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사람들은 왜 중고가게에 갈까? / 박현선 / 헤이북스
"세상에 이렇게 많은 물건이 존재하는데 더 만드는 것에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5쪽)" 서문에 나오는 말이다. 그래서 중고가게에 간다고? 복지가 잘 되어있고 부러운 점이 없다는 나라, 최근에는 교육 문제가 나오면 항상 등장하는 나라 핀란드 이야기라니 갸우뚱하다.
"기존의 면화 재배에는 엄청난 양의 물과 살충제를 사용하기 때문에 1년에 35만 명의 농부가 사망하고 100만 건의 입원이 발생합니다." - 패션 디자이너이자 환경론자 캐서린 햄넷의 2014년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33
면 셔츠 1장을 만드는 데 약 2700리터의 물이 쓰이는데... 33
1990년 10월 30일, 뀔라사리Kylasaari에 재사용 센터가 대중에 첫 문을 열었다. 79
"핀란드의 중고 문화는 모두가 경제적, 물질적 빈곤을 마주해야 했던 1990년대의 경제 대공항을 만나며 자연스레 자랐어요." 122
부러움의 대상이 된 나라, 그 나라 핀란드도 어려움을 겪었고 그 과정에서 정착된 것이 수많은 중고가게라고 한다. 한 개인의 질문, "더 만들 필요가 있을까?"는 환경으로 확장되고 재사용이 문화로 정착한 나라가 되었다. 그 문화는 관광 상품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모으고 있다니 재미있는 현상이다.
부모 손을 잡고 가게를 찾아오는 꼬마 손님들을 관찰해보면 물건이 새것인지 타인이 쓰던 것인지는 그 아이들의 구매 결정 과정에 있어서 결코 중요한 사항이 아니라는 걸 쉽게 알 수 있다고 한다. 129
앞서 읽은 전우익 선생님의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에서 기억에 남는 말 중에, "이 하늘 밑 어디에 과연 구경거리가 있습니까? "라는 것이 있다. 세상에 "구경거리"로 존재하는 것이 있다면 그 존재는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때와 장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있을 것이다. 예술품 말이다. 그 경계를 정하기 참 어렵지만, 생필품에 그 가치를 매겨 구매하는 행위를 저자는 염려한다.
좋은 물건은 세상을 돌고 돌며 여러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투자의 목적으로 구입된 물건들이 한 번 구매가 되면 좀처럼 세상 밖으로 다시 나오지 않습니다. 179
사람의 손과 눈길이 닿은 모든 것에는 이야기가 깃든다. 그 이야기의 내용과 등장 인물에 따라 가치는 달라진다. 짐작해볼 만한 것이지만 그 이야기가 행복으로 마치는 것이 아니라면 가치는 떨어지고 만다. 중고품을 사는 사람은 물건에 깃든 이야기를 알고 싶겠지만 현재 보이는 모습과 그 기능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는 조언을 작가는 놓치지 않는다. 다른 이의 사랑을 기다리는 존재가 중고품 Be Loved 이라는 것이다.
중고 가게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물건들은 결코 누군가가 내다버린 물건이 아니다. 타인이 나만큼 혹은 나보다 훨씬 더 잘 써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수고스럽게 가게까지 거져온 물건임을 기억해야 한다. 196
중고품을 파는 가게로 나에게 익숙한 것은 구세군 상점이다. 핀란드에서 만난 가게들은 보통 생각하는 구세군 상점과는 차이가 있는 듯하다. 벼룩시장으로 대변되는 중고품 시장을, 저자는 "벼룩이 있을 것만 같이 오래된 중고 물건들은 파는 야외 시장(221)"이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그러면서 핀란드가 이를 토착 문화화한 배경으로 종교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다고 한다. 비록 일요일에는 텅 비어 있는 교회 건물이 지금은 을씨년스럽게 보이겠지만 종교가 전하는 메시지는 건물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사회 구성원의 생활과 문화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핀란드에서 중고 문화는 매우 자연스러운데, 여기에는 아마 여러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내 생각에는 그 중 무엇보다도 소비와 꾸밈을 죄로 여기는 루터교의 영향이 컸을 것 같아요. 게다가 핀란드는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와 같이 세금을 많이 내고 복지 혜택을 고루 받는 노르딕 모델Nordic model을 추구하는 국가이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의 경제 격차가 상대적으로 작아 중고 문화가 별다른 거부감 없이 사회 전반에 고루 퍼지기 좋았을 거예요." - 시보우스 빠이바 창립자 빠울리나 272
마지막 장으로 넘어가면서 나타나는 소제목들이 눈길을 끈다.
많은 소비, 많은 폐기 > 빠른 소비, 빠른 폐기 > 쉬운 소비, 쉬운 폐기
신중한 소비, 양질의 생산 > 소유에서 공유로
신선한 핀란드 여행이었다.
첫댓글 중고품의 고상한 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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