뚤래뚤래 둘러본다.
다음 작업지시 할 것이 정해지지 않았나보다.
“아무래도 난 계단아래가 뻥 뚫려있어서 누가 보나따나 영 거시기하네야”
맞는 말이긴 하지만, 내가 먼저 말한게 걸린게다.
하긴 그 문이 꼭 최우선이라고는 할 수 없다.
TV주변이 여간 복잡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좌측은 포장박스가 쟁겨져있고,
우측은 간이받침대 위로 컴퓨터와 주변기기들이 대충 어지러이 널려있다.
그런데다 소파 양옆도 짐이니 아직도 이삿짐 못푼 티가 나는 집안이다.
가구가 한 두달만에 뚝딱 만들어지는게 아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봄에 이사와서 지금은 여름이 꼭지까지 와있다.
다행인 것은 가구들 만드는 일에 한창 미치던 참이라 그 더운 여름을 콧잔등
위로 흘려 보내고 있던 참이다..
단 한가지, 아내랑 거의 다툴뻔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오메~!!! 뭔 전기요금이 이렇게 많이 나왔다요? 기계가 다 잡아 묵었구만잉?”
“아니여, 기계는 별로 안묵어. 집안에 냉장고가 몇개여? 오래된 것이라서 그랴”
했더니... 내가 냉장고를 혼자 쓰냐고, 헌 것도 하나 버리고 와서 새걸로
바꿨고 그런디 그러냐고... 당장 에어컨부터 28도로 맞추고 외등도 끄란다.
하긴 나도 놀랐다. 살면서 전기요금을 40만원대 내보기는 첨이었다.
전에는 1,2층 세대로 나눠서 누진율이 적게 적용되었는데, 여기선 세대분리가
안되니 800KW를 넘어가는 전력소비량을 그대로 누진제의 굴레를 둘러 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지척에 한전에 근무하는 사람이 나보다 1년 먼저 들어와 살고 있었다.
아내는 내가 하는 얘기는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즉시 수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내가 딱 부라지게 긴건 기고 아닌건 아니라 해서인가?
일단 내 말에 딴지를 걸고 보는 습관이 입에 베어있지 않나싶다.
“형수님, 저희도 이사올때 냉장고랑 김칫독이랑 다 버리고 새로 샀어요.
여기 단독주택에서 살려면 그게 더 현실적이겠더라고요“
이런 똑똑한 아우가 또 없다. 언질을 주지 않았는데도 맥을 짚어 말해준다.
“나도 안디요, 아직 쓸만한디 버릴라믄 낭비같아서요...”
결정적으로 사고의 출발점이 나와 다르다. 근면과 검소는 아내의 신조이다.
그에 비해 나는 들어오기 바쁘게 나간다. - 내 사주가 그렇다 한다 -
나는 내 목공기기들의 누명을 벗어주기 위해 옥션을 뒤진다. - 바로 낭비질 -
디지털 전력표시계! 벽콘센트에 꽂아 놓고 냉장고 플러그를 꽂아 놓으면
현재 사용량과 한달치 전기요금까지 계산해 준다. 두 개를 사서 하나는
작업장에다 나머지는 다용도실에 연결했다.

플러그를 꽂으면서 이렇게 치사한 짓까지 하나 싶었다.
사실 난 전기에 대해 좀 많이 아는 편이다. 아내가 모를리 없다.
엄청난 전기요금에 화가 나서 그냥 내게 덮어 씌우고 싶었던건데...
15년 넘은 800L급 냉장고 2개, 김치냉장고 2개, 새로 산 냉장고와 냉동고
이것만으로도 500KW가 훌쩍 넘었다. 전에는 두 세대로 나눠 냈기 때문에
실감하지 않았을 뿐이지 전력소비량은 그대로였겠다.
뜨거운 8월의 어느 머찐날, 배불러서 기분좋은 타임에 슬쩍 얘기했다.
“태양광 설치해야 할까?”
“뭔 소리다요? 그 돈이 그 돈이라메요?”
듣고 싶은 말이었다. 아니, 약쳐놓은거 잘먹힌지 확인했다!
원래는 주차장 지붕위로 태양광을 설치하려고 지붕 경사각까지 잡았었다.
그런데, 시멘사이딩 외벽에 슁글지붕으로 저렴하게 지으려고 했던 주차장이
본채를 짓는 동안에 귀가 얇아질대로 얇아져서 이왕 외벽하는거, 수성폼쏘는거,
기왕에 기와지붕하는 김에 같이 하라는 꼬심에 넘어가 바닥난방만 하지 않았을
뿐이지 거의 별채같은 주차장이 되었다.

덕분에 덜 덥고 덜 추워서 작업환경은 왔따였다.
해서, 이쁜 기와지붕위에 태양광을 설치하려니 여간 마음이 내키지 않았던
것인데 전기요금이 많이 나오니까 혹시 그 얘기 꺼낼까 싶어 박은 못 한번
더 찍어 박은 것이다. 내가 갈수록 영악시러워 지는걸까?
*** *** ***
문의 형태는 계단에 맞춰 사선을 그대로 반영하고, 문틀은 애쉬로 포인트로
두른 테두리는 샤벨로, 문은 하드메이플-체리-레드오크-화이트오크 순으로
집성한다. 문하나 만드는 비용이 사는 것보다 서너갑절은 더 든다.
대신 자투리가 남지 않는가. 이것들은 나중에 아주 요긴하게 쓰인다.
오일먹이고 왁싱하니 역시 돈 좀 묵은 티가 난다.
이젠 안물어보고 손잡이도 만든다. 이번엔 좀 투박하지만 덜 단조롭게...


하드우드들의 조합에 만족하고 있는 나와는 다르게 아내는 그저 원목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에 더 값어치를 두고 있지는 않을까...
여하간 튀지않고 유연한 색감에 흡족해 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안도감이
포함된 깊은 숨을 아주 천천히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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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오일을 몇번 칠하고 마르는 동안에 다음 가구를 준비한다.
TV왼쪽에 놓을 컴퓨터 책상이다. 일반 책상의 높이보다 다소 낮아야 했다.
이유는 그 쪽의 벽에 붙어있는 전등스위치며 인터폰 및 보일러와 전열 교환기등의
컨트롤러가 있어서 책상위로 모니터가 놓이게 되면 가려지게 되니 조작하는데
지장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번 책상은 내가 처음으로 디자인하고 만든 것이었다.
내깐에는 작품성있게 만든다고 서랍은 과감히 생략하고 대신 수납공간을 라운드로
처리해서 전체적인 분위기를 평범치 않게 보이려고 했다.
저렇게 만드니라고 50R짜리 루터날을 인아웃으로 제작의뢰해서 써보기도 했다.
작은 루터테이블에서 작업하는데 이렇게 큰 루터날을 사용하기는 처음이라
그 일으키는 바람이 시원하기는 커녕 바들바들 떨면서 작업해야 했다.
이사오기 직전에 테이블쏘에게 된통 맞았었다.
톱날에 갈려서 왼손 검지 끝마디를 잃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아직도 부분적으로 돌아오지 못한 촉감을 수시로 느끼면서 평소 기계들에
대한 자신감이 과했다는 것을 일깨워 준 계기로 삼았다.


끝으로 위 사진에 빌붙어 나온 스페셜게스트를 소개한다..
가구라기엔 그렇지만, 이 공간에 들여온 내 첫작품이다.
저거 남았을 때 알아 본 사람들은 다 탐냈었지만, 기필코 사수했다.
이른바, 공학목재중에서도 잘생기고 강도높은 패러램(PSL)이다.
설계시에 이미 반영했던 부분으로 내부인테리어를 위해 거실천장에 노출시켰다.
하중을 분산시키기 위해서 14M짜리 세 개가 들어가고 남은 자투리다.
일부러 의자만들자고 구할 재목이 아니기에 귀하지 않을 수 없다.

거친 느낌의 표면도 좋지만 마구리면은 그대로가 곧 예술이다.
지금은 저 자리에서 물러나 안방TV대로 잠시 쓰이다가 또 다시 밀려나
다용도실 입구에 이렇게 다소곳이 있다


이왕 최초의 가구가 나왔으니 내 손으로 만든 최초의 조명사진으로 끝맺는다.
코너등을 사려다 마음이 바뀌어서 정말 아주 간단하게 조립수준으로 붙였다.
벽체날개를 샤벨로 마무리하고 남은 자투리로 만든건데 분위기가 꽤 만족스럽다.
한때는 보드라운 빛으로 밤을 지켰으나, 지금은 전기요금에 밀려 거의 안킨다.

거실위로는 오픈구조여서 세군데 코너를 한꺼번에 담을 광각렌즈도 없지만,
이런 조명을 뚜렷이 멋지게 찍는 카메라기술이 참 아쉽다.
- 다음은 손없는 날 골라서 올림 -
첫댓글 일단은 함 가봐야할거 같아요 ㅎㅎ
태양광 결정 최고입니다. 올 여름 쾌적하게 보내시고 요금은 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