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은혜와 축복을 오래 기억하면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한 12가지 영적훈련 오늘은 아홉 번째 새로운 것 배움에 대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무엇을 배운다는 것은 자신에게 있어서 소중한 자산입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배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난 주 월요일 우리는 가슴 아픔 일을 보았습니다. 배우는 교육현장에 있어야 할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밖으로 나왔습니다. 공교육이 땅에 떨어져 신뢰를 잃어버린 학교교육 회복을 부르짖으며 선생님들이 정부에 강력한 요구의 몸부림 입니다. 어찌 신성한 학교가 이렇게 됐나 가슴 아픈 일입니다.
교육은 한 나라의 백년대계입니다. 교육은 한나라의 흥망성쇠를 좌우합니다. 우리 모두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교육이라면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배운다는 것은 그렇게 거창한 것은 아닙니다. 쉬운 것 하나 라도 몰랐는데 그것을 내 것으로 습득하는 것이 배우는 것입니다. 평생교육이라는 말이 있죠! 죽을 때까지 배운다는 열정아닙니까? 배우는데 싶다는데 무슨 나이가 필요하고 차별이 있겠습니까?
소책자에도 있지만 나이가 들수록 적게 활동하기에 혈류가 낮아져 기억력에 문제가 생겨 머리가 혼란해지고 인지적 문제가 생겨 우울증이 증가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배워야하고 만약 배운 것을 멈추면 우리의 뇌가 죽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것을 계속해서 배우는 것은 건강한 정신상태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성도여러분!! 배우는 일에 있어서 무엇을 통해 배울 수 있겠습니까?......세가지가 있는데 책, 경험, 사람을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는 ‘책’을 읽는 것입니다....... 공부하고 싶다면 서점에 가면 됩니다. 서점에 가서 내가 관심 있는 분야의 책을 사서 보는 것입니다. 만약 배우고자 하는 책에 그림만 그려져 있어도 괜찮습니다...... 사진만 찍혀 있어도 괜찮습니다. 책장에 꼬쳐 있는 책 제목만 알아도 공부 하는 겁니다.
며칠 전 아침식사를 하는데 식탁 앞 책장에 “행동지원”이라는 책 제목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그런데 아내 하는 말이 행동지원은 요양보호사 공부할 때 다 배운 거랍니다.
가끔 아내에게 그런 말을 했습니다..... 당신은 공부 더 했으면 잘했을 것이고 나 안 만나고 더 좋은 사람 만나 결혼 했을 거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지금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있는데 아내는 학점이 4점 이상이고 저는 4점이 안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공부하고 싶은 책 다 읽지 못해도 제목만 알아도 배우는 것입니다. 요즘은 모바일로도 책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배움의 시작은 책을 보고 읽는 순간 시작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입니다. 살아 있다는 자체가 배우고 있다는 뜻이예요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부터 우리의 배움은 시작됩니다. 세수하고 밥을 먹고 직장에 나가는 모든 것이 공부입니다.
경험 자체가 공부인 것입니다. 내가 밟는 곳이 공부의 장이요, 내가 만지는 모든 것이 공부의 대상입니다.
시간이 있고 경제적인 여유가 있다면 여행 하는 것 자체가 공부하는 겁니다. 새로운 것을 보고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시회나 음악회 관람하는 것 공부하는 겁니다.
저는 용봉동에 살고 있는 곳이 큰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광주 예술의 요람 비엔나레가 있기 때문입니다. 해년마다 각종 전시회 음악회가 열립니다. 얼마 전 14회 광주 비엔나레가 끝나더니 지금은 10회 디자인 비엔나레가 지난 주 시작되었습니다.
가까운 곳에 있으니까 운동 하면서도 근방 찾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눈으로 보고 지식을 머리에 저장하고 삶에서 경험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이 매주 화요일 그림 책 읽기를 다른 장소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정 권사님은 학교수업을 마치고 광주 오셔서 배운다고 하니 열정이 대단하시다 생각했습니다.
저도 캘리그라프 공부를 하고 있는데 나이 드신 분이 많아요 그런데 곧 북구청 주최로 작품을 전시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까요? 글씨를 배우다보니 길에 지나가다 보면 간판 글씨가 눈에 들어옵니다.
그렇습니다....내가 하고 싶은 것 발걸음을 옮겨 닿는 자리가 바로 배움의 자리입니다. 조금만 눈을 뜨고 보면, 내 모든 삶의 자리에서도 배울 것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세 번째는 ‘사람’을 통해 배우는 것입니다....... 친구, 멘토, 스승을 통해 우리는 배움을 얻습니다. 인생의 최고 복이 있다면 사람의 복 곧 인복이 아닙니까? 학교에서 만나는 선생님과 친구들, 직장에서 만나는 동료와 상사들, 가정에서 만나는 배우자와 자녀들 교회에서는 성도들과 목사님, 이러한 공동체가 만나 우리는 배울 수 있고, 누군가로 통해 배운 한 마디가 내 인생이 변화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 가지 배움이 가장 잘 이뤄지는 자리가 어디일까요? 바로 교회 공동체입니다.
이곳에서 책 중의 책인 생명의 말씀인 성경책을 읽습니다. 말씀을 배운 신앙의 선배들은 말씀을 붙들며 살았습니다. 말씀을 지키기 위해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2000년 전 예수님 시대 바리새인들은 율법에 정통하여 배웠지만 예수님을 배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스스로 율법을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의 생각은 눈에 보이는 것을 기준으로 하는 피상적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자신들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인지하지 못한 바리새인들은 실상 무지의 어둠 속에 있었습니다. 저들은 무엇보다 이 세상에 생명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거절했고 예수님을 배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중에 한 사람 사울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다메섹으로 예수 믿는 자를 잡으러 가다가 정오에 빛이 사울에게 비추는데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사울아! 사울아!~~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혈기 등등한 사울이 부활의 주님 음성 앞에 한 발자국도 옮기지 못하고 납작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 후 자신이 배웠던 화려한 이력서를 휴지조각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자신의 이름도 사울에서 바울로 개명했습니다. 그리고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오직 존귀하신 예수님을 배웠습니다. 이방인의 전도자로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때마다 바울은 교회를 찾아가 예수님을 본 받으라 예수님을 배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배운대로 했던 자신을 본받으라고 자신이 세운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권면 했습니다..... 얼마나 멋있는 바울입니까?
이런 바울이 오늘 본문 빌립보서 4:8-9......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오늘 읽은 성경 본문 시작을 보면 ‘끝으로’이렇게 시작합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향한‘마지막 권면’이라는 뜻입니다. 개역성경에서는“종말로”이렇게 시작합니다.
왠지 종말이라고 하면 깨어 있고 싶은 마음이 듭니까?...... 우리는 이 말씀 앞에 바울의 심정을 생각하고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사실 바울의 지금 상황은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감옥에 처해 있는 상황이기에 지금 편지를 쓰고 있는 모습에서 끝이라는 심정으로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빌립보 성도들에게 마지막 어떤 권면으로 당부 할 것인가? 마음 깊은 곳에 사랑의 마음을 담아 끝을 맺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시작을 보면 ‘무엇에든지’라는 말이 6번이나 강조하고 있습니다. ‘무엇에든지’ 무슨 뜻일까요? 헬라어 ‘호사(ὅσα)’라고 하는데, ‘어떤 일을 만나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어떤 형편이든지, 어떤 처지에 있든지’ 그런 뜻입니다. 한마디로 늘 한결 같은 상태를 말합니다. 한결 같이 그리스도인으로써 지켜야 할 6가지 윤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으로써 지켜야할 윤리는 2000년이 지난 지금 우리 시대가 변했다하여도 신앙윤리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세대가 바뀌고 또 바뀌어도 그리스도인은 말씀을 배워야하고 배운대로 살아야 합니다. 본문말씀 8절을 다시 봅니다........ 제일 먼저 기독교 윤리 중에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1. 무엇에든지 참되라고 했습니다.
참되라는 것은 거짓되게 속이는 것이 없이 진실 된 것을 말합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진실하게 살다가 손해 보는 부분이 참 많습니다. 약간만 거짓되면 호박 줄기에 열매가 줄줄이 달려오듯이 수확을 얻을 수 있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속이지 말고 범사에 참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참이십니다. 우리 예수님이 진리이십니다. 그리스도인은 목숨이 위태하여도 언제나 진리 편에서 살아야 합니다.
2. 무엇에든지 경건하라고 했습니다.
경건은 하나님 앞에 있는 마음입니다. 내가 지금 서 있는 자리가 경건의 자리인가? 그런 자세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자세가 경건입니다. 거룩한 교회의 생명은 오직 경건함에 있습니다. 교회가 경건하지 못하니까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가슴아픔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교회 예배당에서도 경건하고 예배당 밖에서도 어디에서든지 무엇에든지 경건해야 합니다. 말, 행동, 마음가짐, 모든 일에 있어서 예수 믿는 사람다운 경건함이 나타나야 합니다. 딤전 4:7.....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3. 무엇에든지 옳아야 합니다.
옳다는 것은 의로움입니다. 의의 기준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 편에 서있는 것이 의입니다. 사람 편에 설 때에 선한 것 같이 보여도 불의를 행할 수 있습니다. 오직 말씀에 설 때 의로울 수 있고 말씀이 곧 의요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4. 무엇에든지 정결하라고 했습니다.
정결은 순결을 말합니다. 순수한 것, 섞이지 않은 것을 말합니다. 구별된 성도라면 세상에서 그렇게 살아야합니다. 세상에 섞여 물에 술탄 듯 술에 물탄 듯 살아가면 한순간에 세상 사람대고 맙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지만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마10:16......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5.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 해야 합니다.
사랑 받을 만큼 살아야합니다. 똑같이 하나님 앞에서 신앙생활을 해도 하나님 사랑을 더 흡족히 받은 분이 계십니다. 그런 분들을 보면 닮고 싶습니다. 이런 모습은 돈, 명예, 지식으로 되지 않습니다.
오직 내 마음에 예수님이 계시고 은혜와 진리로 충만하면 모든 사람에게 사랑 받을 만 사람이 될 것입니다.
6. 칭찬할 만하며 라고 했습니다.
어떤 경우든 칭찬 받을만한 존재로 살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좋은 말을 듣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좋은 말, 덕스러운 말, 은혜스러운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칭찬 받기 위해서 의식적으로 몸부림을 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위선에 빠지기 쉽습니다. 초대교회가 부흥된 원인도 여기에 있었습니다. 행2:47.....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써 말씀 속에서 배운 대로 밥을 먹기 전 기도 먼저 하듯이 몸에 익숙해 졌습니까?
9절....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은혜와 축복을 오래 기억하면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한 12가지 영적훈련 이홉 번째 배우는 것에 대한 12가지 성경 말씀을 암송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