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방지일 (10) 평양 장대현교회 전도사 부임 실천신학 체험
2008. 11. 5. 18:07
정오리 교회에서 사역하던 중 모교회인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전도사로 오라는 요청이 있었다.
내가 사역지를 옮긴다는 소식에 주위에서는 "작은 교회를 내버려두고 큰 교회로 가는구나"라는 비평과 뒷말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큰 교회라서 간 것은 결코 아니었다. 신학교에 입학했고, 평양노회로부터 정식으로 교회 전도사로 인준받은 상태라 장대현교회에서 실천신학을 배우자는 마음으로 정한 것이다.
1933년 장대현교회로 옮기면서 나는 신학교를 한 해 쉬었다. 전도사 임무에 전념키 위해서였다. 이듬해부터는 신학교에 복학했고, 전도사 일을 겸했다. 장대현교회가 있던 자리는 지금 만수대로 명칭이 바뀌어 김일성 동상과 김일성 혁명기념관 등이 들어서 있는 것으로 안다.
교회에 갔더니 나는 그야말로 햇병아리나 마찬가지였다. 장로님들은 거의 모두 60세 이상이었다. 여집사 한 명을 제외하고 30세 이하 제직자는 한 명도 없었다. 그때 내 나이가 23세였는데, 제직회에 들어가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처음에는 '내가 이곳에서 어떻게 사역할까'하는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교회 어른들로부터 차근차근 배워나갔다. 결과적으로 장대현교회에서 얻은 바는 대단했다. 실천신학을 온 몸으로 체험한 귀한 학습장소나 마찬가지였다. 신학교에서 신학을 배우며, 큰 교회 전도사로 사역하면서 목사 안수까지 받은 것이다. 내 생애에 굵은 한 획을 그은 기간으로 평가할 만하다.
4년 동안 전도사로 섬겼던 장대현교회에 대한 기억은 생생하다. 당시 교회는 1500명 정도가 모일 정도로 규모가 컸다. 본당과 교육관, 유치원, 당회실이 들어서 있을 정도였다.
장대현교회 하면 길선주 목사님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 장로교의 최초 목사 7명 중 한 분이셨고, 장대현교회 시무 목회자이자 1호 원로목사님이셨다. 특별히 1907년에 불꽃이 일었던 한국 교회의 복음화 운동은 그해 1월 장대현교회에서 열린 부흥 사경회에서 목사 안수를 앞두셨던 길 목사님(당시에는 장로)이 자신의 죄를 공개적으로 털어놓은 고백이 시발점이 됐다.
길 목사님은 내가 전도사로 있을 때 이미 현직에서 은퇴하신 원로목사님이셨다. 연로하셔서 시력이 나빠 잘 못 보시는 길 목사님의 손을 꼭 잡고 모셨던 기억이 있다. 길 목사님은 나에게 신앙적으로 깊은 영향을 끼치신 분이다. 길 목사님은 300여차례의 큰 집회를 인도하셨는데, 특히 부흥회를 열 때마다 꼭 성경통독 사경회를 함께 열었다. 신앙의 경건성을 잃지 않기 위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말씀 중심의 부흥운동을 통해 신앙의 덕을 많이 키우려고 하셨다. 기도도, 설교도 오직 성경에 근거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신 분이다.
길 목사님은 큰 체구에 차력까지 연마하신 분이다. 젊은이 몇 명을 자신의 배 위에 올라오라고 하신 뒤 배에 힘을 주어 튕기면 젊은이들이 나가떨어질 정도로 힘이 세셨다. 길 목사님은 그런 힘을 목회에 쏟으셨다. 요한계시록을 1만독 하시고 전체 22개 장을 모조리 외우셨다. 그 외우는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은혜가 넘쳤다.
정리=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기사원문 : https://v.daum.net/v/20081105180712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