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색채 커뮤니케이션 [2] ::
■ 녹색
에바 헬러의 <색의 유혹>(예담)에 따르면, 서양 사람들이 제일 선호하는 색깔은 청색blue이라고 한다. 녹색은 자연의 생명을 대표하는 색이다. 그래서 누구나 녹색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특히 우리나라는 사방에 산이 많아서 봄에서 여름을 지나 초가을에 이르기까지 녹색의 물결 속에서 산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청색보다는 녹색이 더 친밀하다. [중국에서 브랜드 파워 1위를 달리고 있는 하이얼(HAIER) 기업의 핸드폰 광고. 바탕색이 시원하면서도 고급스럽게 느껴진다] 이 점은 중국인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녹색이 지니고 있는 '건강, 환경보호, 안전, 생명' 등의 이미지로 인하여 더욱 각광을 받는 색으로 자리잡고 있다.
정인갑 교수의 <중국 문화.com>(다락원)에서는 '綠色'의 다양한 쓰임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농약 등을 치지 않고 재배하여 만든 식품을 '綠色食品'[뤼써스핀]이라고 한다. 환경 오염 물질을 함유하지 않은 '야채, 과일, 고기, 우유, 계란, 술, 음료, 조미로, 곡물' 등의 자연식품이 여기에 포함된다. 브라운관에 전자파 차단 장치가 있는 것을 '綠色電視'[뤼써 디앤스]라고 하며, 시력보호용 조명을 '綠色照明'[뤼써 자오밍]이라고 한다. '綠色服裝'[뤼써 푸주앙]을 녹색 패션 의류라고 생각하면 중국문화에 대한 이해부족을 자인하는 것이다. 이는 천연소재 원단, 즉 순면, 순삼베, 순실크나 통풍이 잘 되고 피부에 자극이 없으며 항균 기술 처리를 한 원단으로 만든 복장을 말한다. 옆의 사진을 보면 '綠色網絡'[뤼써왕루어]라는 말이 나온다. 이것도 '녹색 네트워크'라는 뜻이 아니라 '건전한 인터넷 문화'를 의미한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이와 같이 '綠色'과 결합된 새로운 단어들이 대량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이 시대 중국의 문화현상을 설명하는 새로운 키워드는 아마 '綠色'이 아닌가 싶다.
다만 한 가지 주의할 게 있다면 모자를 쓰더라도 녹색 모자만은 쓰지 말라는 것이다. 그걸 보고 중국인들은 자기네끼리 '他戴着(一頂)綠帽子.'(저 사람 녹색 모자를 쓰고 있군)라고 말할 텐데, 그 말은 '당신의 아내가 다른 남자와 사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옛날 명나라와 청나라 때에 기방의 남자에게 녹색 모자를 씌우던 일에서 연유한 것인데 지까지도 그들의 인식 속에 뿌리깊이 남아있는 관념이니까 주의할 일이다.
■ 하양
흰색을 싫어하는 나라나 민족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색의 하나이다. 중국에서는 이 색깔이 죽음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을에는 모든 것들이 빛깔을 잃고 퇴락한다. 생명체들도 잎을 떨구고 겨울을 준비한다. 이 모든 것들은 죽음을 연상케 한다. 그래서 그런지 중국 사람들은 하양에서 부정적인 연상을 많이 한다. 그래서 축제의 색깔인 빨강의 반대 의미로 많이 쓰이고 있다.
중국에서는 장례를 '白'으로 표현한다. 예컨대 '紅白喜事'는 결혼과 장례를 의미한다. 여기서 '紅'은 결혼을 의미하고 '白'은 죽음을 나타낸다. 그래서 하양은 죽음의 색깔이다. '백의민족' 입장에서는 놀랄 일이 아닐 수 없다.
전통 오페라인 경극에서 얼굴에 분칠을 하고 나오는 이는 썩 좋은 인품의 소유자가 아니다. 경극 삼국지에서 허옇게 분칠하고 나오는 두 인물이 있는데 하나는 조조[옆의 사진]이고 또 하나는 동탁이다. 실제 이들은 난세에 한가락하는 영웅들이었는데, 소설 삼국지에서 그만 최악의 간웅과 색마로 바뀌어 버렸다.
중국인들에게 흰색은 반동, 즉 혁신을 거부하는 색깔이기도 하다. 편가르기를 할 때 우리는 청군 백군이라고 한다. 그들은 홍군 백군이라고 한다. 홍군은 좋은 나라의 군대인 중국의 인민해방군을 가리키고 백군은 장개석이 이끄는 나쁜 나라의 군대인 국민당 군대를 가리킨다.
그래서 결혼식 때 흰색 봉투에 돈을 넣어 주는 것은 대단한 금기이다. 결혼 때만 되면 세상의 온갖 사람을 불러모아 흰색 봉투에 정성을 담아 상부상조의 정신을 발휘케 하는 흥미로운 결혼문화를 가지고 있는 한국 사람들이 특히 경계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중국인들이 무조건 흰색을 꺼려하는 것은 아니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습관이 그렇다는 것이지 하양이 가지고 있는 '순수함'의 이미지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여름에 길거리를 나서봐라. 하얀 블라우스나 T 셔츠를 입은 선남선녀들을 천지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여름이면 美白 화장품 광고가 지면을 메우는 것을 보면 그들고 역시 흰색을 좋아함을 알 수 있다. 옆에 있는 광고의 헤드라인은 말한다. '흰 피부가 아름다움의 전부는 아니지만 흰 피부는 어쨌든 아름답다'(美麗不只白晳, 白晳却悤是美麗).
박종한(메타브랜딩 고문/가톨릭대 중어중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