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
신비한 우리 역사 문화여행/ 한국의 역사/ 국어사전/ 슬기로운 생활교과서 (2학년)
사회교과서(3학년)/ 절씨구 우리 악기 배워 보세/ 국악기는 내 친구/우리경제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민요기행/ 인물 한국사 이야기/ 사랑해요 삼국사/ 탑이야기
현장답사 직접관찰/ 만재이야기
- 차 례 -
1. 마음이 들뜬 첫째 날
. 일정
. 들뜬 출발
. 차안에서
. 우리가 가면서 들었던 국악 3대 랭킹
. 여주 휴게소
. 메밀국수 콧등치기 점심
. 정선 아리랑 유래 이야기
. 동호식당에서 산채비빔밥 먹기
. 통나무집(수양원)에서
2. 충주 중원에 문화재를 찾아본 둘째 날
. 일정
. 아침시간
. 충주 탄금대에서 우륵과 가야금, 신립 이야기
. 우륵
. 문화재를 알아보는 방법
. 중앙 탑공원에서
. 충주지방 농요란?
. 박물관
. 중원고구려비
. 한강의 모습
마음이 들뜬 첫째 날
5월 22일 일정
오마초등학교 정문 앞 출발(07:28)-자유로-내부순환로-중부고속국도-영동고속국도-여주휴게소(20분)-진부인터체인지-정선 아우라지강 도착(11:45)
※ 들뜬 출발
2004. 5. 22. 토요일 구름이 그림처럼 둥둥 하늘에 떠 있었다. 기행 때 낚시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정말 들떴다. 전날 밤 빨리 자야하는데 들뜨니까 잠이 오지 않고 일찍 깨어나 다섯시간 밖에 자지 못했다. 그런데도 졸리지 않았다. 내 짝은 박성준 이었다. 감기가 걸려 목에 스카프를 두른 것이 꼭 아줌마 같았다. 빨리 출발하고 싶은데 두 사람이 도착하지 않아서 우리들은 버스에서 기다리다 약속시간보다 28분 늦게 출발하게 되었다.
※ 차안에서
우리는 차안에서 만재의 발표와 여러 국악과 민요를 들으며 갔다.
◎자료집
자료집은 자료를 모아놓은 집이란 뜻이다. 만재는 요번기행 자료집을 나누어주고 설명해 주었다. 앞쪽은 우리들의 발표내용이 있었고 뒤쪽에는 교과서 자료가 있었다.
◎국악이야기
♩정악
양반이나 왕이 즐긴 국악이다. 궁중은 아악이라고 불렀고 양반은 풍류라고 불렀다. 이 둘을 통틀어 정악이라고 한다.
♩민속악
양반이 아닌 일반백성들이 즐겨 부르던 국악이다.
♩성악
목소리를 이용하는 노래이다. 판소리도 성악이라고 볼 수 있다.
♩기악
악기로 소리를 내는 악기연주이다. 만재가 들려준 국악은 영산회상, 수재청 등등이 있다.
♩산조
백성이 연주하는 것 독주이며 흐트러진 가락이다.
♩시나위
즉흥음악이다. 풀이를 하자면 즉석으로 지어내 연주한다는 뜻이다. 바르게 발음하면 신안위인데 그 뜻은 신을 편하게 해주는 음악이란 뜻이다.
◎민요이야기
♪농요: 모심을 때 농민들이 부르는 민요이다.
♪어요: 고기잡이 할 때 어부들이 부르는 민요이다.
♪의식요: 어떤 특별한 의식 할 때 부르는 민요이다.
♪동요: 어린이들이 즐거울 때 부르는 민요이다.
♬정선아리랑 노래 따라 하기 ♬
우리들은 정선아리랑 창극을 보다 쉽게 보기 위해 정선아리랑 노래를 따라 불러 보았다. 앞부분은 음이 너무 길어서 따라부르기가 어려웠는데 후렴부분에서는 음 길이가 길지 않아서
따라 부르기가 쉬웠다.
◎우리가 가면서 들었던 국악 3대 랭킹
1등: ♬고구려의 혼♬(슬기둥)
아주 웅장하고 엄숙한 분위기이면서도 지루하지 않아 멋있었다. 북소리가 내 허벅지에 손바닥으로 박자를 치게 만들었다.
2등: ♬아리랑♬(슬기둥)
처음에는 어색한 분위기였는데 중간 부분에서 여러 악기들이 아리랑을 함께 연주할 때는 사람들이 인사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3등: ♬하늘연못♬(지리산 흙피리 소년)
드럼과 흙피리가 어우러져 연주하는 음악이다.
소리가 아주 맑았고 구슬펐다.
흙피리 소년 ----->
※ 여주 휴게소
우리는 여주 휴게소에서 쉬었다. 여주 휴게소에서 소시지 바 하나를 사 먹었다. 정말 맛있었다. 안상준이 뒤에서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소시지가 먹고 싶었나보다. 안상준이
"헤헤해, 한 입만 주시지 그래?"
하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자 여기, 한입 먹어라."
하고 마지막 덩어리를 주었다. 안상준은
"음흠.... 그래 이 맛이야, 헤헤해 이 은혜를 갚아주지 다음에 말이야, 키키키."
하고는 버스에 올라탔다. 우리는 정선을 향하여 출발을 하였다.
※ 메밀국수 콧등치기 점심
한강 상류 강가 모습을 둘러보고 우리들은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콧등치기가 메뉴였다. 뭔가 맵거나 신맛이날 줄 알았다. 알고 보니 메밀국수였다. 몇몇 사람들은 맛이 없다 했지만 나는 면을 워낙 좋아해서 싹싹 긁어먹었다. 주인장 할머니께서 콧등치기의 유래를 알려주셨다. 우리가 면을 빨아먹을 때 국수가락이 콧등을 친다고 하여 콧등치기이다.
※'정선 아리랑 유래' 이야기
두가지 유래가 있다.
첫째, 우리나라 고려 선비들이 이성계로부터 빼앗긴 고려와 가족을 생각하며 슬픔과 애환을 담아 부르던 것이 민요가 되었다.
둘째, 정선 아우라지강 양쪽에 서로 사랑하던 두 사람이 살았다. 어느 날, 남자는 뗏목을 타고 한양으로 떠나게 된다. 그런데 돌아오지 않자 여자는 남자가 죽은 줄 알고 아우라지강에 빠져 죽었다. 아우라지 뱃사공이 이 이야기를 민요로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들은 여송정(여량리+소나무+정자)에서 만재와 이야기를 나눈뒤 여송정 천정에 있는 그림을 살펴보았다. 둘째 유래 그림이 여덟 장면으로 그려져 있었다.
※자유시간
엄마께서
"저기 동상에 한번 갔다와라."
하셨다. 나는 징검다리를 건너갔다. 어떤 징검다리 사이에는 나무토막이 걸려 있었다. 물기가 있는 징검다리에서는 아찔아찔 하였다. 하고싶었던 낚시를 하는데 엄마가 다른 사람들도 모두 하고싶어하니까 낚시를 접으라고 했다. 하고 싶은 낚시를 못하게 되어 내 마음은 토라졌다. 그래서 바위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 호성이 형과 물싸움을 하며 신나게 놀았다.
※아! 정선,정선아리랑!' 보기
나무하러 다닐 때, 밭에서 김을 맬 때나 길쌈 맬 때 엮어나가며 부르는 매김 소리와 받음소리로 엮어 불리는 아라리로서 강원도 사람이면 저절로 콧노래로 불리던 무척 오래된 민요이다. 창극 '아! 정선, 정선아리랑!'은 1막 2막 3막으로 되어있다. 1막은 할머니에게(정선아리랑)을 배우는 것에 싫증을 느끼고 거칠현동 칠현의 혼령들은 정선이를 역사의 현장으로 인도하여 정선아리랑의 소리를 들려준다. 2막은 정선이는 일제침략시절, 한국전쟁 당시의 어려운 시절을 겪으며 할머니,할아버지들이 어둡고 암울했던 시절을 정선아리랑으로 노해한 것을 알게된다. 3막은 정선아리랑의 깊은 역사에 감명을 받은 정선이의 정선아리랑에 맞춰 정선의 봄은 돌아오고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지게, 여물통,장고,북,물박,소반장단을 치며 정선아리랑을 아름답게 부르며 막이 내린다. 악기연주였던 3막이 제일 재미있었다. 만재는 2막이 지루할 거라고 했는데 2막도 지루하지 않았다. 3막에서는 나도 올라가 함께 꽹과리를 치고 싶었다. 3막을 보고 있으니 이 애니메이션 만화가 생각났다. 여기서도 모든 것은 악기가 될 수 있고 모든 소리는 리듬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소는: http://zingyzingo.com/movie.html 이다.
※정선 오일장에서 '정선 특산물' 살펴보기
시장은 사람이 많이 모여서 물건을 사고 팔고 하는 곳이다. 시장에서 둘러본 것은 칡뿌리, 산나물, 왕감자, 더덕, 나무로 만든 주방 용품 등이 있었고 먹거리로는 도토리묵, 매밀 전병, 만두, 옥수수빵등이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친절했다. 찻잔을 사는데 1,000원이 부족했다. 그런데 주인이 1,000원을 깎아 주셨다. 시장은 즉석에서 흥정이 잘 된다는 것을 경험하여 보았다. 정선 오일장은 산골이라서 산에서 나는 것들이 많았다.
※동호식당에서 산채비빔밥 먹기
산채비빔밥에는 우리들이 정선오일장에서 본 산나물이 많이 들어있었다. 그런데 양이 많아서 조금 남겼다.
※통나무집(수양원)에서
◎하루 일정 정리하기
방을 정한후 5학년 방에서 하루 일정을 정리했다. 사회과부도책을 펼쳐 우리가 이용한 도로를 표시했다. 그리고 정선에 땅 모습과 행정구역을 알아보았다. 그뒤 경기도와 강원도 경계선을 표시하고 정선도 표시했다. 우리들은 발표를 하였는데 연극과 노래로 발표했다. 그런데 김인영 누나의 가야금 발표가 가장 인상깊었었다. 강원도 특산물 감자떡을 만들어 먹었는데 우리들은 연극을 준비하느라 못 먹었는데 맛이 없었다고 했다.
◎콜콜 하는 시간
정리를 한뒤 잠을 잤다. 불을 끄니 아무것도 안보였다. 4학년 방이 너무 좁아서 나는 5학년 방에서 잤다. 한참 잠을 자고 있는데 누군가가 내 허벅지를 밟았다. 순간 나는
"끄이아아아옷!"
하였다. 규목이가 화장실에 가다 허벅지를 밟은 것이다.
"미안"
시계불을 켜보니 아주 밝았다. 규목이는 시계불을 따라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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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중원에 문화재를 찾아본 둘째날
5월 23일 일정
아침산책(06시30분)-용여울낚시-동트는 농가에서 아침 된장찌개-한서휴게소-탄금대-옛날 그집에서 점심식사<고추장주물럭>-충주박물관,중앙탑, 수석 박물관-중원고구려비-집으로출발-이천휴게소-동서울 톨게이트 진입-올림픽대로-자유로-성저공원육교 앞 도착(18:09)
※아침시간
일어난 직후 아침 4시쯤... 손장완이 자고 있는 나를 밀었다. 방바닥은 엄청 뜨거웠다.
"앗 뜨거!"
"키키키 푸후후후."
나의 장난기가 발동하여 손장완과 한참 장난을 하였다. 자는 사람들을 둘러보니 안상준과 승우형은 배를 노출하고 자고 있었고 장경한은 배를 두들기며 자고 있었다. 그리고 지원이형은 쇼파에 누어서 팔을 휘젓고 있었다.
먼저 깨어난 몇몇 사람들과 함께 산책을 나갔다. 구불구불한 차 길을 따라 내려가니 다리가 나왔다. 다리 밑에는 강물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강가를 따라 가니 물살이 빠른 여울이 나왔다. 만재는 그곳을 용여울 이라고 불렀다. 조금 놀다가 숙소로 돌아왔는데 산책 못한 사람들을 위해 다시 용여울로 산책을 나갔다. 이번에는 용협, 성진과 함께 물이 머물러 있는 곳에서 낚시를 했다. 옆에 아저씨는 잘 잡는데 우리들은 계속 낚시바늘이 걸리고 떡밥만 먹고 물고기는 잡히지 않았다. 한 마리도 못 잡고 아쉽게 낚싯대를 접어야 했다. 언덕을 올라오니 송원서가 풀피리를 불러보라고 했다. 엄마께 혼나서 화나있는데 풀피리를 불러보라고 해서 싫다고 했다. 그랬다가 엄마께 더혼 났다.
내 얼굴-->
※충주 탄금대에서 우륵과 가야금, 신립 이야기
탄금대가 있는 산 이름은 대문 산이다. 이 곳은 산이 뾰족하지 않고 원만하다하여 대자를 붙여 탄금대라고 한다. 이 곳에서 우륵이 흐르는 한강 물을 바라보며 가야금을 뜯었다고 한다. 우리들은 버스에서 내려 탄금대로 출발하였다. 가는 길에 우리는 감자꽃 노래 비를 보았다. 노래 비를 보니 스피커 같았다. 감자꽃 노래 비는 꽃이 중간에 있고 글씨가 위쪽에 있다. 감자 꽃
시는 권태웅 아저씨가 지었는데 내용이 이렇게 된다.
자주꽃 핀 건 자주감자
파보나 마나 자주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보나마나 하얀 감자
파보나 마나 문장이 왜 위와 아래가 다른가? 난 이 시를 읽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많이 본 감자 색은 하얀 감자이다. 그래서 자주색 감자는 띄어써서 귀하고 신기한 듯 표현하고 하얀 꽃 감자는 외국 것은 몰라도 된다는 뜻으로 연결해서 쓴 것 같다. 우리는 탄금대에서 장호성 형이 알려주는 열두 대 이야기를 들었다. 열두 대는 바위인데 그 바위에 유래는 신립 장군이 임진왜란 때 장군인데 기마전을 펼치다 싸움에서 지자 신립과 그의 부하들은 배수진을 펼쳐 적을 막다 한강 물에 빠져 죽었다. 탄금대에서는 활을 사용했는데 활을 너무 많이 쏘아 뜨거운 활 대를 한강 물에 열 두 번 정도 식혔다고 해서 그 곳을 열두 대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했다.
◎가야금
가실 왕이 6세기에 당나라의 악기를 보고 만들었다. 이것이 널리 퍼져 그 곡수가 185곡에 이르렀다고 하며,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궁궐과 민간에서도 사랑을 받았다.
좁고 긴 모양의 오동나무로 만든 공명판 위에 명주실로 꼰 12개의 줄을 걸고, 줄마다 그 줄을 받치면서 쉽게 이동할 수 있는 작은 나무기둥(안족, 기러기발)을 세워놓았다.
◎우륵
대가야에서 태어난 사람이다. 가얏고를 잘 다루는 우리나라 3대 악성이다. 가야금을 만든 대가야 가실 왕의 명으로 가얏고로 연주할 수 있는 12곡을 작곡하고 연주하였다. 우리는 내려오다가 신립 장군 순절비를 보았다.
여기서 퀴이~~~~즈!
<이것은 문화재일까 아닐까!!!!!!??????>
"짱구야 도와줘!"
"히히히, 그러지 뭐"
◎문화재를 알아보는 방법
문화재의 넓은 뜻은 국가에서 보호하는 지정 문화재와 보호해야할 가치가있는 비지정 문화재가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러므로 신립 장군 순절비는
만든 지 얼마 안되었기 때문에 비지정 문화재로 되어있었다.
"이렇게 한단 말씀!!"
"고마워"
※중앙 탑공원에서
탑은 부처님이 돌아가신 후 그 몸을 화장하고 나온 사리나 유품 등을 보관하는 무덤이다. 돌, 나무, 벽돌 등으로 쌓아 높게 올린 건축물을 말한다.
전설에는 탑평리 칠층석탑이 785년경 신라 문성 왕때 세워진 것이라고 한다. 직접 둘러보니 7층 석탑이고 탑 상층부에 인도 탑처럼 둥근 모양이 있었다. 이렇듯 문화란 한강 물이 상류에서 아래로 내려오며 모양이 변하듯이 전해 내려오면서 조금씩 변한다고 했다. 인도 탑은 둥근 모양인데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해지면서 탑 모양도 우리나라 문화에 맞게 기와집 모양으로 지붕을 만들고 탑 상층부에 본래 탑의 의미를 알리는 둥근 모양은 그대로 남아있다고 했다.
◎충주지방 농요란?
민중들 속에서 생겨나 그들의 생활 감정을 소박하게 나타내고 간단하면서 음이 독특한 가락으로 된 노래이다. 이 곳 충주에서는 모내기를 할 때 농요를 부르는데 아라송을 부른다고 한다. 우리가 만재밭에 돌아와 모심기를 했는데 들어보았던 농요와 아리랑을 함께 불러보았다. 푹푹 빠지는 논 속에서
모를 심었는데도 힘들지 않고 즐거웠다. 줄을 뜰 때도 어~이 하면서 박자를
맞추니 협동이 잘 되는 것 같았다.
◎박물관
박물관 안에는 모내기하는 모형과 농기구도 있었는데 남부지방 것과 비슷했다. 돌과 관련되어 있는 것도 많이 있었다. 고분도 모두 돌이었다. 충주는 돌의 고장 같기도 하다.
※중원고구려비
중원고구려비란? 중원에 있는 고구려비란 뜻이고 중원은 지명 이름이다.
1981년 3월 18일 국보 제205호로 지정되었다. 높이 203cm,폭 55cm이며 1979년 4월 5일 조사되어 알려졌다. 파손이 심해 정확한 글자 수는 알 수 없으나 대략 400여 자로 추정하고 있다. 이 비는 고구려 광개토대왕비 발견 이후로 가장 큰 고구려비 발견이라는 점과 당시의 고구려와 신라의 관계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비석이라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 우리나라 지도 모형 판을 보며 왜 충주가 가운데인지를 확인했다. 고구려비 앞에 중원이란 글자는 그시대에 행정구역이다. 그래서 중원고구려비인 것 아닐까?
한강의 모습
상류는 강폭이 좁고 물이 1급수이며 큰돌이 많고 산이 바로 옆에 있었다. 논은 보이지 않고 밭은 경사지고 농작물은 옥수수가 많이 심어져 있었다.
중류는 2급, 3급수이며 강폭이 넓어서 물의 흐름이 느리고 모래가 보이며 작은 나무들이 주변에 있었다. 그리고 강 따라 논들이 있었다. 집들이 모여있었다.
하류는 쓰레기가 더 많고 물이 회색 빛나는 3급수 4급수이다. 강폭이 더 넓어지고 주변에는 큰 도시들과 빌딩 자동차 도로가 있었다. 다리도 많았고 공원도 많았다. 모래는 아주 고운 모래들 이였다.
이번 기행은 멋진 자연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아리랑에 재미를 붙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