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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菩薩의 十種見佛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見佛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於安住世間成正覺佛에 無着見과願佛에 出生見과 業報佛에 深信見과住持佛에隨順見과 涅槃佛에深入見과 法界佛에 普至見과 心佛에 安住見과 三昧佛에 無量無依見과 本性佛에 明了見과 隨樂佛에 普受見이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常得見無上如來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부처님에 대한 봄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세간에 머물러서 바른 깨달음을 이룬
부처님에게서는 집착이 없음을 보며, 서원의 부처님에게서는 태어나심을 보며, 업보(業報)의 부처님에게서는 깊이 믿음을 보며, 머물러 유지하는[住持]부처님에게서는 수순함을 보며, 열반하는 부처님에게서는 깊이 들어감을 보느니라. 법계의 부처님에게서는 두루 이르심을 보며, 마음의 부처님에게서는 편히 머무심을 보며, 삼매의 부처님에게서는 한량없고 의지 없음을 보며, 본성품의 부처님에게서는 분명히 아심을 보며, 즐김을 따르는 부처님에게서는 널리 받으심을 보느니라.
이것이 열이니,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항상 위없는 여래를 보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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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菩薩)의 십종견불(十種見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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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의 열 가지 부처를 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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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불자여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보살마하살은
유십종견불(有十種見佛)하니: 열 가지 부처를 봄이 있으니
하등(何等)이: 무엇이
위십(爲十)고: 열 가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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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어안주세간성정각불(所謂於安住世間成正覺佛)에:이른바 세간에 머물러서 바른 깨우침을 이룬 부처님이
무착견(無着見)과: 집착이 없음을 본다. 설명하려면 많으니 쭉쭉 넘어가겠다.
원불(願佛)에: 서원의 부처님이
출생견(出生見)과: 태어나는 것을 보며
업보불(業報佛)에: 업보의 부처님이
심신견(深信見)과: 깊이 믿음을 보고
주지불(住持佛)에 : 머물러 유지하는 부처는
수순견(隨順見)과: 수순함을 보며
열반불(涅槃佛)에: 열반부처님께는
심입견(深入見)과: 깊이 들어감을 보고
법계불(法界佛)에: 법계 부처님에게는
보지견(普至見)과: 두루 이르심을 보고
심불(心佛)에: 마음의 부처님에게는
안주견(安住見)과: 편안히 머무심을 본다. 해석을 하면 얼마나 좋겠는가마는 쭉쭉 넘어간다.
삼매불(三昧佛)에: 삼매의 부처님에게는
무량무의견(無量無依見)과: 한량없고 의지 없음을 보며
본성불(本性佛)에: 본성의 부처님에게는
명료견(明了見)과: 분명히 아심을 보며
수락불(隨樂佛)에: 즐김을 따르는 부처님에게는
보수견(普受見)이:널리 받으심을 보느니라
시위십(是爲十)이니:이것이 열 가지니
약제보살(若諸菩薩)이:만일 보살들이
안주차법(安住此法)하면: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즉상득견무상여래(則常得見無上如來)니라 : 항상 위없는 여래를 보나니라
(27) 菩薩의 十種佛業
佛子야 菩薩摩訶薩이有十種佛業하니 何等이 爲十고所謂隨時開導가 是佛業이니 令正修行故며 夢中令見이 是佛業이니 覺昔善根故며 爲他演說所未聞經이 是佛業이니 令生智斷疑故며 爲悔纏所纏者하야 說出離法이 是爲佛業이니 令離疑心故며 若有衆生이起慳悋心과乃至惡慧心과二乘心과損害心과疑惑心과散動心과憍慢心하면 爲現如來衆相莊嚴身이 是佛業이니 生長過去善根故며 於正法難遇時에廣爲說法하야 令其聞已하고得陀羅尼智와神通智하야 普能利益無量衆生이 是佛業이니 勝解淸淨故며 若有魔事起어든 能以方便으로 現虛空界等聲하야 說不損惱他法하야 以爲對治하야 令其開悟하면 衆魔가 聞已에威光歇滅이 是佛業이니 志樂殊勝하야 威德大故며 其心無間하야常自守護하야 不令證入二乘正位하며 若有衆生이 根性未熟이면 終不爲說解脫境界가 是佛業이니 本願所作故며 生死結漏를一切皆離하고 修菩薩行호대 相續不斷하야 以大悲心으로 攝取衆生하야 令其起行하야 究竟解脫이 是佛業이니 不斷修行菩薩行故며 菩薩摩訶薩이了達自身과 及以衆生이本來寂滅하야 不驚不怖호대 而勤修福智하야 無有厭足하며 雖知一切法이 無有造作이나 而亦不捨諸法自相하며 雖於諸境界에 永離貪欲이나 而常樂瞻奉諸佛色身하며 雖知不由他하고 悟入於法이나 而種種方便으로 求一切智하며雖知諸國土가 皆如虛空이나 而常樂莊嚴一切佛刹하며 雖恒觀察無人無我나 而敎化衆生하야 無有疲厭하며 雖於法界에 本來不動이나 而以神通智力으로 現衆變化하며 雖已成就一切智智나 而修菩薩行하야 無有休息하며 雖知諸法이 不可言說이나 而轉淨法輪하야 令衆心喜하며 雖能示現諸佛神力이나 而不厭捨菩薩之身하며 雖現入於大般涅槃이나 而一切處에 示現受生하야 能作如是權實雙行法이 是佛業이라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其中하면 則得不由他敎無上無師廣大業이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부처님의 업(業)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때를 따라 가르치고 인도함이 부처님의 업이니 바른 수행을 하게 하는 연고이니라. 꿈속에서 보게 함이 부처님의 업이니, 옛날의 선근을 깨닫는 연고이니라.
다른 이에게 듣지 못하던 경(經)을 연설함이 부처님의 업이니 지혜가 생겨 의심을 끊게 하는 연고이니라.
후회함에 얽힌 이에게 벗어나는 법을 설함이 부처님의 업이니, 의심을 여의게 하는 연고이니라.
만약 어떤 중생이 아끼는 마음과 내지 나쁜 꾀[惡慧]의 마음과 이승(二乘)의 마음과 손해 하는 마음과 의혹하는 마음과, 흔들리는 마음과, 교만한 마음을 일으킨다면 그를 위해서 여래의 여러 가지 상호(相好)로 장엄한 몸을 나타냄이 부처님의 업이니, 과거의 선근을 자라게 하는 연고이니라.
바른 법을 만나기 어려울 때에 법을 널리 설하여 그들로 하여금 듣게 하고는 다라니의 지혜와 신통한 지혜를 얻게 하여 한량없는 중생을 두루 이익하게 함이 부처님의 업이니, 훌륭한 지혜가 청정한 연고이니라.
만약 마(魔)의 장난이 일어나거든 능히 방편으로 허공계와 같은 소리를 내어 남을 해롭게 하지 않는 법을 설하여 그들을 다스려서 깨닫게 하면 모든 마가 듣고는 위엄과 빛이 소멸함이 부처님의 업이니, 수승한 것을 좋아하여 위덕이 커지는 연고이니라. 마음에 간단함이 없이 항상 스스로 수호하여 이승(二乘)의 바른 지위에 들어가지 않게 하며, 만약 중생의 근성이 성숙하지 못하였거든 마침내 해탈하는 경계를 말하지 않음이 부처님의 업이니, 본래의 서원으로 짓는 연고이니라.
생사의 결박된 번뇌를 모두 다 여의고 보살행을 닦아 계속하여 끊어지지 않게 하며, 크게 자비한 마음으로 중생을 거두어서 행을 일으키고 구경에 해탈케 함이 부처님의 업이니, 보살행을 닦아 끊지 않는 연고이니라.
보살마하살이 자신과 중생들이 본래 적멸함을 알아서 놀라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지만 그러나 복덕과 지혜를 부지런히 닦아 만족함이 없느니라.
비록 일체 법이 지음이 없음을 알지마는 그러나 또한 모든 법의 제 모양을 버리지 않느니라.
비록 모든 경계에서 탐욕을 떠났지마는 그러나 모든 부처님의 육신을 뵈옵기 좋아하느니라.
비록 다른 이를 말미암지 않고 법에 깨달아 들어감을 알지마는 그러나 갖가지 방편으로 일체 지혜를 구하느니라.
비록 모든 국토가 다 허공과 같음을 알지마는 그러나 항상 모든 세계를 장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비록 ‘남’도 없고 ‘나’도 없음을 항상 관찰하지마는 그러나 중생을 교화하여 고달픔을 모르느니라.
비록 법계는 본래부터 움직이지 않지마는 그러나 신통과 지혜의 힘으로 여러 가지 변화를 나타내느니라.
비록 이미 일체 지혜의 지혜를 성취하였지마는 그러나 보살행 닦기를 쉬지 아니하느니라. 비록 모든 법이 말로 할 수 없음을 알지마는 그러나 청정한 법륜을 굴리어 대중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느니라. 비록 능히 모든 부처님의 신통한 힘을 나타내지마는 그러나 보살의 몸을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느니라. 비록 큰 열반에 들어감을 나타내지마는 그러나 여러 곳에서 태어나서 능히 이와 같이 방편과 진실을 함께 행하는 법을 짓는 것이 부처님의 업이니라.
이것이 열이니, 만일 모든 보살이 이 가운데 편안히 머물면 다른 이의 가르침을 말미암지 않는 위없고 스승이 없는 광대한 업을 얻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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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菩薩)의 십종불업(十種佛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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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불자여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보살마하살이
유십종불업(有十種佛業)하니:십종의 부처님 업이 있으니
하등(何等)이: 무엇이
위십(爲十)고: 열 가지냐
소위수시개도(所謂隨時開導)가: 이른바 때를 따라서 열어서 인도하는 것
시불업(是佛業)이니: 이것이 부처님의 업이니
영정수행고(令正修行故)며 : 바른 수행을 하게 하는 연고이고
몽중영견(夢中令見)이 : 꿈속에서 보게함이
시불업(是佛業)이니 :부처님의 업이니
각석선근고(覺昔善根故)며:옛날의 선근을 깨닫게 하는 연고이고
위타연설소미문경(爲他演說所未聞經)이: 다른 이에게 듣지 못하던 경을 연설함이
시불업(是佛業)이니: 부처님의 업이니
영생지단의고(令生智斷疑故)며: 지혜가 생겨서 의심을 끊게 하는 연고이다.
위회전소전자(爲悔纏所纏者)하야: 후회함에 얽힌 이에게는
설출리법(說出離法)이: 벗어나는 법을 말하는 것이
시위불업(是爲佛業)이니: 부처님의 업이니
영리의심고(令離疑心故)며: 의심을 여의게 하는 연고이니라.
약유중생(若有衆生)이: 만약에 어떤 중생이
기간린심(起慳悋心)과: 아끼는 마음과 내지는
내지악혜심(乃至惡慧心)과 :악혜심 아주 나쁜, 잔머리 쓰는 꾀의 마음과
이승심(二乘心)과 :이승심과
손해심(損害心)과: 남에게 해끼치는 마음과
의혹심(疑惑心)과 : 의혹하는 마음과 신심이 없는 마음과
산동심(散動心)과 : 흔들리는 마음과
교만심(憍慢心)하면: 교만한 마음을 일으키거든
위현여래중상장엄신(爲現如來衆相莊嚴身)이: 그런 중생들에게 여래의 여러 가지 상호로 장엄한 몸을 나타내는 것이
시불업(是佛業)이니: 부처님의 업이니
생장과거선근고(生長過去善根故)며: 과거의 선근을 자라게 하는 연고이니라.
어정법난우시(於正法難遇時)에: 바른 법을 만나기 어려운 때에
광위설법(廣爲說法)하야 : 법을 널리 설하야
영기문이(令其聞已)하고 : 그들이 듣고는
득다라니지(得陀羅尼智)와: 다라니 지혜의
신통지(神通智)하야: 신통 지혜와
보능이익무량중생(普能利益無量衆生)이: 한량없는 중생을 두루 이익케 하는 것이
시불업(是佛業)이니: 부처님의 업이니
승해청정고(勝解淸淨故)며: 훌륭한 지혜가 청정한 연고다.
약유마사기(若有魔事起)어든: 만약에 마의 장난이 일어나거든
능이방편(能以方便)으로: 능히 방편으로써
현허공계등성(現虛空界等聲)하야: 허공계 등의 소리를 내며
설불손뇌타법(說不損惱他法)하야: 남을 해롭게 하지 않는 법을 말하여
이위대치(以爲對治)하야: 다스려서
영기개오(令其開悟)하면: 깨닫게 하면
중마(衆魔)가:모든 마가
문이(聞已)에: 듣고는
위광헐멸(威光歇滅)이: 위엄과 빛이 소멸하게 함이
시불업(是佛業)이니: 부처님의 업이니
지락수승(志樂殊勝)하야 : 지락이 훌륭한 것을 좋아하여
위덕대고(威德大故)며 : 위덕이 커지는 연고니라.
기심무간(其心無間)하야 : 그 마음이 간단함이 없이
상자수호(常自守護)하야: 항상 스스로 수호하여
불령증입이승정위(不令證入二乘正位)하며: 이승의 바른 지위에 들어가지 않게 하며
약유중생(若有衆生)이 :만약에 어떤 중생의
근성미숙(根性未熟)이면:근성이 아직 성숙하지 못하여 미숙이거든
종불위설해탈경계(終不爲說解脫境界)가: 끝까지 해탈하는 경계를 말하지 않음이
시불업(是佛業)이니:부처님의 업이니
본원소작고(本願所作故)며: 본래의 서원으로 짓는 연고이니라.
생사결루(生死結漏)를: 생사에 결박된 번뇌를
일체개리(一切皆離)하고 : 모두 여의고 일체개리하고
수보살행(修菩薩行)호대: 보살의 행을 닦아서
상속부단(相續不斷)하야: 계속하여 상속하여 부단이라. 끊어지지 않게 하며
이대비심(以大悲心)으로: 크게 대비한
섭취중생(攝取衆生)하야: 중생을 거두어서
영기기행(令其起行)하야: 하여금 그 행을 일으키고
구경해탈(究竟解脫)이: 필경에 해탈하게 함이
시불업(是佛業)이니: 이것이 부처님의 업이니
부단수행보살행고(不斷修行菩薩行故)며: 보살행을 닦아서 끊는 연고이니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보살마하살이
요달자신(了達自身)과: 자신과
급이중생(及以衆生)이:중생들이
본래적멸(本來寂滅)하야: 본래 고요하여,본래 고요하다는 것은 본래 없다는 말이다.
불경불포(不驚不怖)호대: 놀라지도 않고,
이근수복지(而勤修福智)하야:부지런히 복과 지혜를 닦아서
무유염족(無有厭足)하며: 만족함이 없이 계속 싫증 없이 정진하고
수지일체법(雖知一切法)이: 비록 일체법이
무유조작(無有造作)이나: 조작이나 지음이 없는 줄 알지만
이역불사제법자상(而亦不捨諸法自相)하며: 이(而)그러나, 역(亦) 또한 제법의 모양을 버리지 아니하며
수어제경계(雖於諸境界)에: 비록 모든 경계에
영리탐욕(永離貪欲)이나: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욕심은 없지만
이상락첨봉제불색신(而常樂瞻奉諸佛色身)하며: 그러나 부처님의 육신을 뵈옵기를 좋아하고
수지불유타(雖知不由他)하고: 비록 다른 이의 깨우침을 말미암지 않고, 불유타오라고 많이 배웠다.
요지일체법 자성무소유라 거기서 다 나오는 것이다.
성취혜신(成就慧身)에 불유타오(不由他悟)라
오입어법(悟入於法)이나:법을 확실히 깨쳐서 증입함을 알지만이종종방편(而種種方便)으로: 그러나 종종방편에 확실히 들어가서 아무것도 없는 줄 알지만, 진공인 줄 알지만, 묘유를 얼마든지 깨친다. 갖가지 방편으로써
구일체지(求一切智)하며: 온갖 지혜를 구하고
수지제국토(雖知諸國土)가 : 비록 모든 국토가
개여허공(皆如虛空)이나: 허공 같은 줄을 알지만
이상락장엄일체불리(而常樂莊嚴一切佛刹)하며:그러나 항상 장엄일체불리를 즐긴다.
반야바라밀을 넘어서서 방편바라밀이 완성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을 지금 쭉 써놨다. 항상 모든 경계를 장엄하기를 좋아하며
수항관찰무인무아(雖恒觀察無人無我)나: 비록 무아, 무인이라 아상도 인상도 없음을 관찰하지만, 그걸 제대로 알긴 하지만
이교화중생(而敎化衆生)하야: 그러나 중생을 교화하려다 보니까
무유피염(無有疲厭)하며: 고달픈 줄도 모르고
수어법계(雖於法界)에 : 비록 법계에
본래부동(本來不動)이나: 본래부동이라. 본래부터 구래부동명위불인 줄 누가 모르는가. 다 알지만
이이신통지력(而以神通智力)으로: 그러나 신통한 힘으로써
현중변화(現衆變化)하며: 여러 가지 변화를 나타내며, 모르는 중생들을 깨우치려고 여러 가지 장난을 친다는 것이다.
수이성취일체지지(雖已成就一切智智)나: 비록 이미 일체 지지를 다 성취했지만
이수보살행(而修菩薩行)하야: 그러나 보살행을 닦기를
무유휴식(無有休息)하며: 쉬지 아니하며
수지제법(雖知諸法)이: 모든 법이
불가언설(不可言說)이나: 말로 할 수 없음을 알지만
이전정법륜(而轉淨法輪)하야: 청정한 법륜을 굴리고
영중심희(令衆心喜)하며 : 여러 중생들의 마음을 늘 기쁘게 하며
수능시현제불신력(雖能示現諸佛神力)이나 : 비록 모든 부처님의 신통한 힘을 나타내지만
이불염사보살지신(而不厭捨菩薩之身)하며: 이(而) 그러나 보살의 몸을 싫어하지 아니하고
수현입어대반열반(雖現入於大般涅槃)이나: 비록 대반열반에, 앞에 반(般)자는 들어간다는 뜻이다. 들어간다. 대반.
흔히 반열반(般涅槃)이라 하잖는가.
대반이란 다른 말로 구경이라 한다. 구경열반. 구경열반을 대반이라 한다.
그러니까 뒤에 열반은 흔히 멸이라 쓰고 앞에 것은 입이라고 써서 입멸이라고 한다.
입멸 열반에 멸에 들어갔다 이 말을 대반열반 이렇게 이야기 한다. 그 대반이라 반열반이라고 하는 것은 구경열반이라.
반야심경에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하잖는가.
구경을 해석하자면 반열반이다, 이렇게 하면 된다. 입열반(入涅槃)이라. 열반에 들어간다. 큰 열반에 들어감을 나투지만 열반에 들어가면 아무것도 없는데
이일체처(而一切處)에: 그러나 일체처에서
시현수생(示現受生)하야: 마음대로 태어나서
능작여시권실쌍행법(能作如是權實雙行法)이:능히 방편과 실상을 쌍행법, 함께 행하는 법을 짓는 것이.
방편은 자취라고 하고 실상은 무상이라고 한다.
진리는 비등이요 실상은 이연이라. 실상은 이(理)라고 하고 진실이라 하고 방편은 사상이라, 현실이라고 한다. 이판사판(理判事判). 저울대 권(權)은 방편이라고 한다.
저울대 추가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는 것은 실물이 담겨야 한다. 저울대에 달여지는 물건. 그것을 실상이라고 한다.
실상은 다 허공이다.
일상(一相)도 무상(無相)이라.
방편과 실상을 함께 행하는 법을 짓는 것이
시불업(是佛業)이라 : 부처의 업이니라. 실상은 부처님의 입장이고, 방편은 중생을 실상으로 당기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기신론 같은 데는 이렇게 해 놓았다.
‘생멸법을 통해서 중생을 진여법으로 데리고 간다’ 생멸법을 관할 수 있는 것은 비파사나라고 하고, 진여법으로 데려가는 것을 사마타라고 한다.
그 두 개는 다 똑 같지만, 굳이 그렇게 이야기한다.
통발로서 통발법이 있고, 통발에 잡히는 법이 있고, 이렇게 이야기 한다.
서문에도 나오고, 뒤에 기신론 과목에도 나온다.
화엄경에도 다 그렇게 나온다.
아까 이야기 했던 1주설법, 2주설법,3주설법,4주설법,5주설법이 다 그런 이야기다.
시위십(是爲十)이니 :이것이 열이니
약제보살(若諸菩薩)이: 모든 보살이
안주기중(安住其中)하면: 이 가운데 편안히 머물면
즉득불유타교무상무사광대업(則得不由他敎無上無師廣大業)이니라 : 남의 가르침을 말미암지 않고 무상무사광대업이니라.
최고의 스승도 없고 자기의 본지풍광 그대로, 무사(無師)라고
스승이 없다는 것은 우리의 본래면목이지 않은가. 본래면목의 입장에서 누가 가르칠 수 있겠는가.아무도 못 가르친다.
자도자수라고 한다. 스스로 제도하고, 스스로 수행한다. 어느 정도 수학 문제 풀 때까지는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하겠지만, 진짜 문제 해결하는 것은 자기에게 답이 있는 것이다.
(28) 菩薩의 十種慢業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慢業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於師僧父母와 沙門婆羅門이 住於正道하야 向正道者인 尊重福田所에 而不恭敬이 是慢業이요 或有法師가 獲最勝法하야 乘於大乘하야 知出要道하고 得陀羅尼하야 演說契經廣大之法호대 無有休息이어든 而於其所에 起高慢心하며 及於所說法에 不生恭敬이 是慢業이요 於衆會中에聞說妙法하고 不肯歎美하야 令人信受가是慢業이요 好起過慢하야 自高陵物하야 不見己失하며 不知自短이 是慢業이요好起過(慢)過慢하야 見有德人하고 應讚不讚하며 見他讚歎하고 不生歡喜가 是慢業이요 見有法師가 爲人說法에 知是法是律이며 是眞實이며 是佛語로대 爲嫌其人일새 亦嫌其法하야 自起誹謗하고 亦令他謗이 是慢業이요
自求高座하며 自稱法師하야 應受供給이요 不應執事라하며 見有耆舊와 久修行人호대 不起逢迎하며 不肯承事가 是慢業이요
見有德人하고 顰蹙不喜하며 言辭麤獷하야 伺其過失이 是慢業이요 見有聰慧知法之人하고 不肯親近하야 恭敬供養하며 不肯諮問何等爲善이며 何等不善이며 何等應作이며 何等不應作이며 作何等業하면 於長夜中에 而得種種利益安樂고하야 愚癡頑很과 我慢所呑으로 終不能見出要之道가 是慢業이요 復有衆生이 慢心所覆로 諸佛出世에 不能親近하야 恭敬供養하며 新善不起하고 舊善消滅하며 不應說而說하고 不應諍而諍하면 未來에 必墮險難深坑하야 於百千劫에 尙不値佛이어든 何況聞法가 但以曾發菩提心故로 終自醒悟가 是慢業이니 是爲十이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교만한 업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스님이나 부모나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바른 도에 머무르고 바른 도에 향하는 이들의 존중한 복의 밭에 공경하지 아니함이 교만한 업이니라. 혹 어떤 법사가 가장 수승한 법을 얻어서 대승을 의지하여 벗어나는 중요한 길을 알며, 다라니를 얻고 경전의 광대한 법을 연설하여 쉬지 아니하거든, 그에게 높은 교만한 마음을 내거나 그가 설하는 법을 공경하지 아니함이 교만한 업이니라. 대중이 모인 곳에서 미묘한 법을 듣고도 찬탄하지 아니하여 다른 이들로 하여금 믿게 하지 않음이 교만한 업이니라. 남보다 잘난 체하는 교만[過慢]을 내어 자기가 높다 하여 남을 업신여기며, 제 허물을 보지 않고 자기의 잘못을 알지 못함이 교만한 업이니라. 남보다 잘난 체하는 것보다 더 교만을 내어 도덕이 있는 이를 보고 찬탄해야 할 것을 찬탄하지 않으며, 다른 이가 찬탄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음이 교만한 업이니라. 어떤 법사가 사람들에게 법을 말함을 보고 그것이 옳은 법이고 옳은 계율이며 진실하고 부처님 말씀인 줄을 알면서도 그 사람을 미워하고 또한 법까지 미워하며 스스로 비방하고 또한 다른 이로 하여금 비방하게 함이 교만한 업이니라. 스스로 높은 자리를 구하여 자칭 ‘법사로다.’라고 하면서 응당 공양을 받아야 하고 손수 일을 하지 않아야 한다 하며, 나이가 많고 오랫동안 수행한 큰스님을 보고도 일어나서 영접하지도 않고 받들어 섬기지도 아니함이 교만한 업이니라. 유덕한 이를 보고는 얼굴을 찌푸리고 좋아하지 않으며, 말이 거칠고 그의 허물만 찾는 것이 교만한 업이니라. 총명하고 지혜가 있어 법을 아는 사람을 보고도 친근하여 공경하고 공양하려 하지 않으며, 어떤 것이 선이고 어떤 것이 악이며, 어떤 것은 할 것이고 어떤 것은 아니할 것이며, 무슨 업을 지으면 긴긴 밤에 갖가지 이익과 안락을 얻는가를 묻지 아니하고, 어리석고 사납고 교만한 연고로 마침내 벗어나는 중요한 길을 보지 못함이 교만한 업이니라. 다시 어떤 중생은 교만한 마음에 가려져서 부처님이 세상에 나시어도 친근하여 공경하고 공양하지 아니하느니라. 새로운 선한 일은 생기지 않고 예전의 선한 일은 소멸되며, 말하지 않을 것을 말하고 다투지 않을 것을 다투느니라. 그래서 오는 세상에는 반드시 험난한 구덩이에 빠져서 백천겁 동안에도 오히려 부처님을 만나지 못하거늘 어떻게 하물며 법을 들을 수 있겠는가. 다만 일찍이 보리심을 내었으므로 마침내 스스로 깨달음이 교만한 업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
보살(菩薩)의 십종만업(十種慢業)
*
불자(佛子)야: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보살에게는
유십종만업(有十種慢業)하니: 열 가지 교만한 업이 있으니
하등(何等)이: 무엇이
위십(爲十)고: 열 가지인가?
소위어사승부모(所謂於師僧父母)와:이른바 스승이나 부모나
사문바라문(沙門婆羅門)이: 사문이나 바라문이
주어정도(住於正道)하야:바른 도에 머무르고
향정도자(向正道者)인: 바른 도에 향하는 이들의
존중복전소(尊重福田所)에: 존중한 복 밭에
이불공경(而不恭敬)이: 공경하지 아니함이
시만업(是慢業)이요: 교만한 업이다.
*
혹유법사(或有法師)가:어떤 법사가
획최승법(獲最勝法)하야: 가장 좋은 법을 얻고
승어대승(乘於大乘)하야: 대승을 의지하여
지출요도(知出要道)하고: 벗어나는 중요한 길을 알며
득다라니(得陀羅尼)하야: 다라니를 얻고
연설계경광대지법(演說契經廣大之法)호대:광대한 경전의 법을 연설하여
무유휴식(無有休息)이어든:쉬지 아니하거든
이어기소(而於其所)에: 기소에
기고만심(起高慢心)하며: 교만한 마음을 내거나
급어소설법(及於所說法)에: 말하는 법을
불생공경(不生恭敬)이:공경하지 아니함이
시만업(是慢業)이요:교만한 업이니라.
어중회중(於衆會中)에:대중이 모인 곳에서
문설묘법(聞說妙法)하고:묘한 법을 듣고도
불긍탄미(不肯歎美)하야:찬탄하지 아니하고
영인신수(令人信受)가: 다른 이로 믿게 하지 아니하는 것이
시만업(是慢業)이요: 이 교만한 업이다.
*
호기과만(好起過慢)하야:교만 위에는 과만이다. 지나친 교만,
과만 위에는 만과만이 있다.
남보다 잘난 체 하는 교만을 내어 자기보다 높다 하여 남을 업신여기고
자고능물(自高陵物)하야: 자고능물하야
불견기실(不見己失)하며: 자기 허물은 보지 않고
부지자단(不知自短)이: 자기의 잘못을 알지 못함이
시만업(是慢業)이요: 교만한 업이니라
호기과만과만(好起過(慢)過慢)하야:남보다 잘난 체 하는 교만을 내어
견유덕인(見有德人)하고: 도덕이 있는 이를 보고도
응찬불찬(應讚不讚)하며: 찬탄해야 할 것을 찬탄하지 않으며
견타찬탄(見他讚歎)하고 : 다른 이가 찬탄하는 것을
불생환희(不生歡喜)가: 또 기뻐하지 않음이
시만업(是慢業)이요:교만한 업이니라.
*
견유법사(見有法師)가:어떤 법사가
위인설법(爲人說法)에: 사람들에게 법을 말함을 보고
지시법시율(知是法是律)이며:그것은 옳은 법이고 옳은 계율이며
시진실(是眞實)이며 :진실하고
시불어(是佛語)로대: 부처님 말씀인 줄 알면서도
위혐기인(爲嫌其人)일새:그 사람을 미워하고
역혐기법(亦嫌其法)하야:그 법까지 미워하고 자기 마음에 안든다고
자기비방(自起誹謗)하고: 스스로 비방을 일으키고
역령타방(亦令他謗)이:다른 사람도 저 사람 비방하게 하는
시만업(是慢業)이요 : 이것이 교만한 업이니라.
*
자구고좌(自求高座)하며:자기가 높은 자리를 구하여
자칭법사(自稱法師)하야: 법사로다 하고
응수공합(應受供給)이요: 공양을 받아야 하고
불응집사(不應執事)라하며:손수 일을 하지 않아야 한다 하고
견유기구(見有耆舊)와:오랫동안 수행한 큰스님을 보고도
구수행인(久修行人)호대: 구수행인 장로를 보고도 일어나서
불기봉인(不起逢迎)하며: 영접하지도 않고 아만이 탱천해서
불긍승사(不肯承事)가: 받들어 섬기지도 아니함이
시만업(是慢業)이요 : 교만한 업이니라.
*
견유덕인(見有德人)하고: 덕이 있는 사람을 보고는
빈축불희(顰蹙不喜)하며: 얼굴을 찌푸리고 좋아하지 않으며
언사추광(言辭麤獷)하야 : 언사가 추광이라. 말이 거칠고 사납고 쌍욕을 하고
사기과실(伺其過失)이 :그 허물만 찾는 것이, 빼딱하게 구멍 뚫어서 남의 약점만 찾는 것이
시만업(是慢業)이요:교만한 업이다.
*
견유총혜지법지인(見有聰慧知法之人)하고:총명하고 지혜 있고
불긍친근(不肯親近)하야 :법을 아는 사람을 보고도 친근하여
공경공양(恭敬供養)하며 :공경 공양하지 아니하며
불긍자문하등위선(不肯諮問何等爲善)이며: 어떤 것이 선이고 하등불선(何等不善)이며: 하등이 불선이고
하등응작(何等應作)이며:어떤 것이 응당히 해야 될 것이고
하등불응작(何等不應作)이며 :어떤 것이 하지 아니할 것이며
작하등업(作何等業)하면: 무슨 업을 지으면
어장야중(於長夜中)에 : 긴긴밤에
이득종종이익안락(而得種種利益安樂)고하야 : 갖가지 이익과 안락을 얻는가? 묻지 아니하고
우치완흔(愚癡頑很)과: 어리석고 사납고
아만소탄(我慢所呑)으로: 교만한 연고로
종불능견출요지도(終不能見出要之道)가: 마침내 벗어날 중요한 길을 보지 못하는 것이, 출요도를 보지 못하는 것이
시만업(是慢業)이요: 교만한 업이다. 인생이 참 가련하다.
*
부유중생(復有衆生)이: 또한 어떤 중생은
만심소부(慢心所覆)로: 교만에 가려져서 만심으로 소부하여, 뒤덮혀서
제불출세(諸佛出世)에: 부처님이 세상에 태어나셔도
불능친근(不能親近)하야 :친견하며
공경공양(恭敬供養)하며: 공경공양하지 못한다.
인도에 9억가가 있었는데 그중 3억가는 부처님을 친견해서 법문도 듣고 3억가는 부처님이 오셨다 소리는 들었는데 법문은 못 듣고 3억가는 부처님이 오셨는지 안 오셨는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있다.
똑같은 건물에 살아도 그렇다.
오늘 강의를 들으면서도 그렇다.
‘내일 바쁜 일하고 오늘 지금 가는 일하고 어떻게 바꿀 수 있는 일인가?’
신선불기(新善不起)하고: 새 선한 일은 생기지 아니하고
구선소멸(舊善消滅)하며:예전에 선한 일은 소멸되고
불응설이설(不應說而說)하고: 말하지 않을 것을 말하고
불응쟁이쟁(不應諍而諍)하면 :다투지 않을 것을 다투며
미래(未來)에:오는 세상에는
필타험난심갱(必墮險難深坑)하야 : 반드시 험한 구덩이에 삼악도에 빠져서
어백천겁(於百千劫)에 : 백천겁 동안에
상불치불(尙不値佛)이어든: 부처님을 만나지도 못하거늘
하황문법(何況聞法)가: 어떻게 법을 들을 수 있으리요. 상불치불이거든 하황문법가.
단이증발보리심고(但以曾發菩提心故)로: 다만 일찍이 보리심을 내었으므로
종자성오(終自醒悟)가:필경에는 스스로 깨달음이
시만업(是慢業)이니:교만한 업이니
시위십(是爲十)이니라 :이것이 열 가지니라.
(29)菩薩의 十種智業
若諸菩薩이 離此慢業하면 則得十種智業하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信解業報하야 不壞因果가 是智業이요 不捨菩提心하고 常念諸佛이 是智業이요 近善知識하야 恭敬供養하며 其心尊重하야 終無厭怠가 是智業이요 樂法樂義하야 無有厭足하며 遠離邪念하고 勤修正念이 是智業이요 於一切衆生에 離於我慢하며 於諸菩薩에 起如來想하며 愛重正法을 如惜己身하며 尊奉如來를 如護己命하며 於修行者에 生諸佛想이 是智業이요 身語意業이 無諸不善하야 讚美賢聖하며 隨順菩提가 是智業이요 不壞緣起하고離諸邪見하며 破暗得明하야 照一切法이 是智業이요 十種廻向으로 隨順修行하며 於諸波羅蜜에 起慈母想하며 於善巧方便에 起慈父想하야 以深淨心으로 入菩提舍가 是智業이요 施戒多聞과 止觀福慧의 如是一切助道之法을 常勤積集하야 無有厭倦이 是智業이요 若有一業이 爲佛所讚하야 能破衆魔煩惱鬪諍하며 能離一切障蓋纏縛하며 能敎化調伏一切衆生하며 能隨順智慧하야 攝取正法하며 能嚴淨佛刹하며 能發起通明이면 皆勤修習하야 無有懈退가 是智業이라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其中하면 則得如來의 一切善巧方便과 無上大智業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교만한 업을 여의면 열 가지 지혜의 업을 얻으리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업과 과보를 믿고 이해하여 원인과 결과를 무너뜨리지 않음이 지혜의 업이니라.
보리심을 버리지 않고 모든 부처님을 항상 생각함이 지혜의 업이니라. 선지식을 친근하여 공경하고 공양하며 마음으로 존중하게 여기며 끝까지 게으르지 않음이 지혜의 업이니라.
법을 좋아하고 이치를 좋아하여 싫어할 줄 모르며 삿된 생각을 멀리 여의고 바른 생각을 부지런히 닦음이 지혜의 업이니라. 일체 중생에게 교만한 마음을 여의고 보살들에게 여래라는 생각을 내며, 바른 법 사랑하기를 내 몸을 아끼듯 하고, 여래를 받들기를 내 목숨을 보호하듯 하며, 수행하는 이에게 모두 부처님이라는 생각을 내는 것이 지혜의 업이니라.
몸과 말과 뜻의 업에 모두 착하지 않음이 없고, 성현들을 찬탄하고 보리를 수순함이 지혜의 업이니라.
연기(緣起)를 파괴하지 않고 모든 삿된 소견을 여의며, 어둠을 깨뜨리고 밝음을 얻어 일체 법을 비춤이 지혜의 업이니라.
열 가지 회향을 수순하여 수행하며, 모든 바라밀다에는 자비로운 어머니라는 생각을 내고 뛰어나고 교묘한 방편에는 자비로운 아버지라 하는 생각을 내어 깊고 청정한 마음으로 보리의 집에 들어감이 지혜의 업이니라.
보시와 계율과 많이 듣는 것과 그치[止]고 관(觀)하고 복과 지혜의 이와 같은 일체 도를 돕는 법을 항상 부지런히 모아 게으르지 아니함이 지혜의 업이니라.
만약 한 가지 업이라도 부처님이 찬탄하는 바가 되어 능히 모든 마와 번뇌와 투쟁을 깨뜨리며, 능히 일체 장애와 덮음과 결박과 얽힘을 여의며, 능히 일체 중생을 교화하고 조복하며, 능히 지혜를 수순하여 바른 법을 거두어 가지며, 능히 부처님 세계를 깨끗이 장엄하며, 능히 육신통과 세 가지 밝음을 발기(發起)하여 모두 다 부지런히 닦고 물러가지 않음이 지혜의 업이니라. 이것이 열이니, 만일 모든 보살이 이 가운데 편안히 머물면 곧 여래의 일체 교묘한 방편과 위없는 큰 지혜의 업을 얻느니라.”
*
보살(菩薩)의 십종지업(十種智業)
*
보살은 열 가지 지혜의 업을 얻는다.
*
약제보살(若諸菩薩)이: 만일 보살들이
이차만업(離此慢業)하면: 이 교만한 업을 떠나면, 순서대로 되어 있다.
선재동자도 관세음보살님을 딱 만나니까 자비가 오니까 정취보살이, 지혜의 보살이 썩 와 버리잖는가.
정취, 바른 취의 보살이 와 버렸다.
그러니까 선재동자가 꼭 선지식을 찾아가는 것만은 아니다.
공부가 되면 선지식이 제자를 찾아온다.
가섭존자가 출가할 때 훌륭한 제자가 온다고 부처님이 맨발로 뛰어나갔다지 않는가.
즉득십종지업(則得十種智業)하나니:열 가지 지혜의 업을 얻으니
하등(何等)이:무엇이
위십(爲十)고:열 가지인가
소위신해업보(所謂信解業報)하야: 이른바 업과 과보를 믿고 알아서 신해업보하야
불괴인과(不壞因果)가:인과를 무너뜨리지 아니함이
시지업(是智業)이요: 지혜의 업이니라.
*
불사보리심(不捨菩提心)하고:보리심을 버리지 아니하고
상념제불(常念諸佛)이:부처님을 항상 생각함이
시지업(是智業)이요:지혜의 업이니라
근선지식(近善知識)하야:선지식을 친근하여
공경공양(恭敬供養)하며: 공경하고 공양하며
기심존중(其心尊重)하야: 마음으로 존중하게 여기며
종무염태(終無厭怠)가: 게으르게 여기지 아니함이
시지업(是智業)이요: 지혜의 업이니라
*
요법요의(樂法樂義)하야: 법을 좋아하고 이치를 좋아하여
무유염족(無有厭足)하며: 만족함이 없음이니
원리사념(遠離邪念)하고: 삿된 생각을 멀리 여의고
근수정념(勤修正念)이: 바른 생각을 부지런히 닦음이
시지업(是智業)이요: 지혜의 업이니라
굳이 설명할 것도 없다. 정성스럽게 읽으면 강의가 될 것 같다. 완제품 같다.
*
어일체중생(於一切衆生)에: 일체 중생에게
이어아만(離於我慢)하며: 교만한 마음을 여의고
어제보살(於諸菩薩)에:보살들에게
기여래상(起如來想)하며: 여래란 생각을 내며
애중정법(愛重正法)을: 바른 법 사랑하기를
여석기신(如惜己身)하며: 내 몸 아끼듯이 하고
존봉여래(尊奉如來)를: 여래를 받들기를
여호기명(如護己命)하며: 내 목숨 보호듯이 하며
어수행자(於修行者)에: 수행하는 이에게
생제불상(生諸佛想)이: 부처님이라고 하는 생각을 내는 것이
시지업(是智業)이요: 지혜의 업이니라
*
신어의업(身語意業)이: 몸과 말과 뜻의 업에 삼업에
무제불선(無諸不善)하야: 착하지 아니함이 없고
찬미현성(讚美賢聖)하며:성현들을 찬탄하고
수순보리(隨順菩提)가: 보리를 순종함이
시지업(是智業)이요: 지혜의 업이니라.
불괴연기(不壞緣起)하고: 연기를 파괴 아니하고
이제사견(離諸邪見)하며: 삿된 소견을 여의고
파암득명(破暗得明)하야: 어둠을 깨뜨리고 밝음을 열어서
조일체법(照一切法)이:모든 법을 비춤이
시지업(是智業)이요 : 지혜의 업이니라.
*
십종회향(十種廻向)으로: 열 가지 회향으로
수순수행(隨順修行)하며: 따라서 수행하며
어제바라밀(於諸波羅蜜)에 : 바라밀다에는
기자모상(起慈母想)하며: 자애로운 어머니라는 생각을 내고
어선교방편(於善巧方便)에: 아주 솜씨 있는 방편에는
기자부상(起慈父想)하야: 자상한 아버지라는 생각을 내어서
이심정심(以深淨心)으로: 깊고 깨끗한 마음으로
입보리사(入菩提舍)가: 보리의 집에 들어감이
시지업(是智業)이요: 지혜의 업이라. 원아속회무위사(願我速會無爲舍) 보리사 이름 좋잖은가? 입보리사.
보리의 집에 들어가는 것이 이것이 지혜의 업이다.
*
시계다문(施戒多聞)과: 시계다문과 보시 계율 다문이라고 하는 것에 포함된 뜻은 ‘확실히 안다’는 것이다.
지관복혜(止觀福慧)의: 그치고 관하고 복과 지혜의
여시일체조도지법(如是一切助道之法)을 : 온갖 도를 돕는 법을, 지혜조도법을
상근적집(常勤積集)하야: 항상 부지런히 모아서
무유염권(無有厭倦)이: 게으르지 아니함이
시지업(是智業)이요: 지혜의 업이니라.
*
약유일업(若有一業)이: 한 가지 업이라도
위불소찬(爲佛所讚)하야: 부처님을 찬탄하고. 약유일업이라도 위불소찬이라. 부처님이 찬탄하고
능파중마번뇌투쟁((能破衆魔煩惱鬪諍)하며 :모든 마의 번뇌와 투쟁을 깨뜨리며
능리일체장개전박(能離一切障蓋纏縛)하며: 모든 장애와 덮음과 결박과 얽힘을 여의며
능교화조복일체중생(能敎化調伏一切衆生)하며:일체 중생을 교화하고 조복시키며
능수순지혜(能隨順智慧)하야: 지혜를 따라서
섭취정법(攝取正法)하며: 바른 법을 거두어 가지며
능엄정불찰(能嚴淨佛刹)하며: 부처님 세계를 깨끗이 장엄하며
능발기통명(能發起通明)이면:신통과 밝음을 발기하여
개근수습(皆勤修習)하야:부지런히 닦고
무유해퇴(無有懈退)가:물러가지 않음이
시지업(是智業)이라:지혜의 업이니라.
시위십(是爲十)이니:이것이 열 가지니
약제보살(若諸菩薩)이:만일 보살들이
안주기중(安住其中)하면:이 가운데 편안히 머물면
즉득여래(則得如來)의:여래의
일체선교방편(一切善巧方便)과 :온갖 교묘한 방편과
무상대지업(無上大智業)이니라 :위없는 큰 지혜의 업을 얻느니라.
(30) 菩薩의 十種魔所攝持
佛子야 菩薩摩訶薩이有十種魔所攝持하니 何等이 爲十고所謂懈怠心이魔所攝持며志樂狹劣이魔所攝持며於少行生足이魔所攝持며 受一非餘가魔所攝持며不發大願이魔所攝持며樂處寂滅하야 斷除煩惱가魔所攝持며 永斷生死가 魔所攝持며 捨菩薩行이 魔所攝持며 不化衆生이 魔所攝持며 疑謗正法이 魔所攝持니 是爲十이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마(魔)에 붙들림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게으른 마음이 마에 붙들림이며, 뜻이 옹졸하고 못난 것이 마에 붙들림이며, 조금 행하고 만족해하는 것이 마에 붙들림이니라.
하나를 받아들이고 다른 것은 아니라 하는 것이 마에 붙들림이며, 큰 서원을 내지 못함이 마에 붙들림이며, 고요함을 좋아하여 번뇌를 끊는 것이 마에 붙들림이니라.
생사를 아주 끊음이 마에 붙들림이며, 보살의 행을 버리는 것이 마에 붙들림이며, 중생을 교화하지 않는 것이 마에 붙들림이며, 바른 법을 비방하는 것이 마에 붙들림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
보살(菩薩)의 십종마소섭지(十種魔所攝持)
*
불자(佛子)야: 불자여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보살마하살은
유십종마소섭지(有十種魔所攝持)하니: 열 가지 마에 붙들림이 있으니
하등(何等)이:무엇이
위십(爲十)고: 열 가지인가? 마에 섭지함이 있다.
소위해태심(所謂懈怠心)이:이른바 게으른 마음이
마소섭지(魔所攝持)며:마에 섭지되고 붙들리고
지락협렬(志樂狹劣)이:뜻이 옹절하고 못난
마소섭지(魔所攝持)며 마에 붙들리고
어소행생족(於少行生足)이: 조금 행하고 만족하다는
마소섭지(魔所攝持)며: 마에 붙들리고
*
수일비여(受一非餘)가: 하나를 받고 다른 것이 아니라 하는 마소섭지(魔所攝持)며: 마에 붙들리고
불발대원(不發大願)이: 큰 원력을 내지 못하는 것이
마소섭지(魔所攝持)며: 마에 섭지되는 것이고
낙처적멸(樂處寂滅)하야 :고요함을 좋아하여
단제번뇌(斷除煩惱)가: 번뇌를 끊는
마소섭지(魔所攝持)며: 마에 붙들리고 참선만 하고 고요히 혼자 잘 먹고 잘 살려는 마에 붙들리고
영단생사(永斷生死)가: 생사를 아주 끊는
마소섭지(魔所攝持)며:마에 붙들리고
사보살행(捨菩薩行)이:보살행을 버리는
마소섭지(魔所攝持)며:마에 붙들리고
불화중생(不化衆生)이:중생을 교화하지 않는
마소섭지(魔所攝持)며: 마에 섭지되고
의방정법(疑謗正法)이: 바른 법을 비방하는
마소섭지(魔所攝持)니: 마에 붙들리고
시위십(是爲十)이니라 : 이것이 열 가지니라.
(31) 菩薩의 十種佛所攝持
若諸菩薩이能棄捨此魔所攝持하면 則得十種佛所攝持하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初始能發菩提之心이佛所攝持며 於生生中에持菩提心하야 不令忘失이佛所攝持며 覺諸魔事하야 悉能遠離가佛所攝持며 聞諸波羅蜜하고 如說修行이佛所攝持며 知生死苦호대 而不厭惡가佛所攝持며 觀甚深法하고 得無量果가佛所攝持며 爲諸衆生하야 說二乘法호대 而不證取彼乘解脫이佛所攝持며 樂觀無爲法호대 而不住其中하야 於有爲無爲에不生二想이佛所攝持며 至無生處호대 而現受生이 佛所攝持며 雖證得一切智나而起菩薩行하야不斷菩薩種이佛所攝持라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其中하면 則得諸佛의 無上攝持力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마(魔)에 붙들림을 능히 버리면 열 가지 부처님의 붙들어 주심을 얻나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처음에 보리심을 내는 것이 부처님이 붙들어 주심이니라.
태어나고 또 태어나는 가운데서 보리심을 지니어 잊어버리지 않게 하는 것이 부처님이 붙들어 주심이니라.
모든 마의 일을 깨달아 다 능히 멀리 여의는 것이 부처님이 붙들어 주심이니라. 모든 바라밀다를 듣고 말한 대로 수행하는 것이 부처님이 붙들어 주심이니라. 생사의 고통을 알지만 싫어하지 않는 것이 부처님이 붙들어 주심이니라.
깊고 깊은 법을 관찰하여 한량없는 과보를 얻는 것이 부처님이 붙들어 주심이니라. 여러 중생에게 이승(二乘)의 법을 말하면서도 그 법으로 해탈함을 증득하지 않는 것이 부처님이 붙들어 주심이니라. 함이 없는 법을 즐겨 관찰하지만 그 가운데 머물지 않으며, 함이 있고 함이 없는 데가 둘이라는 생각을 내지 않는 것이 부처님이 붙들어 주심이니라.
생사가 없는 곳에 이르렀으나 일부러 태어남을 받는 것이 부처님이 붙들어 주심이니라.
비록 일체 지혜를 증득하였으나 보살의 행을 일으키어 보살의 종자를 끊지 않는 것이 부처님이 붙들어 주심이니라.
이것이 열이니, 만일 모든 보살이 이 가운데 편안히 머물면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붙들어 주는 힘을 얻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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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菩薩)의 십종불소섭지(十種佛所攝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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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는 우리가 3시부터 6시까지 해 놓으니까 진도 나가는데 조금 시간이 있었다. 3시부터 6시까지 하다 5시 반까지 하다가, 또 5시 20분까지 하다가 10분까지 하다가 그다음에 이제 5시까지 쪼그라 줄어들었다.
그러다가 어느날 보니까 강의시간이 두 시간으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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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제보살(若諸菩薩)이: 만일 보살들이
능기사차마소섭지(能棄捨此魔所攝持)하면: 마의 붙들림을 버리면
즉득십종불소섭지(則得十種佛所攝持)하나니: 열 가지 부처님의 붙들어 주심을 섭지하심을 얻는다.
마에 붙들리는 것은 지저분한 것이고 여기는 그것이 아니라 밝음에 부처님한테 섭지되는 것이다. 부처님께 섭수돼서 지탱되는 것 유지되는 것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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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등(何等)이: 무엇이
위십(爲十)고: 부처님한테 붙어 살 수 있게 하는가? 부처님이 호념해 주시는 것
소위초시능발보리지심(所謂初始能發菩提之心)이: 이른 바 초발심을 하면, 시능발보리지심.
초발심 그것도 잘못 읽어서 시발심이라고 하면 골치아프다.
처음에 보리심을 내면
불소섭지(佛所攝持)며: 부처님께서 붙들어 주시고
어생생중(於生生中)에: 나고 나는 가운데의 생생중에
지보리심(持菩提心)하야: 보리심을 지니고
불령망실(不令忘失)이: 잊지 않게 하면
불소섭지(佛所攝持)며: 부처님이 붙들어 주시고
각제마사(覺諸魔事)하야: 마의 일을 깨달아
실능원리(悉能遠離)가: 널리 여의면
불소섭지(佛所攝持)며: 부처님께서 붙들어 주시고
문제바라밀(聞諸波羅蜜)하고:바라밀다를 듣고
여설수행(如說修行)이: 말한 대로 수행하면
불소섭지(佛所攝持)며:부처님께서 붙들어 주시고
지생사고(知生死苦)호대: 생사의 고통을 알고
이불염오(而不厭惡)가:싫어하지 않으면
불소섭지(佛所攝持)며:부처님께서 붙들어 주신다.
관심심법(觀甚深法)하고: 깊고 깊은 법을 관찰하여
득무량과(得無量果)가: 한량 없는 과보를 얻으면
불소섭지(佛所攝持)며: 부처님께서 붙들어 주시고
위제중생(爲諸衆生)하야: 중생들에게
설이승법(說二乘法)호대:이승의 법을 말하면서도
이부증취피승해탈(而不證取彼乘解脫)이 :그 법을 해탈함을
증취하지 않으면
불소섭지(佛所攝持)며: 부처님께서 붙들어 주시고
요관무위법(樂觀無爲法)호대: 무위법을 관찰하여
이부주기중(而不住其中)하야: 그 가운데 머물지 않으며
어유위무위(於有爲無爲)에: 유이무위에 줄을 그으시기 바란다. 아주 중요하다. 유위무위에
불생이상(不生二想)이: 둘이라는 생각을 내지 아니하면
불소섭지(佛所攝持)며: 부처님께서 붙들어 주신다.
유위무위에 줄 그으셔야 된다.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다.
제가 서울에서 불교대학 교수하시는 분, 동대 교수하시는 도반스님에게 물었다.
“일체현성(一切賢聖)은 개이무위법(皆以無爲法)으로 이유차별(而有差別)한다는데 니 한 번 해석해줘 봐라.”
“그럼 유위법하고 무위법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물어보니까
“다르지요.”
“아니요. 같습니다.”
“아니요. 다른데? 유위는 뭐고 무위는 뭐고.”
“아니요. 같습니다.”
이런 것을 못 봐서 그렇다.
유위는 허망하게 있는 것이고 무위는 본래 없는 것이다.
유위를 있다고 하면 안 된다.
이것에 대해 이행이 영단이라고 이세간품 처음에 나왔다.
이행(二行)이 영절(永絶)하여 묘오(妙悟)가 개만(皆滿)하다고 나온다.
이것과 똑같은 대목이 여래명호품에도 똑같이 나온다.
이세간품 앞과 여래명호품 앞에 글자 한 자 토씨하나 안틀리고 복사해서 붙인 듯이 똑같이 나온다.
그 대목을 이해하시면 유위, 무위가 전부 이해되는 것이다.
아까 유위 무위를 이해하기 위해서 무슨 책을 보시라고 했는가? 지공화상의 십사과송(十四科頌)을 보면 된다고 했다.
그러니까 소견도 없으면서, 소견 없어도 괜찮다.
화엄경 이세간품에 보니까 ‘유위무위(有爲無爲) 불생이상(不生二想)이라’ 둘이라는 생각을 내지 않으면, 부처님께서 붙들어 주신다. 종경록에도 그대로 나온 게 있다.
기신론은 말할 것도 없다.
이것이 일승의 견해다.
사(事)적으로는 무상이요 이(理)적으로는 무성이라. 그렇기 때문에 유위 무위를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지무생처(至無生處)호대: 생이 없는 처에 무생에 이르고도
이현수생(而現受生)이:일부러 태어나면
불소섭지(佛所攝持)며:부처님께서도 붙여주고
수증득일체지(雖證得一切智)나 :온갖 지혜를 증득하여
이기보살행(而起菩薩行)하야:보살행을 일으켜
부단보살종(不斷菩薩種)이:보살의 종자를 끊지 않으면
불소섭지(佛所攝持)라:부처님께서 붙들어 주시느니라.
시이(위)십(是爲十)이니:이것이 열 가지니
약제보살(若諸菩薩)이: 만일 보살들이
안주기중(安住其中)하면: 이 가운데 안주기중하면
즉득제불(則得諸佛)의:즉득 모든 부처님의
무상섭지력(無上攝持力)이니라 : 무상섭지력 위없는 최고의
부처님께서 섭수하고 유지해 주시는 힘을 얻느니라.
(32) 菩薩의 十種法所攝持
佛子야菩薩摩訶薩이有十種法所攝持하니 何等이 爲十고所謂知一切行無常이法所攝持며知一切行苦가法所攝持며知一切行無我가法所攝持며知一切法寂滅涅槃이法所攝持며 知諸法이 從緣起라無緣則不起가法所攝持며 知不正思惟故로起於無明하고 無明起故로乃至老死起하며 不正思惟가 滅故로無明이 滅하고無明이 滅故로乃至老死滅이法所攝持며 知三解脫門은 出生聲聞乘하고 證無諍法은 出生獨覺乘이法所攝持며 知六波羅蜜四攝法으로 出生大乘이法所攝持며 知一切刹과一切法과一切衆生과一切世가是佛智境界가法所攝持며 知斷一切念하고捨一切取하야 離前後際하야 隨順涅槃이 法所攝持라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其中하면 則得一切諸佛의 無上法所攝持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법에 붙들림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모든 행(行)이 무상함을 아는 것이 법에 붙들림이며, 모든 행이 괴로움을 아는 것이 법에 붙들림이며, 모든 행이 ‘나’가 없음을 아는 것이 법에 붙들림이며, 모든 법이 고요하여 열반인 줄 아는 것이 법에 붙들림이니라.
모든 법이 인연으로 생기고 인연이 없으면 생기지 않음을 아는 것이 법에 붙들림이니라.
옳지 못하게 생각하므로 무명이 일어나고, 무명이 일어남으로 내지 늙고 죽음이 생기며, 옳지 못하게 생각함이 멸함으로 무명이 멸하고, 무명이 멸함으로 내지 늙고 죽음이 멸함을 아는 것이 법에 붙들림이니라.
삼해탈문(三解脫門)은 성문승(聲聞乘)을 출생하고, 다툼이 없는 법을 증하여 독각승(獨覺乘)을 출생함을 아는 것이 법에 붙들림이니라.
육바라밀과 사섭법으로 대승을 출생하는 것을 아는 것이 법에 붙들림이니라.
일체 세계와 일체 법과 일체 중생과 일체 세상이 부처님 지혜의 경계임을 아는 것이 법에 붙들림이니라.
일체 생각을 끊고 일체 집착을 버리고 앞뒤 경계를 여의어 열반을 수순함을 아는 것이 법에 붙들림이니라.
이것이 열이니, 만일 모든 보살이 이 가운데 편안히 머물면 일체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법에 붙들림을 얻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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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菩薩)의 십종법소섭지(十種法所攝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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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여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보살마하살이
유십종법소섭지(有十種法所攝持)하니 :열 가지 법에 또 섭지되는 법이 있다
하등(何等)이: 무엇이
위십(爲十)고: 열 가지인가?
소위지일체행무상(所謂知一切行無常)이 : 이른바 모든 행이,제행무상 여기서부터는 불교의 삼법인을 그대로 다 떨어놓는다. 불교의 화반탁출이라고 봐야 된다.
완전히 확 까발려서 놓는 것이다.
불교의 총결론이 지금 이 구절에 나온다.
제행이 무상인 줄, 일체행이 무상인 줄 알면
법소섭지(法所攝持)며: 법에 붙들리고, 법에 섭지가 되고, 제대로 알고
지일체행고(知一切行苦)가 : 모든 행이 괴로움임을 알면, 일체행고 그 흔히 우리가 일체개고(一切皆苦)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열반적정(涅槃寂靜) 네 가지를 해놓고 삼법인(三法印)이라 하잖는가.
일체개고는 중생의 입장, 열반적정은 부처님의 입장에서 이야기했다. 중생은 아무리 해도 열반적정이 안 되고 부처님께서는 아무리 해도 일체개고가 안 된다.
그러나 공통 분모는 제행무상 제법무아다. 그래서 그 네 가지가 삼법인이라고 한다. 모든 행이 괴로움임을 알면
법소섭지(法所攝持)며 :법에 붙들리고
지일체행무아(知一切行無我)가:모든 행이 일체행무아, 제행무아.
제행무상을 제일 잘 나타내는 대목이 금강경의 무엇인가?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이라는 대목이다. 모든 행이 ‘나’가 없음을 알면
법소섭지(法所攝持)이며 : 법에 붙들리고 섭지되고
지일체법적멸열반(知一切法寂滅涅槃)이 : 모든 법이 고요하여 적멸열반인 줄 알면
법소섭지(法所攝持)며: 법에 섭지가 된다. 소섭지되고
지제법(知諸法)이 : 모든 법이
종연기(從緣起)라 : 인연으로 생기고
무연즉불기(無緣則不起)가: 인연이 없으면 생기지 않음을 알면
법소섭지(法所攝持)이며 : 법에 섭지된다. 제법은 종연생하고 연진법환멸이라 한다.
지부정사유고(知不正思惟故)로 : 바르게 사유하지 못함으로
기어무명(起於無明)하고: 무명이 일어나고
무명기고(無明起故)로: 무명이 일어남으로써
내지노사기(乃至老死起)하며:내지는 무명진 내지 역무노사 반야심경에 나오듯이 늙고 죽음이 생기고
부정사유(不正思惟)가: 옳지 못하게 생각함이
멸고(滅故)로: 멸함으로
무명(無明)이: 무명이
멸(滅)하고: 멸하고
무명(無明)이:무명이
멸고(滅故)로:멸함으로
내지노사멸(乃至老死滅)이 : 내지는 늙고 죽음이 멸함을 알면
법소섭지(法所攝持)이며: 법에 섭지되는 바이니라
지삼해탈문(知三解脫門)은: 삼해탈문으로
출생성문승(出生聲聞乘)하고 : 성문법이 생기고
*
증무쟁법(證無諍法)은:다툼 없는 법을 증하여
출생독각승(出生獨覺乘)이:독각법이 생김을 알면
법소섭지(法所攝持)며:법에 섭지되는 바이고
지육바라밀사섭법(知六波羅蜜四攝法)으로: 여섯 육바라밀과 사섭법으로
출생대승(出生大乘)이: 대승에 나는 줄 알면
법소섭지(法所攝持)며: 법에 섭지되는 것이고
지일체찰(知一切刹)과: 모든 세계
일체법(一切法)과:모든 법
일체중생(一切衆生)과:모든 중생
일체세(一切世)가: 모든 세상이
시불지경계(是佛智境界)가 : 부처님의 지혜의 경계인 줄을 알면
법소섭지(法所攝持)며: 법에 섭지되는 바이고
지단일체념(知斷一切念)하고: 모든 생각을 끊어 버리고
사일체취(捨一切取)하야: 모든 집착을 벗어 버리고
이전후제(離前後際)하야: 앞뒤 경계를 떠나버려서
수순열반(隨順涅槃)이: 열반에 수순하는 것이
법소섭지(法所攝持)라: 법에 섭지되는 바이니라.
시위십(是爲十)이니:이것이 열 가지니
약제보살(若諸菩薩)이: 만일 보살들이
안주기중(安住其中)하면: 이 가운데 편안히 머물면
즉득일체제불(則得一切諸佛)의:모든 부처님의
무상법소섭지(無上法所攝持)니라 : 위없는 법에 섭지를 얻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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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_()()()_
🙏🙏🙏
보살님,
오늘은 마음이 많이 바쁘신가 봅니다.
소위어사승[사]모(所謂於師僧父母)와
자구[교]좌(自求高座)하며
입보리사(入菩提舍)가: [ ] 집에 들어감이
보리의 집에 들어감이
@연기의 도리와 인생을 알고자 감사합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_()()()_
나무 관세음보살 성불하십시요.
고맙습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고맙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