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여행-1(박물관/아기예수피난교회/모세기념교회)
지난달 4월초에 고교 동기생들과 이집트, 그리스 및 터키를 여행했습니다. 여행시에 찍은 사진들의 일부를 정리 하여 소개 드릴까합니다. 혹시 이미 돌아 보신 회원분들이 계시더라도 과거의 기억을 정리하는 의미에서 한번 보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이집트 개요
정식명칭은 이집트아랍공화국(Arab Republic of Egypt). 면적 약100만㎢(한국의 약4.5배). 인구 7,470만명 (2005년). 수도는 카이로(수도권 인구는 약 1,600만명). 종교는 이슬람(수니파)이 약 90%、기독교계 콥트교 가 약 7%. 국경은 서쪽은 리비아, 남쪽은 수단, 동쪽은 시나이반도에서 이스라엘과 접하고 있다. 국토의 90% 가 사막이고 농경지는 아래 지도에서 보다싶이 나일강 주변에만 분포하며 전국토의 10분의1에 불과하다고 한다.
주민의 99%는 나일강 골짜기와 삼각주지역에 살고 있다. 정치체제는 공화제로서 1981년이후로 현 M. H. 무라바크 대통령이 철권 통치하고 있다. 한국과는 1962년에 국교가 수립되었고, 우리 교민수는 2003년 현재 약 1,700여명정도가 있다고한다.
1. 이집트와 나일강
나일강은 청나일강(에티오피아 고원지대에서 시작됨)이 나일강의 본류가 되는 백나일강과 수단에서 만나 이집 트를 관통하여,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6,690km의 세계 최장의 강으로 원래 매년 여름, 상류에 내린 엄청난 비 때문에 정기적으로 범람하였다. 이 홍수 때 상류에서 떠내려온 기름진 흙 덕택에 이집트인들은 항상 풍년을 이룰 수 있었다. 이와같이 옛날에는 나일강의 범람을 이용하여 농사를 지었으나, 1902년에 아스완댐, 1971년에 아스완 하이댐의 완공으로 하류에서의 범람은 사라지고, 인공적 용수로가 정비되어 범람시 유입되는 천연 퇴비을 이용한 농사는 이제 더이상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대신에 인공 비료를 이용하여 농사를 지어야만하게 되었다. 또한 증발이 심한 사막지대를 덮게없는 수로로 농경지에 배수를하고, 더욱이 증발이 심한 밭지대에 관개하는 것은 토양속의 염분 농도를 증가시키는 문제를 만들고있다.
2. 카이로 공항의 경찰
우리 여행단은 아직까지 인천공항에서 카이로행 직항 노선이 없어서, 터키 이스탄불을 거처서 카이로로 들어갔 다. 카이로 공항에 도착한후, 공항을 나온 여행단 일행은 현지 가이드의 안내로 대기하고 있는 관광버스로 가던 중 어두운 공항 외부 사진을 찍을려고 하니 공항 경찰이 찍지 말라고 하였다. 그리고 버스도 공항에서 자유로이 출발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공항 경찰의 허락이 떨어저야 출발할 수 있었다. 좌우간 이곳 저곳에 경찰이 진을 치고 있었다. 이집트는 1992년부터 이슬람원리주의자에 의한 반정부테러가 빈발하여 1981년의 사다트 대통령 암살 직후에 선포된 계엄령이 현재까지 연장되고 있어며, 100만의 경찰(이에대해서 군대는 40여만)에의해 철저 하게 통치되고 있다고한다. 가히 경찰 국가라고 할만하다.
3. 카이로의 호텔
호텔에서도 출입구에 X-Ray 검사기가 설치되어서 출입객들을 일일이 검사하고 있었으며, 무장 경찰이 지키고 있었다.
4. 이집트 박물관(Egyptian Museum)
이집트 박물관의 개관은 1902년이다. 이집트 박물관에 소장하고 있는 유적 유물품들의 수량은 12만점을 넘는다. 이집트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유물들을 보면 古왕국(BC2700-2200), 中왕국(BC2200-1800), 新왕국(BC1800-1000)시대에 이르는 왕들의 무덤, 신전등에서 발굴해놓은 각종 미이라, 석관, 석상, 석실등의 유물들이 수많이 전시되어있다. 특히 박물관 2층에는 투탄카멘왕의 무덤에서 발굴한 것으로 가득차 있었다. 3400년 전 9세의 어린 나이에 등극하여 18세로 요절한 투탄카멘 왕의 무덤은 1922년 12월 17일에 영국인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Howard Carter)와 후원자 카나본 경에의해 후에 소개할 "왕가의 계곡"에서 오랜기간 동안의 발굴과 조사 끝에 발견되었다.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뒤로 가장 큰 보물 발견이라 일컬어지는 투탄카멘 왕의 무덤 발굴은, 찾는데만 6년, 보물을 조사하고 옮기는데 또다시 6년이란 세월이 걸린 대역사 였으며, 수천 년간 도굴되지 않은 채 고스란히 발굴된 유일한 왕의 무덤이었다. 투탄카멘 왕의 무덤에서 발굴된 물품 수는 3500여점인데 이 중 절반가량인 1700여점이 현재 전시되어 있다.
그러나 놀라운 사건에는 그에 걸맞는 어둠이 항상 따르게 마련이다. 소위 "파라오의 저주"이다. 이는 1923년 카나본 경이 모기에 물려 죽으면서 2~3년 내에 투탄카멘의 발굴에 관여되었던 20여명의 목숨을 잃었던 것 이다. 왕의 무덤 입구의 관 위에는 "왕을 방해하는 자에게 죽음의 날개가 펼쳐지리라."라는 구절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투탄카멘의 황금마스크와 관은 지금 카이로의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옛날에는 돈만내면 일부 전시품을 제외하고는 후랏쉬를 사용하지 않으면 유물 촬영이 가능 했다고하지만, 지금 은 엄격하게 금지를하고있다. 박물관 정문에서 1차로 X-Ray검사를하고, 박물관 건물 내부에 들어가기전에 다시 2차로 X-Ray검사를 한다. 정문에서 관람객들이 휴대한 카메라, 캠코더 등은 보관했다가 관람이 끝나고 나갈때 돌려준다. 따라서 박물관 내부에서의 카메라 촬영 금지로 유물 촬영은 불가능하였다. 아래에서 관련 자료에서 스크랩한 대표적인 유물 사진 일부를 소개한다.
5. 투탄 카멘왕의 미이라 얼굴을 덮고 있었는 황금 마스크.
6 . 투탄 카멘왕의 얼굴 모형
황금 마스크는 얼굴은 순금이며, 눈은 아리고나이트석과 흑요석으로, 눈썹은 청색유리로 만들어져 있었다. 처음 발굴시 목과 가슴 위에는 파라오의 어린 왕비가 마지막 바친 선물인 듯, 백합과 국화와 연꽃의 꽃다발 이 놓여 있어, 무덤속에서 3300년을 보낸 그 꽃들은 발견 당시에도 아직 희미한 색조를 띄고 있었다고 한다.
7. 등받이에 투탄카멘 왕과 왕비가 새겨진 황금 의자
8. 난쟁이 가족상
9. 투탄카멘의 관
10. 라호텝 왕자와 노프렛 공주의 좌상
▶ 아기 예수 피난 교회(콥틱교회)
카이로는 현재 아랍권에서 이슬람 사원(모스크)이 가장 많다.사원의 뾰족탑들이 숲을 이루듯 온통 도시를 뒤덥고 있다. 그런데 이런 환경 속에서도 기독교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교회가 있다. 바로 콥틱교회(Coptic Church)다. 콥틱이라는 말은 이집트 원주민 혹은 그들이 사용하는 말을 뜻한다. 따라서 콥틱교회란 이집트 원주민 교회로서 이들은 그리스도의 신성(神性)만을 주장하는 단성(單性)론자(Monophysite)로 니케아 종교회의(AD 325)에서 이단으로 단죄되었다.
오늘날 이집트에는 인구의 7%(어떤 자료에는 10%) 정도가 되는 콥틱교회 교인들이 있다. 그들은 손목 안쪽에 작은 십자가 문신을 새겨 서로를 알아본다고 한다.
콥틱교회는 세계 교회 중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교회들 중의 하나다. 전도자 마가가 세운 교회라고한다. 이 콥 틱교회 중에 '아부사르가(Abu Sarga)의 교회'(아기예수피난 교회)가 있다. 4세기초 순교한 성 세르기우스의 이름을따서 일명 '성 세르기우스 교회(St. Sargius church)'라고도 하며, 요셉과 마리아가 헤로데왕의 아기들 학 살을 피해서 예수님을 품에 안고 이집트로 피신했을 때 잠시 머문 석굴 위에 기념 교회를 세운 것 이라한다.
11. 콥틱 신도의 손목 십자가 문신(외부 자료)
12. 아기 예수 피난 교회 입구
13. 아기 예수 피난교회 내부(교회 내부에서는 촬영이 금지된 관계로 외부 자료 인용)
아기 예수 피난 교회는 본당 옆으로 2개의 복도와 3개의 지성소가 있고 예수님의 12 제자를 상징하는 12기둥 중 에서 가롯 유다를 상징하는 기둥은 붉은 색 대리석으로 되어 있다. 요셉과 마리아가 피난 생활을 하던 지하 석굴 로 통하는 계단이 있다. 지금은 지하에 물이 차서 출입이 금지되어있다.
14. 아기 예수 피난 교회 골목길(右측의 출구가 보이는 건물이 아기 예수 피난 교회임)
▶ 모세 기념 교회
기원전 600년 경에 파라오왕때 이스라엘인 인종 말살책으로 영아 학살을 피해 갈대 상자에 담아 나일강에 버려진 아기 모세를 파라오왕의 딸이 건졌다고 하는 장소에 세운 기념교회이다. 처음에는 알무알라카 교회의 부속건물로서 AD 4세기에 지어져 AD 9세기까지는 미카엘 교회 또는 가브리엘 천사 교회로 불렸었다. 그후 이집트의 이슬람 왕조인 이븐 툴룬왕때 '이븐 툴룬 모스크' 건축 비용을 마련하기 위하여 기독교 교도들에게 고액의 세금을 부과하자 몇 개의 교회를 매각하였는데, 그 중의 하나로 유대인들이 매입하여 시나고그(유대교 회당)로 개조하여 사용하였다.
15. 모세 기념 교회 입구
16. 모세 기념교회 내부(역시 내부에서는 카메라 촬영이 금지된 관계로 외부 자료 인용)
17. 교회 근처 선물 가게
|
첫댓글 탈출기에 나오는 이집트 ...지금 성서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라 더욱 더 흥미를 느끼게 하는 사진과 글입니다. 공짜로 읽고 보기에는 쬐끔 죄송스럽네요^^
고대하든 이집트 여행기가 사진과 함께 올라 넘 잘봤습니다. 여프란치스코 형제님 감사드리면서요..상세한 설명과 더불어 올려주신 글과 사진들을 이곳에 앉아 볼수 있다는것 재삼 감사드려야 되겠습니다.. 물론 제2탄도 기대하면서요..^^*^^....부지런 하신 프란치스코 형제님께 부담드려 죄송도 하고요..!!
좋은사진 설명과 함께 감상하니 넘좋습니다 여프란치스코 형제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