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학년도 수시 2학기 모집 논술고사 문제
※ 유의사항
1. 제목은 쓰지 말고 본문부터 시작하도록 한다.
2. 답안 작성은 어문 규정과 원고지 사용 규칙을 따르되, 분량은 1,101자 ~ 1,200자로 작성하며, 글자 수를 초과하거나 미달한 답안은 감점이 된다.
3. 필기구는 반드시 흑색펜만을 사용하여야 한다. (연필을 사용하여 작성한 답안,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작성한 답안, 흑색이외의 색 필기구로 작성한 답안은 모두 0점으로 처리한다.)
4. 수정시에 흑색이외의 색필기구나 수정액 등을 사용한 경우에도 0점으로 처리한다.
5.문제와 관계없는 불필요한 내용이나 자신의 성명 또는 신분이 드러나는 내용이 있는 답안, 낙서 또는 표식이 있는 답안은 모두 0점으로 처리한다.
※ (가)글에 제시된 분노에 대한 견해를 참조하여 (나)글의 순정공과 (다)글의 달라이 라마가 분노에 대응한 방식을 비교 분석하고, 자신의 견해를 논리적으로 밝히시오.
(가)
옛날 사람들은 분노의 감정에 관하여 철학적으로 많은 관심을 보였다. 자제력과 초연한 태도를 강조하였던 스토아학자들은 분노는 반드시 억제되어야 하는 부정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하였다. 불확실하고 위험이 가득한 세계에서 격정을 차분하게 다스려야만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세네카는 분노를 “모든 감정 가운데 가장 끔찍하고 광적인 감정”이라고 정의하였다. 또 르네상스 시대의 작가인 아레티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분노한 사람은 맹목과 어리석음에 휩싸인다. 이성이 달아나고 그 빈자리에 분노가 들어서면 인간의 모든 지성은 한꺼번에 사라져버린다.”
그러나 분노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적극적 감정으로, 현명하게 표출되면 훌륭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주장한 철학자들도 있었다. 이를테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했다. “격정에 사로잡히기란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다. 그러나 적절한 정도로, 적절한 때에, 적절한 방식으로, 적절한 목적을 가지고 분노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분노의 무조건적인 억제가 아니라 적절한 표출이 도덕적․사회적 삶의 필수불가결한 덕목이라는 것이다. 물론 분노가 이성의 둑을 무너뜨리고 파괴적 결과로 치닫도록 방치해두어서는 안 되지만 말이다. “화를 낼 줄 모르는 사람은 선하게 살 줄도 모른다.”는 어떤 현대 사상가의 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현대적 해석이라 할 수 있다.
- A. C. 그레일링의 『존재의 이유』에서 발췌하고 부분적으로 수정
(나)
성덕왕 시대에 순정공이 강릉 태수로 부임해 갈 적에 가다가 바닷가에 머물러서 점심을 먹었다. (중략) 순조롭게 이틀 길을 갔는데 또 바닷가에 정자가 있었다. 점심을 먹으려고 머물렀는데 바다의 용이 홀연 부인을 나꿔채서 바다로 들어가 버렸다. 순정공이 엎어지고 자빠지며 발을 굴렀으나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또 한 노인이 나타나 말해 주기를, “옛사람들이 말하기를 여러 입은 쇠도 녹인다고 하였는데, 이제 바다 속 미물이 어찌 여러 입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마땅히 경내(境內)의 백성들을 내보내서 노래를 지어 부르고 막대기로 언덕을 두드리게 하면 부인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순정공이 그대로 했더니 용이 부인을 받들고 바다에서 나와 바치었다.
순정공이 부인에게 바다 속의 일을 물으니 말하기를, “칠보(七寶)의 궁전에 먹는 것이 달고 부드러우며 향기롭고 깨끗해서 인간 세상의 불에 익힌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하였다. 또한 부인의 옷에는 이상한 향기가 배어 있었는데 세상에서 맡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수로(水路)는 자태와 용모가 매우 뛰어나서 매번 깊은 산이나 큰 물을 지날 적마다 거듭 신물(神物)들에게 붙들려 가곤 했다.
여러 사람들이 <해가(海歌)>를 불렀는데 노랫말에 이르기를, “거북아 거북아 수로를 내놓아라. / 남의 부녀 빼앗은 죄 얼마나 크냐? / 네가 만일 거역하고 내어 바치지 않으면, / 그물을 넣어 잡아다가 구워서 먹으리라.” 하였다.
-『삼국유사』에서 발췌
(다)
달라이 라마가 나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 티베트 소년은 당시 열여섯 살이었습니다. 중국 헌법상으로는 아직 처벌받을 나이가 아니었지요. 하지만 그는 감옥에 갇혔고, 처형될 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중국인들에 대항해 싸웠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중국 군인들이 총을 들고 들어왔는데, 그중 한 장교가 쇠몽둥이를 집어 들고 그 소년을 마구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부하들을 죽인 그의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에서 그 장교는 어차피 죽을 운명인 소년을 쇠몽둥이로 때렸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나는 건장한 어른들이 죄 없는 어린 소년을 상대로 저지른 그 끔찍한 이야기에 큰 충격을 받았다. 잠시 동안 침묵이 흐른 뒤 내가 물었다.
“그 티베트 소년에 관한 이야기가 중국인에 대한 당신의 시각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상호의존’의 개념이 이 사건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달라이 라마가 대답했다.
“처음에 나는 화가 났지만, 곧 그 장교에 대해 연민을 느꼈습니다. 그 장교의 행동은 그 자신의 동기에 의해 결정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동기는 그의 사상에 의해 결정된 것입니다. 사상이라는 평가 기준에서 보면 반혁명분자는 악과 같은 것이고, 그런 악을 몰아내는 행위는 선으로 간주됩니다. 물론 그러한 믿음 자체는 잘못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을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환경에서는 심지어 나 자신조차도 그렇게 행동할지 모릅니다. 따라서 이런 식으로 생각해 나가면 분노 대신 용서와 자비의 마음이 생겨납니다. 모든 것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시각은 전체를 볼 수 있게 해줍니다. 이것은 저것 때문에 일어나고, 저것은 이것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해가 갑니까?”
그리고 나서 달라이 라마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하지만 만일 내가 그 장소에 있어서 그 소년을 때린 중국 장교를 만났다면……. 만일 내가 그 자리에 있었고, 또 내게 총이 있었다면 어쩌면 그 장교를 쏘았을지도 모르죠.”
달라이 라마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내가 다시 물었다.
“불교 수행을 했는데도 그럴까요?”
“가능하죠. 그런 긴장된 상황에서라면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때로는 행동이 먼저 앞서고 생각은 나중에 따라 오지요.”
- 달라이 라마와 빅터 챈의 『용서』에서 발췌하고 부분적으로 수정
...............................................................................................................................
2006학년도 수시 2학기 건국대 논술고사 예시답안
분노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동양의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이라는 7정(情)에서 보면 ‘노(怒)에 해당하는 분노는 인간의 감정 중에서 가장 제어하기 힘들다. 분노를 잘못 표출하는 사람은 실수를 할 수 있고, 잘 제어하는 사람은 절제된 삶을 살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분노를 잘 절제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제시문에 나온 대로 분노에 대한 입장이 각각 다르다. 제시문 (가)에는 분노에 대처하는 두 가지 방안으로 스토아 학파는 분노를 없애야 한다고 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분노를 적절하게 사용해야 한다고 나온다. 제시문 (나)에는 분노가 일어날 때 다른 사람의 자문을 구하고, 제시문 (다)에는 분노를 용서로 승화시킨다는 내용이다. 제시문에 나온 분노에 대응하는 방식을 비교하고 분석한 뒤에 바람직한 해결책을 모색한다.
먼저 제시문 (가)를 보면, 스토아 학파는 마음의 평화를 위해 분노 자체를 없애야만 좋은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동양의 ‘중용(中庸)’에서 보면 ‘희노애락을 표출한지 않는 것을 중(中)’이라는 말과 같은 맥락이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분노를 적절하게 표출하는 것이 도덕적·사회적 삶의 필수불가결한 덕목이라고 말한다. 동양의 ‘중용(中庸)’에서 보면 ‘희노애락을 표출하되, 절제를 잘하면 용(傭)’이라고 말과 같은 맥락이다. 인간은 스토아 학파가 말한 대로 분노를 완전히 없앨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대로 분노를 절제하는 것도 보통 사람으로서는 힘들지만, 교육과 인격 수양을 통해 추구해볼 만한 가치이다. 다음으로 제시문 (나)를 보면, 강릉태수로 부임하던 순정공이 아내를 빼앗긴 분노를 노인에게 자문을 얻어 해결했다는 내용이다. 분노하기 전에 현명한 사람에게서 자문을 얻어 분노의 감정을 해결하는 지혜를 볼 수 있다. 오늘의 현실에 적용하면, 분노가 일어나면 대화로, 아니면 법에 호소할 수 있다. 다음으로, 제시문 (다)를 보면, 달라이 라마는 분노를 표출하기 전에 상대의 입장에서 이해함으로써 분노를 용서로 해결하고 있다. 불교의 연기설(緣起說)에 입각해서 분노를 용서로까지 승화시킨다는 점에서 분노에 대한 종교적인 해결법이다.
공자는 악한 것을 보고도 분노하지 않는 자는 '바보'라고 말했다. 어진 마음(仁)을 기본적으로 가져야 하지만, 미운 것을 밉다고 하고 좋은 것을 좋다고 하는 것도 인간의 도리라고 설파한다. 공자의 말은 분노를 절제하면서도 악한 것에 대해서는 분노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맹자의 4단(端) 중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악한 것을 미워하는 마음(羞惡之心)’은 현대로 보면 자신의 허물이 있다면 반성해야 하지만, 불의(不義)를 보면 분노해야만 사회정의를 세울 수 있다는 말이다.
인간은 신이 아니므로 스토아 학파가 말한 대로 분노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분노에 대응하는 세 가지 좋은 방법을 살펴보면, 우선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대로 분노를 사용할 때와 안 할 때를 잘 구별해서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이 좋다. 다음으로 순정공의 처신처럼 분노가 일어날 때면 지혜로운 사람에게서 조언을 얻는 것이다. 오늘로 보면 대화와 타협을 하거나 법에 호소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다음으로, 달라이 라마가 말한 대로 폭력에 대한 분노가 일어나지만, 역지사지(易地思之)를 해서 분노를 용서로 승화시킨다. 오늘의 현실에서 보면, 의롭지 못한 역사 청산 등에서 많이 쓰이는 '진상 규명 후 용서'라는 절차도 같은 맥락의 대응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