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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을지 카페 테마 여행 일요일 새벽. 대절버스가 얼마 전에 개통한 춘천 홍천 고속도로를 시원하게 달리고 있다. 어느새 추억의 거리가 되어버린 인제 원통을 지났다. 월학리. 천도리. 서화리도 지났다. 을지 전망대의 가파른 길을 버스가 숨차게도 올라가고 있다. 철조망이 보이고 북녘 땅이 보인다. 먼 산에는 하얗게 눈이 쌓여있다. 분단의 아픔을 가슴에 안고 우리의 아이들이 총을 들고 서있다. 철조망을 따라 산등성을 걸어가고 있다. 아이를 군대에 보내놓고 우리는 만났다. 하루 또 하루. 아이의 안녕을 소원하며 전역이라는 그날을 기다리며 우리의 겨울 테마여행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펀치볼을 뒤로하고 추억을 남기고 있었다.
우리는 을지 전망대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북녘의 하늘을 북녘의 산하를 한참을 바라보았다. 시린 바람 속에서 녹슬어가는 철조망을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대절버스에 몸을 실었다. 펀치볼. 지명은,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하지만 펀치볼 이라고 부른다. 한국전쟁당시 외국의 종군기자가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마치 주먹으로 내려친 모양을 하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특산물로는 시래기가 유명한곳이다. 우리는 여기서 점심식사를 했다. 다시 바다가 있는 속초로 가고 있다. 속초. 오래전의 인기드라마, 가을동화를 촬영한 곳이다. 상큼한 바닷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모래 위를 걸으며 발자국을 남긴다. 파도가 밀려와서 부서지고 깨어지며 하얗게 물거품을 남기고 사라져간다. 나는 지평선 멀리를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기다리는 사람도 돌아올 사람도 정영 없으면서... 바다. 누구나의 가슴에는 바다가 있다. 상처의 바다. 절망의 바다. 그리고 희망의 바다가 있다. 나의 가슴에도 바다가 있다. 추억의 바다가 있다. 쓸쓸한 겨울바다가 있다. 얼마만인가. 이렇게 모래 위를 걷는 것이. 이렇게 파도를 바라보는 것이. 무엇이 나를 이렇게도 오래도록 붙잡고 있었나. 내가 그렇게도 보고 싶던 겨울바다를 나는 몇 해 만에야 이렇게 찾아왔다. 그래. 이것이 인생이려니... 아이를 군데에 보낸 어른이 된 어머니도 마음은 나와 같은가보다. 그들도 바다에 시선을 두고 있다. 바람에 머리카락을 날리고 있다. 검푸른 바다를 뒤에 두고 사진을 찍고 있다. 오후 4시. 우리는 다시 작은 쪽배를 타고 속초 시장 통으로 갔다. 여기에 왔으니 저녁식사 겸 맛있는 횟감에 소주 한잔은 해야 하지 않을까. 팔딱거리는 바닷고기들이 밝은 형광등 불빛아래서 우리를 반기고 있다. “한잔 합시다.” 나는 앞에 앉은 어머니들과 옆에 앉은 아버지들과 술잔을 부디 치며 소주 세잔을 마셨다. 시간은 쉬지 않고 가는 것. 시간은 내가 기다리지 않아도 어김없이 돌아오는 것. 대화가 무르익고 분위기는 차츰 고조되는데 이제 떠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이제 우리는 바다를 뒤로하고 돌아가야 한다. 어둠을 끌어안고 서울로 가는 대절버스에 몸을 실어야한다. 행복했던 오늘을 또 한 장 추억의 가슴에 올려놓고... .
겨울 바다 /윤종관
나의 바다. 겨울바다여! 파도가 부서지는 슬픈 바다여! 지평선 멀리에 배 떠나가고, 갈매기 울어주는 슬픈 바다여!
저녁 6시50분. 캄캄한 밤이다. 언제다시 오려나. 우리는 잠시지만 머무르고 행복했던 여기를 떠나고 있다. 대절버스가 속초시내의 야경을 뒤로하고 바닷가의 해변도로를 달리고 있다. 차창 밖의 스쳐지나가는 불빛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멀리 멀리 사라져가고 있다. 우리를 실은 대절버스는 기어이 고속도로를 진입하고야 말았다. 나의 여행은 언제나 돌아가는 길이 쓸쓸했는데 오늘은 다르다. 실내에 밝은 불이 꺼지고 조명이 돌아가고 싸이키가 번쩍거린다. 정말 나는 처음이다. 내가 좋아하는 많은 이들과 이렇게 대형 대절버스로 여행을 하는 것이...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이렇게 도심의 클럽과 같이 분위기로 넘치는 것이... 『그대사랑 하는 난 행복한사람 잊혀 질 땐 잊혀 진대도...』 노래도 참 잘한다. 춤도 참 잘 춘다. 앞에 있는 이들의 노래가 끝나고 나에게도 마이크가 넘어왔다. 나의 취미가 노래 부르기 인데 여기서 뺄 수는 없다. 나도 감정을 잡으며 한 곡조 불렀다. 마이크는 다시 뒤로 넘겨졌다. 『쓰러집니다〜 쓰러집니다〜 올 때는 내게 예고 없이 왔다가 이제 와서 날 떠나요. 말도 안 될 핑계 어쩌면 잘도 갖다 붙여 뻔뻔하게도. 차라리 내가 싫어졌다 말한다면 잡을 내가 아니겠지만 사랑해서 떠난다는 말 지금 뭐하자는 겁니까. 쓰러집니다〜 쓰러집니다〜 그대 말 듣고 있으면〜 내가 어때서 그런 건가요. 사랑이 장난인가요. 가던 길 그냥 떠나지 왜 돌려요. 이제는 그만 날 놀려요. 가던 길 그냥 떠나지 왜 돌려요. 가던 길 그냥 떠나지...』 나는 내 뒤를 이은 다음 타자 어머니의 이 노래를 듣는 순간 정말 쓰러질 뻔 했다. 음정 박자는 물론이고 노래의 고수들만이 사용하는 강약의 기법을 구사하며 완벽하게 불러 제켰다. 참 어려운 노래인데 가수 서주경보다도 더 구성지게 맛을 내며 불렀다. 시원한 맥주도 한 캔 마셨다. 노래들도 정말 잘 한다 우리나라 노래방문화가 전 국민을 가수로 데뷔하는데 일조한 것이 확실하다. 마이크는 다시 뒤를 돌아서 앞을 지나서 내게로 돌아왔다. 나는 아이가 현역시절에 초대받아서 갔던 신병교육대대 훈련병 수료식 전야제에 대대장님 앞에서 불렀던 노래를 불렀다. 『검은머리 하늘 닿는 아 잘난 사람아 이 넓은 땅이 보이지 않더냐. 검은머리 땅을 닿는 아 못난 사람아 저 푸른 하늘 보이지 않더냐. 있다고 잘났고 없다고 못나도 돌아갈 땐 빈손인 것을... 호탕하게 원 없이 웃다가 으라차차 세월을 넘기며 구름처럼 흘러들 가게나.』 여기에 지금 상당한 실력의가수가 있다는 것을 의식한 나는 내 특유의 하이 창법을 구사하며 노래를 불렀다. 내가 이 노래를 애창하는 것은 가사가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있다고 잘났고 없다고 못나도 돌아갈 땐 빈손인 것을...』 이렇게 즐거운 시간이 가는 동안에 우리를 실은 대절버스는 철정 휴게소를 잠시 들려서 다시 서울로... 서울로... 새로 개통한 동 홍천 고속도로를 진입하여 춘천 그리고 가평을 지나가고 있었다. 앞을 보니 버스의 와이퍼가 작동한다. 내가 좋아하는 밤비가 내린다. 대절 버스는 도심을 진입하며 한 참의 체증이 있은 후에서야 우리는 다시 처음 그 자리 사당역에 도착했다. 잘 가요. 잘 있어요. 아쉬움의 낮 익은 목소리가 한꺼번에 들려온다. 또 만나요. 나도 서운한 한마디를 등 뒤로 남기고 사당역 2호선 계단을 내려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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