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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점 1. 실종자 가족들이 확인할수 있는 유품이 없다?
안기부는 사건 발생 2년 반만에 안다만 해역에서 비행기 잔해를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안기부는 이 잔해에 남아있는 88올림픽 표기 및 태극마크 표시로 보아 폭파된 KAL기 잔해가 틀림없다고 발표했다. 이에 비해 14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115명이나 되는 탑승객의 유해 또는 유품은 하나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세계 여객기 사고사상 탑승객의 유품 또는 유해가 발견되지 못한 사건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 발생 2년 반만에 찾았다는 잔해는 발견 확률이 불과 1/40000밖에 되지 않는 부위다.(발견된 잔해는 OFFICIAL이라는 단어가 나뉘어 씌어진 동강난 두 조각. 해상에 떠도는 수만 개의 파편 중 꼭 맞는 두 조각을 찾을 가능성은 1/40000에 불과하다) 이에 대한 안기부의 대답이 걸작이다. KAL기 사고 직후 탑승객 가족들은 유해가 발견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안기부에 질의했으며, 이에 대해 안기부는 안다만 해역에 식인상어가 있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의문점 2. 김현희가 KAL기에 놓고내렸다던 폭탄은 어디에 있는가?
안기부 발표에 따르면 사건 당일 김현희 일행은 폭탄은 비닐 쇼핑백에 넣어 기내 선반에 놓고 내렸다고 한다.또한 사건발생 1주일 후 국내 일간지들은 김현희 일행의 소지품에서 화약 반응이 나왔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당시 김현희 일행을 기내에서 목격한 KAL 박길영 사무장은 남자는 짐이 없었고, 여자는 숄더백을 어깨에 메고 있었다고 진술했다.(87년 12월 2일자 조선일보) 즉 목격자의 진술에 따르면 안기부의 발표에서 나온 비닐 쇼핑백은 애초에 없었다는 것이다. 또한 88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김현희 일행의 소지품을 화학적 시험법 등 정밀감정을 한 결과 화약 성분은 검출되지 않았음이 밝혀졌다.(88년 1월 15일자 동아일보)
의문점 3. 미사일 격추에도 12분간 버티는 KAL기가 두부 크기의 폭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는가?
88년 1월 안기부 수사 발표에 의하면 KAL기에 사용된 폭탄은 콤포지션 350g과 PLX액체 폭탄 700cc. 안기부는 정상고도를 비행하고 있던 KAL기가 이 폭탄이 터지자마자 산산조각이 나서 구조 신호를 보내는 것조차 불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우선 89년 2월 검찰공소에 따르면 안기부가 발표한 폭탄은 확인되지 않은 추정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더구나 일본과 미국의 군사전문가들에 의하면 KAL기에 사용된 폭탄은 겨우 두부 크기 정도로서 덩치 큰 비행기를 공중분해 시킬 수 없다고 한다. 즉, 폭탄이 비행기 내부에서 터진다 해도 적어도 수 분간 활공 후 폭파되기 때문에 구조신호 발신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 한 예로 83년 사할린에서 KAL007편은 미사일에 격추되었으나 약 12분간 활공하면서 긴급 구조신호를 보냈다.
의문점 4. 엉뚱한 데서 발견된 겉은 멀쩡한 구명보트.
안기부는 사고 발생 15일만에 육지근처 근해에서 25인승 구명보트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안기부는 ‘구명보트에 있는 공기압축펌프가 높은 열을 받아 휘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공중폭발 가능성이 크다’는 미얀마 내무성의 추정과 함께 발견사실을 발표했다.우선 구명보트의 발견지점이 엉뚱하다. 당시 미해군이 작성한 안다만 해역의 해류도에 의하면 사고 발생 15일 후 구명보트는 육지근처 근해가 아니라 서쪽 대양에서 발견되어야 한다.또한 당시 발견된 구명보트는 바람이 안 들어간 개어진 슬리핑백 형태로서 공기압축펌프 외 비상식량, 약품, 조명탄 등 49점의 물품이 내장되어 있었다. 그러나 구명보트는 인조피혁 외 나머지 물품은 멀쩡한데 펌프만 파손된 채로 발견되었다. 공중에서 산산조각이 날 정도로 폭파된 비행기 안에서 외부는 물론 펌프만을 제외한 나머지가 멀쩡한 구명보트가 발견될 수 있는가.
의문점 5. 김정일의 친필지령, 그 물증은 어디에 있는가?
당시 안기부는 KAL기 사건이 김정일의 친필지령으로 자행된 것이라고 밝혔다. 테러동기는 88올림픽 방해를 목적으로 한다고 발표했다.88년 1월 15일 수사발표 당일 안기부 수사관은 소위 ‘친필지령’ 문제에 대해 ‘실제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발표했다. 그는 ‘친필지령’에 대해 친필지령 사실은 상부기관에 의해 구두로만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즉, 김정일의 ‘친필지령’은 한번도 사실로 확인된 바가 없었다. 또한 북의 테러동기라고 밝힌 88올림픽 방해에 대해서도 일본 언론은 부정적이다. 당시 일본 언론보도에 의하면 북은 남한과 합의한 88올림픽 분산개최를 위해 경기장을 새롭게 건설하고 선수촌, 아파트, 도로, 비행장 등 부대시설 건설이 한창이었다. 이를 두고 국내언론들은 북이 부대시설을 건축하는 것은 88올림픽 때문이 아니라 89년에 있은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을 위해서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축전을 위해 선수촌과 경기장을 짓는 나라가 어디 있는가.
의문점 6. 일본 침투 북괴간첩의 경우는 이미 2년전에 사망한 사람이었다.
당시 발표에 따르면 김현희 일행에 일본 위조여권을 만들어준 사람은 일본에 침투한 북괴간첩인 ‘이경우’라고 소개하고 있다. 88년 1월26일자 요미우리 신문에 의하면, 일본 공안당국은 ‘이경우’라는 자가 KAL858기 사건 발생 2년 전인 85년 간암으로 사망했을 것이 유력하다고 추정했다.
의문점 7. 김현희의 일본어 선생은 술집종업원?
당시 안기부는 북이 일본에서 ‘이은혜’라는 여성을 납치하여 김현희에게 일본어를 가르쳤다고 밝혔다. 일본에서 확인한 바에 의하면 ‘이은혜’라고 불리우는 여성은 일본에서 술집 종업원으로 종사했던 여자로 이 ‘이은혜’ 납치사건은 현재 북일수교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북에 입장에서 보면 일본인과 다름없이 일본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는 조총련계 동포들이 한마디로 널려있다. 일본어 교육을 시키기 위해 술집 종업원을 납치할 필요가 과연 있는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의문점 8. 극약 앰플은 북에서만 사용하는 행동수법이다?
당시 안기부는 김현희 일행이 바레인에서 극약 앰플을 사용하여 음독했다면서 이는 종전의 북한 간첩이 사용했던 행동수법과 동일하다고 발표했다. 앞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김현희가 음독했다는 사실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게다가 극약 앰플로 자살을 시도했으므로 북의 소행이라는 식의 논리는 억지에 가깝다. 이에 대해 동아일보는 72년 5월 북에 밀사로 파견된 이후락 정보부장도 극약 앰플을 소지한 바 있다고 보도했다.
의문점 9. 가족 동의 없이 사망처리 강행
정부는 KAL858 사건 발생 후 실종유예 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일괄적으로 실종자들을 사망처리했다. 심지어 가족들의 동의를 구하지도 않았다. 희생자 가족 중 일부는 이에 항의하여 실종신고 심판청구 재판을 제기하여 97년 7월 21일 서울 가정법원으로부터 정식 실종신고를 받아냈다. 이들은 유품 하나라도 발견되면 ‘사망’ 처리에 동의하겠다고 울면서 호소하고 있다.
의문점 10. 엉뚱한 장소에서 수색작업을 벌였다.
당시 정부는 어디에서 최종 교신 후 사라진 KAL858기의 추락예상지역에서 인명구조 및 기체 수색작업에 만전을 기했다고 발표했다. 87년 12월 5일자 일본 아사히 신문은 최종교신지점이 어디스에서 서쪽으로 403km떨어진 토리스 상공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정부는 어딧해역을 추락예상지역이라고 보고 수색작업에 만전을 기했다고 발표했다.
87년
11월29일 KAL858기 사건 발생. 29일 오후 2시1분 인도양 상공에서 KAL858기 실종, 방콕과 최후 교신 뒤 실종된 것으로 보고. 바그다드 아부다비 방콕 서울(8시 40분 도착 예정) 승객 115명의 생존 미확인.
11월30일오전 정무 외무부 제2차관보 등 현지조사반 급파. 바레인측은 태국과 미얀마 국경지대 수색, 육상수색작업 진전 없음. 관계당국 및 KAL858기 측 인도양과 뱅골만 상공에서 공중폭파 가능성 시사. 당시 홍콩측은 기체내부 문제로 추락가능성 시사, 미국측 역시 추락가능성 시사.
12월1일 아랍 에미레이트 주재 한국대사관, 남한 입국이 금지된 요주의 인물인 ‘하치야 신이치’와 ‘하치야 마유미’ 2명이 바그다드에서 탑승하여 아부다비에서 내렸다고 정부에 보고, 검거. ‘하치야 신이치, 하치야마유미’ 연행 후 조사 중 음독자살을 기도했다고 발표.수색구조반은 추락지점인 밀림을 수색하였으나 수색작업 진전 없음.
12월2일 당시 청와대 비행기에서 내린 2명의 추정인물이 북한계로 추정언급, 대북한 안보체제 강화와 선거방해 책동에 대한 엄단 지시. 정부 재판관할권과 신병인도 요청. (보통 국제범죄의 경우 범인 체포나라, 피해국의 순으로 재판관할권이 부여. 따라서 당신 신병인도는 바레인과 일본이 자신들의 관할권을 포기해야만 가능.)
12월3일 ‘하치야 신이치’는 북한 스파이의 중요관계자로서 ‘미야모토 아키라’와 동일인일 가능성 시사. 이에 일본경찰은 ‘신이치’와 ‘아키라’는 다른 인물임을 확인.
12월4일 마유미 회복
12월5일 3명의 수사요원 파견, 바레인 수사 간접지원 및 정확한 신원과 행적 등 수사방향과 범인 인도 합의. 치안본부는 ‘미야모토 아키라’를 배후인물로 추정.
12월7일 바레인에서 사실상 수사 종결, 정부는 북한의 88올림픽 방해 책동으로 사건 분석.
12월9일 정부, 현지조사단 철수 결정(KAL858기는 실종 처리) 당시 KAL858기 유족,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침묵시위.
12월11일 KAL858기 잔해로 추정되는 물체 발견. 방콕측은 신빙성이 희박하다고 반박.
12월15일 ‘하치야 마유미’ 신병인도. 일본측 음성조사결과 ‘하치야 마유미’는 북경어권 출신. 즉, 조선족일 가능성 시사. 미국방성은 발견된 잔해추정물체가 KAL858기의 잔해가 아니라고 보고.
12월16일 대통령 선거 실시.‘하치야 마유미’ 신상확인 조사 본격착수(안기부 주관), 북한 테러공작임을 확증적으로 표현.
88년
1월15일 ‘하치야 마유미’, 김현희라는 이름으로 TV기자회견. 본인이 KAL858기 폭파범이며 북한 김정일의 사주로 88올림픽 방해, 선거분위기 혼란 야기, 남한내 계급투쟁 촉발을 목적으로 KAL858기를 폭파했다고 발표.
1월21일 미국, 대북한 제재조치로 테러국으로 단정. 북한외교관과의 교류지침 철회, 북한인의 미입국 제한 강화, 세계의 규탄유도를 위한 상징적 대응 발표.
2월4일 일본 조청련, 김현희의 자필선서문은 안기부의 조작이라고 기자회견. 미국, 88올림픽 개최시기에 맞추어 팀스리리트 훈련 실시에 대해 협의.
2월11일 한·일 정부 UN안전보장이사회 소집 요구, KAL858기 폭파사건 북한 규탄 논의. 2월17일 UN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채택 거부
2월22일 북, IOC위원 경질.
89년
2월3일 서울지검, 김현희에 대해 6차례 조사(88.12.2~89.1.23) 결과 발표. △살인죄 △항공기폭파치사죄 △국가보안법 적용하여 불구속 기소.
90년
3월27일 대법원 사형선고
4월12일 김현희 극히 이례적인 특별 사면 조치
91년
6월2일 수기 "이제 여자가 되고 싶어요" 발간, 사건당시 진술과 80여곳 엇갈리는 내용
97년
12월28일 김현희 전직 안기부 요원과 결혼, 개명. 행방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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