을 향하여 교만스럽고 무시하는 말을 합니다. 자신이 훨씬 더 강하다고 주장합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비아냥거립니다. 결국 자신들에게 항복할 것을 말합니다. 랍사게의 말을 의미 있게 받아들이는 유다의 백성들은 자신들이 곧 망할 것 같은 초라함에 빠지게 됩니다. 이렇듯 우리가 사는 삶 가운데서도 세상 앞에서 초라해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들의 힘이 강하여 도무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보일 때도 있습니다.
세상은 랍사게와 같이 하나님의 능력도 무시하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우습게 여기는 일이 많습니다. 그들은 오직 자신들이 가진 것만을 과시하며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우리를 향해 무엇이라고 하여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그들이 보지 못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한 백성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묵상하기
어느 자리에서나 하나님의 자녀임을 분명히 하고 있는가?
침묵하는 백성들
랍사게의 말을 듣고도 백성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히스기야가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입을 닫고 있습니다. 종 종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세상에 대하여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입을 닫으라고 말씀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시면서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너희의 주인 됨을 알라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침묵하는 것도 복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세상이 나에 대하여 어떠한 공격을 하더라고 믿음의 사람은 조용히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볼 수 있는 인내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사건건 세상의 모든 일에 대답하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그 일들을 어떻게 처리하시는지 가만히 입을 닫고 서서 기다려 보는 것도 믿음임을 깨달아 아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묵상하기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가?
전도지 열공
히스기야 왕 14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를 치자.(13)
히스기야는 여호와 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모든 은과 금을 그에게 바쳤다.
심지어 문과 기둥에 입힌 금도 다시 벗겨서 조공을 바쳤다.(15)
무릇 요구한 은이 10톤, 금이 1톤이나 되었었다.(14)
그러나 엄청난 조공을 받은 앗수르는 다시 대군을 보내 유다를 칠려고 한다.
앗수르 왕이 다르단과 랍사리스와 랍사게로 대군을 거느리고
라기스에서 예루살렘으로 가서 히스기야 왕을 치게한다.(17)
여기가 라기스 요세.
유다의 9대왕 아마샤가 이곳으로 피신했다가 모반한 무리에 살해 당한 곳(왕하14:19)
앗수르 산헤립에 의해 점령 당한 곳. (왕하18장)
유다왕 르호보암 때에 애굽의 공격을 대비하기 위해 요세로 만들었다 함.
뒷쪽 멀리 보이는 곳이 유대산지이고 헤브론으로 올라가는 요충지라고 합니다.
예루살렘은 뒷 산지 꼭대기 왼쪽 어디 쯤이겠지요.
예루살렘에서 남서쪽으로 40km정도 떨어져 있답니다.
유다에서는 궁내대신 엘이야김, 서기관 셉나, 역사관 요아가 나가서 맞는다.(18)
랍사게가 정말 싸가지 없는 말을 몇가지 한다.
첫째는 네가 무엇을 믿고 그렇게 담대해 졌는냐?(19)
둘째는 네가 누구를 믿고 나에게 반기를 든 것이냐? (20)
세째는 애굽이 너희를 도와 줄 것으로 생각 하는 지 모르지만
애굽은 상한 갈대 지팡이 같아서 네 손만을 다치게 할 것이다.(21)
네째는 너희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말할지는 모르지만
산당과 제단을 헐고 예루살렘 이 단에서만 예배하라고 한자가 히스기야다(22)
다섯째는 앗수르 왕의 이름으로 한가지 내기를 제안하겠다.
말탈 사람 2,000명이 있으면 말 2,000필을 주겠다.(23)
여섯째는 내가 여호와의 도움 없이 너희 나라를 치러 온줄 아느냐?
여호와께서 이 땅을 쳐서 멸망시키라고 말씀하셨다 한다.(25)
랍사게의 싸가지 없는 말이 내가 세상에 살아가면서 듣는 말 아닌가?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 한다고 말하면서도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의신 여호와께로다 고백 하면서도
인간적으로 애굽과 같은 도움 될 것을 찾고 의지하는 내 모습
바로 이런 것을 비수처럼 꽂고 들어오는 랍사게.
하나님을 의지하려고 하면 귀하게 여기고 칭찬하기 보다는
무엇을 믿고 누구를 믿고 그러느냐는 비웃음과 유혹의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강한 힘을 앞세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무력화 시키고 낙담시키고 좌절 시킬고 굴욕감을 느끼게 하는 랍사게
심지어 산당과 제단을 파한 것으로 히스기야를 공격함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옳았던 개혁을 폄하하고 종교적 명분을 악용하여
왕과 백성들 간에 신뢰도 무너뜨리고 원망하게 만드는 랍사게
좀더 나아가서는 하나님 마져도 무능한 하나님으로 만들어 버리고
앗수르가 유다를 치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함으로
하나님을 모독할 뿐만이 아니라
백성을 혼란에 빠드리는 고도의 심리적 전술이기도 하고
사단의 전형적인 전략이기도 한것 같다.
하나님이 도움이 되지 못한 다는 망령된 말을
서슴치 않고 내 밷고 있는 랍사개의 언동을 본다.
세상에서는 누가 능력이 있는가?
누구의 세력이 쎈가?
누가 힘이 있는가?하는 기준에 따라 간에도 붙었다
쓸개에도 붙었다하는 것이 인간의 세상이다.
물론 명분이야 그렇듯 하게 포장을 하지만 ........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푯대가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비록 사단의 달콤한 말들이 합리적이고 경험적이고 객관적으로
그렇듯 하더라도 역사의 주관자이신 아버지를 향한 믿음만은
변하지 말도록 날마다 아버지의 뜻을 물으며 그분께 나아가자.
전도지열공
히스기야는 여호와께 연합함으로 강하게 되어 산당과 주상과 느후스단을 제거했고, 블레셋 견고한 성들을 쳐서 이겼고 어디로 가든지 형통했습니다 그러나 재위 십사년에는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모든 견고한 성읍들을 쳐서 점령함으로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을 다 주고 심지어 성전 문의 금과 자기가 모든 기둥에 입힌 금까지 벗겨서 앗수르 왕에게 바쳤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다시 앗수르 왕이 히스기야를 치려고 자기 신하들로 대군을 거느리고 올라가게 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히스기야가 이런 괴로운 지경에 처하게 된 것일까요?
그의 마음이 처음과 같지 않아서 여호와를 온전히 의뢰하지 않고, 애굽을 의뢰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애굽으로 돌아가지도 도움을 구하지도 말고, 전능하신 여호와만 의지하라 말씀했습니다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나니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사31:1~3)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강대국이나 세상 부자나 세상 고관을 의지할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대신 죽으시고 부활하신 우리 주만 의지하기 원합니다 그리하면 주께서 강림하사 우리를 호위하시고 구원하실 줄 믿습니다 "나 여호와가 강림하여 시온 산과 그 언덕에서 싸울 것이라 새가 날개 치며 그 새끼를 보호함 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보호할 것이라 그것을 호위하며 건지며 뛰어넘어 구원하리라"(사31:4~5)
그러므로 그들이 위협할지라도 흔들리지 않기 원합니다 "내 백성들아 막대기로 너를 때리며 몽둥이를 들어 너를 칠지라도 그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오래지 아니하여 네게는 분을 그치고 그들은 내 진노로 멸하리라"(사10:24~25)
왜냐하면 우리의 모든 원수들은 우리가 의뢰하는 주의 칼에 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앗수르는 칼에 엎드러질 것이나 사람의 칼로 말미암음이 아니겠고 칼에 삼켜질 것이나 사람의 칼로 말미암음이 아닐 것이며 그는 칼 앞에서 도망할 것이요"(사31:8)
그러나 우리에게는 주의 은혜와 긍휼과 평강으로 충만하게 하실 것입니다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요이1:3
전도지열공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미 히스기야의 아버지 아하스의 시대에 앗시리아의 힘을 빌려 외교적 위기를 극복하려 했던 것에 대하여 이사야의 입술을 통해 심판이 있을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 내가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 곧 앗수르 왕과 그의 모든 위력으로 그들을 뒤덮을 것이라 그 모든 골짜기에 차고 모든 언덕에 넘쳐 (사 8:7)”
이는 비굴하게 성전의 금을 벗겨가면서까지 조공을 바쳐서 그 강한 공격을 막아보려 했던 히스기야의 세상적 노력을 무참하게 무시하고 예루살렘까지 군사들을 진군시켜 히스기야와 여호와의 이름을 모욕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앗시리아의 왕 산헤립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의 불순종과 불경건을 향해 택하신 “진노의 막대기요 그 손의 몽둥이는 내 분노(사 10:5)”로 사용되었고, 심지어 그는 25절 말씀을 통해 자신도 “여호와의 말씀과 명령” 받았다고 자신의 행동을 보증하고 정당화 하기까지 합니다. 히스기야는 북 이스라엘의 방패와 아람의 견제도 없고, 암몬과 모압, 에돔의 세력조차 무기력해진 강대국 앗시리아를 상대하여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해야 하는 믿음의 시험대에 놓여 있습니다
. 이유 없는 고난도 끝이 없는 어둠의 터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그 고통의 길과 험난한 고개 뒤에 막다른 길이 있고, 태초부터 예비하신 하나님의 뜻이 놀라운 섭리를 통해 인생의 길목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문제는 믿음의 눈으로 그 뒤에 다가올 일들을 바라보며,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간 가운데 온전히 여호와를 의지하며 살아갈 것을 결단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조롱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사탄의 거짓 고소에 낙심함이 없이, 오직 성령의 충만함으로 허락하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세를 행하고 누리는 하루의 시간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삶의 순간순간마다 인생의 여정을 통하여 익숙하게
사용한 세상의 지식과 어리석은 꾀에 따라 그릇된 선택을 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에 거하지 못했던 순간이 얼마나 많았는지
말씀을 통해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남은 삶의 길을 걸을 때마다 여호와께서 태초부터 계획하셔서
이 땅 가운데 생명을 허락하신 그 크신 계획을 믿음으로 바라보게 하시고,
온전히 여호와를 의지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전하고
증거하는 일에 끝까지 쓰임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구원의 깊은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가정과 사역위에 기름 부어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아버지께서 풍성하게 채워 공급하여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모든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신음하는 이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고,
회복과 치유의 손길로 덮어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아버지의 은혜와 사랑을 악한 세상 가운데 선포하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