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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담당자에게 세 가지를 부탁했다.
불, 물, 연기(공기) 같은 기초공사는 예산을 아끼지 말고, 내장공사는 돈을 아끼되 아낀 만큼 센스 넘치게 꾸미고, 카운터와 의자는 좀 나지막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10대나 20대의 젊은이들은 그렇지 않지만 우리 같은 중년에게는 거실 가구와 사무실 책상과 의자가 좀 높은 편이다. 나는 손님들이 편안하게 앉을 수 있도록 큰맘 먹고 나지막하게 만들기로 했다.
디자인을 맡은 히라마쓰 겐조 씨는 내가 부탁한 대로 멋지게 만들어주셨다. 단아한 느낌이 나는 흰색 벽에 포렴만 벽돌색으로 포인트를 주어 일본풍의 단순미를 살렸다. 가게가 폭이 좁으면서 기다란 구조여서 결국 종업원의 탈의실은 만들지 못했다. 카운터에 여덟 명이 앉는 자리가 있고, 4인용 탁자가 셋 있고, 안쪽에는 좀 여유 있게 앉을 수 있는 탁자가 둘 있으므로 정원은 28명이지만 붙어 앉으면 32명은 앉을 수 있다. 종업원은 동생과 주방장 외에 세 사람이 있다.
가게 이름은 ‘엄마네 밥집’으로 했다.
동생이 사장이고 나는 중역이다. 나는 자금을 대고 조언은 하지만 적극적으로 개입은 하지 않는다. 뒤에서 이런저런 지시를 하고 손님을 끌어오고 마음이 내킬 때면 나가서 잠시 도와주기로 했다.
‘엄마네 밥집’이라는 글씨체와 성냥갑의 디자인을 정하고 그릇을 사러 세토로 갔다. 대형 요릿집도 아니고 불면 날아갈 듯한 작은 가게인데 일부러 간다는 것이 좀 부끄럽기는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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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도자기를 좋아하는데다가 가마터를 한번 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으므로 기분을 내보고 싶었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리라. 그곳 분들이 따뜻하게 맞아주었기 때문에 지금부터 시작할 새로운 사업에 대한 기대와 더불어, 생각해보면 가장 즐거운 시기였다. 개업 기념 선물로 사용할 젓가락받침 1만 개를 아주 싼 값으로 주신 것도 일이 순조롭게 잘 풀릴 징조라고 생각되었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이게 웬일인가. 공사가 전혀 진척되지 않은 것이다. 바닥을 뜯어보니 원래의 배수관에 문제가 있더라고 한다. 찻집이나 술집처럼 주방에서 물을 별로 쓰지 않는다면 괜찮지만 물을 많이 쓰는 음식점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나 확인을 했는데도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하니 기가 막혔지만 다시 계약을 해야 바닥공사를 하겠다는 것이다. 전문가에게 맡겼는데도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진다. 완벽하게 다시 고치는데 드는 비용과 개업일이 늦어지는 것을 둘러싸고 몹시 신경이 쓰여 옥신각신했지만 관계자의 성의로 그럭저럭 해결이 됐다. 개업은 예정보다 한 달 늦은 5월 11일에 하게 되었다.
모시는 글
연근조림과 고기감자조림을 안주로 술을 드신 후 마지막에 라이스카레로 마무리를 하고, 반찬을 선물로 가져가실 수 있는 가게를 열었습니다. 아카사카에 있는 히에신사 일주문 맞은편 길로 들어와서 첫 번째 모퉁이의 두 번째 집입니다. 가게는 자그마하지만 직접 만든 맛깔스런 음식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아늑한 분위기에서 부담 없는 가격으로 드실 수 있으니 꼭 한번 들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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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장의 문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