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연혁
해평(海平)은 경상북도 구미시(龜尾市) 해평면 일대에 있던 지역이다. 신라의 병정현(竝井縣)이었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파징현(波澄縣)이라 개칭하였다. 940년(고려 태조 23) 해평군(海平郡)으로 개편되어 후에 복주(福州: 安東)가 관할 하였고, 1018년(현종 9)에는 상주(尙州)로 이속되었다가, 1143년(인종 21)에는 선산도호부(善山都護府)로 이속되었다. 1415년(태종 5)에 해평현(海平縣)으로 강등된 후 선산군(善山郡)에 폐합되었다. 1978년에 구미읍이 시로 승격하였고 1995년에는 구미시와 선산군이 통합되어 구미시 해평면이 되었다.
성씨의 역사
길씨는 본관이 해평 단일본이며 시조는 중국 당나라에서 귀화해 온 8학사(學士)의 한 명인 길당이다. 《해평길씨세보(海平吉氏世譜)》에 의하면, 길당은 고려 문종조에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 참지정당문학(參知政堂文學)에 오르고, 해평백(海平伯)에 봉해져서 해평(海平)으로 관적(貫籍)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후에 전승기록이 없고 내용이 전하지 않기 때문에 고려 후기의 성균관생원(成均館生員)을 지낸 길시우(吉時遇)를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길씨는 길시우의 증손인 야은(冶隱) 길재(吉再)로부터 가문이 융성해졌다. 길재는 고려말 삼은(三隱)이며 조선조 사림 학맥의 근원으로서, 1386년(우왕 12) 문과에 급제한 후 성균관박사(成均館博士), 문하주서(門下注書) 등을 지냈으나 낙향하여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만 전념하였다. 그리하여 정몽주(鄭夢周)에서 비롯된 성리학을 김숙자(金叔滋)에게 전하였고, 김숙자는 아들 김종직(金宗直)에게, 김종직은 김굉필(金宏弼)에게, 김굉필은 조광조(趙光祖)에게 전하여 우리나라 성리학의 정통 맥을 이루게 되었다.
분적종 및 분파
해평길씨의 관향인 해평은 경상북도 선산군에 속해있는 지명으로 파징(波澄)이라고도 불리었는데, 1415년(태종 15)에 해평현으로 강등된 후 선산군 해평면이 되었다.
율리종파(栗里宗派), 불이회인파(不二懷仁派), 장흥파(長興派), 화천파(華川派), 춘천파(春川派), 영변파(寧邊派), 옥천파(沃川派), 여주파(驪州派), 선천파(宣川派), 수안파(遂安派), 김해파(金海派), 송천파(松川派), 학현파(鶴峴派), 금삼동파(金三同派)가 있다.
주요 세거지
전라남도 장성, 전라북도 정읍 고창
경기도 파주 교하 송촌
전라남도 순천 구례 장성, 경상남도 하동 사천
전라북도 무주, 경상남도 함양 안의, 거창
인구분포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해평길씨는 6,563가구 총 20,338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