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풍이 5~10노트로 꾸준히 불어오고 있다.
메인과 헤드 세일을 모두 펼치고 살짝 기운 배는 기분 좋은 리듬의 끄덕임으로 전진하고 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맑은 날씨... 파도도 없이 잔잔한 이곳이 과연 대한해협의 한 가운데인지 의심스럽다.
일본->한국 요트 딜리버리 항해의 완벽한 마무리의 순간이다.
모든 막장 드라마가 그렇듯, 완벽하거나 혹은, 싱거운 해피엔딩을 위해서는 지리멸렬하고도 지난한 과정이 필요한 것인지...
나의(!) 이번 항해도 완벽한 해피엔딩을 위해 엄청난 고난의 과정을 선사했다.
그 객관적인(?) 증거들을 열거하자면...
체중 3킬로 감소,
손가락 곳곳의 찰과상/자상,
온 몸 이곳저곳의 타박상,
노트북/스마트폰 각각 1대씩 사망
... 그리고, 100만개 쯤 늘어난 흰머리...
정서적으로는,
세상을 모두 얻은 것 같은 기쁨의 순간과 인생 최악의 상황 TOP 5 의 순위를 다시 매겨야 할 정도의 고통의 순간 사이를 오가는 "감정의 롤러코스터 상태"였다.
결과적으로 나 자신의 판단력에 대한 믿음이 조금 줄어들었다. (스스로 평가하건데, 결정적인 순간 바보같은 결정을 너무도 많이 내렸다)
일본으로 떠나기 전, 윤석태 선장님(얼마전에 나의 '쎄라비'를 인수하셔서 한강에서 한창 세일링을 즐기는 중이시니 '선장'으로 불러드려야 한다)께서 카톡으로 '...사무적인 군대식 항해기 말고 문학적, 철학적인 항해기를 써보도록 하세요...'라는 주문을 하셨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 라고 답변은 했지만, 속으로는 걱정이 되었다.
이미 3번이나 다녀온 일본->한국 딜리버리 항해, 벌써 항해기의 밑천이 다 떨어진 상태라 '문학적, 철학적인 항해기'는 커녕 '사무적인 군대식 항해기' 조차 쓸 자신이 없었다.
나는 1989년(대학 입학!) 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해 여전히 그 습관을 유지하고 있다. 매년 한 권씩 다이어리를 남긴다.
그러나 이번 항해기간에는 일기는 커녕 단 한 줄의 항해 관련 메모도 남기지 못했다. 그만큼 정신적으로 여유가 없었다
앞으로 쓰게 될 항해기는 순전히 기억에 의존해 쓰게 될 것이다.
그런데, 전혀 걱정이 되지 않는다. 모든 순간들이 너무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문학적인, 철학적인 항해기'는 되지 못하더라도 '사무적인 군대식 항해기'는 아닐 것이다.
사족이 너무 길었다...
항해의 마지막 구간을 앞에서 언급하였으니, 그날의 일을 마저 쓰고 첫날로 돌아가야 겠다.
2014년 6월 16일 (월) 아침 5시 40분, 대마도의 이즈하라(嚴原)항을 떠나 통영을 향했다
출항(=출국)을 위한 출입국, 세관, 해상보안청의 일들을 일요일인 전날 모두 마쳐놓은 상태라 약속한 대로 월요일 아침 조용히 일본땅을 뜨기만 하면 '만사오케이'다.
전날, 통영에서 이즈하라로 들어온 일본인 세일러 '우치다 나가오키'씨의 YAMAHA 29는 이미 새벽 3시에 지바를 향해 출항을 한 상태였다.
선물로 준 진로 2병을 마시고는 기분이 업 되었는지 지난 밤 늦게 우리배로 찾아와 메모를 건네주었던 그.
자신의 딸이 아이를 출산했다는 소식을 갑자기 들어 최대한 빨리 떠나게 되었는데 '진로의 고마움'을 꼭 전하고 싶어 혹시 자고있을지 모를 우리배의 라이프라인에 메모를 붙이려고 했다는 것이다.
올빼미족인 내가 깨어 있는 것을 알고는 메모를 직접 나에게 주고는 자기 배로 돌아갔다.
통영 방문이 어떠했는지 낮에 물었을때 다소 사무적인(의례적인) 대답을 조금 하고 말았던 것을 기억하고 보니, 아마도 '한국사람의 정'을 느낄 기회를 갖지 못했던듯 싶다. 그러던 차에 일본에서 낯선 한국사람으로부터 불현듯(!) 진로를 선물받고 그걸 마시고 보니 알딸딸한 기분에 얼마나 감동이 치밀어 올랐을지... (<- 이건 순전히 내가 생각하는 정황이다)
암튼...
이즈하라에서 통영으로 가는 루트는 대마도 북단을 돌아 가는 길, 남단을 돌아가는 길 그리고 중간의 만제키(万關) 수로를 통과해 아소만으로 나가는 길이 있는데, 모두 엇비슷한 70마일 남짓한 여정이다.
결국 그 날의 상황(기상-바람 파도의 방향 등)을 고려하여 선택하면 되는데,
서풍+동류 로 예고된 GRIB 데이타의 기상예보를 고려하여 만제키 수로를 통과하는 중간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역풍+역류 만 아니면 가능하면 만제키 수로의 이용을 선호하는 편이다. 짧지만 수로 통과가 재미있고 아소만의 평화로운 경관이 좋기 때문이다)
만제키 수로의 통과는 한국 방향으로는 밀물이 순류이다. OpenCPN의 조류표를 참고하니 오전 8시경이 가장 이상적인 시간이다.
슬슬 4~5노트 정도로 2시간 20분 쯤 달려 정확히 8시에 만제키 수로를 통과했다. +3노트의 순류다.
한시간 반 정도 아소만의 평화로운 섬들 사이를 달려 나오니 어느덧 대한해협이다.
클로스 홀드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바람방향 때문에 코스를 약간 북쪽으로 잡아 거제도 남단을 향해 달렸다.
메인과 헤드 세일을 모두 펴고 엔진은 약 1,800rpm 으로... 6노트 내외의 기분 좋은 속도로 계속 달렸다. 달렸다. 달렸다.
그리고 오후 7시경 통영에 도착했다. 대한해협의 명성(?)에 걸맞지 않은 너무나 편안한 항해로 마무리 되었다.
(완벽한 항해는 할 이야기가 별로 없다. 그래서 싱겁다)
검역소, 세관에 전화해 출장나온 검역관과 세관원으로부터 검역증과 선박검사/입항보고서 작성을 마치고, 시내에 있는 출입국 관리소에 가서 입국절차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출입국관리소 옆에 있는 굴요리 전문점 '대풍관'에서 이휘윤 크루님과 늦은 저녁을 먹었다.
9시에 문을 닫는 식당이라(술을 파는 음식점이 9시 폐점이라니.. 잘 나가는 집이라고 너무 배짱 장사다) 20 여 분 만에 급하게 먹긴했지만,
멍게 비빔밥을 메인으로한 13,000원 짜리 코스 요리는 '빅토리 디너'로써 손색이 없었다.
(일본에서 먹었던 1,000~1,500엔짜리 테이쇼쿠(定食)와 배교해 보니 우리나라 음식이 정말 진수성찬에 다름없다. '양'으로 '맛'으로나.. 대한민국 먹거리 만세~)
항해의 성공을 자축하며 이크루님과 잔을 부딪히던 그 순간을 아마도 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다.
P.S.
'가장 좋은 인디언은 죽은 인디언이다..' 라는 잔인한 말을 남긴 서부개척 시대의 기병대 장군이 있었다고 한다.
선장의 입장에서 좀 잔인하게 살짝 비틀어 표현하자면...'가장 좋은 크루는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크루이다..'라는 말을 하고 싶다.
P.S. 2
항해 중간에 노트북과 스마트폰이 침수되어 작동불능 상태에 빠졌다. 그래서 사진이 별로 없다. 그래서 또 싱겁다.
첫댓글 ㅋㅋㅋ 수고를 하셨네요^^!!
재미있게 봤어요~*
근데... 노트북,,, 핸드폰.....
흰머리는.. 검해졌나..... __);;
이치카와님.. 다시 활발한(!) 활동을 개시하셨군요 ^^
반갑습니다.
@엄성용(쎄라비) ^^ㅎ 실은 지금은 공부하고있는 수업이 없어서 사간이 여유가 았어서 좋아요 ㅋㅋ
좋은 인디언도, 좋은크루도 되어주지 못해 죄송합니다.
끝까지 같이 못해 결국 나쁜 크루가 되었네요.
^^;
'죽은 인디언'이라는 표현은... '좋은'이라는 비교구를 위해 인용한 것일뿐.. 진짜 죽으라는 말로 오해하신건 아니시죠??!!
신모지에서 돌아가시고 난 후, 이휘윤 크루님과 해진 거리를 걸어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데 조금 쓸쓸한 기분이 들었더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