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아현동에 위치한 정교회 성 니콜라스 대성당의 입구에는 주보성인 니콜라스의 이콘이 새겨져 있다. 산타 클로스의 모델이 되는 이 성인의 모습은 대중들에게 익숙한 산타 클로스의 이미지와 다르게 나타나 있다. 반쯤 벗겨진 머리와 꾹 다문 입술, 왼쪽 손에 들려있는 복음경, 오른쪽 손이 가리키는 삼위일체의 신비와 진리, 오모포리온(동방정교회에서 주교들이 두르는 십자가가 새겨진 띠)을 두른 어깨, 모든 정념을 초탈한 듯한 얼굴. 12년전에 내가 성당에서 이 교부 성인의 이콘과 마주했을 때, 장난끼와 인자함이 반쯤 섞여 있는 산타 클로스를 연상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 때 내가 이콘을 통해서 본 교회의 수호성인이자 교부로서 성 니콜라스는 그리스도교의 교의와 도덕에서 한 치도 벗어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엄격하고 깐깐한 고대 교부 그 자체였다. 사실 교의 논쟁이 치열했고 정치적으로 엄혹했던 당대를 고려해보면 이 이미지가 실제 니콜라스와 더 부합할지도 모른다.
성 니콜라스 대성당에서 지하철로 20분이 채 안되는 거리에 있는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도 성 니콜라스가 공동 주보성인이다. (다른 한 분은 성모마리아) 정교회처럼 비잔틴 양식이 가미된 제대에 새겨진 성 니콜라스의 모습은 한국정교회 대성당과는 또 다르다. 그는 서방 그리스도교 교회에서 주교들이 쓰는 오각형 모양의 주교관을 쓰고 있다. 그 외 전례복도 로마가톨릭/성공회/루터교 등의 서방 교회에서 쓰고 있는 것과 대동소이하다. 그의 곁에는 어린아이 세 명이 붙어있다. 성인이 어린 아이를 죽여 짐승의 고기인 양 팔려던 도축업자로부터 세 명의 아이들을 구했다는 교회 전승을 반영한 것 같다. 제대 벽화에서 성인은 마치 축복을 하려는 듯 그 중 한 아이를 향해 손을 뻗고 있다. 아이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화답을 하고 있다. 한 아이는 장난스레 장백의 자락을 잡아 끌면서 성인을 올려다 보고 있다. 다른 아이는 성인의 제의 자락에 반쯤 싸인 채 그 아이를 응시하는데 아이의 시선은 가려져 있다. 그리고 또 다른 아이는 앉은 채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다.
성공회 서울대성당 제대에서 성 니콜라스와 세 아이들의 모습은 가장 왼쪽 구석에 있어 다른 성인들에 비해 눈에 띄지 않는다. 어쩌면 성인이 살아 생전 가장 중시했던 덕목 중 하나인 '겸손'이 반영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였을까. 마치 천국의 문지기처럼 결연해 보였던 한국정교회 대성당 입구의 성 니콜라스와는 달리 성공회 서울대성당의 성 니콜라스는 다소 수수하고 가냘퍼 보였다. 여기서도 힘차게 눈발을 헤치며 사람들을 향해 활짝 미소짓는 산타 클로스의 화려한 이미지와의 접점을 찾기는 힘들었다.
아시아 지역에서 태어나 70년 조금 넘게 지상에서 살아갔던 이 교부 성인은 안식한 이후 여러 지역과 문화, 시대를 거치며 다양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났다. 때로는 엄격한 스승의 모습으로, 때로는 부드럽고 수수한 모습으로, 때로는 정의감에 넘치는 사회 개혁가의 모습으로. 그리고 마침내 다신교가 여전히 강세였던 북서유럽(근세 이후로는 대체로 개신교 문화권) 문화권을 거치며 오늘날의 억세면서도 유머러스하고 인자한 산타 클로스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니콜라스 성인은 이렇게 천상에서 뿐 아니라 지상에서도 영원한 생명의 지위를 획득하게 된 것이다.
성 니콜라스가 오고 있다. 1,700살이 넘은 노인으로서 2,000살이 넘은 복되신 아기를 모시고 오고 있다. 미래에 산타는 과연 모습으로 변모하게 될까?
"전능하신 하느님,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돕는 자로서 니콜라의 이름을 빛나게 하셨나이다.
비오니, 그의 신앙과 삶을 기리는 대한성공회에 은총을 내리시어, 성인과 같이 이 땅의 고통받는 이들을 위하여 헌신하며 주님의 복음을 전파하게 하소서."
- 성공회 기도서 성 니콜라 축일 본기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