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거룩하고 복된 주의 날, 특별히 새해 첫 주일에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사랑하는 성도님께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의 제목은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 교회”입니다. 올 해 우리 교회의 표어입니다. 한 해 동안 이 표어대로 교회 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도록 함께 기도하고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학개 선지자는 히브리식 발음으로는 ‘학가이’입니다. 학가이 선지자입니다. 이 선지자의 활동 시기나 학개서를 기록한 시기는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계시를 언제 받았는지를 정확하게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1장 1절에 보시면 “다리오 왕 제 이년 여섯째 달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계시는 페르시아제국의 다리오왕 2년 6월 1일입니다. 두 번째는 2장 1절에 그해 7월 24일, 세 번째 계시는 2장 10절에 9월 24일, 네 번째 계시는 2장 20절에 역시 9월 24일입니다. 다리오왕 2년은 역사적으로 정확히 기원전 520년입니다. 지금부터 2534년 전입니다.
학개 선지자는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있다가 바벨론이 페르시아에 패하자 포로생활 중에 먼저 귀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려고 학개와 스룹바벨을 먼저 귀환하게 했는데 이들을 통해 무너진 성전을 먼저 건축하게 하셨습니다. 학개는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스룹바벨은 백성의 지도자로서 그 뜻을 받들어 성전을 짓기 시작한 것입니다.
건축에 관한 내용을 기록한 성경은 출애굽기와 열왕기하, 그리고 느헤미야와 학개입니다. 출애굽기에는 모세를 통해 성막을 짓는 내용이 나오고 열왕기하에 솔로몬이 성전을 짓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고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학개서는 무너진 성전에 대한 책망과 건축에 대한 정당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왜 응답이 없고 심어도 제대로 거두지 못하고 열매가 없는지 그 이유를 이 책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학개서는 두 장 밖에 되지 않는 짧은 책입니다. 집에 돌아가셔서 이번 주에 두세 번 천천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한 번 읽는데 십 분이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는지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구약에 성전은 세 번 세워졌는데 다윗은 그토록 갈망했지만 그는 전쟁으로 인해 피를 너무 많이 흘렸기에 준비만 하고 짓지 못했습니다. 아들 솔로몬을 통해 세운 성전이 첫 번째이고 두 번째는 학개서에 나오는 스룹바벨 성전, 세 번째는 예수님이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만에 일으키리라”라고 한 헤롯성전입니다. 헤롯왕이 40년 동안 지은 성전입니다.
오늘 본문 7절에 보시면 하나님은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라고 하십니다. 먼저 교회는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임재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해야 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 하나님은 내 이름을 그곳에 두겠다고 했습니다. 왕상8:29입니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 이 성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시오며 주의 종이 이 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성전은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 곳입니다. 하나님의 이름 앞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말씀대로 순종하여 온전한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백성들에게 응답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사장과 선지자들과 지도자들이 타락하고 백성들도 타락하자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서 떠났습니다. 이럴 때 이방인의 침략을 받아 성전이 짓밟히게 되고 이스라엘은 멸망하게 되고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지 않도록 언제나 거룩을 유지해야 합니다. 이럴 때 세상 가운데 빛과 소금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이자 사명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에서 ‘내가’는 하나님입니다. 즉 성전에 영광을 충만하게 하시는 분은 어느 누구도 아닌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채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끌어다가 충만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채우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단 우리가 거룩하고 성결하고 의로울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나타내시고 충만케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룩함과 성결함을 유지할 때 충만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지 않고 머무르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삼손이 이방여인을 찾아가 범죄하여 머리카락이 깎일 때 그에게서 하나님의 능력이 떠났던 것처럼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준행하지 않으면, 교회가 거룩을 잃게 되면 하나님의 영광도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럴 때 교회도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건물은 교회당이나 도무지 하나님의 일이 진행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지 않는 이름뿐인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계3:1입니다.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교회라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교회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교회는 언제나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여 살아 있는 교회가 되길 소원합니다. 우리가 함께 힘써야 할 부분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지 않도록 늘 거룩함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출29:43을 보시면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리니 내 영광으로 말미암아 회막이 거룩하게 될지라”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은 성막, 즉 회막을 짓게 하셨는데 성막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장소요 하나님이 임재하여 만나주는 장소였습니다. 하나님은 거기서, 성막의 지성소에서 만나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회막이 거룩하게 된다고 하십니다. 교회는 거룩해야 합니다. 이 거룩함은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때,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할 때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교회가 되길 축복합니다.
모든 교회가 이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 교회, 곧 거룩한 교회! 이 땅의 모든 교회가 이렇게 되길 소망합니다. 우리 교회는 살았는데 다른 교회는 다 죽은 교회라는 식으로 바라보는 것 자체가 교만입니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데 다른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고 하면 먼저 우리에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이단 사이비를 보십시오. 오로지 자기 교회만 하나님의 교회라 하고 자기 교회만 구원이 있다 하고 참 교회요 거룩한 교회라고 합니다. 그게 도리어 거짓 교회의 증거입니다. 물론 잠자는 교회도 있습니다. 병든 교회도 있습니다. 살았다 하나 죽은 교회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도 듣는 것으로만 섣불리 판단하고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잠자는 교회, 병든 교회보다 정죄하고 판단하는 교회가 더 문제입니다. 우리는 주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출16:7입니다. “아침에는 너희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가 자기를 향하여 원망함을 들으셨음이라”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아야 합니다. 여기서 아침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먹을 것으로 인해 하나님을 원망할 때 하나님께서 매일 아침마다 만나를 주셔서 먹이시고 돌보심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맛 본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광야에서도 일용할 양식,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습니다. 광야에서도 반석을 쳐서 물도 주셨습니다. 지금도 주십니다. 이후에도 주실 것입니다. 단지 먹는 양식과 음료만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매일 음식을 먹어야 육신도 살듯이 영혼도 매일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먹을 때 소생하게 됩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아침마다 나가서 만나를 거두듯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도 매일 매일 먹고 순종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또한 교회는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러야 합니다. 고후3:18입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후 3장은 율법과 복음에 대한 비교를 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구약사람들이 마치 수건을 쓰고 보는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했지만 이제 주의 영으로 말미암아 자유함을 얻은 자녀들은 마치 수건을 벗은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을 말씀합니다. 단지 보는 것만 아니라 주님과 같은 형상으로 우리도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우리 모두가 이렇게 주님의 영광에 이르게 되길 축복합니다. 아버지의 영광으로 오신 예수님이 내 안에 충만할 때 우리도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광을, 하늘의 영광을 우리도 보고 달려가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의 교회도 영광스럽게 됩니다. 영광스러운 교회가 됩니다. 엡5:27입니다.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교회는 영광에서 영광으로 이르러야 합니다.
끝으로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큰 교회입니다. 본문 학2:9입니다.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룹바벨과 학개를 통해 세우는 성전은 사실 초라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이전에 솔로몬이 세운 성전에 비하면 작아도 너무 작았습니다. 이전 성전을 본 사람들이 성전을 짓고도 가슴을 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더 크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성전의 외형을 보고 판단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얼마나 열악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힘썼는가를 보시는 분입니다. 솔로몬 성전은 아버지 다윗이 많은 재물을 예비해두어서 성전을 짓는데 아무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짓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스룹바벨 성전은 포로로 잡혀 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너진 성전을 바라보면서 회개하여 마침내 돌아오게 되었고 돌아오자마자 자신들의 거처를 지으려고 하니 하나님은 이들에게 네 집부터 짓지 말고 하나님의 전을 먼저 지으라고 책망했습니다. 그러자 이들은 가진 것도 없으니 손수 나무를 자르고 돌을 옮겨서 직접 성전을 지었습니다. 그야말로 과부의 두 렙돈을 드려 지은 성전입니다. 이런 성전을 두고 하나님은 크기나 규모를 보지 않고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고 하셨습니다. 즉 이들이 열악한 환경에서도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서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전을 통해 더 영광을 받으셨다는 말씀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면서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라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말씀하시고 교회를 통해 일하시고 교회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고 교회를 통해 평강도 주십니다. 그래서 다윗은 먼저 예루살렘의 평안을 구하라고 했습니다. 시122:6이하입니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네 성 안에는 평안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함이 있을지어다 내가 내 형제와 친구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에 평안이 있을지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
올해는 우리 모두 교회를 더 사랑하고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도록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교회가 평안하고 든든히 세워져갈 때 그 영광과 평안이 성도님들의 가정에도 흘러가게 될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런 한 해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