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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카톨릭 교우는 아니지만 미국 디트로이트에 살고 있는 송재섭
동문이 이번에 성지순례를 하고 돌아와 보내준 기행문 내용이 너무
나 알차고 풍부하여 성전회 회원도 한번 일독하면 좋을 것 같아 감
히 성전회 소식난에 올립니다.
내용이 길지만 두고두고 끝까지 읽어주시고 카톨릭에 대한 궁
금한 점이 있으면 아래 이 메일 주소로 연락하세요.
---------[ 받은 메일 내용 ]----------
제목 : 성지 순레 - 2006
날짜 :
Wed, 19 Jul 2006 10:19:29 -0400
보낸이 : "Jaesup Song" <jaesupsong@comcast.net">jaesupsong@comcast.net>
받는이 : "Hyunil Han"
<hanil11@hanmail.net">hanil11@hanmail.net>
성지 순례 - 2006
몇년전에 구라파를 처음 관광하고 방문기를 썼었는데 그중 스위스 부분에 다음과 같은 의미의 내용이 있었다.
“스위스에서 알프스 산 (Pilatus Mountain) 을 보았지만 진짜 알프스 산을 볼려면 우리가 하루 묵은 Lucern에서 더
서쪽으로 가야한다. 스위스 알프스 산을 보러 한번 더 스위스를 찾아 가야할것 같다. Lucern에서 다음 일정까지 시간이 좀 남아 있어 우리는
기차 정거장에 가서 기차표를 구입하는 절차를 밟은다음 기차를 타고 몇 정거장 갔다가 Lucern으로 되 돌아 왔는데 이는 기차를 혼자 타는거가
겁이나 이를 극복하자는 의미이며 훗날 구라파를 기차 여행할 준비를 하기 위해 연습삼아 해본것이다.”
그 “훗날”이 이제 왔다.
Tel Aviv, Israel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Israel의 첫 인상은
사막(desert) 지역에 한국의 아파트 같은 건물이 보이기 시작한다는것 . 공항청사는 새로 건축한것으로 미(美)적 감각을 한껏 살려 지은 듯
하다. 첫날을 지나고 첫 관광지가 쎄사리아 (Caesarea). 한국 말로 “쎄사리아” 하면 아무것도 연상되지 않으나 원어로 Caesarea하면
로마의 씨저 (Caesar) 가 지은 도시라는 의미를 쉽게 납득 할수 있다. . 경기장, 원형 공연장(음향 효과가 정말 극장에 들어와 있는듯
착각이 들 정도로 훌륭), 요새(fortress), 그 당시의 수로(水路- aquaduct)등 로마 시대의 유적지. 이 쎄사리아가 바로 사도
바오로(St Paul)이 감옥살이를 하시던곳이라는군. 사도 바오로하면 사도 베드로(St Peter) 와 함께 교회의 양대
주축(pillars)으로 사도 바울 없이는 Christianity 가 없다는 말을 할 만큼 St Paul의 자리는 구약의 모세와 신약의 성모님
(Blessed Virgin Mary)과 사도 베드로 함께 성경 (salvation history, 성경의 줄거리 )에 거대한 위치를 차지하고
계신 분이다. 성 바울께서 쓰신 편지가 후에 “서간경”으로 신약의 일부분이 되고 신약중에서 최초로 쓰여진 “성경”이 되었으나 내 생각으로는 그
때 그 분이 그 편지를 쓰실때는 그 편지가 훗날 “성경”의 일부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하셨으리라 생각이 든다. 성 바오로의 신학
(Pauline theology) 을 보아도 서간경 전체에 걸쳐 성부님, 성자 , 성령님 , Christian들의 생활, 믿음, 소망,
사랑, 기도, 영성체, 등등 Christian들이 알고 실천해야할 교리가 총 망라 되어 있다.
The Basilica of Annunciation in Nazareth 나자렛에
있는 성모 영보 대성당.성모 영보 대성당이라 번역되지만 종교용어가 그 의미도 알아차리기 어려웁고 또 한국말 용어로 정확하게 번역 한다는것도
자신없으니 앞으로는 풀어서 의미 전달하는 방향으로 해야겠다. 그래서 의미가 전달되게 풀어 말하자면 “천사가 어린 처녀에게 아기를 잉태해
주겠느냐고 물은 자리를 기념해서 지은 대성당”.
Nazareth이 처음 찾아간 곳으로 지금이야 복잡한 도시이나 ( 산등성이에 지어진
오래된 도시 - hilly mountenous old city) 그 당시야 샘 (우물)을 기점으로 해서 여러 가구가 사는 시골 동내로 (예수님의
아버지 St Joseph이야 King David의 왕손 이라는것은 알았지만) 그 동내 사람 전부가 왕손 이었다는군.
“천사는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은총을 가득히 받은이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신다.’ “ (Rejoice, full of grace. The Lord
is with you.”) 라고 인사를 하며 애기를 잉태하겠느냐는 질문에 마리아께서 놀라시면서도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라고 응락하시는 장면이다. 그래서 가톨릭 신자들은 여기의 천사의 인사를 본 받아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기뻐하소서 주께서 함께 계시니 ..
. . . . .”라고 성모경 (Ave Maria, Hail Mary)를 기도하게된다. 이 기도가 가톨릭 신자에게는 사랑하는 기도가 되고 유명한
작곡가들도 이 기도문에 곡을 붙여 “Ave Maria”라는 곡을 작곡했는데 나도 중고등 다닐때 그 내용도 모르고 Schubert나 Gounod의
“아베 마리아” 를 좋아 했었지. Schubert의 Ave Maria의 한국말 가사를 보면 (원어인 독일어도 그렇다지만) 종교적인 기도가 아니고
일반적인 소원 (generic wish)이라고 할수 있는데 Gounod의 Ave Maria는 라틴어로 된 기도문이다. 한국말 가사는 다음과 같이
나가드군:
아베 마리아, 아베 마리아.
은덕이 넘치는 성모님이시어 사랑에 넘치시도다.
거룩하신 성모시어 기도
받으옵서소
예수님의 어머님 되시도다.
산타 마리아, 산타 마리아
번민하는 나를 구원하옵소서
이 몸이 살아 있을때나
죽을때나
아멘, 아멘
Pray for us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가 어떻게해서 ‘번민하는 나를 구원 하옵소서’ 로 번역되었는지는 모르나 원래 의미대로 ‘우리 죄인을 위하여 빌으소서’ 했었드라면 참 좋았을텐데. 이 가사를 붙인 사람이 신학 용어(theological nicety) 까지 신경쓰지는 않은것 같고 한국말을 외국 멜로디에 맞추기가 쉽지가 않았으리라. 그러나 이런 가곡을 진짜 좋아 할려면 첫째 이 곡의 종교적 감성을 느낄수 있어아 하고 둘째 그 곡의 원어 (original language)인 라틴어로 된 (가곡이 아닌) 성가를 들어야 한다. “Ave Maria, gratia plena, Dominus tecum”이라고 말이다. 가장 좋은 예로 외국인이 아무리 우리 민요 아리랑을 좋아 한다해도 어찌 우리 한국사람이 그 노래를 부를때 느끼는 감정을 따라가겠는가. 이 성당 바로 옆에 “성 요셉” 성당이 있는것을 보니 성모님과 성 요셉께서는 바로 이웃 으로 옹기 종기 모여 살으셨었다는것을 알수 있다.
Cana (가나) - 예수님이 처음 기적을 행하시어 물을 고급 포도주로 만드셨다는
곳이다. 성경에는 Cana의 잔치 집에 가셨다고 나와 있으나 실제로 그 지역엘 가 보니 서울로 말하면 을지로 5가 쯤에서 남산을 걸어 넘어
용산의 결혼 잔치집에 어머니(Mary)와 아드님이 제자들과 함께 초청 받아 가셨다고 생각하면 거리
감각으로 맞는 말이 된다. 잔치 집에서
포도주가 떨어지니 어머님이 아드님보고 “술이 떨어졌다” 하시니 -잔치집에서 술이 떨어진것까지 걱정하실 정도이니 아주 가까운 친척집에 윗 사람으로
초청되어 가시어 이것 저것 챙기시어야 되는 경사 였나 보다. --- 아드님의 대답이 “Woman, your thoughts are not
mine.” (어머니, 그것이 저에게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러십니까?) 라고 완곡히 거부하는 장면이 나오는곳이다. 이 글에서 성경 인용을 “공동
번역”에서 하는데 여기에서도 공동 번역에서는 “어머니”라고 했지만 번역을 한 분들이 고심을 많이 했으리라 생각되는데 사실은 “여인”이다. 그래서
내가 옛날에 듣던 성경에서는 “여인이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나까?”로 되어 있다. 가톨릭 신자들은 이 구절을 읽을때 마다 움찔하게 하는
장면이며 또하나 불편해 하는 구절은 제자들이 “어머님과 형제들이 밖에서 기다린다”고 알리니 “누가 내 어머니이고 형제냐”고
반문하시는
장면이다. 그러나 아드님의 완곡한 거절에도 불구하고 어머님은 하인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대로 하여라” (Do whatever he
tells you.) 고 하시어 예수님의 공적 생활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는 장면이다. (물론 여기서 “여인” (woman)은 속 된 표현이
아니고 신학적 의미가 있는 존칭으로 예수님께서 돌아가시면서 십자가위에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유언에도 사용하신 칭호이며 성경의 첫째권인 창세기와
마지막 책인 요한 계시록에도 나오는 title이다. 우리 말로는 “여인”이나 영어권에서는 “Our Lady”라고 하고 불어권에서는 “노틀담 -
Notre Dam” 이라고 하는 최대 존칭이다.) 현지 안내원이 “이 세상에 어머니의 청을 거절하는 아들이 어데 있겠는가” 라고 하든데 그
안내원이 여기 저기서 툭툭 던지는 말이 성경의 구절을 더욱 인간적으로 피부에 와 닿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Sea of Galilee 갈릴리 호수 이호수는 사진으로야 많이 보았지만 직접 보고
싶었던 곳으로 내가 생각했던것 보다 그 규모가 작아 호수 건너가 빤히 보이고 남북 거리로는 남쪽 끝이 아주 멀리 보일 정도의 규묘. 이곳이
예수님께서 활동을 시작하신곳으로 이 해변 주위에는 많은 성경 이야기가 일어난 곳이다. 내가 특히 이 Sea of Galilee를 보고 싶었던것은
옛날의 경험때문.
“ 새벽 네 시쯤이 되어 예수께서 물 위를 걸어 오셨다.” 그리고 제자들이 놀랐다는 이야기가 계속되는데 어려서
교회(감리교)에 다닐때 ---그래서 지금도 감리교하면 따듯한 감정이 있다 --- 아무래도 이 구절이 마음에 거슬러 ( 믿기지 않아 ) 신앙
면에서 한 발자국도 진전이 없었었지. “어떻게 사람이 물 위를 걷나?” 하는 의심 말이다. 그러다가 대학교에 들어가 명동 성당에서
대학생을 위한 교리 강좌를 다녔는데 (후에 안 사실이지만 St Thomas Aquinas의 Scholasticism 을 쉽게 풀이해서
설명하신거드군) “물 위를 걸으셨다”는 기적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 (historical fact of the miracle story)이며
그러니까 예수님이 보통분이 아니라는 설명을 듣고는 종교를 받아 드리기 시작하는 계기 (turning point)가 된거라네. 그때 들은
이론(logic) 대로 성경의 기적 이야기들을 전부 “사실 이야기” (true and factual story)로 받아 드리고 있으며 사실이
아니라면 도무지 그런 이야기를 꾸며 낼 수가 없는 황당한 (reverse proof of the miracle stories ) 이야기들 이라는
것이다.
Mount of the Beatitude 산상수훈을 가르치신 산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교훈(Sermon of the Beatitude)을 기념하는곳: 갈릴리 호수를 내려다보는 언덕에 세워진 성당. 성지에 세워진 모든 성당은 그 나름대로 설계자가 특성을 살려 지었다는데 이 성당은 산상 수훈이 여덟가지 라는데 따라 8각형의 건물로 여기서 내려다 보는 호수의 경치가 일품이다. 이 예수님의 가르침은 그리스도 교의 최대 교훈이라고 하는 성경 해설가도 있다. 그 교훈이 무엇인지 부터 보자.
“가난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하느님 나라가 너희것이다.
지금 굶주린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배부르게 될것이다.
지금 우는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너희가 웃게 될것이다.
이쯤까지는 그래도 “나는 가난하고 굶주리고
우는 사람 축에 끼겠지” 하는 안위한 마음이 이을수 있으나, 더 나아가면, “그러나 부요한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지금 배 불리
먹고 지내는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지금 웃고 지내는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에 가서는 “나는 부요한 사람이 아니고,
배 불리 먹는 사람도 아니며 웃고 지내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 할 자신이 없으니 그저 송구스러운 교훈일세.
그저 마음이 불편한거라
(became very uncomfortable). 송구스런 마음이 생기는 구절이 어데 이것뿐이겠는가.
Church of Multiplication (빵 몇조각으로 5000명은 먹이신 것을
기념하는 성당)
내가 어릴때 또 받아드리기가 어려웠던 이야기가 바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신 기적이나 빵 몇쪽으로 많은 군중을 먹이신
기적 이야기 였었다. 물 위를 걸으셨다는 이야기를 “역사적인 사실” (historical facts)로 받아 드릴수 있으니까 이 기적 이야기도
받아 드릴수 있게 되드군. 내가 처음 교리를 배울때 이 성경이야기는 빵을 “예수님의 몸”으로 만드실 “최후의 만찬”에 대한 전주곡
(prelude)하는 설명을 아무 거부감 없이 받아 드릴수 있었는데 이 성당의 제대앞 바닥 (floor)에 그려진 빵 바구니 와 생선 두마리의
모자익은 선물가게에서 파는 그림 옆서에 반듯이 포함 되어 있으며 그 성당에 들어오는 사람은 어김없이 이 그림을 사진 찍는데 이 mosaic을
보느라면 바티칸 성당에서 중요한 미사가 있을때면 (여기 카톨릭 cable channel에서는 바티칸의 중요 미사를 중계방송 한다네) 그 광장을
꽉 메운 군중에게 일일이 성체(Eucharist) 를 분배해서 그 많은 사람이 “빵”을 받아 먹게 되는 장면이 떠오르더군.
Church of Peter’s Primacy 베드로 종도의 수위권을
기념하는 성당.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보시고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차레나 질문을 하시니 베드로가 잘 아시면서 왜 그러시냐고 섭섭해 하자
“내 양들을 잘 돌 보아라” (Feed my sheep)고 책임을 지우신 것을 기념하는 자리로 이 때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후이니
예수님으로서의 권고 사항이 아니고 그리스도님 (하느님)이 베드로를 최고 책임자로 임명하시는 장면이다. 그리고 바로 이 똑같은 자리에서 성경에
나오는대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빵을 집어주신 곳” (Jesus took the bread and gave it to them) 으로 현재 말로
표현하라면 예수님께서 돌아가셨다 부활 하신후 일요일 마다 나타나시어 미사를 드리시다가 이 세번째 주일에도 이곳에 미사를 집전 하시면서 면병
(성체, Bread-Holy Eucharist)을
떼어서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신 장소이다. 이 성당은 갈릴리 호수변에 자리잡고 있어 성당
옆으로 내려가면 바로 호수가의 모래 사장이 나온다.
카퍼나움 (Capernaum) 그 당시 제일 번창했던 도시로 예수님께서 활동의 중심으로 삼으셨던곳으로 예수님께서 제자를 선임 하신곳도 이곳이며 현재는 사도 베드로의 집터에 세워진 현대식 성당이 있으며 바로 그 옆으로는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던 유태교 회당의 잔재가 있다. 그 번창하던 도시가 예수님이 걱정 하신대로 그저 유적으로만 남아 있다.
쎄사리아 필립파이(필립보의 가이사리아)
여기서도 “필립보의 가이사리아” 하면
도시 감이 잡히지 않으나 로마 황제 Caesar Philippi가 세운 도시라면 이해가 되는 지명(地名). 현재는 Israel의 국립
보호구역으로 요단강의 진원지( head waters)이며 현 Israel의 최 북단에 Syria 와 Lebanon과 국경이 접한 지역이며
한국으로 따지면 함경북도 국경 지역에 해당한다. 안내원 말이 “내일은 쎄사리아 필립파이를 들느는데 거리
관계로 3시간 이상이 걸리니 내일
새벽에 일찍 깨워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말하면서 투표를 하자며 가고 싶은 사람, 안가도 되는 사람 손을 들라고 해서 간다는 사람이
조금 더 많아 가기로 결정된 지역. 도착하고보니 국립 보호구역 (National Preserve)이 될 만한 경치로 물론 규모야 비교가 않되는
소규모이겠으나 미국의 Zion National Park를 연상 시키는 곳으로 15층
정도 높이의 붉은 암벽이 평풍처럼 눈 앞에 펼처지는
장관인데 그 당시에 로마의 Pan 신(神)을 모신 신전으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무어라드냐”고 물으실 만한 배경이 깔린
지역이다. 다음 제자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지시니 베드로가 나서서 “선생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You are the
Christ, the Son of the living God.” - 선생님은 우리가 기다리든 메시아 로서 하느님의 아드님으로서 선생님이야 말로
하느님 (神)이십니다 -라고 답변한 장소이다. 즉 예수님의 진정한 신분(身分- true identity of Jesus)을 처음으로 알아차린
분이 바로 베드로였던것으로 이에 대해 예수님은 “잘 들어라 너는 베드로다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울터인데 . . . . . .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이 구절은 영어성경에는 “So now I say to you. You are Peter and on
this rock I will
build my Church. . . . . I will give you the keys of the
kingdom.” 인데 “베드로”다 “바위”다 하면 사실 감 잡기가 쉽지 않은데 이 구절의 묘미를 알려면 이름을 원어인 Cephas 로 바꾸어
“You are Cephas, on this cephas I will build my Church.”가 되어서 한편의 시 (詩) 구절 같이 운이
맞는 구절이네. Cephas나 Peter는 한국말로는 “돌쇠”에 해당한다. 그곳을 갔다 오는 길에 같은 순례객 중에 한 사람이 우리 집 사람을
힘 있게 Hug 하면서 “Thank you”를 연발. 이유는 갈꺼냐 안 갈꺼냐 투표 하는 과정에서 앞 자리에 앉아 있던 우리가 힘 있게
“두손”을 들었드니 안내자가 손 둘을 들면 속이는거나 마찬가지라고 선언하는 바람에 뻐스 안이 웃음 바다가 된 일이 있었기 때문이지.
Mount of Tabor (타보산) - the scene of Jesus’
Transfiguration (예수님의 변모): 이 산은 물론 갈릴리 호수에 오기 전에 보았지만 여기서 한 마디 하고 넘어 가야겠다. 이 산의
형태가 꼭 서울 바닥에 밥 공기를 엎어 놓은 듯한 형상으로 항상 군사적 요새가 된 요충지 라는데 이런 높은 산 정상까지 어떻게들 걸어
올라가셨는지 놀랄 정도다. “예수께서 기도하시는 동안 에 그 모습이
변하고 옷이 눈 부시게 빛났다” 라는 성경구절대로 예수님께서 애 제자
(베드로, 요한, 야고보)에게만 자신의 변모된 모습을 보여주신 곳으로 하늘에서 부터 “이는 내 아들, 내가 택한 아들이니 그의 말을
들어라.”라는 소리가 났던 곳이다. 아버지께서는 “그의 말을 들어라”고 하시고 어머니께서는 위에 설명한대로 “그가 하라는대로 하거라” 하시던
것과 같이 보면 예수님의 아버님과 어머님의 간절한 명령과 권고가 보이는곳이다. 가톨릭
신자에게 익숙한 기도가 여럿있는데 그중 묵주신공
(rosary) 은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일생을 테마별로 생각 해보는 기도다. 보통 예수님의 일생을 세가지 테마로 나누어 (환희스런 면,
고통스러운 면 , 그리고 영광 스러운 면) 묵상 (meditate)하게 되어 있었으나 지난번 돌아가신 교황이 광명 (luminous
mysteries )스런 면을 더 추가했는데 그 추가된 묵주신공의 묵상 제목이 다음과 같이 5가지로
예수님이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것
가나 혼인 찬치집에서 기적으로 술을 만드신 것
예수님이 “하늘나라”를 선포하신 것
예수님께서 변모하신 것
그리고 나서 다섯번째로 예수님이 마지막 만찬때 (Last Supper)
이 성체 성사와 신품 (성직자의 제도)제도를 제정하신 것
등인데 4번째가 이 예수님께서 “변모”(transfiguration) 하신것을 생각해 보는거네. 성경에 의하면 사도
베드로가 놀라면서 여기에 장막을 셋을 세워 하나는 예수님께, 하나는 모세께, 다른 하나는 에라이자께 바치겠노라고 한 일이 있는데 이 산 정상에는
이태리의 건축가가 지은 거대한 성당이 세워져 있다.
여기서도 설계자가 성당을 설계할때 이 성경이야기를 따라 주 성당(main
altar)는 물론 예수님께, 그리고 입구 양쪽으로는 chapel이 있어 하나는 모세의 방 (Chapel of Moses), 다른 하나는
일라이자의 방 (Chapel of Eliajah) 으로 명명했더군. 우리 구릅은 모세의 chapel에서 미사를 지냈는데 (우리의 구릅이
Catholic pilgrims이고 신부가 지도자로 우리를 인솔 하기에 가는데 마다
성당에서 매일 미사를 드를수 있게 마련이 되드군)
사도 베드로의 소망이 거의 2000년 지나 서야 드디어 실현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
갈멜 산 Mount Carmel 하나 더. 구약의 최대 선지자 (先知者 -
prophet)이셨던 이라지자 (Elijah) 께서 사시던 곳으로 정상에 있는 성당 (Chapel) 옥상에
올라가 보면 눈 아래에 펼쳐지는 경치가 장관이다. 선지자 하면 글자는 “앞 날을 내다보는 사람” 이라는 의미이나 그 보다는 “난세에 처 했을때
해야 할 말 (하느님 말씀)을 하는 사람” 이라는 의미이다. 그 당시 다른 신(Baal)을
모시는 사람들과 경쟁이 붙었으나 하늘에서
내려온 불로 이기고 반대파를 모두 죽였으며 후에 Prophet Eliajah는 불 (火) 마차 를 타고 하늘 나라로 올라가셨다는 이야기가 구약에
나온다.
요단강 (Jordan River) 갈릴리 호수 지역을 빠져 남쪽으로 (에루살렘 쪽으로) 가는 길에 들린곳이 갈릴리
호수 남단에서 요단강이 다시 시작되는 강 입구에 예수님이 세례 요한한테 물로 세례 받으신것을 기념하는 장소다. 역사적으로 세례 장소는 더
남쪽으로 내려가 요단강이 사해 (Dead Sea)로 들어가는 입구라지만 그곳은 지금 Israel과 Jordan이 국경 분쟁이 있는곳이라 들어
갈수
없으니 갈릴리 호수 입구에 이 기념 장소를 세웠다는데 이곳은 성당이 아니고 Israel의 기부즈 (협동 농장 - Kibbutz)에서
운영 한다는군. 이곳에서 많은 순례객이 물로 세례를 받으며 많은 감명을 받는데 우리는 강물에 맨발로 들어가는것으로 대신 했다.
제리코 (Jericho) 사해 (死海) 입구에 있는 Oasis인 고대 도시. 40년을
사막에서 유랑 생활을 하다가 모세는 강을 건느지 못 하고 모세의 후계자 여수아(Joshua)가 요단강을 건너 제리코 도시를 함락하는 것으로
Israel 역사가 시작 되었다고 할수 있다. 구약에 의하면 여자, 어리애까지 하느님의 명에 따라 모두 섬멸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내가
안내자에게 물었지. (학자마다 설명이 다를 수가 있는데 정말 학살 했다는 주장에서 부터 거의 빈 도시를 점령했다는 학설 까지) 여자와 어린
애들까지 전부 죽였다는것이 어쩐지 거북한데 실제로 그런일이 일어 났었느냐고. 그 안내자의 말이 그렇다고 대답하면서 “성경을 그대로 믿든지 믿지
않든지 해야 한다.” ( Either you believe in the bible or you do not”고 답변 하드군. 제리코는 사막
지역으로 여기서 부터 예루 살렘 까지는 차로 40분 정도 가야 하는 거리로 낮은 지역인
사해 지역에서 고 지대인 예루 살렘으로 계속
올라가는 길로 예루살렘은 높은 산악 지대에 세워진 도시. 사막이 끝나는 곳이 바로 예루살렘 이며 이 사막이 성경에서 말하는 “광야”이다.
Jerusalem에 도착. 드디어 예루살렘에 도착. 한국으로 말하면 대관령 같이 높은
산악 지대에 세워진 도시이다. 여기서 5박 하는 스켸줄. 도착하는날 저녁을 먹은후 밤에 구 도시 (Old City)로 우리 둘이서 걸어 들어
갔다가 무서워 얼른 나왔는데 후에 안내자 말이 혼자는 또 가지 말란다. 성(城)으로 싸여 있는 구 도시(Old City)는 서울의 광화문,
남대문 동대문 정도의 규모로 150년 전까지만해도 Jerusalem의 크기가 이게 전부였다는데 지금은 네 구역으로 나누어 Jewish
Section, Muslim Section, Armenian Section 그리고 Christian Section 으로 나누어 있으며
Jerusalem은 “평화의 도시”라는 어원. 성경에 나오는 인명과 지명은 모두 의미가 있는 단어들이라 그 의미를 알아야 성경을 이해하는데
필수적 인데 우리는 그 의미를 모르고 성경을 읽으니 성경을 읽어도 많은것을 모른체 지나치게 된다. 한국으로 따지면 한문이 잔뜩 포함된 글을
한자의 지식이 없이 한글로만 읽는거나 마찬가지이고 내가 한국 방문하고 “내가 경주를 떠나 정동진에서 잠깐 쉬고 설악산을 거쳐 서울로 올라 갔다”
라고 쓰면 한국에 있는 사람이야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금새 알아 차리나 미국 사람이 읽으면 그저 어데를 들려 서울이라는데를 간 모양이구나 하는
정도인것과 마찬가지이다. 이 경우 미국에 사는 사람이 한국을 방문해서 그 동안 말로만 듣던 여러가지를 직접 보고 설명을 들어 경주가 어떻고
정동진은 무엇이며 설악산은 어떤 산이며 “서울로 올라간다”는 의미는 또 무엇인지 알아 본다치면 바로 성지 순례란 그런거나 마찬가지라고 할수
있겠지. 예루살렘은 세계
열강의 교차점으로 안내자가 그 지방 역사를 설명하면서 로마제국, 1차, 2차 십자군, 사라센의 아랍제국,
비산친시대, 오토만 제국, 영국의 식민통치등을 열거하면서 간단 간단히 언급하는데 우리에게는 감 잡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 역사의 소용돌이의
중심인 곳이 바로 이지역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내 느낌은 “평화의 도시”라는것이 분쟁이 없다는 의미보다 그 와중이 “평화를 기원하는
도시”라는 감이 있다. 사실 우리 Christian들이 Jerusalem이라는 어휘를 쓸때는 우리가 기원하는 이상형의 “평화의 도시”를 의미하지
않나?
이곳에 교회건물이 세워진것은 로마 황제 Constantine이 CHristianity를 받아드리고 나서 부터인데 그 황제의 어머니
St Helen의 힘이 원동력이것 같다.
그 당시 처음 세워진 교회 건물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묻히신 장소에 세워진 The
Church of Holy Sepulchre. (십자가가 꽂힌 장소와 묻히신 장소가 한 교회 건물안에 있음). 십자군의 발단이 바로 이
교회건물을 아랍 군대가 파괴했기 때문이란다. 십자군이 패하고 아랍시대가 다시 시작 되면서 교회 (Rome)에서는 프란시스코 수도회보고 성지에
있는 성당들을 돌 보라는 책임을 지웠는데 그 임무가 지금까지 계속 내려 오는것으로 그 동안 성직자, 수도자들이 많은 희생을 당했다 한다. 말로만
듣던 십자군 이야기이니 오래전 이야기이다. 여기서 “만일에 . . . . 했다면” (What if . . .) 하는 가정법으로 생각해 보면 알기
쉬운 대목인데 “만일 그때 서양이 아랍에게 패하고 후퇴할때 교회에서도 성지를 포기하고 말았었다면” 지금 현재 Jerusalem 에는 유적지가
하나도 없어 순례를 가고 말고 할 것도 없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서울에 갔을때 내가 옛날 살던데를 가보니 옛날의 자취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거 같은 거 뭐 그런 내용이지. 현재 있는 성당들은 현대에 와서 건축 된것도 있지만 거개는 옛날 건물위에 새로 짖고 또 짖고 하는 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으며 성당을 볼때 겉 건물만 보고 지나 칠수도 있겠으나 그것은 정말 수박을 겉만 보는거나 마찬가지. 그 성당안에 들어가
성화(聖畵)나 글을 보며 그 당시 교회와 건축가가 어떤 면을 부각 시키고자 했는지 음미해보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 더 나아가 그 성당 지하실로
내려가 왜 그자리에 그 성당을 짖게 되었는지 알아 보는것도 필수이겠다. 그리고 성경의 이야기와
연결해서 묵상 할때 성경이 “살아나는”
느낌을 체험 할수 있는것 같다.
Church of Visitation 엘리사벳이 애기를 잉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성모님께서 엘리사벳을 방문하신것을 기념하는 성당. 엘리사벳은 사촌간으로 집안의 나이든 언니로 이미 세레 요한을 임신했기에 사촌 언니의 해산을
도와주러 가신것이지. 서울로 따지면 영등포쯤 되는 거리에 있는 도시로 시골 나자렛에 사시든 성모님도 임신한 처지에 8일동안 걸리는 거리인 수도
서울에
도착해 사촌집에 오신것. 성경에 따르면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을 받았을 때에 큰 소리로 외쳤다. ‘모든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
되시며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시도다’” (Blessed are you among women and blessed is the fruit of
your womb Jesus.) 이것이 바로 우리가 외우는 성모경 (Ave Maria)의 둘째 구절이다. 계속해서 나이든 사촌 언니가 손아래
나이어린 마리아께 “주님의 어머님께서 나를 찾아 주시니 어찌된 일입니까” 하고 황송해 하는
장면이 누가복음에 나온다. 거기에 화답해서
“마리아의 노래”라는 노래를 부르시게 되는데 영어로는 Magnificat라고 하며 이 시(詩) 에도 곡을 붙인 작곡가 들이 많이 있다. 이 성당
구내에도 이 성모님의 찬가가 여러나라 말로 적혀 있다. 물론 한국 말도 있지. 성당 건물 전면 위에 모자익으로 그려 놓은 그림이 눈에 특히
띠는데 시골에서 당나귀를 타고 성모님이 멀리 예루살렘 성을 향해 가시는데 천사들이 시중을 드는 장면이다. 하느님의 아드님을 태중에 모신 분이니
천사들이 시중을 들을수 밖에. 그냥 “갔다”하는 성경 구절이
“살아 생동케 하는 그림’이며 이 성경이야기의 인간성 (humanity)을
느끼게 해 주었다.
The Church of Nativity 아기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자리를 기념하는
성당. 이 성당도 Constantine 황제의 어머니가 지은 교회 건물. 이 성당은 예루살렘 교외에 있는
베들레헴에 있는데 현재는 파레스틴 정부의 소속으로 위치로 보면 서울로 말하면 용산쯤이나 (내가 생각하기는 뻐스로 한참 가는 떨어진 도시로 생각
했는데 용산이 서울의 일부 이듯이 베들레헴은 예루살렘과 한 도시이며 단지 정부가 다르니 국경 검사대를 지나야 하는거고 Israel에서 장벽을
세워 놓았다). 신자이든 아니든 베들레헴에서 아기 예수님께서 낳으셨다는 크리스마스 이야기는 다 아는 이야기이다. 어릴때 부터 그 이야기를
들어왔지만 현대식으로 보면 좀 미흡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건 어린 여성이 만삭이 되어 해산이 임박 했는데 여관이 다 찻다고 마구깐으로 가라고
한것이 어쩐지 마음에 싹 들어오지 않았다. 한국식 생각으로 그랬다는 이야기이지.
그러나 한국에서도 옛날에는 시골 인심이라는게 동네
할머니들이 그대로 놓아두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해설가에 의 하면 그 당시 어느 집이나 소위 안방과 가축을 두는 마구깐은 같은 장소에
있어 먹이통(구유,manger)가 두 방을 나누는 간막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했든데 그럴만한 설명이라고 생각 했었지. 베들레헴이란 단어의 어원은
“빵의 집”(house of
the bread), 구유(manger) 는 먹이 통이고 예수님은 빵 (Bread ) 이시니 빵의 집에
빵으로 오신 분이 우리를 먹이시려고 먹이통에 ?뗌? 신다는것이 이 아기 탄생 이야기 (story of His nativity) 의 상징적 의미
(symbolism)이네. 또 예수님은 항상 하느님의 아드님 다웁게 무엇이든지 좋은것이든 고통 받으시는 것이든 항상 그때 그때 상황에
처하실때마다 항상 “최상”의 자리를 차지하시기 때문에 “여관 방”에서 탄생하신다는것은 생각 할수도 없는 상황이네. 그러나 이 “예수님 탄생을
축하하는 성당”은 옛날 부터 굴(窟,cave)에서 태어 나으셨다는 구전 (口傳)에 의해 바로 그 장소에 지워진 성당이란다. 그 굴이라는게 사람이
사는 집 밑에 (아랫층) 있어 각 가정의 가축을 보호하는 마굿간 역할을 했었다는군. 이 교회(Church of Nativity)는 예수님이
탄생하신 바로 그 자리 위에 제단 (altar)이 위치한 건물로 현재 동방 정교(Eastern orthodox)의 소유로 되어 있으며 우리가
갔을때도 동방 정교의 예식이 있더군. 가톨릭 성당은 동방 정교 교회 옆에 붙여 건물을 지은것인데 내부가 그만해도 현대식이다. 그리고 이 성당
지하실에는 St Jerome의 묘지였던곳이 (현재는 Vatican에 이장) 있는데 St Jerome하면 그 당시 언어인 라틴어로 성경을 번역한
분으로 예수님이 탄생하신 바로 그 자리 동굴에서 번역
작업을 하신것. St Jerome이 그 당시 교회에서 사용하던 그리스언어로 된
Septuagint를 라틴어로 번역한 것 (Vulgate 판이라고 함) 으로 가톨릭에서는 지금 까지 이를 따라 오는데 Martin Luther가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 할때는 (독일어의 표준은 Martin Luther의 성경 번역으로 정립 되었음) Hebrew어로 된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했으며 현재 모든 개신교는 Hebrew어를 따라 가톨릭과
개신교는 신약은 전부 같으나 구약이 조금 다르다.
Shepherd’s Field (목동들이 예수님이 나시던 저녁에 양을 치던 곳을 기념하는 성당) 이곳은 위에 설명한 예수님이 탄생하신 장소를 기념하는 The Church of Nativity 성당 (산 정상에 있음) 에서 내려다 보이는 골짜기에 있으며 (양을 풀 먹이는 들판이 아니다.) 이 성당도 그 특징이 꼭 목동들의 텐트같이 디자인 되었다. 여기 성당에도 성경에 나오는 구절중에 “하늘에서는 영광 땅에서는 평화” (Glory to God in the Highest and peace to people on earth - Gloria in Excelsis Deo) 라는 영광송 (Gloria) 가 써 있다. 여기서 미사는 그 옛날 목동들이 기거 했을법한 동굴 Chapel에서 참석 했다.
Church of St Peter in Gallicantu (사도 베드로께서 예수님을 세번 거부한것을 기념하는 성당. 시온산 중턱에 있는 현대식 건물로 제사장 카이아파스(Caiaphas) 의 집 터에 세워진 교회로 지하실에는 예수님이 하루 저녁 같히셨던 굴 (dungeon) 이 있다. 그 이 성당의 꼭대기에 세워진 십자가에는 숫닭의 모습이 세워져 있는데 사도 베드로가 숫닭이 울기전 3번 예수님을 모른다고한것을 나타내기 위한것.
Gethsemane (겟세마네 동산) 예수님이 체포되기 직전에 피땀 흘리시며 기도하신
곳으로 기도하시든 장소에 “고난 성당” (Church of Agony) 이 세워져 있다.
이 동산은 Jerusalem시를 마주 건너다
보는 언덕에 자리 잡고 있으며 교회내 정원에 있는 올리브 나무는 탄소 측정 (Carbon date) 해 본 결과 예수님 시대에 이미
200-300년 묵은 나무라는군. 키야 사과나무 정도이나 두 사람이 팔을 벌려야 나무를 에워 쌀 수 있을 만한 크기이다. 이 성당 건물도 특징이
있어 건물 자체가 내부 조명이 없이 어두우며 창문도 통상 stained glass가 아니고 파란 돌로 되어 있어 빛이 쪼금 통과 하도록
되어있다. 이 성당에서도 미사가 있었는데 미사 시작 할때 하는 고죄경 (I confess to Almighty God, 전능하신 천주여, 저는
죄를 많이 지었나이다 . . . . )으로 우리 죄를 고백할때 장소가 장소인지라 그 기도의 의미가 더욱 새로웠다. 구역 내에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기거 했다는 Cave of the Olive Press (오리부 기름을 짠던 굴) 과
또 Tomb of the Virgin Mary
(성모님이 돌아가신 곳을 기념하는 성당) 이 있는데 시간상 그것은 보여주지 못하드군. (전설에 의하면 성모님은 사도 요한과 함께 현재의 터키에서
오래 살으셨다고 하던데 아마 고향 집에 돌아오셔서 돌아가신 모양이다. 또 가톨릭 신자는 성모님이 돌아가신후 바로 아드님이 어머님을 천국으로 모셔
갔다고 믿기 (Assumption of Mary) 때문에 Church of Assumption 이라고도 한다는군. 그리스도 교인은 누구나
하느님을 섬기고 서로를 도웁다가 구원받아 천국에 가는것이 소원이니 그리스도께서 어머님을 데려 가시었듯이 우리도 천국에 데려가신다고 믿는
교리이다.
안내자의 말이 가톨릭에서는 이를 교리 (dogma)로 선포한 반면 동방 정교 (Eastern Orthodox)에서는 교리로
선포는 않 했어도 일반 신자들이 이 교리를 믿는것은 대단한 정도라고 강조를 하드군. 이 겟세마네 이야기를 들을때마다 왜 예수님께서 그렇게 까지
고통을 받으셨는지 이해가 어려웠었는데 영화 “그리스도의 수난” (The Passion of the Christ) 보고나서 많이 깨우쳤다.
사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이미지는 종교 영화가 많은 영향을 주어 왔는데 지금까지 본 영화는 예수님이 챗죽 몇 차례 맞으시다가
돌아가시는것으로 되어 있었으나 이 영화를 보고 나서야 예수님이 당하신 고통이 (enormity of His Passion) 그 극에 달했었으며
“이 세상의 온갖 죄를 그렇게까지 마음 아파하시면서 곧 닥칠 최악의 (최고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과 맞 물려 그렇게나
힘들어
하신거라”는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얼마나 밑바닥 까지 고생을 하셨으면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고 애원까지
하셨겠나. 이왕 영화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가지 더 해보자. 누가 나 보고 그 영화 중에서 제일 인상에 남은 장면이 무엇이드냐고 묻는다면 보통
인상에 남는다는것은 예기치 않았던 장면이기가 십상이니 나도 예기치 못했던
장면에서 하나만 골라야 하는데 예수님께서 돌아 가실때 하늘에서
눈물 방울이 떨어지는 장면이 바로 그 장면이다. “아, 하늘에 계신 아버님께서도 울으시는구나” 하고 생각이 들며 (어머님은 십자가 밑에서 우시고
) 그 장면이 마음에서 영 사라지지를 않는다. 이 영화의 시작이 바로 이 겟세마네 동산이며 이야기는 “십자가의 길”( Station of the
Cross) 의 전개를 그대로 따라
한것이다. 여기서 “십자가의 길” 이란 무슨 기도 (prayer) 인지 영화를 바탕으로 설명해야
하는데 그보다 내가 구라파 2차 여행을 하고 기행문을 쓴게 있는데 그 중에서 따와 설명 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곳 (불란서 루루드 에 있는 루루드 성당) 뒷 산으로 올라 가면서 실물보다 훨씬 더 크게 조각을 만들었는데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전 12시간을 표현해 놓은 동상들이다. 성당내부에는 통산 14처로 14개의 그림이 양쪽으로 걸려 한쪽에 7개씩 있게 마련인데
14번째 그림 (station이라고 함)이 예수님을 장사지내는
장면으로 이 그림이 마지막이다. . 이 루루드 성당 뒷 산에 세워놓은
동상이 성당내에 있는 Stations of the Cross 그림 그대로 조각을 해 놓은것이며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장면은 그 산의 정상에
있었으며 마지막 14처는 가파른 언덕을 내려가서 끝에 있더군. 그래서 통상대로 14처가 마지막이려니 했지.
그런데 모퉁를 돌아가니
예상외로 15처가 또 있어 그 텅 빈 무덤 입구에서 깜짝 놀랐던 경험 을 했다. 무덤 입구를 막고 있었던 큰 돌이 옆으로 밀려 무덤의 입구가
훵하니 보이게 말이다. 텅빈 무덤 이야기는 많이도 들어 왔지만 이렇게 기대치 않았던 장면을 직접보고 깜짝 놀란 경험을 하고서는 성경에 제자들이나
여자분들이 주님의 묘가 텅 비었다는 사실에 처음 접하고 얼마나 놀랐을까 조금이나마 이해하는듯 했다. 아주 값진 경험을 했다. The
Passion of the Christ 라는 영화는 어느 성당이나 간에 그 벽에 그려있는 그림을 그대로 따라 영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그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어쩌면 이 곳의 제 15처와 그렇게나 닮아 아마 그 감독이 바로 여기서 힌트를 얻지않았나 생각이 들 정도 였다네.
Via Dolorosa ( 슬픔의 길) 이 길이 영화 The Passion of the Christ에서 나오듯이 예수님이 십자가를 메시고 지나신 그 길이며 “슬픔의 길”이라고 해서 성지를 방문하는 순례객들은 이 길이 꼭 일정에 포함되어 있다. 재판 받으시고 채직질을 당하신 곳을 “십자가의 길” (Stations of the Cross)의 1처로 시작해서 Jeruslam의 Old City의 좁은 길을 따라 가다가 묘지 자리에 세운 교회인 The Church of Holy Sepulchre(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것을 기념하는 성당) 에서 14처로 끝나는 기도로 영화의 장면을 상상 하면 된다.
그래서 도착한곳이 The Church of Holy Sepulchre 예수님의 묘 자리에 세운 성당. 최초의 성당 건물은 서기 335년에 콘스탄틴 로마 황제가 지은후 에 파괴도되었다, 증축도 되는 등 여러 과정을 거쳐 현재의 교회건물이 되었다는데 여기가 바로 인류의 구원이 성취된 그 장소이며 Christianity 의 믿음의 진수가 되는 곳이다. 현재는 알메니아 교회, 콥틱 교회, 그리스 정교, 그리고 로만 가톨릭 교회가 공존하며 각자 자기 구역을 지켜나가고 있는곳이다. 그리스 정교가 십자가가 세워졌던 장소 (그리고 무덤)를 소유하고 있고 가톨릭 교회는 바로 그 옆에 제대가 설치 되어 있는데 여기서도 미사에 참석. 이 중에 어느 누가 “그래 네가 다 맡아서 관리 하거라”하고 양보 하겠는가. 신사적인 묵계로 status quo 를 지켜나간다는군. 이 교회는 예수님이 뭍히셨던 무덤 (돌 바위를 파내어 굴을 만들어 지은 무덤) 바로 그자리를 중심점으로 잡아 지은 건물로 현재의 건물은 십자군 원정때 지은것이라는군. 이 곳이야 말로 관광객이나 순례자로 제일 붐비는 곳으로 성지 순례의 highlight이다.
이층방 (Upper Room) 그다음 간 곳이 레오나도 다 빈치가 그린 벽화 “최후의
만찬” (Last Supper)의 소재가 되었던 이층방. 지금도 그러는지 모르지만 옛날에 많이 들은 단어는 다락방인데 다락방하면 옛날 시골 집에
다락이 생각나는데 레오나도 다 빈치가 그린 그림의 배경이 영 다락이 아니다. 우리가 본 이층방은 14세기 십자군들(Crusaders) 이 지은
건물이라는데 현재 쓰지 않는 건물로 이층방이란 이런데라는 의미로 보여준 정도였으며 그 건물의 아랫층은 유태교의 회당 (synagogue) 으로
다윗 왕의 묘지로 차려 있다. 그 당시 이층방이 있을 정도면 부자 동내에 있는 부자집이라고 안내자의 설명. 성경 구절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빵을
들어 축복하시고 제자들에게 나눠 주시며 ‘받아 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다른 구절에서는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이 살 것이다” 하신것 처럼 가톨릭 교리중 가장 믿기도 어렵거니와 중요한 교리이다(mystery of Catholic faith).
그러나 위에 설명한대로 물이 술이되고 빵 몇조각으로 많은 군중을 먹이신것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드리면 이 “내 몸” (My Body) 의
교리, 즉 면병의 형태로 예수님이 실존 (Real Presence) 하신다는 교리는 땅 짚고 헤엄 치기이다. 주의 기도문에 (in Lord’s
Prayer)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라는 구절이 있는데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다르다. 내가 이 구절을 외울때마다 처음 머리에 와
닿는 이미지는 영성체이다. 영어로는 이 “일용할 양식”이 “daily bread”이라고 되어 있어 “예수님의 몸”이신 빵”을 먹으면서 영원히
살게 해 주시겠다는 말씀을 되 새기게 된다. 또 이 “일용할 양식”을 기도할할때마다 마음의 양식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주십사고 청하는 사람도
있겠다. 또 우리가 옛날 가난할때는 우리 어머니는 자식들 한테는 점심을 먹이면서 어머니는 때를 건너뛰신 적도 있었는데 나는 그런 눈치를
채면서도 나 혼자 그 점심을 그냥 먹었던때도 있었다. 그 당시 우리 어머니께
“양식”하면 무엇이 생각 되시냐고 여쭈어 보면 서슴
없이 “끼니나 걸르지 않게 해 주시면 좋겠다”고 답하시리라. 이와 같이 하느님 말씀 (성경)은 보는 사람에 따라 생각하는바 (images)가
다를 수 있고 구절 구절 마다 그 중요성이 클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겠다. 이런 면을 보면서 성경이란 참 대단 하다는 (powerful)
생각을 하게 된다. 하나의 예를 들자. 자연(自然)이란 대단한(powerful)거다. 한국에서야 서산(西山)에 해가 넘어가면 장엄하다고 할
경치가 아니겠으나 해가 바다위로 뜬다든지 바다 아래로 넘어 가는것을 상상해 보게나. 해가 뜨고 지는것은 지구가 도니까 그렇다고도 생각하고 말면
사실 그것으로 그만이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무엇인가 우리 영혼에 와 닿는 이미지가 있는게 아니냐는 생각을 반대만 할 사항도 아니다. 느끼는 바가
사람마다 천차 만별일 수가 있다는 이야기이며 그 만큼 자연(nature)이란 대단한거지.
부활 전 목요일은 성 목요일로 마지막 만찬때 예수님께서 이 성체 성사를 제정하신것 (instution of
eucharist)을 기념하는 미사가 있게 마련인데 그 미사에 세족식 (Washing of the Feet)도 겸하게 되는 기념미사이다. 신문에
부활절때면 교황이 Vatican 미사에서 세족식을 행했다고 나는데 이는 본말이 바뀐 이야기이지. 성체성사를 세우신 Last Supper를
기념하는 미사도중에 그 당시 예수님이 하신대로 아랫 사람(?)들의 발을 씻는 예식을 하는것이지.
한국신문에 보면 한국 학교에서도
선생님들이 제자들의 발을 씻는 행사를 하는것 같은데 아마 mission school에서 그러는듯. 미사에 구경 (?) 가 본 사람은 알겠지만
면병 (bread)을 받아 먹기 전에 신자들이 꾸벅하고 인사를 드리는것을 보았을것이다. 면병을 논아주는 사람에게 인사하는듯 보이나 실상은
면병안에
계시는 예수님께 인사를 드리고 받아 먹는것이니 가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이 조금이라도 카톨릭 신자들을 이해해 주기바라는 마음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네. 일년내내 참석하는 미사가 매주 주일 미사에서 부터 크리스마스 미사, 부활절미사, 성모님 무염시태미사 등등 많이 있지만
내가 제일 감격 스러워하는
미사가 바로 이 성 목요일에 있는 성체성사 (Sacrament of Holy Eucharist ) 미사이다.
Church of Pater Noster 예수님께서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켜 주신 성당. 그래서 지금 우리도 “주기도문”을 기도하는 것이다. 어릴때 교회에 다닐때야 “주기 도문” 이라고 발음했고 그 이미도 몰랐으나 “Lord’s Prayer”라는 의미라는것을 알고 나서야 “주 기도문” 이라고 발음 해야되는것을 알았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빗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 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 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 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자지 말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한국에서는 얼마전에 기도문을 새로 바꾸어 내게 익숙한 기도문이 고어(古語)가 되기 시작 했고 요새 새로 나온 성경에도 “예수님”과 같이 존칭으로 “님”자를 붙여 나오는데 진작에 그럴것이지 하는 생각이나 습관이란 어려운거라 새 기도문이 자연스러워 지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지.
이 “주의 기도문”은 물론 우리에게 친근한 기도문이나 “저희에게 잘 못한 이를 용서 하오니 저희 죄를 죄를 용서 해”주십사는 청을 드릴때는 그저 또 송구 스러울뿐이다. 우리 죄는 남을 용서 할때 우리 죄도 용서 받는다는 가르침이니 제일 쉬우면서도 제일 어려운 가르침이시다.
올리브 산 (Olive Mountain) 정상에 있는 이 성당에 들어가면 150개국어로 “주의 기도문”이 벽을 따라 쭉 나열 되어 있는데 물론 나야 영어를 찾기 보다 한참 헤메다 겨우 한글 기도문을 찾아 사진 한장을 찍었지. 이 성당 건물은 1500년을 두고 짖고 파괴되고 또 짖고 하다가 현재의 미 완성 건물이 (자금이 고갈되어) 되었는데 그 미 완성 자체가 이 성당의 특성이 되어 있는데 양쪽 벽과 뒷벽만 세워져 있고 지붕이 없는 건물이 되었는데 (바로 인근에 예수님이 승천하신 자리를 기념하는 성당이 있다는데 시간상 그 성당은 일정에 포함하지 않더군) 안내자가 “예수님이 승천 하신뒤 모두 어데를 쳐다 보았느냐” 고 물으니 모두가 “하늘”하고 대답하니 안내자가 하는 말이 “그래서 이 성당은 지붕이 없는거다” 라고 대답 하드군. 처음부터 그럴 계획은 아니었지만 결국 아주 의미 깊은 건물이 되었다 (very fitting church for the commemorating Lord’s Ascension).
Church of St Lazarus (예수님이 죽은 나자로를 다시 살려 내신 장소를
기념하는 성당, 그 당시 Jerusalem엘 가려고 길릴리를 떠나 8일 걸려 도착하면 사막를 지나면서 처음 대하게 되는 마을이 이 베다니
(Bethany) 마을로 누구나 여기서 쉬게 마련이고 성경에 나오는 말다와 마리아 (Martha and Mary)의 이야기가 나오는 마을.
여기서 예수님이 나자로를 살려 내신곳이다. 위치로 보면 Jerusalem에서 산 하나 넘으면 되는 거리이나 현재는 팔레스타인 나라에 소속이라
멀리 돌아서 겨우 도착한 도시이며 Israel에서 세운 장벽이 바로 손이 다을 위치에 보인다. 그래서 사해 (Dead Sea) 와
큼란(Qumran)을 찾는 마지막 날 마지막으로 보여준 성당. 이 성당도 이태리 건축가 (이름은 Barluzzi인데 Vatican을 설계한
Michelangelo 와 Vatican 성당내의 제대(Altar)를 설계한
Bernini와 함께 그 이름이 오래 남을꺼라 생각했네) 가
지은 성당인데 성당의 구조도 창문이 없는 무덤을 연상하게 설계되었고 건축재료도 회석(灰石 - chaulk) 를 사용해 (회석은 물을 흡수하는
성질이 있어 건축 자재로는 쓰지않는 돌이라는군) 겨울 우기 (雨期) 에는 성당 내부에 물이 뚝뚝 떨어지며 무덤(mausoleum) 같이 우중층
하다드군. 성당에 들어 가면 천정 돔에 돌아가며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이라는 성경 구절이 Latin어로 새겨 있다. 그리고 천정의
Dome 부분에 예수님 12 제자들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는데 12 제자분들 중에 사도 바울 (St Paul)이 포함. Jerusalem 지역에서
사도 바울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는 곳이 이곳 뿐이라는군. (사도 바울은 예수님 보다 한 세대 후에 사신 분이시기 때문) 여기서도 미사를 지냈는데
“마지막 날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활케 하시리라”는 구절이 들어 성가를 불렀는데 이 성당에서 부르기에는 제일 적합한 노래라는 생각을 했다네.
사해 (死海) (Dead Sea) 정말 물에 몸이 뜨더군. 물 속에 들어가 가만히 뒤로 누우면 몸이 뜨는데 몸의 균형을 잡으려니 양 팔을 옆으로 뻗치는 자세만 취하면 된다. Qumran 지역은 바로 이웃에 있고. Qumran하면 2000년 지난 근래에 와서 옛날 성경 ( 이사야 -Isaiah- 전문(全文)) 과 에센스(Essenes)의 경전이 발견된 된 곳으로 그 구약성서가 예루살렘의 큼란 박물관에 전시 되어 있다. 그 사람들은 (세례 요한이 이 에센스 구룹에 속했었다는 학설이 있으나 우리 안내자는 그렇지 않다는쪽으로 기울더군) 자기들만이 빛의 아들( Children of Light)이고 여타 사람들은 모두 “암흑의 아들” (Children of Dark) 믿은 사람들인데 로마 군대에 맞서다가 마사다 (Masada) 라는 곳에서 전부 사망, 그들의 시대가 끝나게 되지.
성지순례는 구릅 여행 이니 모든것을 챙겨 주었지만 구라파는 배낭여행 비슷하게 기차로 하는 개인 여행이라 고생을 각오하고 8일간의 여행을 계획한것이다. 로마에서 3박, 스위스에 3박 그리고 파리에서 3박의 여정인데 로마에 간것은 나폴리에 있는 폼페이 유적 구경을 하고 , 스위스에서는 Matterhorn 산을 보고 ( Bern 에서 기차를 타고 Brig까지 가서 다른 기차로 갈아타고 Zermatt (세계에서 제일 높은 고지대에 위치한 기차 정거장이라는곳) 까지 올라갔다가 또 다른 기차 (cog-rail)로 갈아타고 Gornergrat까지 더 올라가 스위스에서 제일 높은 Matterhorn 산을 보니 그 경치가 꼭 IMAX 영화를 보듯이 눈 앞에 펼쳐지드군), 그리고 파리에 가서는 Nevers 에 있는 수녀원을 방문키 위한 여행이었다.
바티칸, Basilica of St Peter’s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은
사도 베드로가 받은 열쇠의 모습으로 건축된 건물인데 워낙 그 규모가 크다보니 광장에 서 보아야 그리 크다는 감각을 가질수가 없다. 그 크기를
실감한것은 돔 (dome) 맨 꼭대기 까지 걸어 올라가서 주위를 둘러 보았을 때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남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시내를 내려다
보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내려오니 다리가 후들 후들,
계단을 내려오는데 비틀비틀하니 지나가든 청년이 왜 그러느냐고 걱정을 해 줄 정도.
그 청년이 미국 사람인듯 영어로 물어 왔는데 동양인에게 영어로 말을 걸은것을보면 그 청년도 깜짝 놀란 모양이다.
이 성당도 로마 황제
Constantine이 사도 베드로의 무덤자리에 성당을 지었으나 오래 되어 재 건축을 해야할 때가 되었는데다가 급한 사정이 생기게 된것. 급한
사정이란 그 당시로서는 최대 성당이라 할수 있는 성당 두개가 모두 아랍세계로 떨어 진것, 첫째는 Jerusalem에 있는 The Church
of Holy Sepulchre (위에
설명한 예수님 무덤 성당), 그리고 둘째는 Constantinopol 에 있는 Sofia성당.
그래서 1000가까이 된 오래되어 낡은 성당을 허물고 그 자리에 새로 지은것이 현재의 바티칸 성당으로 완성에 120년이 걸렸는데 완성 500주년
행사가 얼마전에 있었지. 성당을 새로 지면서 사도 베드로의 무덤에서 1cm 도 위치를 바꾸지 않았다고 하드군. 그리고 미켈란제로가 디자인한
돔(dome)에 쓴 글이 바로 위에 말한 “너는 바위이다. 이 바위위에 내가 내 교회를 지으리라” ( 라틴어로 된 글자의 높이가 내 키보다 더
크다.) 그리고 그 당시 재 건축 할때 그리스 말로 Petros eni(베드로가 여기에 계시다) 라고 쓴 바위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첫날 성당에
들어가기 위해 광장에 갔드니 기다리는 줄이(security check) 그 넓은 광장을 거의 한 바뀌 돌게끔 길었다. 광장에서 성당쪽을
보느라면 성당 양켠에 조각이 하나씩 세워져 있는데 왼쪽은 사도 베드로로 바른 손에 열쇠를 들고 있고 바른쪽은 사도 바울이 왼 손에
“편지” (서간경)을 왼 손에 들고 있다.
Nevers, (네베어), 불란서
여기서는 구라파 2차 여행하고 쓴 기행문에서 발췌해서 설명해야할 사항이 있다.
불란서 루루드는 펠레네 산맥
기슭에 있는 마을로 매년 500만명의 순례자가 찾는곳이다. 때는 1858 (약 150년전) 2월 1일, 베라뎃다(Bernadette) 라는 시골
소녀에게 하루는 흰 옷을 입은 젊고 아름다운 여자분(Lady)이 나타났다.
15번째 발현하신 3월 4일에는 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었다. 마을 신부가 그 시골 소녀에게 그 Lady의 이름이 무엇인지 여쭈어 보라고 했기에 그 시골 소녀가 그 Lady에게 이름을 물었는데
그 Lady가 대답하시기를 “I am the Immaculate conception.” (나는 무염 시태 이니라 - 나는 원죄 없이 태어난
사람이다)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한 시골 소녀가 이 의미를 안다는것은 완전히 불가능했기에 그 마을 신부는 그 시골 소녀의 말을 전적으로
믿게 되었다. 이 교리는 그 보다 몇년전에 교회에서 발표한 교리로 “성모님은 그분의 어머니 태중에 잉태되신 순간부터 장차 미래의 아드님의 공로로
해서 원죄로 부터 해방되어 죄가없이 태어 나셨다는 교리”이다. 그리고 성모님께서 이 교리의 타당성을 실질적으로 추인 하셨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데 그 소녀 “Bernadette”는 지금은 성녀 베라뎃다 (She was canonized as St Bernadette)로 150년 전에
병마에 시달리시다가 젊은 나이에 돌아 가셨지만 현재도 방금 잠이 들은 분 같이 살아게신듯 그 모습을 유지 하고 계시며 불란서 파리에서 기차로
2시간 남짓 되는 거리인 Nevers라는 시골에 있는 수녀원 성당에 계신다.
성모님이 발현 하셨다는 불란서 루르드를 찾았을때야 이
수도원이 여정에 끼지 않아 꼭 한번 찾아가고 싶는터에 이번 기회에 소망을 이루게 되었다.
Paris에서 급행으로 2시간 걸려
Nevers의 시골 역에 내려 택시를 타고 갔드니 아주 가까운 거리. 이 St Bernadette에 관한 영화가 두편이 있는데 그 중 첫째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Bernadette가 수녀원에 들어가는 장면인데 그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건물과 아주 흡사 하드군. 사람이 붐비지는 않고 한적해 수녀님같은 분에게 어데로 가야 하느냐고 물었드니 성당 옆 문을 가리키며 저 문으로 들어가면 된다나.
그래서 들어 갔더니 바로 거기에 St Bernadette께서 (유리로 안이 훤히 보이게 박스가 짜여져 있는데 그 분의 키는 우리 집 사람
만하다) 수녀복을 입으는신채 누워
주무시는데 150여년 전에 돌라가신 분이 어쩌면 금방 잠이 든 분 같을까.
바로 그 성당에서
순례자가 도착 하는대로 계속 각각 미사를 지내는데 우리는 불란서 말로하는 미사에 끼워서 참석 했지. 자연과 초자연, 인간과 하느님, 현세와
내세가 합치는 현실을 바로 눈 앞에 보니 시인이나 철학자야 할 말이 많겠으나 우리 같은 평범하고 미지근한 사람에게는 숙연해지드라는 말밖게 할말이
더 없다. 제일 비근한 예를 든다면 해 돋이 를 본것중에서
구름위로 솟은 하와이의 할라카레아 산 위에서 구름 위로 해가 떠오르는것을
볼때가 제일 장엄하드리는 생각을 한적이 있는데 그에 비교할 수도 있으나 사실 해 뜨는것을 보고 박수를 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Grand
Canyon에서 해가 지는 것을 볼때는 사람들이 박수를 치든데 이런 일출과 일몰에서 느끼는 생각과 감정을 한데 묶어 놓으면 Nevers의 St
Bernadette의 잠 드신 모습 앞에서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근사치로나마 따라가는것 같다.
P.S. (추서)
일출을 보고 박수 치는 사람이 없더라는것은 해가 뜬 후에 그저 매일 보아오는 평범한 “낮”이 되기 때문이리라고 내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다. 우리 일상 생활에서 “평범”한 것이 ( mundane normal things of every day life) 제일
아름답다는 이야기이지. 순례 여행을 하는 참에 덧 붙여 여러 가지 여행 경험을 했다. 로마에서는 Vatican에서 부터 Coloseum까지 더운
날씨에 걸은것이라든지 (거리 감각이 없지만 세종로에서 용산까지 되는지 모르겠다),
파리에서는 먼저번 구라파 여행할때는 포함 시켜주지 않아
이번에는 꼭 보고 싶었던 성심 성당 (Saecre Coeur ) - 이런곳에 가도 한국말을 여기저기서 심심치 않게 들을수 있다. - 다시본 에펠
탑과 개선문. 그리고 개선문에서 노틀담 성당까지 서너 시간 걸려 걸었으니 또 이런 기회가 있겠느냐며 욕심을 낸 것이다. 그리고 로마로 되 돌아
오기 위해 밤 차를 예약했었는데 원래는
15시간 걸리는 시간. 정시 운행으로 정평이 나 있는 유롭 기차가 출발 부터 3시간 늦드니만
불란서에서는 밤에 아무데도 정거치 않고 가드니 이태리에 땅에 들어 오고 부터는 여기 저기 큰 역에 정차, 급행한테 자리 비켜주느라 또 여기 저기
정차, 그 바람에 거의 20시간 만에 로마 정거장에 도착했는데 그 긴 기차여행을 마음껏 즐겼다. 모든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기대 이상으로 좋은
경험을 해서 마냥 고마웁고 좋을 뿐이다.
Deo Gratia.
첫댓글 한형! 송재섭군의 성지순례기를 감명깊게 잘 읽었소. 우리 소식란에 이렇게 실어주어 얼마나 고마운지!....감사 , 감사!! 얼마전에 우리도 다녀와서 더욱 실감나고 가이드의 말을 열심히 듣고,성경도 읽고 갔지만 송군의 설명을 들으니 더욱 생생하군... 송군한테 따로 인사 드리리다.
이렇게 수준 높은 내용의 성지순례기를 읽을 수 있다니 ! 그것이 우리 동문 송재섭군의 글이라니 놀랍고 반가울 뿐이요 이 글을 소개해 준 한현일에게 무한 감사하네 송재섭의 글을 계속 읽어볼 수 있는 길은 없을까 ? 응 ? 현일이 !!
실제 가보지 안 해도 가 본 것처럼 박진감 넘치는 여행기를 한번에 다 읽기는 눈이 피로 해서 두고두고 읽어볼 작정입니다. 이 글을 쓴 사람 올려준 사람 모두 고맙구려.
송재섭의 성지 순례기 현일이 덕에 잘 읽었지. 순례기 읽으며 성경 공부도 했고. 재섭아 반갑고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