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시작을 하겠습니다. 오늘 새롭게 오신 분도 있고 하니 지난 시간에 한 것을 다시 복습하겠는데, 그리고 가능한 한 쉽게 하도록 하겠는데, 그렇게 반복해야 우리가 공부한 것들이 다시 정리가 되면서 기억 속에 차곡차곡 쌓인다는 말이다.
◈ 철학은, 보이는 것을 도태로 !!
철학은 보이는 것을 도태로 해서 또 보이는 것으로, 그렇게 계속해서 보이는 것으로 나아가는데, 그렇다면 이 보이는 것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왔는가? 그것이 옛날부터 큰 고민거리였다는 것이다. 물론 보이는 것에는 나무도 있고 강물도 있지만, 특히 보이는 것이 곧 인간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인간이 어디서부터 움직이는가?" 라는 생각을, 옛날 그리스 사람들은 철학을 통해서 많이 탐구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탐구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사람이 살다보면 뭔가 전혀 예상치 못한 일들이 발생하는데, 오늘도 그런 일이(?) 벌어졌는데 말이다. 하지만 예상을 하지 못해도, 그러한 일에는 분명히 원인이 있을 것인데, 즉 원인을 밝혀서 앞으로는 다시는 그런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기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을 자꾸 겪게 되면 그것이 곧 실패로 연결되는데, 실패는 그렇게 기분 좋은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성공도 너무나 일방적인 것인데, 사람들은 자기에게만 성공이 될 때 성공이라고 한다는 말이다. 남의 성공은 자기의 성공이 아니기에 관심도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100명이 입사시험을 쳤는데 3명만 결렸다고 하면, 이 3명에 들어간 사람은 성공이지만 그러나 나머지는 모두가 다 실패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두고서 성공이라고 좋아하고 떠든다면, 오히려 상대방에게는 약만 올리게 된다는 말이다.
◈ 성공에는 반드시 그 원리가 !!
인간은 이렇게 자기만 생각하는데, 그런데 언제 그렇게 자기를 생각하게 되는고 하니, 꼭 자기가 기대한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을 때 "이 세상은 왜 내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는가? 나는 무엇인가? 앞으로 또 실패가 나를 기다린단 말인가? 나는 또 실패를 해야 돼? 왜 나는 남들처럼 성공에 가담하지 못하는 것이지? 정말 기분이 더럽게 나쁘네" 라고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실패를 통해서 그 사람은 무엇을 발견하게 되는고 하니까, "아하, 그렇구나.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는 뭔가 분명히 원리가 있는 것이 분명하구나" 라고 하면서, 그러한 원리와 공식을 찾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즉 성공하는 원리와 공식을 말이다.
예를 들어서, 주식투자의 경우에도 "야, 저 사람이 주식을 투자해서 성공하는 것을 보니 반드시 주식투자에도 원리원칙이 따로 있는 것이 분명해. 그러므로 내가 실패한 것은 그것을 미처 알지 못해서 실패했구나. 저 사람은 주식을 손대는 것마다 성공하는 것은 보니, 분명히 나보다는 성공의 원리에 더 가깝게 접근한 것이 분명하구나" 라고 한다는 말이다.
◈ 다시 정리해보면 !!
다시 정리해보면, 이렇게 보이는 것에는 인간이 들어있는데, 물론 나무도 있고 코끼리도 들어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 인간은 원리를 찾는데, 무슨 원리인고 하니, 그것이 바로 성공의 원리라는 것이다. 그런 원리에 접근한 사람은 성공을 할 가능성이 많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실패를 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원리가 눈에 보이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인간의 고민이 시작되는데, 즉 이러한 보이지 않는 원리를, 도대체 보이는 원리에서 어떻게 그 보이지 않는 원리로 찾아가느냐는 것이다. 보이는 원리에서 보이지 않는 원리로 말이다.
물론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나는 그런 원리를 믿지 않아" 라고 오기를 부릴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그런 사람도 서너 번을 실패하고 나면 어떻게 되겠는가? 부동산 투기를 한다고 해도, 물론 부동산은 눈에 보이지만 그러나 그 법칙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무시하다가는 백 번을 해도 모두 다 실패를 한다는 것이다.
◈ 형님, 한 수 부탁합니다 !!
그래서 "나는 그런 원리는 몰라. 당신의 조언도 필요 없어. 나는 내 눈에 보이는 대로 할거야" 라고 하더라도 계속해서 실패를 반복할 때는 나중에는 결국 "형님, 한 수 가르쳐주세요" 라고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하, 눈에 보이지 않아도 원리를 알아야 하겠구나" 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그 원리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 방법은 어려운 말로 이것을 '통속이론' 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통속적이라는 것은 상당히 상식적이라는 의미인데, 약간 천박스럽다는 뉘앙스도 있고 말이다. 이 통속이론이 무엇인고 하니, 먼저 남들이 그 원리를 어떻게 알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인데 말이다.
◈ 성공을 위한 3가지 노하우 !!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론이 있는데, 첫째는 "경험을 많이 쌓았다" 라는 것인데, 물론 성공한 경험이라기보다는 실패한 경험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그런 경험을 많이 한 선배가 있는데, 그 선배를 통해서 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조언이고 공부인데 말이다.
그리고 셋째는 무엇인고 하니까, 실패한 경험도 없고 선배도 없는데, 그런데 알 수 없는 미지의 어떤 초자연적인 분에 의해서 자기가 혜택을 입고 있더라는 것이다. 즉 남들에게는 없는 자기만의 특별한 혜택이 있더라는 말이다. 꿈이나 계시, 또한 기도의 결과로서, 그것을 기도빨(?)이라고 하는데 말이다.
그렇게 기도를 할 때는 자기의 실패경험이나 선배의 조언은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자기 홀로 절이나 기도원에 가서 빌고 또 비니까 말이다. 그렇게 간절히 기도를 하니, 비몽사몽간 환상 중에 로또복권의 숫자가 보이고, 또 뭐가 보이고 한다는 것이다.
◈ 오직 성공을 위하여 !!
결국에는 이 3가지 방법 말고는 다른 것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3가지가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성공' 이라는 것이다. 즉 실패가 아닌 성공하기 위해서 인간은 그렇게 몸부림을 친다는 말이다. 그렇게 인간은 성공하기 위해서 수많은 경험을 쌓고, 선배에게 무릎도 꿇은 체 공부도 하고, 또한 종교를 찾아서 떠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그래도 명색이 인간인데 너무 그렇게 성공밖에 모른다고 하면 천박스럽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겠는데, 왜 인간은 그런 것 말고 다른 가치를 쫓아서도 살아가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한 성공 말고도 다른 고상한 목적과 이념도 있지를 않느냐는 것이다. 즉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산다고 하든지 말이다.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과 같은 사람도 있고 말이다.
◈ 결국 인간은 자기 신체성으로 !!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성공이 무엇인고 하니, 지금 우리가 이렇게 우리의 몸을 만져보면 분명히 신체가 만져진다는 것이다. 인간의 성공과 실패가 무엇인고 하니, 바로 자기 자신의 신체성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이것이 무슨 말인고 하니, 자기가 제 아무리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희생을 해도 몸이 아프면 만사가 귀찮다는 것이다. 아무리 자기가 품위를 갖추고 착한 일을 하고 싶어도, 중풍에 걸렸다고 하면 자식들에게도 자기의 몸을 보이기가 부끄럽다는 것이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성공과 실패도 젊었을 때 말이지, 나이가 들게 되면 이 자식에게 기대고 저 자식에게 기대고, 그렇게 해서 자기 몸이나 간수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결국은 자기 신체성으로 돌아가고 만다는 것이다.
◈ 역시 내 몸뚱아리 !!
언뜻 보면 우리 인간이 굉장히 고상하게 살아가는 것 같지만, 그러나 결국에는 자기 몸뚱아리 하나 간수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말이다. 꿈속의 계시가 어떻고, 또 기도빨이 어떻고 해도 말이다. 그러니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자기 배가 고프면 남을 도와줄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단 자기 배가 좀 부르고 그래도 행색께나 한다고 할 때, 그제야 비로소 연말연시에 이웃사랑을 한다고 하면서 헌금을 하든지 구제금을 낸다는 말이다. 그런데 자기 몸이 아파서 만사가 귀찮다고 하면, 어디 남을 돌볼 여력이나 있느냐는 것이다. 자기 몸이 천근만근인데 말이다. 그러니 그냥 까놓고 솔직하게 말하면, 인간은 자기 몸뚱아리밖에 모른다는 것이다.
◈ 결국에는, '나'만 살자 !!
그렇다면 결국은 인간에게 있어서 성공이란 의미는 도대체 무엇이겠는가? "나만 살자" 라는 것인데, 그래서 단결하는 이유도 자기만 살기 위해서 단결을 외친다는 말이다. 다같이 살자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그런 것은 아예 처음부터 인간에게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어떤 조직이나 단체에 가입하는 것도 거기에 충성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거기에 가입함으로서 자기 몸뚱아리가 보다 더 오래 살기 위한 수단으로서, 그래서 자기가 필요한 모임에 가입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자기에게 아직 이익이 있을 때는 계속해서 남게 되고, 그렇지 않으면 그 모임에서 나오게 된다는 말이다.
◈ 어린아이들도 신체의 작은 새끼들이기에 !!
이것은 어린아이들의 경우에도 역시 마찬가지인데, 부모와 어린아이들 사이에 '책략' 이란 것이 있다는 것이다. 즉 아이들이 작전을 꾸민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아이들도 신체의 작은 새끼들인데, 그래서 어떻게 하면 부모에게서 용돈이 더 많이 나오는지 잘 안다는 것이다. 그런 것은 체질적으로 타고나기 때문에 말이다.
보통 학자들은 아이들은 2살부터 '자의식(自意識)'이 생긴다고 하는데, 다른 말로 자기 정체성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 말이다. 쉽게 말해서, 아이가 자기 고집이 생긴다는 말이다. 그렇게 자의식이 생긴다는 것은 부모를 타인으로 본다는 의미인데, 이것을 어려운 용어로서 '거울단계' 라고 한다는 것이다. 라캉이 주장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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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캉의 '거울단계' - 라캉은 여기서 분열을 봐요. 왜냐면 6~18개월 된 아이는 아직 자기 몸에 대해서 완벽하게 통제를 할 수 없는 아이입니다. 아직 운동신경이 발달하지 못한 아이죠. 뭐 조금 일어서서 걸어 다니긴 하겠지만. 1년 정도 되면. 아직 완전하게 자기 몸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지지 않고, 오히려 단편적인 운동자극과 감각에 덩어리 이런 것들이 아이의 신체적인 현실이라고 할 수 있죠.근데 거울에 비쳐진 모습은 완벽한 상으로 다가옵니다. 바로 이렇게 완벽하게 다가오는 상. 이상적인 이미지와 실제 거기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몸의 분리 간격. 이게 바로 거울단계에서 겪게 되는 경험이죠. 이게 아이는 어떤 식으로 겪게 되냐하면 완벽한 이미지에 대해서 굉장히 열광을 하고, 저게 나라는 것에 대해서 안도감을 느낍니다. - 김석, '개념으로 만나는 라캉'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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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나 분화가 되었어? - 당연하지 내 새끼 ??
이것을 지금 제가 쉽게 설명하고 있는데, 처음에 아이가 엄마 뱃속에서 나오면 아직까지 분화가 되지 않은 순간인데, 그래서 아이는 여전히 자기가 엄마 뱃속에 있다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6개월 정도 간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때는 다른 사람이 엄마를 때리면 아이 본인이 우는데, 왜냐하면 아직까지는 엄마와 자기는 분화가 다 되지 않았기 때문에 말이다.
◈ 이제 '나' 주위에 협곡이 !!
그런데 아이는 점점 커가면서 거울에 담긴 자기 모습을 바라보면서 "어, 저 아이가 누구지? 바로 '나' 구나" 라고 하면서 '나' 라는 자의식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나' 라는 의식이 생기게 되면, 그때부터는 분화가 되는데, 이렇게 분화가 된다는 말은 '나'를 빼놓고 그 주위에 협곡이 생긴다는 것인데, 즉 골짜기가 말이다.
그러다가 "어, 저 아이는 누구지?" 라고 하는데, 엄마가 "형이라고 불러야 돼" 라고 하면, "아하, 형이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그러면 앞으로 "아하, 나는 절대로 형이 아니구나" 라는 것을 동시에 알게 된다는 말이다. 그때부터 '나'와 형 사이에는 비교경쟁에 들어가면서 부모의 눈치를 그만 보게 된다는 것이다.
◈ 엄마, 왜 나에게 떡을 하나만 주세요?
그런 가운데서 엄마가 형에게 떡을 두 개 주는데, 그런데 자기에게는 하나만 준다는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엄마에게 묻게 되는데, "엄마, 왜 나에게 떡을 하나만 주세요?" 라고 말이다. 다름 사람이 아닌 '나에게' 말이다. 이것은 바로 아까 말한 대로, 성공과 실패라는 것이, 자기가 잘되면 성공이고, 그리고 못되면 곧 실패라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형이 없이 자기가 혼자라고 하면, 엄마가 떡을 하나 주면 얼른 받으면서 "엄마, 고맙습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왜 떡이 두 개가 아니냐고 묻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형이 있어서 같은 하나의 떡을 받았더라도 형이 두 개를 받았기 때문에 고맙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만 비교하게 된다는 것이다. 왜 형은 두 개인데 자기는 하나이냐고 말이다.
◈ 왜 정박아가 생기는고 하니?
그런데 이렇게 '나' 라는 것이 형성되는 것이 정상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만약에 이것이 되지 않으면, 그야말로 환장한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인간에게 자기 주관이, 즉 고집이 없으면 안 되는데, 그런 자기 고집이 전혀 없는 아이를 두고서 '정박아' 라고 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부모가 엄청 괴롭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 자립해 가는 것이 인간이고 인간들이 살아가는 인생인데, 고집이든지, 주관이든지 간에 말이다. 그런데도 아이가 자꾸만 부모에게 기대는 것은, 그것은 아직까지 분화가 덜 되어서 그렇다는 말이다. 신체는 이미 탯줄이 잘라지면서 완전히 분리가 되었는데, 그런데 정신이 아직 제대로 분리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부모에게도 책임이 있는데, 엄마의 경우에도 자연의 섭리인지 신의 섭리인지 모르지만, 몸이 그렇게 떨어졌으면 정신도 같이 떨어지도록 교육을 시켜야 하는데, "어이쿠, 귀여운 내 새끼야" 라고 하면서 자꾸만 보담고 쓰다듬어 주려고 한다는 것이다. 물론 엄마가 그렇게 보담아 주려는 이유가 있는데, 왜냐하면 아이는 신체에서 모든 감정이 다 나오는데, 이것을 '몸의 철학'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 몸의 철학 - 모든 것은 자기 몸에서 나오는 상징에 불과해 !!
참 어려운 철학인데 말이다. 무슨 내용인고 하니, 이 세상에서 신이든, 종교이든, 도덕이든, 윤리이든, 선악이든, 성공과 실패이든 간에, 그런 모든 것은 자기 몸에서 나오는 비유, 즉 하나의 상징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다 그러한데, 그렇게 자기가 환상(환각?) 가운데 지어낸 것이 곧 외부적 상황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모든 인간은 꿈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아무튼 아이가 그렇게 몸이 떨어져 나갔으면 정신도 자립을 시켜주어야 하는데, 즉 "야, 이것은 너의 정신이다"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엄마자체도 자기 몸이 늘어난 것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기 몸이 하나가 아니라 이제 둘이 되어야 하는데, 그래서 자식이 아프면 그 아픔이 자기의 아픔과 동일시된다는 것이다.
◈ 부모의 내리사랑은 몹쓸 사랑 ??
이것을 이 세상에서는 아주 좋게 이야기하는데, 부모의 '내리사랑' 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러한 내리사랑이 아이를 그만 다 버려놓고 마는데, 즉 부모의 그 내리사랑이 아이를 그만 더 이상 자라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아이가 더 이상 자라지 못하게 말이다.
이런 모든 원리가 어디에서 나온다고 했는가? 보이지 않는 원리라고는 하지만, 그러나 보이지 않는 원리는 없고, 자기 몸이 편하고, 자기 몸이 따시고, 자기 몸이 배부르면, 그것을 가지고 사람들은 성공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 욕망에서 욕심이 !!
여기서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이 신체에서 무엇이 나오는고 하니, 욕망이 나온다는 것이다. 사실상 욕망은 누구에게서나 나오는데 말이다. 그런데 그 욕망이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안 되는 것까지도 되게 하려고 하는데, 즉 남의 것을 빼앗아서 말이다. 그것을 흔히들 욕심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욕망에서 욕심이 나온다는 것이다. 또 생물학적인 욕구가 나오고 말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이 아무리 복잡하고 돌아가는 나름대로의 원리가 있다고 한들, 그리고 그것을 알든 모르든 간에 단 하나만 알면 되는데, 그게 무엇인고 하니, "인간은 신체가 조작해낸 하나의 드라마다" 라고 보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인간은 자기 욕심을 낮추면 되는데,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다 은혜이고 감사함이 된다는 말이다.
◈ 정주영 회장님의 경우에 !!
현대그룹의 돌아가신 고 정주영 회장이 하루에 세 끼를 먹었는데, 반찬이 된장찌개라는 것이다. 300억인지 얼마인지 모르지만, 어마어마한 재산을 가진 그분이 90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먹은 것이 그것이 전부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제가 퀴즈를 하나 내겠는데, "하루에 세 끼의 된장찌개를 먹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런데도 또 재벌총수가 되고 싶은가?" 라는 것이다.
정주영 회장이 우리나라 최고의 부자이고 재벌총수인데, 그렇게 재벌총수가 되어도 하루에 된장찌개를 세 끼를 먹는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과연 그 재벌총수가 되고 싶으냐는 것이다. 물론 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된장찌개를 먹는 것은 먹는 것이고, 그래도 재벌총수는 하고 싶은데, 그렇다면 그것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왔느냐는 말이다.
이것을 학자들은 무엇이라고 하니, 그것은 바로 '타인의 욕망'에서 나왔다고 한다는 것이다. 자기 욕망이 아니고 말이다. 자기 신체의 욕망은 된장찌개를 먹는 것인데, 물론 저는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런데 그런 욕구를 키우는 미지의 알파는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느냐는 것이다. 바로 타인의 욕망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 '타인의 욕망'에 대해서 !!
이 '타인의 욕망' 이라는 것이 좀 어려운 것인데, 이것을 설명을 해보자는 것이다. 아까 형제 이야기를 했는데, 자기 혼자만 있을 때는 엄마가 떡을 하나 주어도 좋은데, 그 떡을 먹으면 자기 신체가 만족해한다는 것이다. "아이쿠, 웬 떡? 어머니,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말이다. 그런데 형에게 그 떡을 두 개나 주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형은 어디까지나 타인에 속하는데, 그렇게 타인이 자기의 곱절이나 되는 욕망을 가지고 갈 때, 자기의 기쁨은 졸지에 절반으로 줄어들고 만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줄어든 그 절반에 대해서 자기 신체에서 나온 욕망이 미흡함과 결핍을 느끼게 되는데, 그냥 쉽게 말하면, 약이 오른다는 것이다.
3000억을 가진 그 할아버지도 된장찌개에 만족했는데, 그런데 돈도 별로 없는 놈들이 랍스타를 그리워하고, 북경요리를 그리워하는 것은, 그것은 바로 비교할 수 있는 타인들이 자기 주변에 줄줄이 포진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다. 즉 돌아서면 모두가 타인이라는 것이다. 교회를 가든, 동창회를 가든, 친척집에 가든, 다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 가는 곳마다 새로운 타인들이 포진해있어 !!
그렇게 가는 곳마다 새로운 타인들이 포진해있는데, 그들은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각자 자기의 결핍을 어떻게 보충했는지, 그런 경험담을 늘어놓는다는 것이다. 고상하게 말을 하든, 수다를 떨든지 간에, 아턴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그런데 그것이 다 자기 자랑이 되고, 물론 상대방은 결핍을 느껴서 약이 오르고 말이다.
아까 제가 첫째, 둘째, 셋째를 이야기했는데, 즉 인간은 자기 신체가 있는데 그 신체의 욕망을 위해서 무엇을 배우는고 하니, 성공하기 위해서 말이다. 사람은 성공하기 위해서 그 원리를 배우는데, 자기 경험이나 선배의 조언, 그것도 안 되면 신에게 빌든지 해서 자기만의 혜택을 갖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그렇게 특혜를 입었다고 하는 사고방식, 바로 이러한 3가지 사고방식에 의해서 자신은 타인에 의해서 끌려간다는 말이다. 즉 자기 자신을 그만 잊어버리고는, 환상의 구멍이 빨려 들어가는 인생을 살아간다는 말이다. 환상의 구멍에 말이다.
* 질문 - 그러면 그 타인이 사회도 되고, 도덕이나 윤리도 되는가요? 그러고 행위적인 요인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요인도 함께 본다는 말씀이지요?
윤리와 도덕은 그 사회가 만든 명령인데, 즉 그 시대가 윤리와 도덕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까도 말했지만 그런 행위는 정신에 속하는데, 그러니 굳이 나누려고 하면 신체와 정신으로, 그렇게 둘로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다.
◈ 문제는 자기가 불안정하기에 !!
아무튼 언제나 문제의 원인은 타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있는데, 항상 자기가 불안정하다는 말이다. 그러니 남에게 이용당하기가 쉬운데, "야, 돈이 좀 있나? 이것은 넣었다고 하면 10배 장사이다. 내가 친구라서 이야기해주는데, 이것은 땅 집고 헤엄치는 것이다" 라고 하면 대부분이 넘어간다는 말이다. 또 은행에 적금을 타러가서 그만 직원에 꼬임에(?) 빠져서, 펀드나 파생상품에 투자를 하고 말이다.
물론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상대방의 자유이지만, 그런데 그런 친구의 소리를 듣는 순간 자기가 살아온 인생에 대해서 불쾌감을 느끼게 되는데, "도대체 나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지? 저 놈은 저렇게 부동산 투기를 해서 성공했는데, 나는 이게 뭐지? 이게 도대체 사람이 사는 것이 맞아? 짐승이지 말이야. 그래도 남자가 되었으면 칼을 뽑아서 무엇을 하나라도 잘라야지. 이게 도무지 희망이 없어. 나도 한 것을 해야지 말이야" 라고 말이다.
◈ 껍데기와 껍데기를 비교하면서 !!
그렇게 남에게 현혹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에게 평소에 결핍된 욕망들이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있었다는 것인데, 그러한 것들이 많이 녹아져 있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자신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그냥 껍데기만 바라보면서, 즉 남의 껍데기와 자기 껍데기를 비교하면서, 누구의 껍데기가 더 좋은지 비교만 했지, 정말이지 자기 속에 무슨 문제점이 있었는지, 도무지 그것을 누가 이야기해주는 사람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친구 아닌 친구에게 현혹이 되어서 놀아나고, 그래서 그런 친구가 가고 난 뒤에는 잠도 제대로 자지를 못해서 불면증에 시달리고, 식구들에게는 짜증만 내고 말이다. 아내가 하는 이야기는 잔소리로만 들리고 말이다. 왜 갑자기 그 친구가 날아와서 다복한 가정에 바람을 일으키고, 또한 그런 친구를 왜 자기가 거부할 수 없느냐는 것이다.
◈ 그런데 왜 거부가 되지 않는가?
그것은 바로 사람은 소속감이 없으면 불안해하는데,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을 두고,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즉 정치적 동물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가 없어서 단체에 들어가게 되는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기 성공에 대한 의지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비단 자기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단체에 들어온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러하다는 말이다. 그러니 그곳에는 들어가자마자 계급이 생기는데, 거기에서 제일 힘이 센 사람이 오야붕이 되고, 힘이 없으면 그만 쫄다구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 쫄다구가 된다는 의미는?
하지만 쫄다구가 된다는 것이 기분이 나쁜 의미만은 아닌데, 왜냐하면 그만큼 빼먹을 것이 많이 남아있기에 말이다. 그렇게 빼먹으면서 올라가게 되는데, 물론 그렇게 되면 자기 밑에는 쫄다구들이 생겨서 기쁘기만 한 것은 아닌데, 왜냐하면 자기를 이용해먹으려고 사람들이 달려들기 때문에 말이다.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초임도 약한 것이 문제이지, 또한 위로 올라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다들 친인척들이 그런 위치에 있는데, 또한 회사기밀을 함부로 보여줄 수도 없고 말이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중소기업에 웬만하면 가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일도 힘들고, 빼먹을 것도 별로 없고 해서 말이다.
* 질문 - ? ? ?
인간의 신체는 자살을 해도 그런 문제가 극복이 되지 않는데, 왜냐하면 인간은 신체로 시작해서 신체로 돌아가니 말이다. 정신은 신체가 만들어내는 것인데, 예를 들어서, 꿈에 혼란스러운 일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정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신체가 "야, 지금 잠자는 자세가 좋지 않아. 바꿔" 라고 하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란 말이다.
그래서 꿈속에서 마구 싸우고 숨이 막혀서 답답해하는데, 그런데 나중에 깨서 보면 마누라의 우람한 다리가 자기 목 위에 올라와서 마구 눌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신체는 스스로 자기 조절기능이 있어서 조절을 하는데, 그런데 그 과정이 바로 정신이라는 것을 동원해서 자기의 신체를 원상복귀를 시킨다는 말이다.
* 질문 - 전혀 새로운 이야기인데요? 그러면 자기 신체를 잘 극복한 사람을 성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나요?
아직도 그런 듣지 못하던 이야기가 많이 준비되어있는데 말이다. (ㅋㅋ) 제가 지금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그것인데, 인간이 자기 신체를 극복해서 성공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신체를 제대로 아는 것이 성공이라는 말이다. 신체는 극복하고 말고 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누가 극복을 하겠는가? 자살을 해도 안 되는데 말이다.
◈ 자기 신체를 제대로 아는 것이 곧 성공 !!
만약에 우리가 산 속에 혼자 산다고 하면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지 몰라도, 그러나 밖에 한번 보라는 것이다. 쌍꺼풀 수술에, 지방흡입에, 보톡스 주사에, 그야말로 난리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갑자기 결핍이 생긴다는 말이다. 지금 우리가 공부하는 내용이 어려워서 계속해서 반복을 해주어야 하는데, 인간은 자기 신체를 결코 초월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저는 그냥 집에서 조용하게 살면서, 한달 수입이 100만원이면 만족합니다" 라고 하면, 엄마가 뭐라고 하는가? "니가 뭐가 못나서 그렇게 집에만 있노? 이 못난 자식아" 라고 하는데, 그렇게 부모라는 타인이 자기의 그 조그마한 행복마저도 용납을 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 집에 딸만 둘이 있다고 하면 친척들이 뭐라고 하겠는가? "우리 주위에 딸만 덜렁 있는 집이 어디에 있노? 아들을 하나 낳아야지" 라고 하는데, 그렇게 명절이 되면 아들을 낳으라고 압박을 가하는데, 즉 타인이 가만 놓아두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그런 타인을 상대하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고 할지 몰라도, 그러나 인간은 어떤 곳에 소속이 되어있다고 하는, 그런 소속감이 없으면 불안해서 살아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떤 조직이든지 자기가 포함이 되지 않으면 불안해한다는 말이다.
◈ 인간은 왜 혼자 있으면 불안해하는가?
왜 그런지, 왜 인간은 소속감이 없으면 그렇게 불안해하는지, 그래서 학자들은 무려 2500년을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는데, "왜 인간은 혼자 있으면 이유도 없이 고독을 느끼고 불안해하는가?" 라고 말이다. 그래서 그런 고독을 느끼지 않으려고 친구를 사귀면, 그 친구는 또 자기를 뜯어먹으려고 달려들고 말이다. 그러니 결국 이렇게 하지고 못하고 저렇게 하지도 못하는데, 혼자 있으면 외롭고 같이 있으면 등쳐먹고 말이다.
이러한 점을 조금 더 이야기해보면, 전문적 용어로 '로고스' 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이 무슨 의미인고 하니, '이성' 이라고 할 수 있는데, 즉 따지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로고스는 이성중심이기 때문에, 그 이성은 '나'의 이성이기에 당연히 '나' 중심이고, 그래서 근세철학에 들어오면 그러한 '나' 중심의 로고스를 '주체사상', 혹은 '주체의식'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모든 것이 '주체' 중심으로 돌아가는데, 그것이 16세기 이후에 서양에 퍼지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것이 과학의 발달과 더불어서 19세기에 들어오면 동양에까지 들어오는데, 그래서 지금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국가인데, 이 민주주의가 동양이 아닌 서양에서 생겼다는 것이다.
◈ 민주주의는, 주체를 옹호하기 위한 정치제도 !!
바로 이 민주주의 핵심이 무엇인고 하니, 주체를 옹호하기 위한 정치제도라는 것이다. 이 민주주의가 처음 생겼을 때는 계약제로 했는데, 영국의 명예혁명이 바로 그것이고 말이다. 그 계약의 내용이 무엇인고 하니까, "나의 사유재산을 보호해줄 때만 세금을 내겠다" 라는 것인데, 바로 그러한 계약으로 민주주의가 생겨났다는 말이다.
하지만 동양에서는 그것이 아니라, 왕은 하늘이 내린 것이기에 세습제로 대대로 내려오는데, 그래서 조선시대를 이씨 조선이라고 비아냥거려서 부르는데, 즉 '이'씨들만 왕을 다 해먹는 시대라는 것이다. 김씨나 정씨는 안 되고, 이씨들만의 세상이라는 것이다. 지금 MBC에서 '궁' 이란 드라마를 하고 있는데, 아직도 조선시대의 낭만을 그리고 있지만 말이다.
아무튼 한 사람만이 왕 짓을 다 해먹고, 또한 백성도 왕의 백성인데, 즉 왕의 소유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온 나라의 토지도 역시 왕의 것이고 말이다. 그러니 백성은 무엇인고 하니, 신이 내린 뼈대있는 집안의 혜택을, 이것을 어려운 말로 '시혜(施惠)' 라고 하는데, 그렇게 왕의 은총을 누림으로 말미암아서 복을 누린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신이 왕에 축복을 하면, 그것을 동양에서는 자연의 축복이라고 하는데, 가뭄이나 태풍이 오지 않아서 농사가 잘되면 그것이 바로 신의 축복이란 말이다. 그것을 누가 조종하는고 하니, 왕이 그것을 잘 조종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 혜택은 백성들이 입고 말이다.
◈ 아, 만유인력의 법칙 !!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사상이고, 중국이 그 중심이고 말이다. 아무튼 이 동양사상에서는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데, 이런 자연의 원리를 누가 알았는고 하니, 드디어 16세기에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함으로서, 새로운 전기가 마련이 되었다는 것이다.
만유인력의 법칙은 무엇인고 하니, 이 세상의 모든 힘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고, 각자의 질량의 곱에 비례한다는 것이다. 즉 "F=G*m1*m2/r²(F=만유인력, G=만유인력상수, m1과 m2=물체의 질량, r=거리)" 라고 말이다. 이렇게 되니, 이 자연이라는 것은 어떤 어르신이 계시는 것이 아니라, 자연은 자체적인 힘에 의해서만 유지된다고 하는 과학적 생각을 드디어 뉴턴이 증명해내었다는 것이다.
◈ 힘이 있는 놈이 장땡 !!
여기서 조금만 더 나아가면, 이렇게 자연은 힘에 관계가 되는데, 그렇다면 인간사회의 관계도 역시 힘의 관계인데, 그렇게 되면 하늘이 내린 왕이 있고 신하고 있고 또 백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놈이 장땡이인고 하니, 힘이 있는 놈이 최고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근대에 들어와서 무엇이 힘인고 하니, 쌀이면 쌀, 보리면 보리, 이렇게 교환할 수 있는 중간수단을 가진 사람이 힘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까, 바로 '돈' 이라는 말이다. 그것이 곧 사유재산인데, 이런 사유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계약제로 민주주의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 서양도 중세에는 땅 중심의 봉건사회였는데 !!
서양에서도 근대에 들어오기 이전이 중세에는 재산이 화폐가 아니라 땅이었는데, 이러한 땅을 가진 대주주가 중심이 되는 사회를 봉건사회라고 한다는 것이다. 또한 중세시대에는 교회가 땅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래서 성직자들은 사회에서 우대를 받았는데, 결코 인격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교회가 땅을 가지게 되었는가? 성직자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지 싶은데 말이다. 그 당시에 로마는 일년 365일 중에서 공휴일이 200일이 넘었는데, 이것은 남을 욕할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도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농사일로 바쁜 농번기를 제외하면 우리도 맹탕 놀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때는 마구 놀아도 입에 풀칠만 하면 별 문제가 없었는데, 왜냐하면 서로가 다 가난한 것은 똑같으니 말이다. 그러니 굶어죽지 않고서 살아가는 것만 해도 다행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즉 타인에 대한 욕망이 없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선진국가는 어떠한고 하니, 옛날에는 선진국가가 곧 선진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말과 같은데, 즉 구석기 시대는 신석기 시대가 밟아버리고, 신석기는 청동기가 밟아버리고, 또 청동기는 철기문화가 마구 밟아버렸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철기문화를 박살낸 것이 땅 속에 있는 에너지인데, 그 에너지가 그만 폭탄이 되어서 양 사방이 마구 터지니, 이제 전쟁은 누가 이기겠는가? 하나마나라는 것이다.
◈ 나이키 운동화의 충격 !!
이것은 바로 동양에 있어서 비오면 농사가 잘되고, 그런 쌀을 가지고 밥을 해서 먹으면, 가끔씩 이제 늙어서 필요가 없는 일하던 소를 잡아먹으면 만사가 좋았고 행복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러한 자들에게 나이키 신발이 들어오면서 모든 것이 다 틀어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 나이키 운동화의 충격은 지금 40대 초반이면 모두가 경험했지 싶은데 말이다. 온통 하얀 색의 운동화에 빨간 갈코리 무늬가 그려져 있는 말이다.
지금 아프리카에 대단위 옥수수 농장들이 많이 있는데, 그런데 그러한 많은 옥수수를 팔아서 삼성 TV를 하나 사고 나면 별로 남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옛날부터 아이를 키우면 도시로 유학을 보내었는데, 그것은 바로 이러한 농사는 아무리 열심히 돈이 안 된다는 말이다. 그냥 과거처럼 입에 풀칠만 하는 것이지 말이다.
◈ 왜 자식을 서울로 보내는가?
지금 시골에서 단위농협에 취직을 하면 여자라도 그래도 일년에 2000만원은 받는데, 그런데 그러한 농촌에서 농사를 지어서 2000만원을 버는 집이 몇 집이나 있겠는가? 그래서 경북의 어떤 농협에서는 조합장이 열을 받아서 자기 마을의 농협을 없어버렸다고 하지 않는가? 배보다 배꼽이 훨씬 더 크니 말이다. 농협이 농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농민이 농협을 위해서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논과 소를 팔아서, 그 돈으로 자기 자식을 서울로 유학을 보내고 해서, 나중에 자기 자식들이 의사가 되고 판사가 되는 것이 훨씬 더 괜찮은 장사라는 것이다. 그것은 요즘도 마찬가지인데, 그래서 개인과외가 그렇게 기승을 부리고 학원이 수백 개, 수천 개가 넘는다는 말이다. 그러니 이러한 것들이 다 서양문화가 들어오고 난 뒤에 생긴 '타인의 욕망' 이라는 것이다.
◈ 결국은, 타인에 대한 욕망 때문에 !!
오늘은 이 타인의 욕망이라는 것 하나만 배워도 남는 장사인데(ㅋㅋ), 아무튼 옛날에는 그냥 그렇게 일하고, 밥 먹고, 또 겨울에는 주막에서 막걸리나 한두 잔 걸치면서 고스톱을 치면서 살아도 사람들이 불만이 없었는데, 그러나 이제는 어떠한가? 그러한 막걸리는 주어도 마시지도 않는데, 아무튼 지금은 나이키를 신지 않고, 휴대폰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요즘 아이들은 나이키를 신어도 제일 비싼 것을 신으려고 하고, 또 휴대폰을 싸도 최신형으로, 거의 백 만원에 육박하는 것을 요구하는데, 그래서 삼성에서도 조금만 유행이 지나가면 만들지 않고, 계속해서 최신형으로 개발을 해서 선전을 하는데, 물론 그렇게 해야 이윤이 많이 남고 말이다.
아무튼 지금 이 시대에 있어서, 지금의 정치제도는 민주주의이고, 경제제도는 자본주의인데, 그러니 지금 아이들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밖에는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자본주의는 돈에 의해서 서열이 매겨지는데, 그런데 이 돈은 질(質)이 아니라 양(量)이기 때문에, 즉 내부적인 것은 질이라고 하고, 외부적인 것은 양이라고 표현을 하는데 말이다.
◈ 당신은 얼마 짜리야?
아무튼 자본주의는 양(量)이기 때문에, 그런 질이 아닌 양을 따지는 자본주의 아래에서 자란 아이들의 경우에, 우리도 마찬가지이지만 말이다. 이러한 자본주의에서 "착한 일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라는 것인데, 이것을 경제학적 용어로는 착한 일의 가치라고 하는데, 즉 착한 일은 거기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저 착한 일은 얼마 짜리인가?"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착한 일을 해봤자 결국 나오는 것은 "얼마 짜리야?" 라는 것인데, 현대나 삼성에서는 개망나니 같은 신입사원들을 훈련을 시키는데, 그러면 남들이 보면 착하게 보이는데, 점잖아 보이고 말이다. 하지만 결국 회사에서 노리는 것은 무엇인고 하니, "얼마 짜리야?" 라는 것인데, 그 사원이 100만원을 벌어야 회사가 50원을 먹고 또 50원은 월급을 준다는 것이다.
그것은 모든 회사가 다 그러한데, 학원도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자선사업을 하는 곳이 아니니 말이다. 그래서 하는 말이 무엇인고 하니, "당신의 인품, 인물, 허우대, 학력 등이 우리 회사에서 가치를 매겼는데, 우리가 당신에게 그 값어치를 뽑고 나머지는 월급으로 줄 테니 가져가라" 라고 한다는 것이다.
◈ 자본주의의 총화, 결혼정보회사 ??
이렇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양적으로 계산이 되는데, 그러니 사람의 가치는 "당신은 얼마짜리야?" 라는 것으로 결정이 나는데, 그것을 결혼정보회사에 가면 아주 적나라하게 볼 수가 있다는 것이다. 고객명단을 가격별로 일일이 분류를 해서 그렇게 리스트를 작성해놓았다는 것이다. 물론 그 사람의 집안환경을 비롯해서 직업과 다닌 학교 등등, 일일이 모든 것을 다 기록해서 말이다.
그렇게 해서 90점짜리 남자는 90점짜리 여자를 만나고, 60점짜리 남자는 60점짜리 여자를 만나도록 연결을 해준다는 것이다. 물론 재혼이면 점수가 깎이는데, 그런데 직업이 의사라면 또 점수가 올라가고 말이다. 이렇게 자본주의가 무엇인지를 결혼정보회사가 제대로 보여주는데, 즉 "나의 가치가 얼마인가?" 라는 것을 말이다.
예를 들어서, 어떤 개그맨이 결혼을 하려고 하다면, 결혼정보회사에서는 그 개그맨이 출연한 프로와 그 출연횟수를 계산하는데, 물론 출연빈도가 많으면 점수가 높고, 출연 횟수가 적으면 점수가 낮다는 말이다. 그렇게 점수를 매겨 그 점수에 맞는 적당한 여자를 찾아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베트남 여자는 다른 여자들보다는 점수가 낮은데, 그것은 단순히 외국인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아직 베트남이란 나라가 자본주의에 대한 인식이 덜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니 그런 여자는 무엇을 해도 돈이 나올 구멍이 적다는 것이다. 필리핀 출신의 여자도 역시 그렇고 말이다.
◈ 도덕은, 그 사회가 굴러가기 위한 약속 !!
그것은 여자가 문제가 아니라 여자가 속해있던 '필리핀', 혹은 '베트남' 이라는 국가조직 때문에 그러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런 국가조직마다 도덕이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도덕이란 것이 우리가 흔히들 생각하는 것과 같이 선한 것이 아니라, 그 사회가 제대로 굴러가기 위한 하나의 약속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착하다고 하는 것도, 지금 이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제대로 따라가 주는 것을 두고서 착하다고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삼성그룹에 입사를 했으면, 현대그룹의 비밀을 빼내주는 것이 삼성그룹에서의 착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삼성에서 친구를 이용해서 기밀을 빼 가지고 오라는 요구를 했는데, 자기는 싫다고 하면 그것은 나쁜 놈이라는 말이다. 착한 놈이 아니고 말이다.
◈ 자본주의 - 얼마나 돈이 되는가?
다시 말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선하고 악한 것을 질적으로 따지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돈이 되느냐는 따진다는 말이다. 이 돈을 다른 말로 하면 힘인데, 그러면 이러한 힘이 없으면 살지 못하는가? 당연히 힘이 없으면 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옛날에는 어떠했는가? 자기가 먹고 살만큼의 힘만으로도 만족해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지금의 힘은 자기의 신체적인 욕구에다가, 즉 생물학적인 요구에다가 자기 욕망(욕심)까지 다 들어줄 때, 비로소 사람이 사는 것같이 산다고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 강남과 칠곡이 붙으면?
그러니 서울 강남에서 사는 것과 여기 칠곡에서 사는 것이 같겠는가? 물론 다른데, 하지만 서로가 다 자기가 행복하다고 우긴다는 말이다. 이래서 행복하고, 저래서 행복하고 말이다. 그렇다면 결국 무엇으로 시시비비를 가리는가? "당신은 한 달에 얼마를 버는데?"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결국 돈이라고 하는 서로 통용이 되는 것을 가지고 비교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칠곡의 35평 아파트는 얼마인데? 2억이다. 그러면 강남은 얼마고? 10억이지"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칠곡은 강남의 20% 가치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결국 칠곡이 힘이 없고 가난한 것인데, 칠곡의 아파트를 팔면 강남의 전세가격도 안 된다는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칠곡에 사는 사람들이 하루에 두끼를 먹는 것이 아니라 세끼를 다 챙겨서 먹는데 말이다. 그런데 강남의 친구를 만나면서 그만 욕구가 풍선처럼 '좍' 늘어나면서, 그동안 자기가 살았던 것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행했다고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모든 일에 의욕이 없고 죽고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는 말이다.
◈ 인간은 왜 좌절하는가?
그렇게 해서 좌절을 하게 되는데, 이것을 신체를 조절하기 위해서 정신에서 그렇게 좌절감이 나오는 것인데, 그것은 바로 신체로 하여금 더 분발하라고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얼마나 분발을 해야 10억이나 하는 아파트를 사겠는가? 그러니 결국 신체가 견디지를 못하는데, 그래서 결국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욕망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형태만 그렇게 바뀐다는 말이다.
◈ 아하, 그래서 스트레스가 !!
그렇다면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는가? 주로 술과 여자로 푸는데, 그것으로도 풀리지 않으면 마약이나 도박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노골적으로 돈을 놓고 돈을 먹으려고 하는데, 그래서 강원 카지노에 가서 몇 달씩을 붙어있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풀면 한 마디로 '폐인'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 폐인이 되고 마는가? 처음에 그런 강남친구를 만나기 전에 칠곡에서 살 때는 행복했는데, 그냥 강밥을 먹어도 맛이 있고 말이다. 그렇게 행복하다고 여기니 뇌세포가 활성화가 되는데, 음식을 먹는 족족 영양분을 공급해주어서, 그렇게 신바람이 나게 웃으면서 밥도 먹고 일을 열심히 하니, 피가 잘 움직이게 되고, 그러니 자기 몸의 세포가 서로 활성화가 되어서 몸이 아주 건강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왜 흔히들 어떤 황당한 일을 경험하면 기가 막힌다고 하는데, 그렇게 기가 막히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무엇을 먹어도 입맛이 없고, 그러면 신체에서 그만 세포와 세포의 흐름이 좋지 않게 되는데, 그렇게 흐름이 좋지 않고 없는 것을 정신세계에서는 불안정하다고 이야기한다는 말이다.
◈ 불안정한 신체를 안정된 스케줄로 포위를 !!
그런 불안정을 없애는 방법은, 안정된 것을 가지고 그 불안정한 외부에 덮어씌우는데, 그러면 안정된 것은 무엇인고 하니, 안정된 스케줄인데, 그것이 바로 아침 6시에 일어나서 간단한 운동을 하고, 8시에 아침을 먹고, 그리고 나서 출근을 하고 말이다. 물론 인위적이지만, 그런 안정된 스케줄을 가지고 불안정한 신체를 극복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까 질문한 "신체를 어떻게 극복합니까?" 라는 것에 대해서 어느 정도 답변이 되었지 싶은데, 여기서 문제가 끝나는 것이 아닌데, 그런 안정된 스케줄을 자기가 반기면 되는데, 이제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운동도 하고 아침도 먹고 담배도 끊고 말이다. 하지만 이것이 작심 3일이 되는데, 왜냐하면 자기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조직에 속해있기 때문에 말이다. 그래서 뭔가 좀 하려고 하면 전화가 오고, 저녁에 동료들과 회식을 할 일도 많고 말이다.
그러면 다음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안정된 스케줄이 깨어지게 되는데, 그렇게 깨어지게 되면 신체를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스케줄을 수정하는데, 담배를 끊는다고 하다가 하루에 한 갑에서 이틀에 한 갑으로 줄인다든지 말이다. 술도 마시지 않는다고 하다가 조금씩 줄여나간다는 것이다.
◈ 자연스럽다 ?? 순리대로 ??
그런데 이렇게 하는 것을 뭐라고 하는고 하니까, 놀랍게도(?) 자연스럽다고 하는데, 그러니 자연스럽다는 표현이 사실 어려운 말인데, '자연(自然)' 이라는 말 자체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말이다. 그래서 이 자연스럽다는 것을 '순리대로' 라고 표현하면 되는데, 그러니 '순리대로' 라고 하는 의미는, 각각의 개인신체의 불안정한 정도에 따라서 순리가 다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안정된 스케줄에 무엇이 포함되는고 하니, 양심대로 산다고 하는 것인데, 즉 윤리와 도덕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바람도 피우지 않고, 노래방에 가서 도우미하고 서로 만지작거리면서 놀지도 않겠다는 것이다. 만약에 갈 일이 있으면 얌전히 노래만 부르지 말이다.
그러니 이러한 것이 전부가 무슨 의미인고 하니, 안정된 것을 가지고 와서 불안정한 신체의 탈선을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안정된 것을 그 외부에 강제로 덮어 씌어서 말이다. 그렇게 해서 안정된 본래 궤도에 신체를 진입시킨다는 것이다. 자기 신체를 말이다.
◈ 이것을, 교육이 아닌 수련이라고 해야 !!
지금까지 이렇게 긴긴 이야기를 했는데, 바로 여기에 동원되는 것이 바로 '교육' 이라는 말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교육이라는 말 자체가 잘못된 것인데, 사실 훈련이고 수련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부터 교육과 수련의 차이점을 이야기하겠는데, 교육은 새로운 것을 주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러니 받기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흔히 말하는 그런 교육이 없고, 그냥 수련의 의미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련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기도 알고 있는 것을 되풀이해서 점검하는 것인데, 즉 기(氣)를 증강시키고 자기 잠재력을, 즉 숨어있는 재주를 양껏 끌어올리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그것이 자기 힘으로 안 되기 때문에 선생님의 힘을, 즉 권위자의 그 권위를 빌어서 자기 안에 있는 잠재력을 개발하는 것인데, 그것을 아주 고상한 말로 '교육' 이라고, 즉 '에듀케이션'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 존 듀이 - 아이들은 앞서가고 선생님은 뒤따라간다 !!
그래서 존 듀이의 유명한 교육이론이 등장하는데, "아이들은 앞서가고 선생님은 뒤따라간다" 라고 말이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고 하니, 선생님의 역할이라는 것은 아이들의 잠재성을 개발하는 것인데, 그런데 선생님이 자기 능력을 아들에게 주입을 시키면 아이들이 따라오다가, 그만 아이들의 신체가 거기에 미치지 못하니, 각자의 가정환경이 다 다르고 하니 말이다. 그런데 선생님이 왜 자기 개인의 인생관을 아이들에게 집어넣느냐는 것이다.
우리가 교육을 받으면서 그런 피해를 엄청 입었는데, 선생님이 자기 개인의 인생관과 국가관을 주입시켜서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따라오지 않으면 때리고 말이다. 만약에 수학은 잘 하는데 과학을 못한다면, 수학을 잘하는 것은 당연하고 과학을 잘하지 못한다고 얻어맞고 말이다. 그런데 그것은 지금도 계속 되풀이되고 있는데, 그것이 곧 이 세상의 모습이라는 말이다. 아무튼 이러한 수련과 훈련이라는 의미는 자신에게 잠재능력을 찾아내어서 그것을 개발하는 것이란 말이다.
◈ 결코 선생님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
그리고 그 다음이 매우 중요한데, 그렇게 해서 자기의 잠재력이 찾아지고 개발되었다고 하면, 그것이 결코 선생님이 교육을, 아니 수련을 잘 시켜서 그렇게 되었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즉 선생님이 훌륭해서 되었다고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선생님을 강조해버리면 학원장사를 그만 조지고 마는데 말이다. 물론 어떤 의미에서 선생님을 높이는 것이 학원을 선전하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하지만 그것은 먼 미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당장 눈앞에 보이는 학생을 한 명이라도 더 꼬시려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뭐라고 해야 하는고 하니, "선생님이 훌륭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니 안에 그러한 능력이 들어있어서 그렇단다. 그러니 자기 자신을 잘 알아야지. 너는 미쳐 몰랐지만 내가 보니 보이더라. 그리고 부모님이 훌륭한 것이야" 라고 해야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 아이는 전혀 공감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왜 그렇게 이야기를 해주어야 하는고 하니까, 돈은 부모의 손에서 나오지 말이다. 그러면 그 아이는 집에 가서 당장에 "엄마, 학원에 갔더니만 우리 엄마 아빠가 대단하대" 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고단수인데, 장사는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
◈ 언제나 시소를 타듯이 상대방을 !!
꼭 자기를 선전한다고 해서 위대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낮추는 것이 사실은 더 고단수라는 것이다. 그냥 자기를 낮추는 것은 바보가 하는 짓이고, 자기를 낮추는 동시에 그 힘을 이용해서 상대방을 올려버린다는 것이다. 마치 시소를 타듯이 말이다. 그러니 자기만 내려가면 쪼다가 된다는 것이다. 즉 "너는 나보다 더 위대한데, 너는 천재야. 그런데 왜 자기 자신을 그렇게 모르는가?" 라고 말이다. 물론 천재가 아닌 줄 알면서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허황된 유혹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사람의 신체는 밥을 먹고살아야만 하는 기본적인 욕구는 충족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자기는 밥도 먹지를 못하면서 인류를 위하고 미래를 위한다는 것은 거짓말인데, 그런 생물학적인 기본은 되고 나서 '+α'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들이 가지고 싶어하는 것을 말이다. 예를 들어서, 좋은 집이나 자동차와 같은 것들을 말이다.
이렇게 신체적 기본적 욕구와 욕망이 모두 채워질 때 신체는 뭐라고 하는가? "야, 이제 제대로 사는 것처럼 사네. 좋아" 라고 한다는I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다른 신체가 들어오면, 즉 미국에 유학을 간 신체나 강남신체가 들어오면 이러한 것이 모두 깨어지고 만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면 단식을 하다가 죽는 사람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신이 있는지 없는지, 그것에 대한 일종의 실험을 하는 것인데, 사실 누구나 실험을 다 하는데 말이다. 즉 하나님께 데모하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즉 "신이시여, 제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도와주지 않습니까?" 라고 하는데, 하지만 백 날을 해보라는 것이다. 과연 하나님이 들어주시는지 말이다.
◈ 교회는 그 목적이 오로지 '돈' !!
하지만 교회에서는 왜 그렇게 하는가? 과거 중세시대의 교회는 땅을 가졌듯이, 현대의 교회는 돈을 가지려고 그렇게 한다는 말이다. 지금의 현대교회는 돈을 위해서 존재하는데, 즉 교인들의 호주머니를 터는 것 말고 다른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현대인들의 영혼을 유린하고 강간해서 돈만 끌어 모으면 그만이라는 말이다.
우리가 이것을 분명히 해야만 하는데, 그것을 모르고서 교회에 나가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것이다. 저도 그것을 깨닫기까지 그야말로 인고의 세월이 필요했는데, 그러니 목사라고 하는 인간이 있으면 사기꾼이라고 보면 된다는 것이다. 학원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돈을 보는 것 이상으로 교인들을 돈으로 여긴다는 말이다.
그래서 교회에서 돈이 많은 사람이 진급도 빨리 되고, 장로가 먼저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장로를 시켜주고는 돈을 빼내려고 말이다. 그러니 장로가 되고도 돈을 내지 않으면 그야말로 눈치구덩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장로에게 돈을 잘 빼내면 그야말로 능력이 있는 목회자가 되는데, 사실은 사업가이지만 말이다.
* 질문 - ? ? ?
그러니 교회가 아니라 사업체인데, 그것도 굴뚝이 없는 사업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하면 된다" 라는 구호를 가지고 사업을 벌리는데, 마치 조폭들처럼 말이다.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팔아먹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조폭들보다 교회가 왜 더 잘되는가? 그것은 바로 신의 권위를 입었기 때문인데, 그래서 가운을 걸치고 설교를 한다는 것이다.
◈ 사디스트와 마조히스트 !!
에리히 프롬에 의하면 이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서 사람의 심리에는 두 가지 쾌감밖에 없는데, 먼저 때리는 것에서 쾌감을 느끼는 것이 있고, 이것을 '사디스트' 라고 하고, 그리고 반대로 얻어맞는데서 쾌감을 느끼는 심리가 있는데, 그것은 '마조히스트' 라고 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고 하니, 강자가 되고 싶어하는데, 그런데 그렇게 강자가 되게 위해서 일단은 고개를 숙이는 약자의 시절을 반드시 경험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일본말로 '요시!' 라고 하는데, 앞으로 한번 두고보자는 것이다. 즉 "지금은 비록 무릎을 꿇지만, 반드시 니가 내 앞에 꿇을 날이 올 것이다" 라고 말이다.
그렇게 먼저 약자가 됨으로서 강자의 수법을, 강자의 노하우를 다 땡겨버린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강자를 업고는 자기는 이제 얻어맞는 쾌감에서 때리는 쾌감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아직도 박정희와 전두환을 사모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게 자기들을 때려주니 나라가 제대로 되더라는 말이다. 지금은 그렇게 때리지를 않으니 나라꼴이 말이 아니고 말이다. 그렇게 얻어맞음으로서 사람은 안정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 수련은 인간의 욕망을 자꾸만 키워 !!
이러한 모든 것은 어디에서 나왔는고 하니, 인간의 신체에서 나왔는데, 그런데 이 신체는 욕구와 욕망으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교육이, 아니 수련이 무엇인고 하니, 여기서 욕구는 사람이 밥은 먹어야 하니 그것은 일단 떼 놓고 말이다. 수련은 자꾸만 인간의 욕망을 키워주는데, 마치 풍선을 부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을 가지고서 "보이스, 비 엠시셔셔(?)" 라고 하는데, 번역을 하면 "야망이 있는 소년은 엠비시를 본다(?)" 라고 되는데, 아무튼 인간은 그렇게 야망을 가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큰 것에 기대를 걸면 작은 것이라도 건지니 말이다. 그러니 처음부터 작은 것을 하게 되면, 결코 크게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을 흔히 늘푼수(?)가 없다고 하는데, 이마가 좁은 사람은 그렇게 부른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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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푼수 - '늘품'의 경상도 방언으로, 앞으로 좋게 발전할 품질이나 품성을 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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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훈련을 잘 시켜서 늘푼수가 있는, 즉 대범한 사람으로 키우게 된다면 좋지 않느냐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해도 안 되면 할 수 없고 말이다. 그러니 처음부터 9급 공무원 시험을 치지 말고, 사법고시부터 시도해보고, 그렇게 하다가 하다가 안 되면 할 수 없이 5급을 준비하고, 그것도 안 되면 9급을 공무원 시험이라도 준비하라는 것이다. 그것도 안 되면 부동산 시험준비라도 하고 말이다.
◈ 욕망의 역할은 무엇인가?
이러한 욕망이 어디에서 나오는고 하니, 신체가 부모로부터 분화가 되면서, 즉 빨리 독립을 해야 하니 말이다. 그 이전에는 엄마가 자기이고 자기가 엄마였고 그 일부였는데, 그런데 엄마로부터 떨어지면서 '나' 라는 것이 되는데, 그런데 그런 '나' 라는 것 안에 내용물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즉 '나'가 누구인지 전혀 모른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가 누구인지, 그 내용물을 키우는 것인데, 그렇게 하는데 신체에서 욕망이 나와서 그 일을 한다는 것이다.
◈ 행복할 것인가? 성공할 것인가?
이제 오늘 강의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는데, 지금부터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고 하니까, 이렇게 퍼질러만 놓으면 찜찜해서 안 되니 말이다. 그래서 해결책을 한번 이야기해 보겠는데, 먼저 "행복할 것인가? 성공할 것인가?" 라는 것이다. 이것이 같은 의미로도 들릴지 모르겠는데, 그러나 성공하려고 하면 행복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공이라는 것은 성공한 그 자리에서 새로운 성공이 보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산을 보면 아주 멀리 있는 것 같지만, 그러나 일단 하나를 넘으면 그 다음 산에 눈에 들어오듯이 말이다. 그리고 그 이전에 보지 못했던 산이 또 보이고 말이다. 그러니 사람은 어느 지점에 서게 되면 새로운 목표가 또 다시 생긴다는 것이다.
◈ 도시의사와 시골의사 이야기 !!
예를 들어서, 우리가 보기에는 의사가 되면 모든 것이 다 잘될 것만 같은데, 그런데 의사가 되면 그때부터 새로운 경쟁체제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외국에서 억대의 비싼 기계를 리스로 구입해야만 하는데, 만약에 3억짜리 기계를 가지고 왔다고 하면, 그 기계의 운영비용을 계산해야만 하고, 또 다른 병원에서 환자들을 얼마나 빼앗아올 수 있는지, 그런 것도 다 예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성공할 생각이 있는 의사가 아니라, 자기는 행복하고 싶다고 하면 그런 의사는 적당한 읍 단위 정도의 시골에 가서 봉사 아닌 봉사를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냥 먹고 밥이나 살 정도로만 적게 벌고 아픈 사람을 도와주겠다고 여기면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성공하고 싶은 의사는 계속해서 자기를 쳐야 하는데, 환자를 속여가면서까지 말이다. 그리고 공부도 계속해서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의학정보를 알아야 하니 말이다.
그렇다면 누가 더 실력이 좋겠는가? 당연히 성공하려는 의사가 더 나은데, 왜냐하면 계속해서 자기를 소멸시켰으니 말이다. 그러면 왜 소멸시키는가? 아까 말했는데, 즉 "나에게는 무한한 잠재력이 있어서 여기서 멈추면 안 돼, 멈추면 안 돼. 그것은 나다운 것이 아니야.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어. 나는 아직도 젊어"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뭔가가 자꾸만 자기를 독려하고 다그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 큰 것을 시도하면 작은 것이라도 건지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성공이 아니라 행복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되는가? 점점 더 쪼그라든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런 행복을 추구하는 의사는 뭐라고 하는가? 아무리 성공을 추구해도 결국 허탈감과 허무감만 남는다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행복을 추구하는 의사는, 시골에서 농부와 같이 농사도 짓고 텃밭도 만들면서 기본적 의술만 가지고 의료봉사를 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공을 추구한 의사는 마음 고생은 많이 했지만, 성공을 목표로 했기에 그 목표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그러나 남들을 이기기 위해서 노력한 덕분에 그래도 실력이 꽤 있는 의사가 된다는 것이다. 물론 자기가 원한 곳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그러나 그보다 못한 곳에는 간다는 것이다. 그동안 갈고 닦은 기술이 축적되어있으니 말이다.
◈ 결론적으로, 행복할 것인가? 성공할 것인가?
마지막으로 이것 하나만 더하고 마치겠는데, "행복할 것인가? 성공할 것인가?" 라는 것에 대한 저의 결론은, 그것은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가족에게 달여있다는 것이다. 그 가족이란, 어려서는 엄마이고, 어른이 되어서는 마누라와 자식들인데, 즉 "여보, 언제 넓은 아파트로 이사를 갈 거예요? 아빠, 유학을 가고 싶어요" 라고 한다면, 그런 것이 성공하지 않으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아마 시골에 가서 병원을 개업하고 농사도 짓는다고 하면, 가족들이 난리가 날 것이라는 말이다. 시골에서 무슨 수로 그런 돈을 벌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다가 잘못하면 "여보, 당신은 여기 있어요. 우리는 캐나다로 갈 거예요" 라고 말이다. 그러니 졸지에 기러기 아빠가 되고 마는데, 돈이 없으면 펭귄 아빠가 되고 말이다. 기러기처럼 날개가 없어서 보고싶어도 날아가지도 못하는 불쌍한 아빠가 말이다.
◈ 내 인생도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해 !!
그러므로 오늘 강의의 결론은 "내 인생은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라는 것인데, 그러니 결국은 정치적인 타협을 하게 되는데, 즉 "그러면 당신이 캐나다로 안 가고, 나도 전문의 시험을 쳐서 도시에서 성공적인 의사가 될게, 그렇게 하면 되겠지?" 라고 말이다. 그렇게 정치적 타협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산다고 하는 것은, 자기 신체를 끊임없이 유지하기 위해서 정치적 타협을 하게 되는데, 그렇다면 어느 정도 타협을 해야 하는가? 그것은 각자 각자의 여건에 따라서 달라지는데, 어느 정도 양보를 하고 밀어 부쳐야 하는지 말이다.
그러니 이렇게 인생을 분석해보면 의외로 간단한데, 제 아무리 누가 무슨 소리를 하고 철학을 한다고 해도, 결코 이러한 범주를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고상한 윤리를 들먹이고 해도 우리가 가진 이 신체를 벗어날 수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그 신체가 요구하는 욕망에 따라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것이 곧 인생이라는 말이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은 우리가 산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신체를 가지고 있기에, 그 신체가 뿜어내는 욕망을 우리도 어떻게 할 수가 없음도 알았습니다. 그러한 우리가 감히 구원을 받겠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이 직접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그 피로 용서하신 줄로 압니다. 언제 그 피에 감사하게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