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박약회 대구광역시지회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자유 게시판 스크랩 “인자, 이시백이는 똥 돼?다." - 권정생 선생님 3주기 추모식 후기
이장희 추천 0 조회 26 14.07.09 18:1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5월 17일 권정생 선생님 3주기 추모 행사장에 참석했다. 참석하고 싶기도 했지만 후환이 두려워서라도 참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다른 3주기 추모행사에는 참석하지 못했는데 추모식마저 참석하지 않다가는 안모 사무처장이 삐질 가능성이 매우 높아서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던 것이다. 나랑 비슷한 입장의 지인들도 몇 명 있었는데 행사 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일은 안모 사무처장에게 눈도장을 받는 일이었다. 물론 추모식에는 나처럼 눈도장이나 받으려는 목적이 아닌, 진정으로 권정생 선생님을 그리워하고 그 뜻을 이으려는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이번 3주기는 여러 모로 뜻 깊은 자리가 되었다. 사무처에서 여러모로 노력하여 권정생 선생님의 삶과 작품에 등장하는 여러 지명을 확인하였고, 유족들의 소재도 파악하였다. 작품에 등장하는 지명과 선생님 외가가 있던 곳으로 ‘몽실언니’ 문학기행 행사도 가졌고, 추모식에는 권정생 선생님의 유족들도 참석하였다. 선생님의 집 빌뱅이 언덕에서 내려다보이는 조탑리 탑 주변에서는 추모 음악회도 열렸고, 동화 그림 원화 전시회도 열렸다.


지역의 국회의원, 시장까지 행사장에 참석했는데 두 분은 재단에서 추진하고 있는 기념관 건립에 적극 협조하기로 약속했다. 재단에서 기념관을 건립하고자 하는 곳은 폐교가 된 일직 남부초등학교로 권정생 선생님의 작품 ‘몽실언니’의 무대인 노루실에 위치하고 있다. 시 차원에서 적극 협력하기로 했으니 기념관 건립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생각된다. 국회의원, 시장 두 분의 인사말에서 느낀 것은 기념관에 상당한 재정을 들여 아주 멋있게 만들 생각인 것 같다. 좋긴 한데 권정생 선생님이라면 그런 으리으리한 기념관을 좋아할까 하는 생각도 들고, 공공기관이 권정생 선생님을 문화콘텐츠로 접근하는 측면이 큰 것 같아 조금 걱정도 되었다. 추모식 마지막의 ‘엄마 까투리’ 애니메이션 설명에서 ‘권정생’을 문화콘텐츠로 접근한다는 것이 거의 확실해졌다. 문화콘텐츠에 대해 평소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람들이 권정생 선생님을 추모하는 이유는 그분의 겸손하고 실천하는 삶, 낮고 힘없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었을 터인데 둘 사이에 뭔가 거리가 느껴졌다.


추모식이 끝나고 제1회 권정생창작기금 수여식이 있었다. 수상작은 이시백 작가의 ‘누가 말을 죽였을까’였다. 칠백만원의 기금을 받게 될 이시백 작가의 수혜소감이 인상적이었다. 추모식에서 느끼던 내적 의문을 덮고 가슴을 뻥 뚫어주는 시원한 소감이었다. 추모식 뒤풀이 말미에 잠시 참석했는데 그 자리에서 이시백 작가에게 보내는 축하인사들을 요약하면 “인자, 이시백이는 똥 돼?다.”였다. 조만간 그의 수상 작품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의 소감문을 소개하는 것으로 권정생 선생님 3주기 추모식 후기를 마무리한다.

 

 

제 인생은 똥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시백


  권정생 선생님.
  하늘나라에 계신 선생님께 돈 이야기부터 꺼내자니 면구스럽습니다. 워낙 다급하고 황망하여 여쭈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번에 선생님이 남기신 돈으로 창작 지원기금을 만들어 작가들에게 주시는데 제가 첫 번째로 받게 되었다는군요.
  돌이 많은 밭에서 두덜거리며 괭이질을 하던 중에 그런 기별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멋도 모르고 기뻤는데, 조금 정신이 들고나니까 슬금슬금 겁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이 남기신 돈이 어떤 돈입니까. 평생을 다섯 평짜리 오두막에 기거하시면서 자신을 위해서는 동전 한 닢 허투루 쓰지 않으며 남기신 그것은 돈이 아니라, 선생님 자신이 아니겠습니까.
  소 파는 데 개 따라나서듯 남의 이러저러한 상 받는 곳에 쫓아가 술이나 얻어먹자니 으레 상금이라는 것은 그리 인심이나 쓰면서 헐어내는 것으로 알았건만, 한 푼도 허투루 쓰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어렵게 된 것이 어디 돈뿐이겠습니까. 워낙에 속된 것으로 나이만 채워 오긴 했으나 제 하고 싶은 대로 살아온 인생에 이제 '권정생 표' 딱지가 딱 붙어 버렸으니 옴짝달싹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권 선생님이 물려주신 돈을 그렇게 쓰면 되겠느냐. 권정생 선생님의 지원금까지 받은 사람이 그렇게 하면 되겠느냐. 이제 나는 살아도 산 것이 아니요, 갚을래야 갚을 수도 없는 권 선생님의 돈을 받고 말았습니다. 제가 아니더라도 어느 누가 선생님의 돈을 마음 편히 받아 쓸 수 있겠습니까만, '하필이면 왜 나란 말인가'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제 와 가만히 생각해 보자니, 내가 받은 것은 상이 아니요 벌에 가깝습니다. 선생님께서 위에서 내려다 보시자니, 어느 미련한 인생 하나가 제 분수를 알지 못하면서 뱃속에 욕심만 그득 채운 것을 차마 버려두기 어려워 정신 차리라고 이마에 권정생 표 딱지를 한 장 붙여 주신 것이 아닐까 헤아려 봅니다.
  스스로 낮추기를 예사 사람들이 제 자랑 늘어놓듯 하시고, 어찌어찌 꽃만 피우려고 발버둥치는 세상에서 강아지 똥이 되라 이르신 뜻이려니, 이제 나는 변변히 꽃도 피워 보지 못한 채 강아지 똥이 되어 버릴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오늘 권 선생님께서 제게 주시는 돈은 상금이 아니라, 강아지 똥으로 살라는 벌금임을 비로소 알게 되니, 오늘부터 제 인생은 똥이 되어 버렸습니다. 행여 지원금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축하주라도 한잔 얻어 마실 줄 알고 있는 경향각지의 벗들에게, 이시백은 똥이 된 줄이나 아시라고 전합니다.
  정신없이 사는 주제에 저 혼자 읽어도 부끄러운 글줄이나 끼적거려온 제게 정신 차리라고 상 같은 벌, 벌 같은 상을 내려주신 선생님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벌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제라도 꽃보다 똥이 되도록 힘쓰겠습니다.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