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수경 / 아트플랫폼 누아트 디렉터
[앵커]
영국의 현대 미술가인 데미안 허스트는 예술을 통해 삶과 죽음의 경계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는 작가인데요. 죽음을 박제하는 예술가로도 잘 알려져 있는 데미안 허스트와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해 오늘 <사이언스 in Art>에서 알아봅니다. 온라인 아트플랫폼 누아트 박수경 디렉터와 함께 합니다. 어서 오세요.
데미안 허스트 하면 동물의 사체를 유리관 안에 넣어 전시한 작가로 유명한데, 먼저 데미안 허스트에 대해서 설명해주시죠.
[인터뷰]
네, 데미안 허스트는 영국 브리스톨 출신으로, 현존하는 현대 미술 작가 중 가장 유명한 작가 중 한 명인데요. 1991년에 연 첫 개인전에서 포름알데히드 용액이 가득 차 있는 유리 진열장 안에 죽은 상어가 들어있는 작품을 설치하면서 굉장히 이슈가 됐었죠. 데미안 허스트는 이 작품으로 당시 미술계와 대중에게 큰 충격을 안기는데요. 작품명은 한국어로 번역하면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육체적 불가능성'이라는 작품입니다.
[앵커]
저도 그 작품을 보고 처음에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작품에 담긴 의미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시죠.
[인터뷰]
지금 자료화면이 나오고 있을까요? 굉장히 큰 수조 안에 포름알데히드 용액이 가득 채워져 있고, 그 중심에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실제 상어가 자리잡고 있는데요. 상어가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데 마치 먹이를 잡아먹기 직전의 모습 같습니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공포심을 불러 일으킬 정도의 꽉 찬 액체도 숨 막히게 느껴지는데요.
데미안 허스트는 이 작품을 통해서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고, 처음 이 상어를 구할 때 어부에게 '당신을 잡아 먹을 만큼 큰 상어'를 원했다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데미안 허스트가 이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바닷속에서 공포의 존재이기도 한 이 상어의 죽은 육신, 그리고 그것을 박제했지만 그럼에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그런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데미안 허스트는 이 작품 외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소나 양 같은 동물을 이용해서 ‘자연사’ 시리즈들을 작업하기도 했습니다.
[앵커]
상어뿐만 아니라 소와 양 같은 동물을 이용했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다른 작품은 뭐가 있나요?
[인터뷰]
네, 포름알데히드 용액을 사용한 작품은 아니지만, 또 다른 작품으로는 <천 년(A Thousand Years)>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 작품도 만만치 않게 충격적인 비주얼인데요. 두 공간으로 나뉜 진열장 한쪽에는 절단된 소머리가 놓여있고요. 그 위로는 우리가 흔히 전기 파리채라고 알고 있는 그런 비슷한 형식의 전기 충격 망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또 다른 한쪽 공간에는 살아있는 파리와 구더기를 넣어두었는데요.
절단된 소의 머리에서 흐른 혈액 때문에, 그 냄새를 맡고 다른 공간의 파리가 넘어와서 이 소머리 위로 모이게 되고요, 이 파리들이 또 소머리 위의 전기 충격 망에 닿아서 죽게 됩니다. 그렇게 떨어진 파리들 때문에 또 구더기가 생기게 되고요, 이 구더기가 다시 하루살이가 되어서 소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과정을 작업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이 작품 또한 생명의 탄생과 죽음의 연속을 직접 보여주는 설치 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앵커]
어쨌든 예술작품이라곤 하지만 동물 학대 논란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은데요, 이에 대해서 작가는 어떤 생각일까요?
[인터뷰]
네, 동물의 죽음을 이용해서 작품화하는 부분에 대해 그동안 동물 애호가들이 거세게 비난하기도 했는데요. 가장 크게 논란이 되었던 사례 중 하나로 2012년에 테이트 모던에서 진행된 <사랑의 안과 밖>이라는 전시가 있습니다. 이 전시에서 데미안 허스트는 창문이 없는 하얀 벽으로 이루어진 공간 안에 나비가 날아다니도록 풀어두었고요. 전시장 안에는 꽃이나 과일, 설탕물 등을 설치해두었습니다.
전시가 20주 이상 진행됐는데, 그 기간 약 9,000마리 이상의 나비들이 죽었다고 하고요. 이 작품을 실제로 본 관객 중 일부는 가짜 나비인 줄 알았다, 진짜 나비라니 너무 잔인하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입장에 대해 데미안 허스트는 공식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밝히진 않은 거로 알고 있고요. 다만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아름답습니다. 유일한 문제는 그것이 죽었다는 것입니다.'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또 그 당시에 논란에 거세지자 데미안 허스트의 전시를 주최했던 테이트 모던의 대변인은 '이 전시장 환경은 나비들이 자연환경에서보다 더 오래 살 수 있을 정도로 좋은 환경이다.’라고 밝히면서 논쟁이 일기도 했다고 합니다.
[앵커]
네, 뭔가 이해할 만한 내용은 아닌 거 같은데요, 이런 논란을 계기로 예술성을 인정받으면서 작품의 가치가 더욱 상승하게 됐다고 하는데, 이건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주시죠.
[인터뷰]
네, 데미안 허스트는 1995년에는 영국에서 최고의 작가에게 수여되는 터너상을 수상하기도 했고요, 또 앞서 소개한 죽은 상어를 다룬 작품은 당시 5만 파운드, 약 1억 원에 팔리기도 했습니다. 이때 포름알데히드 용액을 사용한 방부처리가 완벽하지 않아서, 시간이 지나면서 박제된 상어의 모양이 쪼그라드는 등 변형되었다고 합니다. 복원이 어려웠다고 하는데요, 새로운 상어로 교체하는 조건으로 이 작품이 다시 100억 원에 팔립니다. 이후 2005년에 한 경매에서 한화 약 120억 원에 낙찰되기도 했을 정도라고 하니 일각의 논란 속에서도 작품가는 계속해서 상승한 셈입니다.
[앵커]
인기와 논란을 한몸에 받는 스타 작가임에는 분명해 보입니다. 그런데 데미안 허스트는 작가이기도 하면서 사업가로도 성공했다고 하는데요. 작품을 기획하는 능력이 상당하다고요.
[인터뷰]
네, 데미안 허스트는 대학생 시절부터 뛰어났던 기획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작품을 홍보하고 또 판매하는 것에 재능이 있었고요. 작품이 자극적이긴 하지만 또 그 안에서 심오한 의미를 찾도록 장치를 해두었거든요. 때문에 비판도 있지만 동시에 현대 미술의 대표적인 작가 중 한 명으로 분류되기도 합니다.
데미안 허스트는 활동이 잦아지고 또 작품의 인기도 많아지면서 개인 매니저를 고용했는데요, 당시 주로 배우의 매니지먼트 쪽에서 유명하던 프랭크 던피라는 매니저를 통해서 직접 경매에 작품을 내고 거래했다고 하는데요. 이 매니저가 수익 창출에 아주 능해서,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 이미지를 활용해서 다양한 아트상품을 기획하고 제작했다고 합니다.
이런 과정을 봤을 때 데미안 허스트는 작업에만 몰두하기보다는 비즈니스에도 중점을 두는 행보를 보였고요. 또 작품을 제작할 때도 어시스트들을 두고 작업했는데, 지난 방송에서 다뤘던 앤디워홀의 대량 생산 스튜디오인 ‘팩토리 스튜디오’와 비슷한 맥락입니다.
[앵커]
그렇군요, 정말 재주가 많은 사람이네요, 그런데 영국에 데미안 허스트를 외에도 파격적인 예술 세계를 가진 작가들이 많다고 하는데, 몇 분 소개해주실까요?
[인터뷰]
네, 데미안 허스트는 영국 현대 미술을 부활시킨 주역이기도 한 YBA 라는 그룹의 중심에서 전위적인 활동으로 인지도를 쌓았는데요. YBA는 Young British Artsist 의 각 앞글자를 딴 줄임말인데, 당시 영국을 대표하는 젊은 작가들을 뜻합니다. 이 YBA는 1980년대부터 활동했는데, 여기 속한 아티스트들은 굉장히 개성이 넘치고 자유분방했고요. 작업의 주제 또한 경계를 무너뜨리는 전위적이고 기발한 작업을 많이 했습니다.
이 그룹에 소속된 아티스트 중에는 데미안 허스트와 마크 퀸, 트레이시 에민, 채프만 형제 등이 있는데요. 당시의 현대 미술이 다루던 주제보다는 좀 더 도발적인 성이나 폭력, 마약 같은 사회적인 문제들을 과감하게 다뤘기 때문인데요. YBA 그룹의 작가 대다수가 데미안 허스트와 마찬가지로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 출신이고요, 당시 교수이자 세계적인 작가이기도 한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영향을 받아서 장르를 넘나드는 창의적인 작업이 이들의 공통점입니다.
이 YBA는 또 젊은 아티스트들답게 발상도 독특했는데요, 1988년 데미안 허스트가 기획에 참여했던 프리즈라는 전시를 통해 이름을 알렸는데, 당시에 통상적으로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전시를 했다면 이 YBA 작가들은 런던의 한 창고를 무료로 빌려서 전시했다고 하고요. 마케팅에도 능해서 당대 미술계 인사들을 초대하기도 하면서 적극적으로 홍보했다고 합니다. 이후에 찰스 사치 같은 컬렉터나 갤러리스트에게 후원을 받으면서 인지도를 높였습니다.
[앵커]
네, 현대미술이라는 게 그 시대에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파격적인 작품들에 대해 논란도 많은 게 사실인데요. 데미안 허스트를 비롯해 많은 현대 미술 작가들에 대한 먼 미래의 평가도 굉장히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박수경 디렉터와 함께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