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10월11일(일)흐림 & 맑아짐
죽향 내외 중국 갔다가 돌아왔다. 점심 같이 하다. 저녁에 무설거사, 소향보살 와서 저녁 함께하다. 밤에 명석에 있는 화가 自閑 崔俊傑최준걸씨 댁을 깜짝 방문하다. 히말라야 갤러리 박정현씨 부부도 동행하다. 화가는 산을 단순화한 이미지로 표현한다. 초기 작품에서는 캔버스공간에서 산이 점유하는 부분이 컸으나 후기로 올수록 점점 줄어들어 최근에는 화폭의 밑바닥에 산의 실루엣만 남았다. 아마도 나중엔 공간만 남지 않을까 예감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존경하는 화가는 마크 로쓰코Mark Rothko(1903~1970, 러시아)라고 말한다. 로쓰코는 모노크롬(單色)을 표현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공간과 여백을 보게 만든다. 로쓰코의 작품은 관객으로 하여금 집중과 몰입으로 이끄는 카시나(kasina, 遍行處)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이해된다. 그의 기념비적인 작품은 로쓰코채펄(Rothko Chapel, 로쓰코 예배당, 텍사스州 휴스턴市에 있다)이 있다. 돌아오니 새벽2시이다.
秋日夜遊忘何有, 추일야유망하유
歸路浮游世間中; 귀로부유세간중
敷座卜居獨超醒, 부좌복거독초성
北斗藏身露金風. 북두장신로금풍
가을날 밤 들이 노닐매 어딘 줄도 잊었다가
돌아오는 길 세상바다를 건넌다,
토굴에 자리 깔고 엎드리니 정신 홀로 초롱초롱
북두에 몸 숨겼더니 황금바람 불어 다 드러난다.
Rothko Chapel 로쓰코 채펄
2015년10월12일(월)맑음
늦잠자다. 9시에 일어나 11시까지 좌선하고 아침 먹다. 저녁 수요명상 이끌다.
2015년10월13일(화)맑음
아침에 산청가다. 일광, 지견스님과 산청산림박람회에 참관하러가다. 도라지청 한통 사다.
함양 상림 숲길을 걷고 돌아오다. 단풍이 아직 안 들었다. 하늘에서 툭 떨어진 오늘, 이렇게 지나간다.
오늘.
2015년10월14일(수)맑음
저녁에 수요명상하다. 아침고요산방에서 수행했던 거사가 두 분 새로 왔다. 명상교실의 거사들이 모두 여덟 명이다. 거사들끼리 화합하여 연대를 형성하면 우리 모임에 활력이 더해질 것 같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이야기하다. 플라톤의 문제의식은 어떻게 하면 아테네 시민의 잠든 의식을 깨우쳐 지혜가 생기게 하여 공동체의 정의와 안정을 유지할 것인가이다. 세간적이다. 반면 붓다의 문제의식은 어떻게 하면 중생이 윤회를 끊고 해탈을 성취할 것인가이다. 출세간적이다. 그러기에 플라톤의 지혜는 세간을 경영하는 데 유익한 점이 있다. 그러나 동굴을 나온 죄수가 시력을 회복하여 태양 아래 광명천지를 목도한다 하더라도 인간의 보편적인 苦를 피할 수는 없다. 그가 아무리 소피아sophia를 애호하며 덕을 계발하여 폴리스polis공동체의 삶이 정의롭고 안정적으로 꾸려간다 하더라도 생노병사를 피할 수는 없다. 그러기에 플라톤은 붓다에게 출세간의 도를 물어야한다. 사유와 반조에서 나오는 그리스철학의 소피아(知)는 ‘아는 것’에 갇힌다.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라고 했던 소크라테스 역시 ‘아는 것’에 갇혀있다. ‘너 자신을 알라’도 마찬가지. ‘아는 것’은 과거의 잔상이며 기억정보이다. 아는 대로 경험하고, 아는 대로 살게 된다. ‘아는 것’이 삶을 한정짓고 형성해간다. 아는 것대로 살면 아는 것의 테두리 안에서 맴돌게 된다. 아는 대로 사는 것은 다람쥐가 체 바퀴를 돌리는 꼴이다. 죽을 때까지 달려도 제자리다. 개미 주위에 하얀 분필로 원을 그리면 개미는 그 원에 갇혀서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인간은 자기가 ‘아는 것’의 너머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지하며 무력하기에 ‘미지의 것’에 대해서는 불안해하며 회의하거나 두려워한다. ‘아는 것’에 갇힌 삶은 인간의 한계상황이다.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는 통찰에서 나온다. 앎이 일어날 때 다만 ‘앎’으로 보라. 앎은 일어났다 사라지는 현상일 뿐이다. ‘아는 것’을 꿰뚫어 보라. ‘앎’은 조건 지워진 것이며, 변하는 것이며, 고정불변하는 것이 아니다. ‘아는 것’과 동일시하지 말라.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알려진 것’과 ‘알려질 수 없는 것’을 동시에 보라. 빛과 어둠을 동시에 보라. 절대모순을 동시에 把持파지하라. 兩邊양변을 한꺼번에 뛰어넘으라.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밤에 울고, 기원정사에 뜬 보름달은 휘영청 밝다.
2015년10월15일(목)맑음
산청 대성사에 가다. 광목과 무명 승복 풀하러 가다. 일광스님 풀 끓였다. 풀에 물을 적당히 붓고 묽힌 뒤에 마른 옷을 넣고 잘 문지르고 주물러 풀을 먹인다. 햇볕에 넌다. 한나절 햇볕에 빳빳하게 잘 말랐다. 거둬들여 물뿌리개로 물을 뿌리고 눅눅하게 만든 후 차곡차곡 개어서 밟는다. 대충 밟으려니 스님은 꼼꼼하게 오랫동안 밟아야 풀이 고루 잘 먹어 옷이 때깔이 나고 풀 빨이 오래간다 한다. 30분 이상 밟고 다림질을 하다. 다리미로 대충 쓱쓱 문지르면 안 되고, 꼭꼭 눌러서 다려야 풀이 오래간다. 다림질을 마치고 나니 밤이 이슥하다. 공설운동장을 한 바퀴 돌며 지리산을 바라본다. 오늘 하루 이렇게 지난다.
2015년10월16일(금)맑음
호연거사와 저녁을 먹다. 7:30pm 주말명상 시작하다. 처음엔 3명이더니 곧 열 명이나 모였다. 10시까지 좌선과 행선을 번갈아가며 자율적으로 수행하다. 중간 휴식시간에 요가를 20분 정도 하다. 나는 평소에 하던 동작이라 어려운줄 몰랐는데 학생들은 따라 하기 힘든 자세라 한다. 문아, 도향, 보정, 효원, 聞印문인 네 사람과 함께 10:30pm에 다시 명상을 시작하여 12:00까지 하다.
2015년10월17일(토)맑음
주말 명상에 다섯 사람 참석하다. 해성, 효원, 보정, 향지, 도향거사.
2015년10월18일(일)맑음
주말 명상에 여섯 사람 참석. 해성, 명성, 효원, 보정, 문아, 도향거사. 10시에 마침. 돌아가면서 이야기하며 경험을 나누다. 좋은 시간 되었다고 평가하다. 낙수 물이 바위를 뚫어내듯 하자. 일상의 바다에서 표류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주말 정진을 하자고 도향거사 이야기 하다.
2015년10월19일(월)맑음
월요명상에서 알베르 까뮈의 페스트를 이야기하다. 죽음을 기억하자는 가르침에 공감하는 것 같다. 명상을 마치고 단송거사가 차를 우리고 호연, 아미화, 도향, 향원, 보정, 문인, 香印향인과 함께 차를 마시며 환담을 나누다.
2015년10월20일(화)맑음
아침에 일어나 동네 한 바퀴를 돌다. 밥 먹고 책보고, 인터넷 검색하고 운동하니 하루가 간다. 하루가 참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