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18:2]
가라사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 6절에서 예수께서 정의한 이 사람의 속성은 '불의함'이다. '불의'(unjust, NIV)라는 말은 '종교적인' 혹은 '경건한'의 의미와는 정반대의 것으로서 세속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사람은 완전히 세상적인 의미에서의 소위 '속물'(俗物)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성격은 이중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첫째는 그가 하나님을 경외치 않았다고 하는 것이다. 헬라어 동사 '포베오'는 '무서워하는 것', 더 나아가서는 '공경', '예배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서의 의미는 그가 하나님의 심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는 것을 지적하는 말이다. 또한 그의 부패한 삶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두번째 성격은 그가 사람을 존중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다.
이는 주로 고아나 과부같이 힘없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멸시하고 그들의 권리를 보호치 않는 것을 의미한다. 불의한 재판관들의 이러한 모습들은 권력을 가진 자들의 전형적인 모습 중의 하나이다. 그들은 자신에게 맡겨진 권력의 참 주인이 오직 하나님이심을 깨닫지 못하고, 법과 공의를 외면한 채 권력과 재물을 가진 자들에게는 아부하고, 힘없는 자들에게는 포학을 일삼는다.
한 재판관 - 이 재판관은 유대인이 아닌 것같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일반적인 시비는 여기서처럼 재판정에서가 아니라 장로에게 찾아가서 가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절에 나오는 재판관은 예수 당시 통치자인 헤롯(B.C. 4-A.D.39)이 임명한 재판관이거나 로마에 의해 임명된 재판관일 것이다.
이 같은 재판관은 오늘날에도 찾아 볼 수 있는데 이들은 권력의 하수인이거나 권력과 야합하여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자들로 정의에 입각한 법정신과 법관으로서의 의무마저도 잊어버린 자들이다(미 3:9-11).
[눅 18:6]
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불의한...들으라 - 비유를 끝내고 그 비유에 대한 해석을 들려 주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스스로 생각할 여유를 주기 위한 말씀이다.
(누가복음 18:1-8)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가라사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이 비유 말씀 역시 내용 자체의 윤리성이나 사회 부조리적 측면에서 볼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당시에 있었던 현실 사건을 한 예로 들어 비유로 말씀하시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지를 못하고 왜 이렇게 불의한 재판장을 그대로 두었는가? 그러한 세상을 왜 나쁘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나?
그리고 어찌하여 가난하고 억울한 사람을 돌보라는 말씀도 없는가? 하며 부정적인 반문을 해서는 안될 것은 이 본문은 어디까지나 비유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이 비유를 말씀하시는 목적이 비유의 내용인 자체 사건의 윤리성이나 사회 질서, 도덕을 논하려는 데 있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 번 인식해야 합니다. 이는 특별히 누가복음 17장 후반부를 읽어보면 그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