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입니까. 전기안전관리자입니까, 아니면 건물에 고용된 잡부입니까. 내 자식에게는 제 직업을 무엇이라고 설명해야합니까.” 따뜻한 햇빛 아래 만난 한 전기안전관리자의 말은 기자를 침묵하게 만들었다. 탁 트인 전망을 바라보지 못한 채 지하 깊숙한 곳에서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동고동락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전기안전관리자들이다. 우리는 매순간 전기를 소비하며 살아가지만, 이를 안전하게 관리해주는 사람들에게는 무심하다. 가족들과 웃으면서 TV를 보고 있는 이 순간에도 건물 지하에는 전기안전관리자들이 전기설비를 살피고 기록하며 정비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전기안전관리자로 보고 있을까. |
50대 중반의 소병인씨는 서울 중계동의 신동아 아파트의 전기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30년 넘게 전기안전관리자로 일했지만 그는“자랑스럽지 않다”고 고백했다. 고정적인 일자리는 사치라고 말하는 그는 전기안전관리 용역업체 소속이기 때문에 1~2년 단위로 재계약을 해야 한다. 정작 계약을 해도 전기안전과 무관한 일을 떠맡는 건 예삿일. 적지 않은 전기안전관 리자들의 현실이 그와 다르지 않다. 어두운 전기실로 내려가는 철문 사이로 카메라에 담긴 소병인씨의 눈빛이 아련하다. | | ◆ 전기안전관리자와 동행취재
“어두컴컴한 지하 전기실이 제 사무실이죠”
아파트 전기관리 담당하고 있지만 실상은 경비원이나 다름 없어 안정적 일자리 가장 큰 고민거리,‘시한부 근무'에 안전은 후순위
아파트를 지나다보면 경비원들과 비슷한 옷을 입고 나무를 심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 중 전기안전관리자들이 있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언제부터인가 전기안전관리자들을 아파트 수위와 비슷한 시각으로 바라본다. 그들을 고용한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계약을 무기로 그들을 업무 외 다른 일에 투입시킨다. 기자는 여러 전기안전관리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펴보려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자신들의 삶이 너무 초라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한 전기안전관리자가 용기를 내서 연락을 해왔다. 지금부터 그들의 삶 일부분을 담아본다.
5월 8일 중계동에 위치한 신동아 아파트에서 전기실장으로 있는 소병인(55)씨를 만났다. 서글서글한 인상의 그는 오래된 작업용 점퍼를 입고 기자를 반겼다. 그를 따라 전기실에 들어가기 위해 철문을 열자 어두운 공간이 나타났다. 계단을 따라 3층 정도를 내려갔을까. 3미터 높이의 거대한 특고압 수변전설비가 줄지어 서있고 그 사이로 관리자들의 업무 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옆으로 기계가 연신 돌아가며 소리를 내 조금 지나자 귀가 먹먹해졌다. “너무 시끄럽죠? 그런데 시원하고 편하게 앉아서 이야기할 공간이 딱히 없네요. 이 곳이 저희들이 근무하는 일터입니다. 사실 아파트 전체가 저희 일터라고 보시는게 맞아요. 보통 전기안전관리를 이야기하면 지하에 있는 설비 관리를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건 극히 일부분에 불과해요. 승강기에서부터 각 세대의 방송통신 기기, CCTV, 소방설비 등 전기가 들어가 있는 모든 장소가 저희 관리대상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소씨에게 전기안전관리 업무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말하자, 그는 부서별 주요 업무가 적힌 종이 한 장을 건넸다. 거기에는 열병합발전설비 운용 및 감시에서부터 주차장 전기시설물 점검, 방송장비 점검, 카메라 상태 점검, 소방시설물 점검 등 다양한 업무가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또 기자도 잘 알지 못했던 세대별 TV시청 관련 민원처리, 인터폰 유지관리 등 적어도 30여 가지의 일이 세세히 나와 있었다. “생각보다 많죠? 사실 여기에 나온 업무보다 더 많아요. 한두 군데에서 민원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끝도 없어요. 이러다보니 정시에 퇴근하는 경우가 많지 않아요. 1000세대 를 기준으로 전기실에 소속된 인원이 4명밖에 안 되다보니 어쩔 수 없습니다. 원래 7명에서 반 정도가 해고되고 남은게 이정도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고용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저희 전기안전관리자들 처우의 가장 큰 이슈는 안정적인 고용입니다. 제가 전기계에 몸 담은지 3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계약직 신분이에요. 입주자 대표가 바뀌고 위탁관리업체가 새로 선정될 때마다 해고의 위험이 뒤따르죠. 제가 이곳에서 19년째 일하고 있지만 저조차도 아직 매년 계약을 갱신합니다. 이른바 ‘시한부 근무’라고 보시면 됩니다. 사실 이러면 저희 관리자들이 일할 의욕이 생기겠습니까? 당장 올해 말에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소씨는 지금 몸 담고 있는 아파트는 점잖은 ‘양반’ 축에 속한다고 말했다. 고용을 빌미로 시키는 일을 하지 않으면 바로 내치기 때문에 전기업무 외에 다른 일을 시켜도 하는 수 없이 지시에 따라야 한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나무심기에서부터 주차장 청소, 제초 작업, 행정 업무까지 시도 때도 없이 불러 일을 하다보면 정작 자신이 해야 할 업무는 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가 한때 머물렀던 서울시 교육위원회 목동도서관에서는 험한 꼴도 여러 번 당했다. “지금 이 아파트는 저희들의 건의를 반 정도는 들어줍니다. 처음 여기에 왔던 여름, 발전기를 식히기 위해서 선풍기를 썼어요. 이제는 건의를 받아들여서 에어컨을 설치했지만 그 당시에는 생각도 못했죠. 여기서 먹고 자야 했던 저희들에게 전기실은 지옥과 다름 없었습니다. 목동 도서관에서는 말 그대로 ‘잡부’였습니다. 쓰레기장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저희들에게 삽질을 시키고 이를 거부하자 ‘이 새끼들 내 방으로 다 올라와’라는 등 갖은 모욕을 들어야했죠.” 매년 계약을 다시 하다 보니 경력을 인정받지 못해 제대로 된 임금을 받지 못하는 문제도 심각했다. 기자가 급여 수준에 대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자 소씨는 직접 급여 명세서를 가지고 왔다. 4월 급여 명세서에 찍힌 금액은 299만원. 하지만 그는 이 금액이 이 일대 모든 전기안전관리자들의 임금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고 설명했다. 혹시나 임금을 많이 받는다고 오해할까봐 인터뷰를 망설였다는 말도 덧붙였다. “제가 처음 인터뷰에 응할 때 제 임금이 높아서 고민했어요. 사실 저희 전기안전관리자들의 임금은 보통 220만원 정도이고 200만원도 못 받는 사람들이 수두룩합니다. 제가 특급 기술사로 경력이 30년이 넘는데 299만원에 불과합니다. 여기에는 50명 이상의 관리자들을 총괄하기 위해 받는 15만원, 아파트로는 특수하게 열병합발전기를 돌리는 것 때문에 15만원을 받는 것이 합쳐진 금액입니다. 순수 봉급으로 치면 260만원이죠. 그는 전기안전관리자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을 후회한다고 털어놨다. 고되지만 물질적인 보상도 따르지 않고 고용도 불안정한 직업에 대한 회한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것은 자신의 직업에 대한 사람들의 ‘시각’이라고 설명했다. “많은 사람들이 제 직업을 말하면 이런 대답을 해요. ‘그거 전기실에서 그냥 시간마다 체크만하고 노는 거 아니냐’, ‘일이 쉬워서 다른 일도 병행하는 사람이 많다더라’ 등등이요. 오히려 전기실에서 업무를 볼 시간조차 없고, 조금이나마 돈을 더 벌려고 비번인 날 전기공사 현장에 나가는 겁니다. 저도 한 달에 한 두 번씩은 나가요. 이렇게라도 해야 용돈이라도 버는 거죠.” 그와 이야기를 마치고 함께 지상으로 올라오자 전기실의 시끄러운 소음과 답답한 공기가 한 번에 씻겨나가는 것 같았다. 땅을 밟고 일한다는 사실조차 감사해질 만큼. 그는 인사를 나눈 뒤 철문을 열고 다시 어두운 전기실로 향했다. 금세 돌아본 그의 눈과 기자의 눈이 마주쳤다. 돌아보며 마주친 그의 눈빛은 무엇을 말하고 있었을까.
◆ "극심한 고용불안에 전기안전 책임감 줄어들어” 위탁선임제도 폐지든, 개선이든 '안전이 최우선이다'
용역업체에 고용된 ‘철저한 乙’ 전기안전관리자 양산하는 위탁선임제도 지난해 연구용역 보고서 통해 개선지적 나왔지만 반영 안 된 채 1년여 지나
사례 1. S그룹은 전기안전관리 자격을 소지한 기존 직원을 안전관리자로 상당수 선임해 안전관리와 관련 없는 업무를 맡기고 있다. 안전관리의 공백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
사례 2. H아파트의 경우 자체관리위원회에서 고용한 직원을 전기안전관리 담당자로 선임했다. 하지만 실제 업무의 대부분은 관리사무소에서 관리비 징수, 주민관리, 계정정리 등 행정업무에 집중해 안전관리 업무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변전실 화재까지 발생, 주민생활에 큰 불편을 초래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사례 3. 용역업체에 안전관리를 위탁한 P아파트의 경우 주택관리사를 취득한 관리소장이 전기기사 등 각종 자격을 동시에 취득해 다수의 안전관리자를 겸임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해당 아파트의 개별적인 안전관리의 부실을 초래했다.
지난해 한국안전학회가 실시한 전기안전관리자 위탁선임 제도 연구용역 보고서에 등장하는 사례들이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면서 우리 사회에서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전기안전관리는 여전히 뒷전이다. 전기안전관리 위탁선임 제도는 2002년 전기사업법 개정으로 사업장 소속이 아닌 용역업체 소속 직원을 선임할 수 있게 되면서 각종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이채익 새누리당 의원(울산 남구 갑)은 2012년 국정감사에서 전기안전관리의 위탁으로 인한 안전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당시 울산 지역 전기안전관리자들이 제기한 민원을 이 의원이 수용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전기기술인협회(회장 유상봉)는 지난해 7월 한국안전학회에 연구용역을 의뢰해 ‘전기안전관리자 위탁선임제도 적정성 분석과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연구보고서는 산업통상자원부로 보내졌지만 10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별다른 조치는 나오지 않고 있다. 전기기술인협회 측은 이채익 의원과 함께 의원 입법 추진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제도시행 13년째…곳곳에서 안전 허점 대행 안전관리제도는 2002년 전기설비용량에 따라 위탁관리와 대행관리로 나뉘어졌다. 위탁관리 제도는 다시 ‘전기안전관리를 전문으로 하는 자’와 ‘시설물관리를 전문으로 하는 자’ 두 가지 형태로 나눠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당시 정부는 시장 개방과 경쟁 환경 조성을 통한 기술력 향상, 시장경제 활성화 등을 목적으로 전기사업법 개정을 단행했다. 전기사업법 개정 전에는 전기설비 소유자의 소속직원만 전기안전관리자로 선임이 가능했다. 즉 전기안전관리자를 사업장의 정식 직원으로 고용해 전담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 규제개혁위원회는 기업의 경제적 부담 완화를 이유로 시설물관리를 전문으로 하는 용역업체가 위탁관리를 할 수 있도록 관련법을 개정했다. 전기안전관리자의 고용안정과 전문성을 담보한 시설물 안전보다는 건물 소유자의 인건비 부담 완화에 맞춰진 법개정인 셈이다. 하지만 제도가 시행된 지 13년이 지난 지금, 무엇보다 중시돼야 하는 ‘안전’에 허점이 드러나고 있다. 가장 먼저 전기안전관리 업무가 연속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시설물유지관리업은 특성상 1~2년 단위로 관리업체가 바뀌기 때문에 시설물의 설비도면, 점검이력, 관리대장, 장비 목록 등 전기안전관리업무의 인수·인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중장기 관리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관리업체들은 계약기간에만 사고가 발생하지 않으면 된다는 인식하에 단기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데 급급하다. 노후한 전기설비를 교체하고 유지·보수하는 작업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특히 1년 단위로 계약업체를 바꾸는 경우도 빈번한 것으로 드러났다. 해마다 계약이 연장되는 경우도 있지만 계약이 연장되지 않을 경우 새로 계약한 회사에서 기존인원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고용에 대한 재계약을 한다. 하지만 이때 재계약이 되지 않는 인원도 상당수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관리 감독을 강화해 전기안전관리를 제대로 하면 된다는 지적도 있지만 이 방법 역시 한계가 있다. 전기설비를 위탁받아 관리하는 사업자 중 ‘전기안전관리를 전문으로 하는 자’ 등은 전기사업법에 따라 일정한 자격요건을 갖춰야 하지만 시설물 관리업자는 자격요건이나 등록요건에 대한 기준이 없어 전문성 미확보로 부실하게 안전관리를 할 가능성이 높다. 안전관리 전문가는 “건물소유주들이 등록기준과 절차가 까다로운 전문 전기안전관리 대행기관을 기피하고 등록기준과 절차가 없는 시설관리업을 선호하고 있다”며 “전기설비사고가 증가하는 원인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전기안전관리자 선임형태에 따라 안전사고 발생 비율이 달라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전기기술인협회가 2013년 발생한 전기화재사고 7731건을 전기안전관리자 선임 형태별로 분석한 결과 용역업체가 관리하는 사업장의 화재비율이 가장 높았다. 7731건 중 75kW 이하 일반용 전기설비 6251건과 1000kW 미만 설비에서 발생한 사고를 제외한 550건 중 320건이 시설관리 용역업체에서 발생했다. 용역업체가 관리하는 사업장 1만 2763곳 중 2.51%에 해당하는 수치다. 반면 소속직원이 관리하는 2만 2655곳의 사업장에서는 225건의 사고가 발생해 1.13%를 기록했다. 용역업체와 사업장 소속직원의 관리 여하에 따라 사고 발생비율이 2배 이상 차이가 나는 셈이다. 이는 현장에서 일하는 전기안전관리자들도 동일하게 여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안전학회가 2014년 전기안전관리자 480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10명 중 8명이 위탁관리의 특성으로 인해 전기설비가 부실하게 관리될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또 88% 가량이 ‘전기안전관리자의 잦은 변경은 전기설비 안전관리의 연속성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 낮은 위상…소속감, 책임감 갖기 어렵다 전기안전관리자의 위상 하락도 심각해지고 있다. 과거 전문직으로 인정받던 시절과 달리 현재는 저임금 계약직이 대부분이다. 근무기간도 짧아 안전관리능력을 기르기도 어렵다. 계약직 신분에 1, 2년 거쳐 가는 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책임 있는 관리의식을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무엇보다 전기안전관리자의 고용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으면서 전기안전관리가 안정적, 지속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실제로 J업체에서 일하는 모 전기안전관리자는 “봉급이 적고 계약직이다 보니 소속감, 사명감도 적다”고 털어놨다. 부천시 중동의 한 아파트에서 근무하는 A씨는 “주임으로 3년간 근무했는데 올해 업체가 바뀌기 때문에 계약이 어떻게 될지 불안한 상황”이라며 “이런 문제 때문에 책임감을 갖기 보다는 ‘대충 일하다가 그만두면 되지’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고용이 안정되지 못하다보니 아파트의 경우 입주자 대표-관리소장-전기안전관리자 사이 권력구조가 형성돼 있다. 전기안전관리자는 철저히 ‘을’의 입장일 수밖에 없다. 전기설비를 점검하거나 교체가 필요해도 건의하기가 쉽지 않다. 설사 건의를 한다고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기 일쑤다. 하지만 고장이 나거나 사고가 나면 이로 인한 책임은 고스란히 전기안전관리자에게 전가된다. 업계 관계자는 “문제를 제기하는 전기안전관리자를 교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적절한 시기에 유지보수를 하면서 사고를 예방하고 싶어도 눈치만 봐야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 위기의 위탁선임제도, 대안은 없나 위탁선임제도와 달리 전기안전관리자가 사업장에 소속될 경우 장점은 많은 편이다. 전기안전관리자의 능력을 키울 수 있고, 전기설비 관련 사고가 발생했을 때 대응능력도 향상시킬 수 있다. 또 노후 전기설비에 대한 지속적인 개선과 관리 등 책임 있는 업무 수행과 안전관리가 가능하다. 이 때문에 위탁선임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일본의 경우 전기안전관리자가 건물에 소속돼 상주하고 있거나 전문 관리업체가 대행하는 방식이다. 반면 위탁선임제도 폐지만이 해결책은 아니라는 입장도 존재한다. 전기안전관리자의 권익보호와 처우개선을 위한 제도 개선은 편향된 발상이라는 것이다. 위탁선임제도 도입을 추진했던 한국건축물유지관리협회는 안전교육 강화, 우수기자재 도입, 정기검사제도정착, 관리자와 점검자의 분리 등의 대책을 마련해 전기안전관리자의 책임감과 안전 문제를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건축물과 전기시설을 분리한 것과 같이 각각 따로 안전관리를 하는 방법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대만에서는 1000V를 기준으로 고압과 저압을 나누는데 고압은 정부가 관리하고 저압은 시설물 관리자가 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대신 3년 주기로 정부에 안전관리 내역을 보고하도록 조치하고 있다. 한국안전관리학회는 “전기안전관리제도가 전기안전관리자의 어려운 현실을 반영하고, 적절한 제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부차원의 일관성 있는 정책추진이 필요하다”며 “이와 함께 전기안전관리업계의 전기기술의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와 노력도 병행돼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또 한전 관계자는 “순간정전의 30% 가량이 고객설비에서 발생하고, 그 원인은 대부분 점검 소홀과 부주의”라며 “불특정 다수인이 선의의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은 만큼 안전을 지키는 데 한 치도 양보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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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재희 서울과기대 안전공학과 교수
“위탁선임제도 폐지가 정답이다”
“안전의 핵심은 시설과 사람, 위탁선임제도가 둘 다 망치고 있어” 경제성장 때문에 포기한 안전, 지금이 되찾을 수 있는 적기
“전기안전관리자 문제는 위탁선임제도를 도입하고부터 촉발됐습니다 고용불안정, 안전사고 우려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만큼 대책마련이 시급한 상황이죠.” 정재희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전기안전 분야 권위자다. 18살에 한전에 입사해 45년간 전기계에서 활동해왔다. 올해 2월 교수정년퇴임 후에도 명예교수로 활동 중이고 최근에는 국민안전처(장관 박인용)가 주관하는 안전대진단에서 전력반장을 맡아 안전산업육성, 시설·제도 개선 등에 참여하고 있다. “안전의 핵심은 시설과 사람입니다. 시설을 제대로 갖추고, 사람이 이를 감시·관리해야 하는 거죠. 그런데 전기안전관리자가 제대로 대우를 못 받는다? 안전은 물 건너 간 거죠.” 전기안전관리의 핵심은 다름 아닌 사람이라는 게 정 교수의 입장이다. 그런데 2002년 전기사업법 개정으로 도입된 전기안전관리자 위탁선임제도로 인해 ‘사람’의 가치는 추락했다. 하지만 당시 정부는 기업의 비용부담을 완화시킨다는 이유로 위탁선임제도를 도입했다. 당시 분위기는 안전보다는 규제개혁, 경제성장이 우선이었다. 덕분에 용역업체만 이득을 보는 구조가 됐다는 것이 정 교수의 설명이다. “10년, 20년 일해도 월 200만원도 못 받는 전기안전관리자들이 많아요. 위탁선임제도 도입 전에는 이 정도로 열악하지 않았는데 안전을 포기하고 이익만 좇은 결과죠. 사고가 안 나서 그렇지 혹시라도 사고가 나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위탁선임제도를 당장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용역업체가 전기안전관리를 하는 게 아니라 해당 회사가 직접 직원을 고용해 상주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전기안전관리자가 기업체에 정식 직원으로 고용돼 중장기적으로 계획을 마련하고 설비를 관리하며 적절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 “용역업체에 관리를 맡기면 일단 고용이 불안정해집니다. 용역업체가 전기안전관리자를 정식 직원으로 고용하면 되는데 그러지 않잖아요. 비정규직으로 일하면 언제 일을 그만둘지 모르는데 책임감이 얼마나 있을까요? 게다가 용역업체가 1~2년 주기로 바뀌기 때문에 전기안전관리도 제대로 이뤄질 리가 없죠.”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안전은 언제나 뒷전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세월호 참사를 교훈 삼아 안전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가치로 평가받는다. 전기안전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산업통상자원부는 전기안전관리에 있어서 위탁선임제도의 문제를 인식하고 개선을 위해 연구용역을 진행했다. 이 연구를 공동으로 담당한 책임자가 바로 정 교수다. 그는 안전관리 제도를 분석하고 실태를 조사하며 예상대로의 결론을 얻었다. “전기안전관리자들을 만나보니까 자괴감에 많이 빠져 있어요. 열심히 공부하고 자격증도 따고 했는데 결과는 비정규직에 박봉이니까 희망이 보이지 않는 거죠. 연구결과 실제로 용역업체가 관리할 때 전기화재사고율이 2.22배 더 높았습니다. 위탁선임제도의 문제가 드러난 거죠.” 연구결과는 지난해 7월 산업통상자원부에 보고됐지만 아직까지도 후속조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안전이 이슈로 떠올랐을 때 문제를 짚고 가야하는데 이러다가 골든타임을 놓치는 건 아닌지 정 교수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규제개혁을 외치는데 다른 건 몰라도 안전은 규제로부터 출발합니다. 그리고 규제가 적절하게 이뤄지고 있는지 감독하고 처벌해서 제대로 작동하도록 해야죠. 경제발전만 중시하던 우리나라가 세월호 참사 이후 변했습니다. 시대가 바뀐 거죠. 용역업체의 이익을 위해서 국민의 안전을 포기할 순 없는 겁니다. 더 늦기 전에 정부는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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