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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성옛터/이애리수♬ ♬ 타향살이와 더불어 한국 민족의 민족가요라고 할 수 있는 황성옛터를 맨 처음 불렀던 이애리수가 근래 경기도 어느 요양원에서 살고 있음이 밝혀져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생사불명으로만 알려진 이애리수가 99세의 나이로 비교적 건강하게 살고 있음이 알려지게 되었는데 그 화려한 과거를 그렇게 깜쪽같이 묻어버리고 현재까지 80년 동안을 남몰래 살고 있었음에는 그만한 사연이 있었겠지만 어떻든 놀랍고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개성에 있던 호스돈 여학교를 졸업하고 1928년에 단성사에서 막간을 이용해 부른 황성옛터가 사람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아 일본 경찰의 억압에도 불구하고 1932년에는 레코드로 취입되어 나올 정도로 엄청난 대중적 인기를 끌었던 것입니다. 본명이 이음전 이었는데 미국 계통의 여학교를 나온 연유로 미국 여자 이름인 Alice를 한국어화해서 애리수가 되었다고합니다. 배씨 집 문중에 결혼한 후 2남 7녀의 어머니가 되어 남모른 어려움을 많이 겪으면서 이제까지 사신 것 같은데 얼마 남지않은 일생임이 분명합니다만 늦게나마 건강하시고 복된 일생이 되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의 노래를 싣습니다.
황성옛터 /이애리수
황성옛터 /이애리수
황성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아 외로운 저 나그네 홀로 잠못이뤄
아 가엽다 이내 몸은 그 무엇 찾으려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정처가 없이도
느린 3박자의 리듬에 단음계로 작곡된 한국 최초의 가요곡. <황성의 적(跡)>이었다.영천출신의 시인 왕평(王平)이 노랫말을 짓고, 개성출신의 작곡가 전수린(全壽麟)이 곡을 붙이고, 배우가수 이애리수(李愛利秀)가 애잔하게 부른 황성옛터’는 지금도 사랑받는‘민족가요’이다. 궁터를 보고 역사의 무상함을 느껴 즉흥적으로 작곡하 였다. 전수린의 첫 작품으로 신파극단 취성좌(聚聖座) 의 서울 단성사(團成社) 공연 때 여배우 이애리수가 막간무대에 등장하여 이 노래를 불러 크게 유행하였다. 열광했고, 노래는 순식간에 장안에 퍼져나갔다. 日警은 “중지하라!”악을 썼지만, 32년도‘황성옛터’는 레코드에 담겨 전국적으로 불티나게 팔렸다.
황성옛터-나훈아
황성옛터 - 김정호
조선민중 선동한다. "일본군 금지령" 황성옛터하면 이 노래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당시로서는 너무나 유명한 노래이며 또한 일본 사람들이 이 노래에 대해서 요시찰 명령을 내려 우리국민들을 압박을 하며 이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완강하게 했던 노래다. 그래서 이 노래는 더욱 유명해졌고, 또 이 노래를 모르는 국민들이 없었다. 그리고 이 노래를 부르다가 일본순사에게 들키면은 주재소에 끌려가서 매를 맞고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다시는 이 노 래를 부르지 않겠노라고 시말서를 쓰고 풀려나오는 웃지 못할 일들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자행되고 있었다. 황성옛터는 노래 자체가 일제에 저항하는 정치적인 바탕과 우리 국민들이 그들에게 압박을 받는 현실을 그린 노래다. 그래서 일본 순사들은 이 노래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이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제지를 하며 이 노래를 부르다가 그들에게 들키면 혼쭐이 나며 또한 시말서를 써야 하는 노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