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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1, 2, 3, 4가동 사회복지 담당’. 지난해 4월 28일 서울 종로구청 박현숙(49·여·7급)씨는 인사발령을 받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종로구 공무원들 사이에 1, 2, 3, 4가동 사회복지직은 기피 근무처였다. ‘쪽방촌’ 주민들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쪽방촌은 돈의동 103번지(피카디리 극장 뒤)에 모여 사는 700가구를 지칭한다. 이 가운데 220가구는 기초생활수급자다. 구청 동료들은 “귀양간다”고 표현했다. 여성복지 상담원(별정 8급)으로 시작한 박씨는 공직 26년 대부분을 구청에서 여성정책 업무만 맡아왔던 터였다.
동주민센터로 첫 출근한 날, 박씨는 험한 장면을 목격했다. 술에 취한 쪽방 거주민 한 명이 주민센터 의자와 사무용품을 닥치는 대로 집어던지고 있었다. 그는 “지원 똑바로 하라”고 소리치며 쓰고 온 오토바이 헬멧도 내던졌다. 여직원들은 이리저리 도망 다녔다. 주민센터 동료들은 박씨에게 “이런 일이 하루에도 서너 번씩 일어난다”고 귀띔했다. 사무실 바닥에 구토를 하거나 계단에 앉아 대소변을 보는 사람도 있었다.
(박현숙씨가 27일 서울 돈의동 쪽방촌 박창석(74) 할아버지의 집을 방문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일부 쪽방 주민은 모여 술을 마시다 돈이 떨어지면 동사무소로 몰려와 소란을 피웠다. 그들은 20㎏짜리 쌀 한 포를 내주면 돌아갔다. 그러곤 그 쌀을 3만원으로 바꿔 술과 안주를 샀다. 박씨는 이들에게 자활과 지원을 연계하는 방법을 찾았다. “소란 무마용 지원으론 이들을 변화시킬 수 없다”고 생각했다. 지난해 말 박씨는 ‘스스로 돕는 자를 찾는 마법천사 프로그램’이라는 구상을 익명을 요구하는 한 후원자에게 설명했다. 무역업자인 후원자는 3600만원을 선뜻 내놓았다. “매년 돈을 기부할 테니 자활에 도움을 주는 데 써 달라”고 했다.
박씨는 올 초 쪽방 거주민 100여 명을 초청해 마법천사 프로그램 설명회를 열었다. “소리 지르고 행패부리는 이는 후원하지 않는다. 자활의지가 있는 분은 확실히 돕겠다”고 강조했다. 쪽방 거주민 전원에게 안내문도 보냈다. 마법천사 참가자들은 매주 월요일 수업시간에 술을 안 먹고 참석해야 했다. 인생 곡선 그리기, 쪽방 이미지 표현하기, 자서전 쓰기, 희망 설계하기라는 프로그램은 박씨가 직접 짰다. 금주·금연·혈당 수치 낮추기 등 개인별 목표도 정해 줬다. 3개월간 술을 먹지 않은 채 프로그램을 끝낸 사람에게는 30만원씩 후원금을 나눠줬다. 지금까지 40여 명이 거쳐갔다.
변화가 생겼다. 알코올 중독이던 장모(48)씨는 후원금을 모아 학원을 다니며 ‘노인요양 보호사’ 자격증을 딴 뒤 박씨를 찾아왔다. 장씨는 “쪽방 노인을 돌봐야 할 일 있으면 내가 나서겠다”고 제의했다. 알코올 중독자 강모(54)씨는 어느 날 저금통을 들고 찾아와 “틈틈이 모은 동전인데 어려운 사람을 위해 써달라”며 내놨다. 박씨는 마법천사 참가자들과 함께 저금통을 깼다. 6970원.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입금 영수증을 받아든 강씨는 박씨에게 “남을 위해 처음 해본 일”이라고 털어놨다.
요즘 주민센터를 찾아와 행패 부리는 횟수는 일주일에 한 건 정도로 줄었다. 박씨는 “쪽방촌 주민들이 삶을 긍정적으로 보고, 다른 사람도 도울 수 있도록 내년에 ‘쪽방촌 봉사단’을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27일 제33회 청백봉사상 대상을 받았다. 상금 500만원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키로 했다.
글=박태희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중앙일보 기사 원문 : http://news.joins.com/article/aid/2009/11/28/3553236.html?cloc=olink|article|default
2009.11.28
복지관에서도 볼 수 있는 풍경이지요.
저도 경험했습니다.
정수현 선생님 처럼 멱살도 잡혀봤고 협박도 들어봤습니다.
주민센터 오가면서도 이와 비슷한 모습 종종 목격했습니다.
지원받은 쌀을 돈으로 바꿔 술 사드신다니,
이런 이야기는 처음 들었습니다..
박현숙 선생님의 마음이 귀합니다.
“소란 무마용 지원으론 이들을 변화시킬 수 없다”,
주민센터의 상황을 짐작하면 쉽지 않은 마음인데
좋은 품성은 물론 26년의 오랜 공직생활 속에서 얻은 경험과
삶의 지혜가 있으셨기에 가능하셨나 봅니다.
오랜 경험이 있으신 선배들,
찾아 뵙고 직접 듣고 싶은 마음이 일어납니다.
기사 읽으며 '자연주의..사회복지사 대화모임'에서
정수현 선생님이 들려준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소위 ‘문제가 있다’고 하는 동네 분들과 이야기 나눌 때,
말 길어지면 귀찮으니 “네, 네. 알았습니다.”하며
빨리 이야기를 끝내려 하거나,
달라는 물건 드리고 끝내려는 마음을 먹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이후에도 그 분을 길에서 만나면 먼저 인사드리고 안부를 여쭸습니다.
어머님은 어떠신지 안부도 여쭸습니다.
항상 이렇게 인사하니 이 분도
당신의 어려움이 있을 때에 제게 먼저 찾아오시는 것이었어요."
두 분 모두 행패 부리는 그 모습 너머에 감춰진
사람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 믿음이 있으니 자연스럽게 이렇게 행하셨겠지요.
두 분 모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