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회자료 20231008> 성경: 창 11:1~9 제목: 「무너진 탑」 찬송: 375, 410
< 도입 >
◉ 노벨상 수상자 가운데 매우 특출난 인물이 있습니다. 일명 ‘퀴리 부인’이라고 일컬어지는 ‘마리 퀴리’입니다. 마리 퀴리는 두 가지 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최초의 여성 수상자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지금까지 유일한 2회 수상자라는 겁니다. 방사선 분야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1903년 남편 피에르 퀴리와 앙리 베커렐과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고. 1911년에는 화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오늘날 방사선 치료와 핵 에너지 개발, 그리고 방사성 원소에 대한 연구에 지대한 공을 세운 학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퀴리의 연구를 악용하고 있습니다. 대량으로 인명을 살상하는 핵무기 제조에 쓰고 있습니다.
◉ 제가 마리 퀴리 얘기를 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환경과 능력을 좋은 쪽으로 써야 하는데 나쁜 쪽으로 쓰는 겁니다. 다 인간의 죄성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을 선용하시기 바랍니다. 시간도, 물질도, 지혜도, 건강도 좋은 일을 위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쓰시기를 바랍니다.
< 전개 >
◉ 오늘 본문은 일명 바벨탑 사건 이야기입니다. 선사시대의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선사시대와 역사시대의 구분은 ‘문자(언어)’와 관련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도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1절)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 바벨탑 사건은 두 족보 이야기 사이에 들어가 있습니다. 셈의 후손은 두 갈래로 나뉘는데, 하나는 셈으로부터 에벨을 거쳐서 욕단과 그 이후 열네 대로 이어지는 자손이고, 다른 하나는 셈에서 에벨을 거쳐서 벨렉과 그 후손 열 대로 이어지는 자손입니다. 전자는 야벳과 함의 후손과 더불어 바벨탑을 쌓는 일에 참여했고, 후자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는 구원의 역사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리고 전자는 바벨론에 자리를 잡고, 후자는 약속의 땅에 자리를 잡습니다.
→ 2절을 보면 노아의 후손들은 약속의 땅 동쪽에 있는 시날 평지로 와서 살았습니다. 시날은 유브라데강과 티그리스강 사이에 위치한 메소포타미아 계곡 하류의 평원지대를 가리킵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벽돌’을 발명하고, ‘역청’ 사용법을 개발했습니다. 이제는 벽돌을 대량 생산해서 빠른 속도로 견고한 건물을 지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 지혜 주셔서 감사합니다. 벽돌을 만들 수 있는 재료를 주시고, 그 벽돌들을 잘 접착해서 견고한 건물을 짓고 안전하게 살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야 하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했습니까? 3절에 “서로 말하되”라고 했는데, 직역하면 ‘각자 그 이웃에게 말하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인간끼리의 중지(衆智)를 모아 일을 결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 목적입니다. 4절. 그들은 어리석게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결의했습니다. 이게 바로 인간의 죄성(罪性)입니다. 그들은 거대하고, 견고하고, 높은 성과 탑을 쌓아 홍수 등의 재난으로부터 벗어나 안전하게 살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자신들의 이름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지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구약신학자 월터 브리지만은 이것을 ‘성곽 심리’(fortress mentality)라고 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 섭리와는 배치되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창 1:28. 그리고 창 9:1,7에 보면 홍수 후에 노아에게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으로 흩어져서 살라는 겁니다. 그런데 노아의 후손들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바벨탑을 중심으로 하나로 뭉치려 했던 겁니다.
→ 그래서 성공했습니까? 천만에요. 6~7절. 하나님께서는 언어를 혼잡하게 하셔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결국 견고한 성읍과 하늘 꼭대기까지 닿는 높은 탑을 세워 멋진 도시를 건설하고자 했던 그들의 계획은 중단됐고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들이 쌓은 성읍과 탑은 오히려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를 더욱 악화시키고 이전까지 하나였던 언어가 갈리면서 서로 소통이 안 되고 이질감이 생겨서 더 이상 함께 지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도시의 이름을 ‘바벨(בָּבֶל)’이라고 했는데, “혼란케 하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동사 ‘발랄(בָּלַל)’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9절까지의 내용입니다.
< 교 훈 >
◉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바벨탑 사건을 통해서 인간 자신의 힘으로는 어떠한 방식으로도 스스로의 생존과 행복을 이룩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사 14:13~15. 바벨론 왕의 자만심을 책망한 말입니다. 또 주님께서도 이러한 자들에게 경고하셨습니다. 마 11:23.
→ 오늘날 인간은 하늘 높은 줄 모릅니다. 하나님 머리 위에 올라서려고 합니다. 바벨탑을 쌓으려고 했던 사람들과 똑같은 마음입니다. 여러분,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나의 능력으로 된 줄 알고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십시오.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 믿고 늘 그 은혜에 감사하며 자족하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 나눔과 적용 >
◉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것들을 받아 누리고 있나? 그것들을 선용하고 있나? 악용하는 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