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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거지 집성촌 종가 스크랩 [답사] 거창 황산리신씨고가(居昌黃山里?氏古家) 탐방
이장희 추천 0 조회 80 14.05.09 21:4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답사] 거창 황산리신씨고가(居昌黃山里?氏古家) 탐방

(2012/10/27 현재)


사)서울문화사학회의 제261회 답사지로 경남 거창군 지역 유적지중,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487 에 있는 거창 황산리신씨고가(居昌黃山里?氏古家)
전경 입니다. 18세이 중엽에 황고(黃皐) 신수이(?守彛) 선생이 입향하면서 번성한
거창신씨 씨족마을로, 마을의 생성은 16세기 초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조선시대 영조 이후
인물이 연이어 배출되었다고 전해지며 거창(居昌) 신씨(?氏) 집성촌인 황산마을에 있습니다.
일명「원학고가(猿鶴古家)」라고도 부르며,지금 있는 건물은 1927년 옛 건물을 헐고 다시
지은 것으로, 건물은 안채, 사랑채, 중문채, 곳간채, 솟을대문, 후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검소한 양식에 서민 전통한옥의 특징을 잘 갖추고 있는 집입니다. 그리고 이마을의토석담과
활처럼 휘어진 전통담장길이 전통고가와 어우러져 고즈넉하고 아늑한 느낌을 줍니다.


 

 

 

 

 

 

 

 

 

 

 

 

 

 

 

 

 

 

 

 

 

 

 

 

 

 

 

 

 

 

 

 

 

 

 

 

 

 

 

 

 

 

 

 

 

 

 

 

 

 

 

◈ 거창 황산리 신씨고가(居昌 黃山里 ?氏古家)   
     

-종    목 경상남도 민속문화재 제17호

-지 정 일 1994.07.04

-소 재 지 경남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487

-소유자(소유단체) 신도성 


돌담길이 문화재로 등록된 이 마을은 거창신씨의 세거지 이다. 거창신씨의 시조 신수이(?修彛)는 중국 송나라 사람으로 고려 문종때 우리나라에 귀화해 참지정사를 지냈고, 그의 아들 신안지(?安之)는 병부상서를 역임 했으며 후손들은 거창에 살면서 거창으로 본관을 삼았다. 거창신씨는 이조참판을 지낸 신승선(?承善,1436~1502)의 대에 와서 명문(名門)으로 부상했다.

 

 그는 임영대군(臨瀛大君,세종의 넷째아들)의 딸과 결혼했고 그의 딸은 성종의 세자빈(연산군의 부인)으로 책봉 되었다. 그의 아들 신수근(?守勤,1450~1506)은 정승이 되었고 중종의 왕비인 단경왕후 신씨가 바로 신수근의 딸이니 당대에 이만한 권세가 없었다. 신씨의 영광은 거창에도 미처 연산군이 즉위한 뒤 1496년 왕비의 관향이라 하여 거창을 현에서 군으로 승격시켰다. 거창 신씨들이 한창 잘 나갈 때 신권이 이곳에 들어온 이래 황산마을은 400년간 거창신씨의 세거지가 되었다


신권은 소년시절 한양에서 공부하다 “벼슬이란 사람으로부터 받는 것이고 자아는 하늘로부터 받은것” 이라며 안빈낙도 하며 인격 수양에 힘쓰겠다고 이곳으로 내려 온 것이었다. 그리고 스스로 호를 요수(樂水)라고 하였다. 그는 학식이 매우 높았다고 전하며 거창의 거유인 갈천(葛川) 임훈(林薰)의 매부이기도 하다.


황산리신씨고가는 거창 신씨 집성촌인 황산마을에 있는 옛집으로, 지금 있는 건물은 1927년 옛 건물을 헐고 다시 지은 것으로 ‘원학고가(猿鶴古家)’라고도 부른다. 이집은 요수 선생의 12대 손으로 경남지사를 지낸 신도성씨의 생가로 그의 선친이1927년에 원래 있던 낡은 가옥을 헐고 완전히 개축한 것이라고 하며 이집은 천석군의 부농이었다고 한다. 건물은 안채, 사랑채, 중문채, 곳간채, 솟을대문, 후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검소한 양식에 서민 전통한옥의 특징을 잘 갖추고 있는 집이다.

 

거창(居昌) 신씨(?氏) 집성촌인 황산마을에 있으며 일명「원학고가(猿鶴古家)」라 칭한다. 주요건물은 안채, 사랑채, 중문채, 곳간채, 솟을대문, 후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의 건물은 1927년에 건립한 것으로 검소한 양식에 서민적인 전통 한옥 특징을 갖추고 있다.


▶거창 황산마을 옛담장(居昌 黃山마을 옛담牆)-등록문화재 제259호  

 

18세이 중엽에 황고(黃皐) 신수이(?守彛) 선생이 입향하면서 번성한 거창신씨 씨족마을로, 마을의 생성은 16세기 초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조선시대 영조 이후 인물이 연이어 배출되었다고 전해진다.


이 마을의 담장은 대개 토석담으로 담 하부는 방형에 가까운 제법 큰 자연석을 사용하여 진흙을 사춤하지 않고 대부분 메쌓기 방식으로 쌓았다. 이는 도로보다 높은 대지 내 빗물을 담 밖으로 자연스럽게 배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자연석으로 메쌓기 한 위에는 하부의 자연석보다 작은 20cm 내외의 돌을 담 안팎에 사용하여 진흙과 교대로 쌓아 올렸고 대부분 담장 상부에는 한식기와를 이었으며, 기존 담장과 달리 엇쌓기를 한 부분도 있따. 전반적으로 전통고가와 어우러진 활처럼 휘어진 전통 담장길은 고즈넉하고 아늑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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