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피난다아아아아앙~"
"어떻게 해."
딸아이의 비명에 차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습니다. 아내는 운전을 하랴 딸아이를 다독이랴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이러다 정말 큰일나지 싶어서 갑판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운전이나 똑바로 해! 코피 난다고 죽지는 않아"
한바탕 난리부르스를 추고 나서야 딸아이는 진정이 되었는지 휴지뭉치로 코를 틀어 막은 채 잠들었습니다. 그런 모습이 안스럽기도 하고 얄밉기도 합니다. 쌍수는 하고싶다면서도 코피를 예방하기 위한 레이저치료는 무서워서 못하겠다는 딸아이의 이중적인 태도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어쩌면 아빠는 영원히 딸아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갑판장은 그저 딸아이가 예쁜여자가 되기 보다는 멋진여성으로 성장하길 바랍니다.
사진은 본문과 상관이 없습니다.
갑판장네의 부산입성을 자축하기 위한 첫방문지였던 남천동의 보성녹차팥빙수는 차안에서의 소동으로 인해 인연이 닿지를 못하고 소멸 되었습니다. 코피로 얼룩진 딸아이의 옷도 갈아 입히고, 한낮의 무더위도 피하고, 새벽부터 서두르느라 부족한 잠도 보충할 겸 일단은 저녁식사 전까지 숙소에서 쉬기로 했습니다. 숙소는 예약을 하지 않았지만 자갈치시장과 국제시장, 깡통시장, PIFF광장 등 번화가에서 가까운 용두산공원 아랫동내에서 단정해 보이는 호텔(이라 간판에 써있지만 모텔로 추정되는)을 구했습니다. 셋이 누워도 넉넉할 정도로 드넓은 더블베드와 딱 한 사람이 누울 만한 싱글베드가 있는 방입니다. 욕실에도 샤워기가 달린 2인용 욕조와는 별도로 샤워룸이 있어 갑판장네 세식구가 하룻밤 묵어 가기엔 전혀 아쉬울 것이 없습니다. 가장 좋은 점은 부산의 번화가에 도보로 10분 이내에 닿을 수 있다는 편리함입니다.
씨앗호떡/PIFF광장 부산
뽀송뽀송한 침대에서 달디 단 꿀잠을 자고 났는데도 아직도 해가 중천에 걸려 있습니다. 하여간 여름날의 하루는 참 길기도 합니다. 하기사 오전 4시도 되기 전부터 하루를 시작했으니 지칠만도 합니다. 암튼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일단은 뱃고래를 채워야 두 눈이 환해져서 구경도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슬슬 걸어서 광복로 패션거리를 통과하여 PIFF광장에 도착하니 갖가지 간식거리를 가득 담은 포장마차가 즐비합니다. 그 중 이승기호떡이라 불리는 씨앗호떡을 맛봤습니다. 평소라면 거들떠 보지도 않을 간식입니다만 부산에 왔으니 한 번 먹어보는 겁니다. 딸아이가 먹고싶다는데 이 쯤 못 사먹일 형편도 아니고요. 씨앗호떡의 맛은 예상대로 부산에 왔으니 기념으로 한 번 쯤 먹는 맛입니다. 그래도 행인들이 연신 줄을 서가며 사먹는 모습이 경이롭습니다. 작은 포장마차에 넷이나 붙어서 장사를 합니다. 한 명은 주문과 계산을 전담하고, 두번째 사람은 반죽성형 및 설탕투입을 담당하고, 세번째 사람은 호떡을 번갈아 뒤집으며 튀기기만 하고, 네번째 사람은 튀겨진 호떡을 받아 한쪽을 가위로 자른 후 씨앗을 투입하여 손님께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주변을 살펴보니 이승기호떡 말고도 무한도전호떡, 식신로드호떡 등 연예인 이름과 프로그램명을 갖다 붙인 호떡집들이 여럿 보입니다.
포장마차/PIFF광장 부산
떡볶이는 딱 1인분만 사먹었습니다. 그런대도 남겼습니다. 너무 매워서요. 암튼 아내가 먹고프다는 것은 설사 그 곳이 길거리라 해도 서슴치 않고 사주는 남편입니다. 그래야 뒷탈이 없다는 것을 이제라도 깨달아서 참 다행입니다.
양대창 연탄구이
물꽁식당의 내장이 듬뿍 섞인 아구수육, 달맞이고개 퍼주는 집의 아나고회와 오징어회, 자갈치 백화양곱창의 연탄불 양곱창, 60년 전통 성일집의 꼼장어구이 기타 등 등 기타 등 등...부산에 가면 가고프고 먹고픈 음식점과 메뉴입니다. 이 중 아구는 다음 날 마산에서 먹을 예정이니 탈락! 아나고회와 오징어회는 가격대비 빈약해서 그렇지 서울에서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으니 탈락! 꼼장어는 징그럽다고 아내와 딸아이가 꺼려하니 탈락! 남은 것은 양곱창구이인데 곱창만 먹는 딸아이와 대창을 안 먹는 갑판장의 조건을 맞추자면 동대신동의 오막집이 딱이긴 한데...여긴 서울에도 있으니 탈락!
**양곱창/부산
결국 PIFF광장의 코앞에 있는 자갈치시장에서 양곱창을 먹을 수밖에요. 그런데 헐~ 한여름의 불지옥이 여기지 싶습니다. 신림동 순대타운스럽게 넓은 공간을 토막내어 각각의 카운터를 마련하여 수 많은 가게가 한데 어울려 장사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긴 한데 문턱을 넘어서기가 무섭게 사방에서 호객을 하는 통에 당황하여 일단 후퇴를 했습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안쪽 깊숙한 집으로 미리 낙점을 하고 재진입을 했건만 서너 발짝도 채 못 걷고 재후퇴를 했습니다. 사방에서 연탄불을 피워놓고 양대창을 굽느라 매캐한 연기도 장난이 아닌데다가 에어컨 한 대 없이 낡은 선풍기만 돌아가는 통에 들어가면 갈수록 후끈한 열기에 휩싸이는 게 찜질방의 불가마를 연상케 합니다.
양곱창 한 접시(300g)
아수라장 불지옥이 따로 없건만 기왕에 왔으니 그 중 입구쪽 창가자리가 좀 덜 더운지라 무턱대고 그리로 앉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또 패착입니다. 자갈치 양곱창집에선 쥔장이 일일이 구워준다 들었건만 웬걸 그 집 할머니는 양대창이 수북히 담긴 접시만 갑판장 앞에 툭 던져 놓고는 나몰라라 하는 눈칩니다.
여기서 잠깐! 자갈치 양곱창집에서 정작 곱창은 아예 취급을 안하고 양과 대창, 염통만 내주는데 왜 상호에 '양곱창'을 걸어 놓는걸까요? 암만 생각해 봐도 '양대창'이 옳지 싶은데 말입니다.
그래도 건배!
대창은 재활용방지를 위해 바싹 굽기만 해놓고 아예 건들지도 않았습니다. 대창 안에 한가득 들은 기름덩이를 차마 입에 넣을 순 없습니다. 염통은 원래 좋아하는 것이니 다 먹었고, 양은 그냥저냥...망원동 청어람의 뽀얗고 꼬스운 양이 그리울 뿐이고...흙.
갑판장이 부산시민이라면 자갈치에서 양, 염통을 안주삼아 C1한 쇠주를 목구녕으로 탈탈 털어 넣으러 자주 들락거렸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갑판장은 서울시민입니다. 서울시민이 부산까지 원정을 가서 먹을 맛은 아니라는 의견입니다. 특히 한여름이라면 절대 말리고 싶습니다....만 만일 에어컨을 설치한다면 갈 수도...겨울이라면...흙...갑판장한테 강추한 사람 나빠요.
세정/부산
1차의 부진을 만회하고자 갑판장이 꺼낸 비장의(라고 쓰고 급조한이라고 읽으시면 됩니다.) 카드는 한치모밀쟁반입니다. 말 그대로 냉동한치회를 넣은 쟁반비빔막국수스런 음식입니다. 식사를 겸해 반주 하기 좋은 메뉴로 강구막회에서도 응용이 가능한 메뉴라 관심을 갖고 부산까지 출장을 왔는데 하필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한치가 없어 휴무랍니다. 오후 5시부터 영업을 하니 내일 다시 방문하자면 꼬박 하루를 더 부산에서 머물러야 합니다. 내일 점심식사로 먹으면 딱 좋았을텐데 말입니다.
애시당초 부산여행을 궁리하며 점심식사로 염두에 두었던 것은 범천동 만수스시의 점심특선이었습니다만 아쉽게도 만수스시 역시 여름휴가중이라 이번에 방문을 하지 못했습니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도데체 부산으로 출장을 온 까닭이 무엇인지 헷갈립니다. 세정도 날라가고, 만수스시도 날라가고....훨훨~
쓰리몽키스/남포동 부산
비록 저녁식사는 부실했지만 남포동 거리에서 쇼핑을 즐긴 딸아이는 기분이 좋아져서 엄마, 아빠의 맥주집 출입을 흔쾌히 허락했습니다. 에일생맥주를 파는 맥주집이라 당연히 에일생맥주를 마셨습니다. 안주도 가격대비 괜찬습니다. 그런데 갑판장네가 자리잡은 2층은 흡연석이었나 봅니다. 사방에서 담배를 피워대는 통에 조금 많이 힘들었습니다.
나오면서 보니 1층에 나초와 땅콩 등 간단한 스낵바가 있어 손님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뒤늦게 이를 알아차린 딸아이가 무지 속상해 했습니다. 어쩔~
<갑판장>
& 덧붙이는 말씀 : 아내와 딸아이는 어떤 추억을 담아 왔을라나요?
첫댓글 교통 덕분인지
해운대가 커지고 서울사람들의 왕래가 많아진 덕분인지
서울과 헷갈랄때가 많더군요.
그만큼 부산의 매력이 희석되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부산의 추억(부제:한여름밤의 꿈)'이구만요. 아님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