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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병환 목사님
목사님께서
개혁주의신앙공동체를 찾아주실 뿐만 아니라,
목사님께서
본 까페를 통해서 누리시는 유익함을
인사의 글과 함께 전해 주심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주께도 감사드립니다.
목사님께서는 우리가 고백하는 사도신경에 ‘음부에 내려가시고’(He descended into hell)란 내용이 있으나, 우리 한국 (개혁)교회에서만 유독 ‘음부에 내려가시고’란 이 구절만을 삭제한 이유를 알고자 하셨습니다.
목사님께서 의문을 가지신 ‘음부에 내려가시고’(He descended into hell)‘란 문구가 있는 것은 사도신경에서 영문역에서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영어로 된 사경신경에는 이 문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말인 국문으로 번역한 사도신경, 즉 한글역 사도신경에서는 이 문구가 없습니다.
영문 사도신경에서 이 문구가 있는 부분을 좀 더 보겠습니다.
"Suffered under Pontius Pilate; was crucified, dead and buried: He descended into hell: The third day He rose again from the dead. He ascended into heaven."
이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본디오 빌라도 치하에서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으시고, 그리고 장사되셨다. 그(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지옥[또는 음부]으로 내려가셨다. 사흘 만에 그는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그는 하늘에 오르셨다."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He descended into hell'(그는 지옥[음부]에 내려가셨다)라는 ‘지옥[음부] 강하’(地獄降下)* 내용이 영문으로 된 사도신경에는 들어가 있습니다. 그러한 것이 우리말 사도신경에는 빠져 있는 것입니다.
*참조. ‘He descended into hell'(그는 지옥에 내려가셨다)라는 ‘지옥[음부] 강하’의 표현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또한 실제 지옥에 내려가셨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신학적 논쟁과 함께 성경 해석에 관한 문제이므로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그러면 말입니다. 이제 목사님께서 궁금해 하시는 것인, 왜 우리 한국 교회에서만 이 ‘음부에 내려가시고’ 부분을 뺏는가 하는, 그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설명과 답변은 정확히 어떻다고 전해 드리지를 못합니다. 왜냐하면 말입니다. 어떤 이유에서 예수님의 지옥 강하 부분이 빠져있게 되었는지는 이제까지는 그 까닭이 불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말인 한글 사도신경에서도 초기 한국교회가 사용하는 찬송가에 실린 사도신경에는 ‘음부에 내려가시고’란 문구가 있어왔었습니다. 그러니까 한글 사도신경에서 처음부터 이 부분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한글 사도신경은 주기도문과 함께 우리가 사용하는 찬송가에 실려 있는데 1894년의 것에 보면 ''디옥에 ㄴ리샤"(지옥에 내리사)라고 분명하게 지옥 강하의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ㄴ밑에는 고어이기 때문에 점이 있습니다. 이것의 문자가 없기 때문에 그냥 ㄴ자만 쳤습니다). 그러한 것이 1897년에는 이 부분이 빠져 있습니다. 그러다가 1905년에는 '음부에 ㄴ리셧더니'라고 다시 삽입되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감리교회에서 발행한 찬송가(1897년, 1902년, 1905년)에는 모두 지옥 강하 부분이 빠져 있습니다. 그리고 1908년에는 장로교회와 감리교회가 연합한 연합공의회가 1905년에 찬송가를 통합할 것을 결의하고 1908년에 합동찬송가를 발행하였는데 여기에서는 지옥 강하 부분이 다시 빠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장로교회에서도 오늘날까지 사도신경에서 지옥 강하 내용이 없는 채 사용하여 왔습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대로 한국교회 초기에는 찬송가를 새롭게 발행하게 될 때마다 이곳에 수록할 사도신경에 지옥 강하 내용을 그대로 넣어서 신앙고백문으로 사용할 것인지, 아니면 ‘지옥에 내리사(음부에 내려가사)’ 부분을 삭제하고 신앙고백문으로 사용하게 할 것인지에 대하여 혼란을 겪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은 이 부분에 대한 교단과의 신학적 이해 관계가 얽혀 있었던 것 같으며, 범교단적 찬송가의 통합 사용 이후에는 결국은 더 이상 관심으로 대두되지 않은 채 오늘에 이른 것으로 보입니다.
무엇보다도, 사도신경이 작성되고 또한 공인되어 오는 역사적 과정에서 ‘음부에 내려가사’란 문구의 부분이 통일되어 있지를 않았습니다. 교회사의 초기에는 예수님의 지옥 강하에 대한 고백이 보편적으로 사도신경에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이 부분이 문구화되어서 신앙고백으로 들어있게 된 것은 아퀼레이안(Aquileian)형의 사도신경(A.D. 390)에서입니다. 그러니까 ‘음부에 내려가사’란 문구가 사도신경의 공식적인 문서에 있게 되어 처음으로 사용된 때는 4세기 말에 이르서야 비로소 되어진 일입니다. 그 전에는 다만 그리스도인들의 구전(口傳)에 의해서 있어 왔었습니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사도신경(사도신조)으로는 3대 신경으로 불리우는 ‘사도신경’(A.D. ?), ‘니케아 신경’(A.D. 325), ‘아타나시우스 신경’(A.D. 359) 정도입니다만, 사실 이것들 외에도 더욱 더 많은 신경이 있습니다. 3대 신경을 포함해서 이그나티우스 신경, 이레니우스 신경(3가지 양식이 있음), 터툴리아누스 신경(이것 역시 3가지 양식이 있음), 오리게네스 신경, 키프리아누스 신경, 노바티아누스 신경, 그레고리 다우마투르구스 신경, 루시아누스 신경, 유세비우스 신경, 아리우스 신경, 마르켈루스 신경, 시릴 신경, 에피파니아누스 신경(2 가지 양식이 있음), 제1 콘스탄티노플 신경, 아퀼레이안 신경, 로마 신경, 아우구스티누스 신경, 니케타스 신경, 칼케돈 신경, 유세비우스 갈루스 신경, 제2 콘스탄티노플 신경, 사크라멘타리아눔 갈리카눔 신경, 제3 콘스탄티노플 신경 등이 2세기에서 7세기에 걸쳐 있어 왔습니다.
위 신경에서 ‘음부에 내려가사’란 문구가 처음 들어 있는 사도신경은 이미 밝힌 바와 같이 아퀼레이안 신경에서이지만, 로마와 근동의 다른 형의 사도신경들은 예수께서 지옥[음부]에 내려가신 것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장사(葬事)를 다루면서 여기에 그리스도께서 지옥에 내려가심의 의미가 포함되었다고 여긴 까닭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그리스도께서 지옥에 내려가심을 언급하면서 장사 지내심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것들도 있습니다. 그러다 후에 로마형의 사도신경에서 장사를 언급하고 나서 지옥에 내려가셨다는 진술이 첨가되었습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와 현존하고 있는 사도신경에는 공인된 원문에는 ‘(장사되어) 음부[지옥]에 내려가사’란 문구가 있습니다만, 그 외의 다른 형의 사도신경인 대다수의 본문에는 이 문구가 없는데다가, 이 문구가 있으므로 인해서 있을 수 있게 되는 불필요한 논쟁 - 문자적인 지옥으로 볼 경우 있을 수 있는 이해 관계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싸움만 되는 논쟁 - 을 의식해서 한국 찬송가(또는 성경과 찬송가)를 발행하는 곳에서는 의도적으로 생략시켰지 않나 여깁니다.
목사님!.
영문 사도신경이든, 국문 사도신경이든, 이 신경들은 현존해 오고 있는 ‘신경’으로 어떤 것을 채택해서 번역하느냐에 따라서 ‘음부에 내려가사’란 문구를 집어 넣게 되기도 하는가 하면 또는 빼서 생략하게 되기도 합니다. ‘신경’에서 가장 바람직한 번역을 위한 채택은 공인된 원문일 것입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다수본의 신경과 이 신경들을 통해서 번역한 사도신경역들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사도신경에 ‘음부(지옥)에 내려가사’란 문구가 있을 경우에나, 또는 이 문구가 (염두에 둔)생략 내지 아예 빠져 있는 경우에나, 이 모두는 그리스도인들이 주이신 그리스도께 갖는 신앙고백에 어떤 영향을 끼치지 못합니다.
우선 ‘음부(지옥)에 내려가사’란 문구가 처음부터 일관되게 신경에 있어온 것이 아니라, 다양하게 신경으로 작성되어 내려오는 과정에서 첨가된 것이므로 이 문구를 넣거나 또는 빼거나 하는 것에서 있게 되는 ‘음부(지옥)에 내려가사’란 것이 의미하는 바의 이해를 갖는 것에 있으면 됩니다. 목사님이 이것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기 위해서는 개혁교회가 이에 대한 어떤 해석의 의미에서 이해하여 왔는지를 알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하오니, 여기에 대하여 살펴보실 것을 권합니다.
다음으로는, 영문 사도신경에서 보게 되듯이 ‘음부(지옥)에 내려가사’란 문구를 국문 사도신경에도 넣는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성경과의 연관에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3장 19절, 4장 6절과의 연관에서 ‘음부(지옥)에 내려가사’가 갖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해야 하는데, 이때 이것은 예수께서 모든 불신자(불택자)들이 심판을 받아 사단(마귀)과 함께 영원히 멸망에 처해지는 ‘지옥’으로 내려가 머무셨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으므로 이 문구가 있어도 이를 문자적으로 이해하려 들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사도신경에 ‘음부에 내려가사’란 문구가 있는 것으로 문제 삼을 이유도 없지만, 또한 이 문구를 굳이 삽입할 이유도 없으므로 뺏다고 해서 문제 삼을 일도 아닙니다. 이 문구를 뺀다고 할지라도 사도신경의 근본을 이루는 신앙고백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원문, 또는 영문 사도신경에서 ‘음부(지옥)에 내려가사’란 문구에서 사용되고 있는 단어인 ‘음부’(지옥)가 원문에서는 모든 불신자(불택자)들이 심판을 받아 영원히 멸망에 처해지는 ‘지옥’으로서의 그 장소적인 ‘지옥’을 뜻하지도 않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이것 역시 베드로전서 3장 19절, 4장 6절에 의한 해석에서 분명합니다. 그런 까닭에 ‘음부(지옥)에 내려가사’란 문구가 사도신경에 있으므로 인해서 이에 대한 이해를 잘못 가질 수 있는, 그래서 마치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 죽으시고 지옥에 내려가신 듯한 오해를 갖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영문 사도신경에는 이 문구가 있는데 국문 사도신경에는 빠져 있다고 해서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에 해로움을 주는 영향이 전혀 되지를 못합니다.
어쨌든 사도신경에서 ‘음부(지옥)에 내려가사’란 문구가 우리말 사도신경에는 왜 빠져 있느냐 하는 것이나, 이 문구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냐 하는 것은 목사님의 질문의 취지도 아니기 때문에 여기서의 중심 주제도 또한 여기서 다룰 사항도 아닙니다. 다만 교회사에서 존재해 오고 있는 신경에는 ‘음부(지옥)에 내려가사’란 내용의 문구가 들어 있는 신경들이 있어왔으며 또한 이 문구가 없는 신경들도 있어왔는데 대다수의 신경은 이 문구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번역 사도신경인 영문 사도신경에는 번역을 위해 채택한 사도신경(공인된 사도신경)을 따라서 ‘음부(지옥)에 내려가사’란 문구를 그대로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으나, 국문 사도신경에서는 초기에는 이 문구를 공인된 사도신경과 이것의 번역인 영문 사도신경을 따라서 그대로 이 문구를 넣기도 하고, 또한 어떤 생각에 의해서 빼기도 하고 또 다시 넣기도 하고 또 다시 빼기도 하는 등의 혼란을 겪다가 지금은 이 문구를 배제하고 있는 입장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최근에 국문성경인 개역성경의 개역개정판의 발행과 함께 찬송가 또한 새롭게 만들어서 새로운 찬송가로 낸 찬송가에 주기도문과 함께 사도신경을 실으면서 발행자인 한국찬송가공회는 이에 대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힘으로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국교회의 입장이기도 할 것입니다.
“ ‘장사되시어 지옥에 내려가신 지‘가 공인된 원문(Forma Recepta)에는 있으나, 대다수의 본문에는 없다.”
목사님,
이상으로 답글을 마칩니다.
사도신경의 경우에서 고금 이래 모든 시대에서 통일된 신앙고백서를 대하면 참 좋겠습니다만, 그렇지 못할지라도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인 사도들이 주께 대하여 어떤 신앙에 있어 왔는지와 사도들의 신앙을 따라 그들과 동일한 신앙에 있어온 교회의 고백을 볼 수 있게 해주고 있는 것이 현재 우리가 신앙고백하고 있는 ‘사도신경’입니다. ‘음부(지옥)에 내려가사’란 문구가 있든, 이 문구가 없든, 이것은 하등의 이상한 이유가 되지 못하며, 이것으로 ‘사도신경’의 권위가 훼손되지도 않습니다. 즉, 이 문구의 유무(有無)로 우리가 주께 가진 신앙과 이를 고백하는 신앙이 전혀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한 우리에게, 본 질문과 이에 대한 답변으로 주께 가진 우리의 믿음이 더욱 견고히 되는 살핌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습니다.
주 안에서
강건하실 것과
평안을 빕니다
첫댓글 주안에서 애정어린 답글에 감사 드립니다. 이제 은퇴를 앞두고 있는 시골의 목사로서 글재주가 없습니다. 다만 여러분의 노고에 격려를 아끼지 않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병환 목사님. 언제 한번 땅끝까지 마을을 찾게 되면 목사님을 찾아 뵙고 인사드리겠습니다. 전남 해남에는 오래 전에 두 번 가 볼 기회가 있었으며, 그때 가진 좋은 이미지가 아직도 남아 있어서 언제 다시 가 보았으면 하는 마음이 늘 있습니다. 그러한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위해서 주께 구합니다. 주께서 허락하여 찾아 뵙게 되면 복음을 인한 전해주실 많은 이야기를 들려 주시기 바랍니다. 목사님, 건강하시며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 언제든 오신다면 식사 한번 대접해 드리고 싶습니다. 샬롬, 삼산중앙교회입니다.
네, 흔쾌히 환영의 마음을 표해 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목사님께서 시무하시는 교회명을 잘 기억하고 있으며, 기회가 주어지면 소식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