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3일 낙농강국인 뉴질랜드와의 FTA가 공식 서명되면서 그야 말로 국내 낙농업계는 ‘맞을 매는 다 맞은 격’이 됐다. 이미 FTA가 발효 중인 EU로부터는 해마다 유제품 수입량이 늘어나고 있는 반면, 시유 중심의 국내 시장소비는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국내 새로운 시장 개척이 화두. 이러한 가운데 새로운 시장은 치즈에 있다는 주장과 함께 이를 활성화시킬 수 있도록 정책지원이 요구되고 있다.
#잉여 늘고 수입도 늘고
유제품 소비량 절반 '수입산' '흰 우유는 국산' 등식도 깨져
‘2014년 원유 생산량 221만4000톤. 경기불황과 대체음료 수요 증가, 그리고 안티-밀크 인식으로 인한 소비감소로 실제 사용량은 191만7000톤. 발생한 잉여원유량은 29만7000톤’ 지난해 우리나라의 원유생산·사용실적 성적표다.
관련업계는 지난해를 2000년대 초 최대의 잉여원유 사태 이후 최악의 잉여원유사태를 맞은 해로 기억한다. 방송과 일간언론에서 연이어 ‘우유가 남는데 우유값은 왜 안떨어지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쏟아냈고, 이를 제대로 설명하는데도 지친 한해였다. 여기에다 ‘우유가 건강에 좋지 않다’는 안티-우유 논란이 거세지면서 최악의 잉여원유사태를 맞았다.
서울우유를 비롯한 일반 유업체에서는 자체적으로 원유생산 감축에 들어갔고, 낙농진흥회 소속 농가도 지난해 12월부터 정상원유가격지불정지선을 3.47% 삭감하는 한편, 올해 들어서 추가로 3600여두 규모의 착유우 도태사업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잉여원유 문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국내 소비량의 절반 가까이를 수입산에 내주고 있는 시장의 구조적 문제 때문이다.
농협경제연구소가 2003년과 2013년 사이 우리나라 전체 유제품 수급변화를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이는 극명히 드러난다. 2003년 국내 수요량(원유 환산)은 총 299만톤. 이중 국내산이 234만톤을 차지했고, 수입산은 60만4000톤으로 전체물량의 20%에 불과했다.
하지만 2013년 총 수요량 358만2000톤 중 수입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158만6000톤으로 44%를 넘어섰다. 이 같은 수입산 시장 잠식은 2010년 100만톤을 넘어서면서 확대되기 시작해 아이러니 하게도 한·EU FTA 발효 첫해 171만3000톤의 유제품이 수입되면서 정점을 찍었다.
특히 흰 우유도 수입시대를 맞고 있다. ‘커클랜드 시그니춰 홀 밀크·138℃에서 2초간 살균·원산지 미국·1.85ℓ 4830원’ 한 인터넷 쇼핑몰에 올라온 미국산 냉장우유 판매 광고다. 세계적인 대형할인체인인 코스트코가 국내에 미국산 흰 우유를 수입해 판매하면서 그간 ‘흰 우유는 국산’이라는 등식도 깨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EU가 수급안정을 위해 운영해오던 쿼터제를 지난 3월말로 폐지함에 따라 해외 수출을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황명철 농협중앙회 축산경제리서치센터장은 “2003년에 결정된 쿼터제 폐지를 올해 시행한 것은 해외수출수요 증대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며, 과거 쿼터제 하에서도 EU산 유제품 수출은 과거 5년간 수출량은 45%, 수출액은 95% 증가해 왔다”고 밝혔다.
#구조적 소비 감소
출산율 저하 고령화 가속 고령층은 우유 섭취 꺼려
국내 원유 소비량의 70% 가량은 흰 우유와 시유를 만드는데 사용된다. 하지만 절대적 물량을 차지하는 흰 우유 시장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흰 우유 소비가 많지 않은 고령인구는 증가하는 반면 절대적 소비자라고 할 수 있는 학생들은 출산율 저하로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통계청이 밝힌 우리 국민의 고령화 비율(65세 이상)은 13.1%. 이어 2030년 24.3%, 2040년 32.3%로 높아질 전망이다. 통상 고령층은 유당불내증으로 우유섭취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반면, 우유의 주 소비층이라고 할 수 있는 학생들은 저출산으로 수요가 감소하고 있다. 농협경제연구소가 2011년과 2013년의 학생수와 학교급식 우유와의 관계를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2011년 초·중·고교생 우유급식 학생수는 각각 253만4000명·63만명·46만8000명이던 것이 2013년에는 각각 228만8000명·67만2000명·47만6000명으로 5.4% 가량 줄었다. 고령층과 저연령층에서 모두 소비가 감소하는 구조를 가지게 된 것이다.
#시장은 치즈에
국내 소비자 자연치즈 선호 국산 원유 신뢰높아 긍정적
하지만 원유를 소비할 시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바로 치즈시장이 주인공이다. 농진청에 따르면 2000년도 우리나라의 1인당 치즈 소비량은 0.94kg. 이것이 2012년에는 2kg으로 2배 넘게 늘었다. 1인당 우유소비량이 71.3㎏인 것을 감안하면 소비비중은 낮은 셈이다.
하지만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치즈의 소비비중은 늘어날 것이라는 게 관련 전문가들의 전반적인 의견. 특히 국민들이 선호하는 치즈의 종류가 원유에 소금 정도만 넣어 만든 자연치즈라는 점에서 국내산 원유의 새로운 용처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다행스러운 것은 국내 소비자들이 국내산 원유로 만든 유제품에 대해 신뢰도가 높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농협목우촌 관계자는 “치즈는 흰 우유와 같은 시유와는 별도의 시장으로 초·중·고교생을 비롯해 특히 장·노년층이 자신의 건강을 위해 구입하고 있고, 특히 국내 소비자들의 특성이 자연치즈를 선호하는 상황”이라면서 “원유를 치즈로 만들면 부피가 1/10로 줄어들기 때문에 이를 활성화 할 필요가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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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요섭 두마리목장 대표는 목장형 유가공 공장을 운영하며 연간 5억여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
#치즈 생산 현장/심요섭 두마리목장 대표 "장인정신으로 만든 치즈 소비자가 가치알고 찾아"
“낙농가들이 틀에 갇혀 있습니다. 요즘에는 유업체에 납유만 해서는 큰 소득을 올릴 수가 없습니다. 치즈를 만들어야 돈이 됩니다.” 심요섭 두마리목장 대표는 2011년부터 전북 임실에서 목장형 유가공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젖소 15마리와 산양 50마리를 사육하며 하루 평균 300kg의 원유를 생산해 전량을 치즈와 발효유 제조에 사용하고 있다.
심 대표가 본래 낙농업에 종사했던 건 아니다. 임실에서 종축개량협회의 검정소 관련 컨설팅을 8년 정도했다. 컨설팅을 하기 위해 낙농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목장형 유가공에 대한 정보를 듣게 됐다. 목장형 유가공에 발전 가능성을 보고 컨설팅을 그만두고 관련 교육을 받으러 다니기 시작했다.
2006년부터 2009년까지 3년간 전남 순천대학교에서 목장형 유가공 교육을 받고, 유가공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러다 보니 임실군 치즈특화사업에 선정돼 목장형 유가공 공장을 짓는 비용 일부를 지원 받을 수도 있었다.
남들의 눈에는 심 대표의 목장형 유가공 공장 운영이 수월하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려움도 있다. 혼자서 원유생산과 유제품 제조, 유제품 판매까지 해야 하는 인적 한계다. 이에 대해 심 대표는 “낙농 산업 특성상 인력을 쉽게 구할 수도 없고, 세 가지를 동시에 하다 보니 전문성도 떨어진다”며 “정부에서 각 부분별로 전문화를 하는데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낙농진흥회나 낙농육우협회의 흰 우유 위주의 소비 촉진도 힘든 점 중에 하나다. 심 대표는 흰 우유 소비촉진도 중요하지만, 치즈의 소비촉진도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원유를 치즈로 만들면 양이 10분의 1로 줄어들고 치즈는 저장성도 좋기에 만들면 못 팔 수가 없다”며 “치즈를 수입할 생각을 하지 말고 잉여원유를 활용해 질 좋은 치즈를 만들어 국민들에게 제공하는 방안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법의 문제도 지적했다. 심 대표에 따르면 외국에선 고유의 치즈 숙성 단계 중 하나로 받침대에 향나무 등을 사용해 고유의 향이 베어들게 하는데, 우리나라에선 위생법 상 제조실 내부에 나무가 들어가면 안 되기 때문에 스테인리스 위에 저장해야 한다고 한다. 이에 대해 그는 “유럽에서 고유의 방법으로 생산된 치즈는 수입해서 잘 먹으면서, 우리는 나무를 이용한 치즈 제조를 하지 못하게 하니 아이러니하다”고 말했다.
심 대표는 목장형 유가공에 대해 도전하려는 낙농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장인정신’과 ‘관계성’이라고 말한다. 그는 “남들과 똑같이 치즈를 판매하는 것 보다는 항상 어떻게 만들어 어떻게 잘 판매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며 “이러한 고민이 들어간 치즈는 소비자도 가치를 알아주고 찾는다”고 말했다.
심 대표는 관계성과 관련해서는 두마리목장 앞에 서 있는 소나무 세 그루를 예를 들어 설명했다. 소나무는 심 대표가 공장을 시작하며 심은 것으로 생산자, 소비자, 유통업자를 상징한다고 했다. 그는 “소나무 간 간격이 일정하고 서로 당기는 힘이 팽팽해야 쓰러지지 않고 살 수 있다”며 “생산자도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는 것이 아닌 모두를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이상천 임실치즈과학연구소 "목장형 유가공으로 농가소득 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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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유업계는 백색 시유 판매에만 매달려선 안 됩니다. 국내 원유로 유가공을 해야 합니다.”이상천 임실치즈과학연구소장의 말이다.
이 소장은 원유수급 불안정에 대한 해답으로 치즈나 발효유 등의 유제품 생산을 제시했다. 그는 “낙농가들이 목장형 유가공에 관심을 갖고 도전하면 잉여원유를 헐값에 넘기지 않고 유제품을 만들어 농가소득을 올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목장형 유가공은 자체 집유한 원유를 유가공 제조에 사용해 판매하는 형태를 띤다. 2010년 정부의 축산분야 규제개선 중 일환으로 우유 소비 확대를 위해 쿼터 외의 잉여원유에 대해서만 유가공 제조 및 판매를 허락했다. 이 결과 임실군에는 현재 13개 업체가 목장형 유가공을 하고 있다.
이 소장은 임실치즈과학연구소에서 우리나라 사람들 입맛에 맞는 치즈를 연구하고 선별해 관내 낙농가에게 치즈 아카데미 교육과 1:1 기술 전수 등을 진행하고 있다. 치즈 아카데미 교육의 경우 연간 100여명 정도가 교육을 듣고, 농가 1:1 기술 전수의 경우 임실군의 지원 사업으로 무료로 진행되고 있다.
이 소장은 낙농가들이 목장형 유가공을 할 때 대규모 유업체와의 차별성을 둘 것을 강조한다. 유업체가 만들지 못하는 수제치즈와 오랜 기간 숙성시킨 치즈를 생산할 것을 이야기한다. 그는 “외국에서 수입한 원료와 국산 원유를 혼합해 대량으로 만드는 일반적인 치즈가 아닌, 착유 후 세균 수가 적은 신선한 원유를 이용해 질 좋은 치즈를 생산하면 소비자의 관심을 끌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이 소장은 목장형 유가공에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우리나라 원유 가격이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며 “일본의 경우 목장형 유가공을 하면 정부에서 제품의 절반 정도의 가격을 보존해주는데 우리나라도 이러한 지원이 돼야 가격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말했다.
이진우·안형준 기자 leejw@agrine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