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귀의 믿는 구석
임병식
늦가을, 풀섶에서 사마귀 한 마리를 만났다. 그때 처음 알았다. 사마귀가 단지 여름의 곤충이 아니라, 계절의 색을 따라 스스로를 지우고 다시 쓰는 존재라는 것을.
겨울이 가까워지자 들풀들은 하나둘 빛을 잃고 갈색으로 말라갔다. 그런데 사마귀 역시 그 풍경을 닮아 있었다. 나는 사마귀라면 으레 푸른빛을 띤다고 여겨왔다. 오래된 관념 하나가 소리 없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무심코 지나쳤다면 밟고도 남았을 자리에, 그 작은 몸은 가만히 있었다. 나는 이유 없이 발을 멈추고 한동안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가까이에서 본 사마귀는 생각보다 낯설었다. 작은 머리, 불룩한 몸통, 그리고 과장된 앞발. 생김새는 단순했지만 어딘가 오래된 긴장을 품고 있었다.
더 오래 바라보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드러났다. 사마귀는 툭 불거진 눈으로 주변을 더듬듯 움직이며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그 회전은 거의 등 뒤까지 닿을 듯 비현실적이었다. 한 겹으로 보이던 날개 아래에는 얇은 속날개가 겹겹이 숨겨져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시선을 붙든 것은 앞발이었다. 포크레인의 팔처럼 굽은 구조, 마디마다 촘촘히 박힌 날카로운 톱니. 그것은 방어라기보다 명백히 붙잡기 위한 형상이었다. 놓치지 않기 위해 설계된 시간의 도구처럼 보였다.
그 순간 나는 문득 인간의 세계를 떠올렸다. 손보다 먼저 마음을 감추고 사는 사람들, 겉으로는 비켜선 듯 보이지만 필요한 순간에는 정확히 그것을 향해 움직이는 사람들. 욕망은 종종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더 빠르게 작동한다.
사마귀의 앞발은 그런 세계를 닮아 있었다. 머뭇거림 없이 움켜쥐는 구조, 그리고 놓치지 않겠다는 침묵. 그것은 공격이라기보다 생존의 문법에 가까웠다.
다른 벌레들은 인기척만으로도 흩어지지만, 사마귀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이지 않은 것이 아니라 움직일 필요가 없는 상태처럼 보였다. 이미 자신 안에 충분한 장치를 갖춘 존재처럼.
나는 그 이유를 한참 뒤에야 어렴풋이 짐작하게 되었다.
세상에는 쉽게 물러서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것들은 대개 단단한 의지가 아니라, 버티는 방식으로 자신을 유지한다. 놓지 않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놓지 않는 상태로 살아남는 것이다.
사마귀의 앞발은 그저 사냥의 도구가 아니라, 세계와 맞서는 하나의 방식이었다.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 작은 생명 앞을 떠나면서, 문득 알 수 없는 불편함을 느꼈다. 사마귀를 본 것이 아니라, 어떤 내면의 구조를 잠시 들여다본 듯한 느낌이었다.
풀섶은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흔들림 속에서,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이 여전히 나를 붙잡고 있는 듯했다.
(2026)
첫댓글 '사마귀는 으레 푸른빛'이라는 고정관념이 겨울 길목에서 깨지는 순간을 포착했군요!
저도 가까운 생질녀로 부터 배신을 당해 참담한 꼴(당)을 봤습니다.
사마귀의 갈색 보호색처럼, 삶의 풍경 속에 은닉된 인간의
본질을 담담하고도 예리한 문체로 길어 올린 聽石님 만의 탁월한 작품입니다.
사마귀가 사람이 다가가는데도 버티는 것은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렇듯이
고개 뻣뻣하게 쳐들고 사는 인간들도 어딘가 믿는 구석이 있기에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은 흔히 든든한 뒷배가 있어 철근콘크리트 목을 하고 위세를 뽐내지만 사실 사마귀는 자신의 실력을 믿는 것이겠지요 당랑거철이라는 성어가 생각나는군요 무시무시한 톱니발을 자랑하는 사마귀도 먹이사냥을 위해 철저히 위장하기도 하는 걸 보면 곤충의 세계나 인간사나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는 암 사마귀가 수컷을 잡아먹는 광경에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지요 한번은 말벌이 사마귀를 포식하는 장면을 목격하곤 더욱 놀랐지요 둘 다 사진으로 남겨두었는데 좋은 자료가 될 듯합니다 한편 연가시라는 기생충이 사마귀에 기생하여 결국 사마귀를 익사토록 유인한 뒤 사마귀 몸에서 빠져나오는 일련의 과정은 경악스럽기까지 하지요
사마귀가 사람도 무서워하지 않는 이유는 뭔가 믿는데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도 그렇지요. 자기가 권한을 갖거나 뒷배가 있기 때문에 남을 무시하고 위법도
서슴치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사마귀는 생김새부터가 별종이 아닌가 합니다.
전에 티비에서 보니 새끼때는 무자비하게 동료들을 죽이고 목속에는 철사같은
기생충을 품고 있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