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평화를 사려던 송나라의 최후
'진짜 평화는 뚜렷한 안보의식으로 지킬 수 있다'는
금언을 기억해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오늘 우리나라에 도래해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돈으로 주고 산 평화는 오래가지 못한다'라는
사례는 송나라를 통해서 알 수 있다.
960년, 무신 조광윤이 후(後)주의 마지막 황제로부터
선양받아 송나라를 건국했다.
송나라 1대 황제(태조)가 된 조광윤은
중국의 분열 상태를 끝내고 싶었으나 도중 병사했다.
그의 동생 조광의(태종)가 뒤를 이어
중국 통일을 이루고, 과거제도의 기틀을 다졌다.
과거제도는 태종의 아들 진종(眞宗)시대에 완성되었다.
그러나 과거제도의 확립으로 인해
관직 진출의 기회는 많아졌지만, 지나친 문관우대와
무관의 홀대로 군사력의 쇠퇴를 불러왔다.
송나라가 문관우대정책을 펼치게 된 이유는
과거 당나라가 무신들의 반란이 잦아
국가가 망했다는 이유였다.
그러던 1004년, 당시 요나라를 전성기로 이끌었던
요 성종이 대군을 이끌고 송나라로 쳐들어오자,
송 황제 진종은 요나라에 매년 하사품을
내리는 형식으로 평화협정을 맺었다.
이와같은 조치는 송으로서는 다행인 것이었다.
당시 요나라는 북방민족들을 제압하고 장악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송과의 불필요한 전쟁은
요나라로서도 원하지 않았다.
따라서 송나라의 이러한 정책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요나라와 송나라가 전쟁하던 동시대에
서쪽의 탕구트족은 ‘서하’를 건국하면서
송나라에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역시 이것도 1044년 재물을 보내는 것으로
화의를 맺었다.
▲ <송의 눈물>
송의 수도를 모습을 그린 <청명상하도>
송나라는 서하와 요나라에 돈을 주고 산
평화가 찾아왔다.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루어 송나라는
더욱 부유해졌다.
당시 송나라는 인구, 경제력, 무기생산에서
당시 세계 제일이었다.
제철기술은 유럽의 기술수준을 훨씬 능가했으며
연간 3만5000~4만 톤을 생산했다.
이 정도의 규모는 산업혁명 전 전체 유럽 생산량을
능가하는 규모다.
그리고 세계 최초의 지폐 ‘교자’가 유통될 정도로
매우 발달했다.
인구도 세계 최초로 1억을 돌파하는 국가가 되었다.
귀족중심의 사회지만 평민들도 과거 왕조에 비해서
상당히 인간적인 삶을 구가하게 되었다.
그러나 국방에는 여전히 소홀했으며,
무관들에 대한 형편없는 대우로 인해
무관들의 불만은 점차 쌓여갔다.
송나라 제6대 황제 신종은 왕안석을 등용하여
국정개혁을 추진하고 영세농민, 중소상인을
보호하는 정책을 펼쳤는데 대상인, 지주,
고위관료들의 극심한 반대로 인해
조정은 내분이 일어났다.
이 시기에도 국방에는 소홀히 했다.
점차 송나라의 국력은 약해져만 갔다.
한편 1115년, '완안 아골타'가 여진족들을 모아
금나라를 건국하고 세력을 늘리고 있었다.
이에 송나라는 금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요나라를 같이 칩시다.”라고 요구했다.
1121년 요나라는 멸망했다.
그러나 1127년, 과거 송나라와 요나라가
금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밀약을 맺었던 게 들통 나자,
금나라는 송나라를 대대적으로 침공해
요충지 카이펑을 점령하고 당시 송 황제
흠종을 비롯해 황실사람들을 잡아갔다.
결국 흠종의 동생인 조구는 남쪽으로 천도하여
임안에서 황제 고종으로 즉위했다.
이 시기부터 ‘남송’으로 불렸다.
처음에는 무신 ‘악비’를 등용하여
금나라에 잘 대항하고 금나라를 위협하기까지 했다.
특히 남송시절에는 강남지역까지 금나라가 쳐들어왔는데
익비, 오린, 오개든, 한세충 등이 1130년부터 4년동안
강남지역에 쳐들어왔던 금나라를 완전히 박살냈다.
이에 당시 금나라 태종도 죽어
금나라는 북쪽지역으로 후퇴했다.
그러나 돈으로 평화를 살 수 있다고 믿는 ‘진회’가
재상에 오르면서 주전론자들은 조정에서 쫓겨났다.
익비를 처형했고, 익비와 같이 구국공신이었던
한세충은 은거했다.
진회는 금나라와 화친조약을 맺고 황하 강 이북의 땅을
금나라에게 양보했다.
또 매년 25만냥의 은과 25만필의 비단을
조공바치기로 했다.
이 뜻은 남송의 황제가 금의 황제한테
‘신하로서 예를 취한다’는 뜻이었다.
사실 위에서도 설명했듯 송나라의 경제력이 뛰어나고
문물은 매우 발달해서 은 25만냥과 비단 25만필은
부담되는 돈은 아니었지만 송나라의 안보와 자존감은
무너지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인해 진회는 매국노로 지탄받았고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진회는 공포정치를 펼쳐
반대파와 주전파를 철저히 탄압 했다.
한편 13세기초가 되자 북방에서는 징기스칸의
몽골 집권 이후, 중동, 시베리아 지역
그리고 동유럽까지 영토확장하는 가운데
중국 본토도 역시 몽골의 계속된 공격을 받고 있었다.
금과의 불편한 관계에 지쳐있던 송나라는 1234년
몽골과 협력하여 금나라를 공격해 멸망시키긴했지만
곧 몽골은 송나라마저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때도 송나라는 돈과 화친정책으로
몽골과 평화를 유지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결국 몽골의 계속되는 침입으로
1276년 송나라의 수도 임안이 점령되었고
1279년 송나라 전체가 완전히 몽골에게 점령당해
송나라는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송나라가 멸망하기 직전에도
송나라의 정규군은 100만명이 넘었고,
무기와 재력 또한 상당했다.
당시 평민들의 삶의 수준도 나쁘지 않는 상태였다.
이런 문물이 발전하고 경제력 또한 상당했던 나라가
허무하게 망한 것이다.
이는 부유하고 문물이 발달한 송나라가
요, 금, 서하, 몽골 등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국가들에 대해
돈을 주고 평화를 산 댓가였다.
아무리 문화가 뛰어나고 경제력이 풍부해도
정신적으로 해이해지고 국방과 안보에 소홀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송나라는 보여주고 있다.
▲ 대비되는 대한민국과 북한의 모습
한편 <조갑제닷컴> 조갑제 대표의 말에 따르면
“송의 말로는 쇠망하는 한국의 모델이 될 수도 있다.
물질적 풍요에 젖어 자주국방과 상무정신을 잃어간 점,
경제·문화·예술은 발달했으나 애국심과 단결심
그리고 지도층의 청렴성이 부족한 점,
외교에 의리가 없는 점, 문을 숭상하고 무를 천시하는
폐단이 많은 점과 또 송이 중국 역사상 가장 풍요로웠듯
현재의 대한민국은 한국 역사상 최고로 풍요로운 나라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가난과의 싸움에서 이겼지만
풍요와의 정신적 싸움에서 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반도의 ‘배고픈 나라’ 북한에 ‘배부른 나라’ 남한이
먹히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고 지적했다.
1200년대에 송나라가 돈으로 사고자 했던 평화를
2000년대 대한민국에서 '햇볕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재현되고 있다.
현재는 5. 24조치 등으로 중단되었지만
아직도 송나라 멸망을 따라가려는 세력들이 있다.
우리는 송나라의 멸망을 반면교사로 삼아
이와 같은 일을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키 리졸브'(KR)를 싫어하는 무리들?
한·미의 연합군사훈련인 '키 리졸브'(KR)
연습 시점에 맞춰 북한군이 대규모 국가급
훈련에 돌입하는 등 남북한의 군사적 대치가
가팔라지고 있어 한반도에 일촉즉발의
군사적 긴장감이 조성되고 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0일
'침략자들에게 무자비한 복수의 철퇴를'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지금 최후의 전면대결전에 진입한
우리 전선군집단을 비롯한 육군, 해군, 항공 및
반항공군 부대들과 전략로케트 군부대들,
노농적위군과 붉은청년근위대들은
최후 돌격명령만을 기다리고 있다"며
"다종화된 우리 식의 정밀핵타격 수단들도
만반의 전투동원태세에 있다"고 밝혔다.
앞서 북한은 지난 5일 최고사령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이번 전쟁연습(KR 연습)이 본격적인 단계로
넘어가는 3월 11일 그 시각부터 형식적으로
유지해오던 조선정전협정의 효력을 완전히
전면 백지화해버릴 것"이라며
"우리는 정전협정의 구속을 받음이 없이 임의의 시기,
임의의 대상에 대해 제한 없이 마음먹은 대로
정밀타격을 가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북한은 3년 전에도 한·미 군사훈련 기간에
천안함 폭침 도발을 자행했다.
북한은 키 리졸브 연습에 대응해 강원도 원산 일대에서
육해공군, 특수전부대 등이 참가하는 대규모
국가급훈련을 11일부터 실시할 것으로
군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북한이 연례적인 한·미 훈련에 국가급 훈련으로
맞대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군 당국은
"북한이 도발을 감행한다면 우리 군은 도발 원점과
도발 지원 세력은 물론 그 지휘 세력까지
강력하고 단호하게 응징할 것"이라는 대응 방침을
천명한 만큼 북한의 도발 시 국지전이
전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11∼21일 실시되는 키 리졸브 연습은
2015년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을 앞두고
한국군이 주도적으로 작전계획을 수립해 시행하는
첫 한·미 연합 훈련이다.
한국군 1만여명과 미군 3500여명이 참가하며
F-22 스텔스 전투기와 B-52 전략폭격기,
핵추진 항공모함도 훈련에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이 훈련을 비난하며 정전협정 백지화와
판문점대표부 활동 중단, 남북간불가침에 관한
합의 및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파기 등으로 위협했다.
-만약 북이 도발을 한다면 이번에는 북의 존재를 날려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