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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세속화라고?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된 느낌이다. 겨울비 끝에 제법 함박눈도 내렸다. 한파는 반갑지 않지만, 모처럼 겨울다움이 싫지는 않다. 겨울은 쨍하는 차가운 맛이 제격이라는 사람도 많다. 겨울을 겨울답게 하는 멋은 역시 크리스마스다. 상업적이니, 장삿속이니 뭐라고 해도 때 이른 성탄 풍경이 반갑다. 올들어 유난히 캐럴 소리가 늘어나 고맙다.
<나니아 연대기>에서 C.S. 루이스는 아이들의 입을 통해 크리스마스의 소중한 세속적 의미를 이야기한다. “항상 겨울만 있고 크리스마스는 결코 없다면, 오! 그건 상상할 수도 없어.” 역시 크리스마스는 아이들의 왕국이다. 아이들의 상상력이 아니더라도 아기 예수는 동화 속 어린 왕자처럼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는 삭막한 별에서 ‘보이지 않는 꽃’을 통해서도 아름다움을 느꼈다.
크리스마스를 장식하는 꽃들은 한겨울에도 고고한 향기를 발하고 있다. 붉은색 별 모양의 포인세티아와 짙은 초록색 가시잎사귀를 지닌 호랑가시나무가 대표적이다. 은은한 붉은색이든, 반질거리는 초록빛이든 모두 예수님이 함께 하심을 상징적으로 고백하고 있다. 두 가지 성탄식물에게 명예로운 탄생 설화가 덧붙여진 것은 자연스럽다.
포인세티아의 꽃말은 ‘축하’인데, 뜨거운 마음을 강조하기도 한다. 멕시코의 가난한 소녀 페피타는 예수님 생일에 드릴 선물이 없어 근심하던 중 천사의 말을 듣고 성당 앞에 들풀을 가져다 두었다. 놀랍게도 소녀가 드린 들풀에서 진홍색의 꽃이 피어났다는 것이다. 또 다른 설에 따르면 멕시코의 착한 소녀가 병든 홀어머니를 구완하기 위해 깊은 산속 절벽에 있는 흰 약초를 구하다가 추락했는데, 천사가 손에 쥐어 준 피 묻은 약초가 바로 붉은 꽃이었다.
아마 포인세티아 원산지가 멕시코 일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즈텍 사람들은 염료와 해열제로 사용했다고 한다. 17세기에 멕시코로 파송된 프란치스코 수도회는 포인세티아를 처음 성탄 장식으로 사용하였는데, 별 모양 잎은 베들레헴의 별, 붉은색은 그리스도의 피를 의미한다고 보았다. 심지어 미국에는 ‘포인세티아의 날’(12.12)도 있다. ‘포인세티아 교인’(Poinsettia Churchgoer)이란 크리스마스에만 나오는 명절 교인들을 의미하는 말이다.
대림절 화환(花環)으로 사용하는 호랑가시나무 역시 성탄 식물이다. 잎에 돋은 뾰족한 가시는 면류관을, 붉은 열매는 성혈을,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초록 잎사귀는 영생을 의미한다. 호랑가시나무 종류를 통틀어 홀리(holly)라고 부르는데, 영화의 본바닥 할리우드(Hollywood)란 이름은 세계적이다. 홀리(holy)와 철자와 발음이 닮은 까닭에 거룩한 식물이란 지위를 얻은 것은 자연스럽다. 호랑이의 가려운 등을 긁어주던 나무여서일까, 해리 포터는 마법지팡이 재료로 애지중지하였다.
크리스마스가 세속화되었다고 나무랄 것 없다. 예나 지금이나 그런 엄숙미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세속화는 세상 속으로 오신 어린 왕자를 알아보려는 인위적 시선이기도 하다. 돈 큐핏(Don Cupitt)은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교의 디즈니화(Disneyfication)다”라고도 풍자하였다. 이탈리아 굽비오(Gubbio)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성탄 트리가 있는데, 인지노 산을 배경으로 850개의 전등을 장식한 450미터 길이의 성탄 나무이다. 세속화치고 경이롭기 그지없다.
더 흥미로운 세속화는 미국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을 지낸 매드린 올브라이트의 자서전 <마담 세크러터리>에 나온다.
“체코의 유대인은 다른 지역보다 더 세속적이었다. 두 차례 세계대전 사이에 자신을 유대인이라기보다 체코인으로 생각하였다. 동화된 사람은 유대교 전통을 지키지 않았다. 그들은 유대교의 신년제, 속죄일, 유월절은 물론 크리스마스와 부활절도 명절로 생각하였다. 하누카(8일간 성전의 촛대를 밝히는 유대교 빛의 명절) 마지막 날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고르곤 하였다. 테레진 미술관에 있는 어린이 그림 중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그린 것도 있다.”
역설적으로 크리스마스는 더 세속화되어야 한다. 10억 장의 음반을 판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작곡자 어빙 벌린은 러시아 유대인인데, 그는 “평균적 미국인의 가슴에 도달하기 위해” 곡을 만든다고 하였다. 크리스마스의 세속화, 바로 이 세상으로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의 뜻이 아닐까? 동서남북, 천지사방, 여남노소, 갑남을녀, 장삼이사, 필부필부 모두가 축하하고, 축복할 그런 성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