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마요르카의 연인을 읽고
잘 짜여진 직조품처럼 소설의 구성이 치밀하게 되어있다. 오딧세우스 전설을 이야기하면서 오래전의 회상에 빨려 들어간다. 원형의 구성이다. 서사의 마지막이 처음과 맞대어져 있는 것이다. 마요르카에 있는 그 여인의 무덤 앞이다. 그 다음, 이제 이야기는 까마득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름답고 슬픈 사랑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삼십여년 전 진해역이다. 그날 날씨는 을씨년스러웠다. 입대 열흘 전부터 진해라는 곳을 생각하면 가슴이 철커덩하고 내려앉았다. 하루 전에 내려와 선배들을 만났다. 혹시나 하면서 장교양성과정이라서 인격적인 대접을 기대했던 요행수는 정말 어림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병들보다도 더 혹독하다는 경험담을 들었다. 죽었다 복창하고 이 개월, 그리고 교육사열 가까워지면 군기가 좀 느슨해지고 훈련이 좀 풀린다고 했다. 그러나 해병대는 임관 후에도 첩첩산중이라는 약간은 비관적인 미래를 들었다.
그렇게 생애의 시간 중에 가장 길게 늘어질 수밖에 없었던 시간이 시작되었다. every detail이 신체 구석구석에 새겨져있고, 뇌리의 잠재의식에 새겨져 남아 있는 시간 시간들이었다. 작가의 섬세한 묘사로 기억 저편에 있었던 오랜 일상들을 끄집어 낼 수 있었다. 그랬지! 그때 구대장들이 들고 나타났던 빠따는 붉은 색이었지. 옥포탕, 그리고 첫 번째 시내구보. 작가는 첫 번 째 구보에서 여자 주인공인 은주를 살짝 등장시키는 기막힌 복선을 깔았다. 그후 남자 주인공 해균 사관후보생 이승현과 피아니스트 김은주는 첫 번 째 외출한 날 만나게 된다. 이 대목이 아주 음악적이고 환상적으로 그려진다. 마치 베토벤의 월광소나타가 만들어졌던 장면처럼. 승현이 진해 시내를 걸어가는데 귀에 익은 피아노 음률이 흘러나온다. 그 음률에 취해 연주가 끝날 때 까지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 아름다운 여운에 젖어 멍하게 서 있을 때 그 연주의 주인공인 김은주가 살며시 문을 열고 나온다. 마치 임을 기다렸던 여인처럼 간절한 눈빛이었을 것이다. 홀 안에 초대되어 커피를 마셨고, 승현은 임관식에 와줄 것을 정중하게 청한다. 다소 소설적인 꾸밈이 있었을지라도 이 대목이 너무 아름답고, 멋있었다. 군인들이 주둔하는 군항 주위의 삶을 그린 서사라서 자칫 속스럽고 지저분할 수 있었지만, 피아니스트가 등장하고 소팽의 즉흥환상곡이 연주되면서 격을 한껏 높혔다. 여기에 작가의 품격 있는 삶과 낭만이 배어 나옴을 느꼈다.
이렇게 두 남녀의 사랑은 시작된다. 승현이 1해역사 묵호에 배치되어 잠시 배를 탔고, 진해로 돌아온다. 두 남녀의 사랑은 깊어진다. 승현이 처음 외출시에 은주를 만났던 장소가 그린하우스 였다. 은주는 서울에서 음악대학을 다니다가 이모를 돕기 위해 진해에 내려와 있었던 참이었다. 그린 하우스는 주로 장교들이 드나들었던 고급 클럽이었다.
여기 진해생활에서 진해 4인방이 등장한다. 진해 사인방들은 두주불사했고, 우리 동기생들이 익히 알고 있는 인물들을 그렸다. 이승현이 작가 신영의 분신이라고 봐야 할 것이고, 김 규형은 이 규형이고, 신호범은 신국주였다. 양현송은 여러 인물이 짬뽕 되어 있는 듯했다. 김학남과 윤병은이 섞여있을까 생각했다. 작가가 누굴 생각하고 그렸던지 심각하게 따질 것은 아니다. 다만 여자를 기막히게 잘 꼬시는 호색한이었고, 아무리 옆에 여자가 넘쳐났어도 절대로 동기들에게 분양을 하지 않았을 욕심쟁이 였을 것이다.
군항, 귀항선, 그린하우스 중에 내가 가 봤던 크럽은 군항이었을 것이다. 나는 술꾼도 아니었고, 14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진해에서 이십 리를 동쪽으로 더 가야하는 바닷가 웅천소대에서 근무했으니 시내 사정에 밝을 리도 없었다. 그 시절 귀항선과 그린하우스도 몰랐던 나는 무슨 재미로 살았는지 모르겠다.
마냥 세상이 다 우리 것인 줄 알았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사랑이고 그 다음이 사나이 의리인줄 알았다. 때로는 하늘을 찌를 듯 오만방자했고, 젊음이라는 면책특권으로 일탈도 서슴치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국제 신사였다. 결정적인 순간에 절제할 줄 알았고, 금도를 지켰다. 밤세워 술을 마셨어도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삼년이 지나 사나이들은 제 갈 길을 가야만 했다.
학창시절 고시 공부보다는 글쓰기를 더 좋아했던 법대 졸업생 승현은 국제법을 더 공부하기 위해 전역 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여기서 두 남녀의 이별은 예정되어 있었을 것이다. 승현은 공부를 끝내야만 했고, 은주는 그 뒤로 5.6년을 더 기다릴 수가 없었다. 그 뒤로 각자의 삶을 갔고, 서로 다른 사람과 만나 결혼을 해서 아들 낳고, 딸 낳고 살았다. 그러나 두 사람의 마음속에 영원이 자리 잡고 있던 첫 사랑의 설렘처럼, 두 사람이 같이 가고자 했던 섬이 있었다. 쇼팽과 그의 연인 죠르주 상드가 도피여행을 떠났던 스페인의 섬 마요르카였다. 남편을 잃고 혼자 살았던 은주가 말년에 삶을 보냈던 곳이 마요르카였고, 은주는 마요르카의 공동묘지에 묻혔다. 승현이 은주의 무덤을 찾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되었고, 그것으로 이야기가 끝났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화자가 본인 승현이었다가, 마요르카를 안내했던 무관이었다가, 또 3인칭 소설로 돌아가기도 했다. 다양한 각도로 서사를 풀어내어 독자들로 하여금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한 것은 새로운 시도였다. 그리고 글의 꼭지마다 아름다운 시어나 추억이 되살아나는 노랫말을 넣고 또 그 분위기에 맞는 삽화를 넣은 것도 신선한 시도였다.
기남 형! 책을 읽는 내내 즐거운 회상에 잠길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어쩌면 팍팍했고, 찌들었던 순간들을 회상의 프리즘을 통해서 이렇게 신선하고, 상쾌하고, 신명나게 풀어낼 수 있었을런 지 감탄했습니다. 형이 그만큼 항상 주위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희망을 주는 삶을 살아왔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번 소설이 전 번 소설보다 더 완성도가 높아진 것 같습니다. 앞으로 더 좋은 소설 기대합니다. 그리고 이 “마요르카의 연인”은 우리 해군 뿐이 아니고, 더 널리 익혀져도 충분한 감동을 나눌 수 있겠어요. 계획하신 대로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더 쉽게 대중에게 다가설 수 있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첫댓글 바우님의 소설 마요르카의 연인 독후감을 잘 읽었습니다.
소설가는 소설가를 알아본다는 느낌이 확드는 글이군요.
승현과 은주의 사랑이야기는 결국 바다가 다 포용했군요.
작가 신영님의 노고에도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후우! 우리들만의 이야기 입니다. 만일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옛날 이야기 늘어놨다면 바로 꼰대 소리 들었을 겁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서로 안도하고 즐거울 수 있었습니다. 후보생시절 이야기를 읽으면서 여러 기억들이 겹쳐졌습니다.
신영작가의 기억복원력이 탁월했습니다.
인터넷으로 구매한 마요르카의 연인 소설 책을 오늘 받았습니다.
소설을 읽기도 전에 바우의 독후감을 먼저 접했네요.
해군 장교 승현과 은주의 고급스럽고도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소설로 읽는 데 많은 도움이 될 듯합니다.
이 바우 땡큐 ~
승현과 은주의 고풍스러운 사랑은 이뤄지지 못했지만 주인공 승현의 뒤를 이은 OCS 107기 아들 한돌군과 동기인 은주의 딸 하늘이 부모님들의 애틋한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되었네요. OCS 분위기를 공유한 입장에서 아주 감명깊고 재미있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