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은사 쇄신과 '어둠의 세력'
제6장 은사 쇄신은 성령의 체험
1. '은사'라는 용어의 뜻
33. 왜, 은사 쇄신 운동이 세상의 악령과 죄에 대하여 분명하게 깨우침을 주었는지를 말하기 전에, 왜, 어떻게, 은사 쇄신이 성령과 성령의 선물에 대해 예민하게 깨우치는 데 긍정적으로 기여해왔는지를 간략히 설명하고자 한다. 긍정의 측면과 부정의 측면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공존한다. 그러나 먼저 우리의 어휘를 규정해야 한다.
'은사적'(charismatic)이라는 용어는 위의 제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본문을 부담스럽게 하지 않으려고 이 책 다른 어디에도 이 용어를 쓰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 용어의 뜻은 밝혀야 한다. 이 낱말은 그 자체로는 배타적인 의미가 없다. 전체 교회가 은사적이며, 그리스도인 각자도 세례를 받았으므로 모두 그러하다. 그러나 이 낱말이 역사적 의미를 띠게 되었고, 흔히 '성령 쇄신'이라 부르는 특정한 운동을 가리키게 되었다. '은사적'이라는 말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성령 쇄신의 모든 면을 다 포괄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성령쇄신'이라는 표현을 더 좋아한다. 현재의 성령 쇄신은 성령의 은사뿐 아니라 그리스도인 삶의 다른 많은 특징도 지니고 있다.
진정한 쇄신은 모두 성령께 달려있기 때문에, 교회의 영적 운동은 모두 당연히 '은사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에서 처음으로 쇄신운동에 '은사적'이라는 형용사를 사용한 것은, 1967년에 미국 기도모임에서이다. 나는 이 은사 쇄신 운동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의미의 '조직된' 운동이 아니라는 점을 덧붙여 말하고자 한다. 창설자도 없고, '제도화한' 지도자들도 없고, 어떤 동질의 통일체를 형성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마귀에게서 구해 내는 ‘해방’의 시행도 지방에 따라 문화에 따라 다양하다. 이 다양성을 명심한다면, 여기 제시한 몇몇 경고가 지방 형편에 따라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2. 은사 쇄신의 기본적 체험
34. 먼저 은사 쇄신의 얼이라고 할 기본적 체험을 묘사해 보기로 하자. 피상적인 유추에 의한 설명을 훌쩍 뛰어넘어, 은사 쇄신은 세례와 견진을 다시 활성화하는 은총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금 인정하고 성령께 새로이 마음을 여는 회심을 포함하는 일종의 개인적 성령 강림으로서 이해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모든 정의는 불완전하며, 최선의 정식(定式)을 찾는 일은 신학자들의 몫이다. '성령 세례'라는 용어는, 우리가 자칫 그 용어를 그리스도의 삶에 동참시키는 하나의 세례로 볼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다. 동시에 '개인적 성령 강림'이라는 용어 때문에, 교회가 창립된 날인 성령 강림이 하나의 고유한 사건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버려서는 안된다.
아무튼 우리가 사용하는 표현이 무엇이든 간에, 새로운 삶으로 회두(回頭)한 체험이 교회 안에 분명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것은 다시금 우리를 새롭게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깊은 숨결과도 같이, 타다 남아 연기만 나는 것에 부채질을 해서 불타오르게 하는 바람과도 같이 오대륙을 휩쓸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이 불이 이미 타올랐다면 얼마나 좋았겠느냐?"라고 말씀하셨다.
교황 요한 23세와 교황 바오로 6세의 기도에 응답하여, 이 종교적 깨우침이 성령 강림의 신비를 배타적으로가 아니라, 기억할만한 방법으로 계속하고 있다. 은사 쇄신을 기꺼이 받아들인 사람들에게 새로운 것은, 우리 믿음의 영원한 대상인 성령께서 그들에게 살아있는 체험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은사 쇄신 운동의 주요 동기이다. 그레고리오 대학교의 신학 교수인 예수회원 설리반 신부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은사 쇄신 참여자들은 세례성사와 견진성사에서 성령을 받는다는 것과,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살고 있는 모든 사람 안에 그분께서 거처하신다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동시에 그들은 성령께서 이미 현존하고 계시지만, 동일한 사람 안에 아주 새로운 방법으로 현존하실 수 있다고 믿는다. 곧 전에는 믿음의 문제로 여겼던 그분의 현존을 이제는 체험의 문제로 삼는 것이다.
- 그 사람의 삶 안에서 일하시는 주님의 활동을 새로이 드러내 보이심으로써
- 그 사람의 힘을 놀랍게 증대시키시어 그리스도인답게 증언하게 하심으로써
- 은사의 선물을 주심으로써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삶에 나타난 성령의 새로운 현존이 은총의 귀한 선물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그들은 '성령 세례'란 그들 삶 안에 성령께서 현존하시고 일하심을 새로이 처음으로 체험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들은 성령 강림과 같은 이 특별한 체험을 성령의 새로운 현존의 시작으로 보면서, 이와 같은 처음의 체험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거기에 따라올 '성령으로 사는 새로운 삶'을 강조해야 하고, 그 최초의 체험이 결실을 맺으려면 그 새로운 삶을 키우고 부양해야 한다고 역설한다.1)
35. 이 분석 - 이 증언 - 에 나는 역사가 리차드 퀘데보(R. Quedebaux)의 다음 구절을 첨가하고 싶다. 그는 그의 저서 '새로운 은사 쇄신 참여자'에서 은사 체험의 함축된 의미를 매우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당신께서 떠나가신 다음에 성령을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을 때, 그분께서는 성령께서 그들의 삶에 충족시켜 주셔야 할 세 가지 실천적 필요를 내다보셨다.
1. 믿음을 견고하게 해주시고,
2. 고통 가운데에 기쁨을 가져다 주시고,
3.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결정한 사람들을 확신시키시고 이끌어주시고 가르쳐주신다.
- 그리스도인 대부분은 아니지만 아직도 많은 이가 성령께서 자기 안에 사시리라는 그리스도의 약속을 지성으로는 인정하지만 체험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한다.
- 따라서 그 약속은 무의미하고,“성령께서 내 안에 살아계신다는 것을 내가 어떻게 아는가”라는 질문이 거듭거듭 일어난다.
- 은사 쇄신은 이 질문에 하나의 답을 제공한다. 성령 세례는 하나의 강력한 체험으로서, 하느님께서는 실재하시고, 약속하신 바에 성실하시며, 사도행전에 묘사된 '표징과 놀라운 일들'이 오늘 나에게도 똑같이 일어날 수 있다고 확신하게 해준다.(2)
이처럼 은사 쇄신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을 더욱 민감하게 의식하게 해주었다. 언제나 현존하시는 성령의 활동은 교황 요한 바오로 1세를 참으로 얼마나 매료시켰는지 모른다. 그분께서 아직 베네치아의 총대주교였던 때, 나의 저서 '성령은 나의 희망'(A New Pentecost)을 보내드렸다. 그분께서는 따뜻하고 다정한 감사 편지에서 매우 의미심장한 문장으로 당신의 반응을 요약했다.
내용에 관한 한, 그 책을 읽으면서 나도 "성 바오로의 본문과 사도행전의 본문을 새로운 눈으로 다시 읽어야겠다."고 느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귀하의 책은 나에게 사도행전을 다시 읽게 한 보배로운 안내자가 되었고, 앞으로도 내내 그럴 것입니다.
은사 쇄신은 이렇게 신약성서를 새롭게 다시 읽음으로써 생명력을 갖는다.
기 도
주님의 성령께서 모든 세대를 통하여 교회 안에서 활동하심에 대하여 우리 모두 다함없는 감사의 기도를 주님께 올립시다.
주 하느님,
인간의 창조는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인간의 구원은 더욱 놀랍습니다.
죄로 유혹하는 모든 것을 거슬러 올바른 정신으로 인내하여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 부활 성야 기도 -
반성과 토론을 위한 질문
1. '은사적'이라는 용어는 애매하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세례를 받음으로써 '은사적' 이다. 현대 역사적 의미로 '성령쇄신'에 적용된 이 용어를 명백히 해보자(33항).
2. 은사 쇄신의 핵심은 무엇이며, 부수적인 것은 무엇인가?(34항)
3. 왜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셨는가?(34-35항)
4.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절실한 필요를 충족시켜 주시러 오셨음을 사도행전에서 지적해 보자(35항).
(1) F.A.Sullivan, 'The Pentecostal Movement,' Gregorianum 별쇄인쇄물(1972), vol. 53, 분책 2, 249면, 그의 책 Charisms and Charismatic Renewal (Ann Arbor, Michigan: Servant Books, 1982)을 보라.
(2) R. Quedebaux The New Charismatics (뉴욕: Doubleday, 1976), 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