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사도행전 1:1-11
사도행전은 누가복음 후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가가 데오빌로에게 먼저 쓴 글은 누가복음이고, 후에 쓴 글이 사도행전입니다.(눅1:5; 행1:1). 누가복음에는 예수님의 탄생에서부터 고난과 죽음과 부활하시까지, 그리고 사도행전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려져 가신후부터 제자들이 교회를 세우는 것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런데 ‘데오빌로’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 ’혹은 ‘하나님의 친구’라는 뜻인 ‘데오빌로’는 이미 기독교에 상당한 이해와 관심을 갖고 있는 실제 인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데오빌로의 이름의 뜻으로 하나님의 사랑하는 모든 성도들이 수신자라고 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혀가시는 것을 본 제자들과 따르던 사람들은 두려워 도망하고 흩어졌다가 부활하신 후에 그들이 모인 곳에 예수님께서 십여 차례 나타나셔서 자신의 부활하심을 믿도록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에 모였을 때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4)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주께서 이스라엘을 회복하심이 이 때이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이렇게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물었던 것은 처음이 아닙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로마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 시킬 유대인의 왕이 되실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정치적 회복으로 이해하여 예수님이 이 땅을 다스리시고 통치하신다는 말로 이해를 했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이스라엘이 해방되면 자신들도 권력의 자리에 앉게 되길 희망을 가졌습니다.(막10:35-45)
그러나 그러한 그들의 기대는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으로 인해 여지없이 무산되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흩어졌다가 예수님의 부활과 더불어 다시금 모여 ‘하나님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했을 때 또 다시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을 정치적인 회복을 기대하고 ‘이스라엘을 회복하심이 이 때이니까?’라고 물었던 것 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정치적인 이스라엘 회복이 아닌 구속사적인 회복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오직 아버지께만 아시기 때문에 너희가 알 바가 아니고 너희들은 그날이 오기까지 복음 사역에만 충실히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8)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제자들 뿐 아니라 오늘에 이르기까지 모든 성도들에게는 너무나도 중요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제자들을 비롯한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증인’이란 말은‘순교자’란 의미로 예수님에 관한 것을 보고 들은 것을 증거 할 뿐 아니라 순교할 자세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내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되셨다가 살아나셔서 하늘에 올려져 가신 것과 다시 오실 것을 증거하는 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당시 유대인들, 특별히 대제사장들과 장로들, 그리고 사두개인들은 예수님의 죽음과 살아나심을 매우 듣기 싫어 했습니다. 3장과 4장에서 베드로가 예루살렘 거리로 나가서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살아나심을 전했을 때, 제사장들은‘제발 예수의 죽음과 살아나신 것만은 말하지 말라’고 경고하였습니다.(4:18) 이렇게 유대인들이 가장 듣기를 싫어하는 말을 제자들에게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것은 성령을 받아야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도움이 없이는 증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으면 누구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곧 바로 하늘로 올려져 가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지상 최후의 명령입니다.
하늘로 올려져 가시는 예수님을 쳐다보고 있을 때 구름이 가리워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9) 그때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제자들 곁에 서서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래서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예수님과 자주 모였던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예수님을 배신한 가룟 유다를 제외한 열 한 제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아우들과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여인들, 모두 백이십 명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모인 그들은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힘써 기도하였습니다.(14) 주님의 증인이 되고자 하는 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이처럼 기도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성도들이 주님과 교통하는 대화이자 영적 호흡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내게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은 눅24:49에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이 성에 머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날 밤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아버지께 가서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요14:16)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시기 위해서 하늘로 올려져 가셨습니다.(9)‘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라는 말씀은 성령은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말씀입니다. 성령은‘진리의 영’(요14:17)으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의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제자들은 하나님의 약속하신 성령 강림을 임하시기를 위해서 간절히 십 일 동안 기도했습니다. 더디어 오순절에 그들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여 기도하는 중에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여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였습니다.(2:2)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성령이 임하여 성령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그 말씀을 믿고 학수고대하며 오로지 힘써 기도하고 있는 무리에게 성령이 임하셨습니다.‘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라고 한 것은 바람은 분명히 부는 것은 알지만 그 출처를 알 수 없는 것처럼, 성령의 임재도 어떻게 임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람 소리 같다’는 말은 청각적으로 마치 바람 소리를 들은 것 같이 매우 세밀하게 들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성령이 임하실 때, 언제 어떻게 임하셨는지 알 수 없도록 임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내가 언제 성령을 받았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변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고,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며 믿게 된 것은 성령을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온 집에 가득하며’란 말은 성령께서 사도들과 성도들이 있은 그 집에 충만하게, 풍성하게 임재하셨다는 것입니다. 믿고 힘써 기도하며 기다리는 모두에게 다 같이 성령으로 충만했다는 말씀입니다.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은 불이 맹렬하게 타오르는 것을 묘사한 것으로 표현을 한 말로서, 가슴이 뜨겁고, 마음이 흥분되어 기쁨으로 충만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들과 같은 특별한 직책에 있었던 자들에게만 성령이 임한 것이 아니라 ‘각 사람 위에 임하였다’고 했습니다.(행2:3) 바리새인과 제사장 중심의 종교적 엘리트들에게 성령이 임하신 것이 아니라는 그곳에 모인 모두에게 임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함께 기도하며 기다렸던 모든 사람을 증인으로 삼으셨습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은 제자들과 모인 무리는 이제 성령을 받기 전에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완전히 새 사람으로 변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옛 사람은 죽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중생하였습니다.
우리도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 세례는 성령 충만함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으므로 거듭난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으면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기 전에 제자들은 자신을 위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은 후로부터는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을 위해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병 고침을 받기 위해서 예수님을 찾았고, 배부르게 먹여주시니까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 삼고자 했습니다. 제자들도 자신을 위해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오늘의 예수님을 믿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도 이기적인 자기중심의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 맘에 들지 않는다고 교회를 비판하고 남을 정죄합니다.
텔레비전에서 어린 손녀가 할머니와 함께 사는 것을 본 일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병들어 죽고 어머니는 딸을 버리고 도망하고 어린 딸만 남았는 것을 할머니가 데리고 사는 것입니다. 어린 딸은 아무도 돌보아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의 할머니가 돌보는 것입니다.
할머니는 늙고 몸이 아파도 쉬지 못하고 파지를 줍고 돈이 생기면 손녀가 먹고 싶은 것을 사다 먹입니다. 다른 아이들처럼 하고 싶은 것과 가지고 싶은 것을 해 주지 못해서 할머니는 손녀에게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손녀 때문에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자기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어린 손녀 때문에 산다고 했습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란 복음송을 교회마다 즐겨 부르며 좋아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 교회도 즐겨 부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도행전 20:35절 말씀을 봅시다.‘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주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받기를 원하는 사람과 주기를 원하는 사람, 어느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까? 사랑받기 원하는 사람은 만족을 모릅니다. 언제나 불평하고 원망을 합니다. 그러나 사랑을 주는 사람은 언제나 만족합니다. 감사하며 삽니다. 바울은 성도는 주는 것보다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가르쳐 주신 예수님의 말씀을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말했습니다.
성령 받기 전에 베드로나 제자들도 자기만을 위해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은 후부터는 사는 목적이 달라졌습니다. 주는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사랑을 주며 복음을 주었습니다. 미문에 앉아 구걸하는 사람에게 베드로는 아무것도 줄 것이 없는 빈손이었지만 그러나‘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노라’고 하며 권능으로 그를 일으켜 걷고 뛰는 사람이 되도록 해 주었습니다.(행3:6)
여러분은 어떠한 믿음의 사람입니까? 받기를 원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주기를 원하는 사람입니까? 성령을 받은 성도는 사랑을 주고 복음을 주는 사람입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과 초대교회 많은 성도는 성령 충만함을 받고 예수님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상 최후로 하신 말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신 말씀을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성령 충만함을 받고 옛사람은 죽고 새 사람이 됩시다. 지금까지 자기를 위해 살았다면 이제부터 남을 위해 사는 자가 됩시다. 받기를 원하기 보다는 주는 자가 됩시다. 성령 충만함을 받고 복음을 전하는 예수님의 증인이 됩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구원받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