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5. 세상에 무거운 짐, 삼독심(탐진치) (글 - 연덕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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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먼저,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결코 소망하는 대상물이 아니며, 또 긴장, 아픔, 고통의 원인이 방해하는 물건이나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우리의 첫 통찰을 잊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고통의 원인은 어디까지나 갈애이며, 이 갈애의 극복, 초월만이 우리를 자유에 더욱 가까워지게 하여 행복으로 안내한다. 갈애나 증오가 이기면 행동, 말, 생각 면에서 현혹된 짓을 하고 따라서 함정에 더 깊숙이 빠져들어 고통은 연장된다. 이러한 고통의 두 가지 뿌리가 치성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그들의 참 성질에 관한 통찰(觀)을 계속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실제로 모든 고통의 근본 뿌리인 무지에 대처하게 된다.
1, 확인하기
먼저 갈애와 증오가 일어날 때마다 그것을 확인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행동, 말, 생각 뒤에 숨은 진짜 동기를 계속 유념, 관찰할 필요가 있다. 보통 우리는 행동하거나 말하거나 생각으로 판단할 때, 정작 그 당시는 왜 그렇게 하는지 진정한 동기를 모른 채 행하고 있다. 나중에야 특히 그 행한 바가 못마땅한 결과를 초래했을 경우, 비로소 우리는 갑작스레 치미는 분노에 사로잡혀 냉정을 잃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만일 우리가 어떤 욕구, 성냄, 미움 등등을 강하게 느끼는 순간, 무엇이 존재하며 무엇을 경험하고 있는지 계속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으면 그땐 '우리'의 그 욕구, 성냄, 미움은 이미 그것들이 아니라, 바로 관찰하고 있는 알아차림 그것이며, 따라서 우리는 그 욕구가 갈애의 일종이며, 성냄이 증오의 일종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마음상태는 이미 전적으로 무지와 관련된 것만은 아니다. 하나도 놓치지 않고 알아차린다는 것은 이 경우 어느 정도 참 지혜에 해당되며, 따라서 여기에서 현혹된 행동 같은 것은 나올 수 없게 된다.
2, 멈추기
여기서 우리는 두 번째 과업을 맞는다. 어떤 행위를 하고 싶을 때, 즉 무얼 행하거나 무슨 말을 하고 싶을 때 또는 생각하거나 어떤 결론을 끌어내고 싶을 때 우리는 일단 멈춘 다음, 의도하는 행위의 동기부터 살펴야 한다. 갈망에 찬 마음상태나 증오에 찬 마음상태가 생겨날 때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주시하는 정념正念을 지속할 수만 있다면, 그런 태도의 당연한 결과로서 우리는 실제 어떤 행위를 선뜻 행하기 전에 일단 멈출 것이다. 설혹 정념을 지속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참된 동기를 살피기 위해 행동 이전에 일단 멈추어 보려는 진작부터의 의도를 잊어버리지 않는 한 갈애나 증오를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만약 사람들이 스스로 불친절한 행위를 하도록, 거친 말을 내뱉도록, 남을 마음속으로 저주하도록 충동질하는, 오직 내면에서 나올 뿐인 압박을 살피기 위해 단 한순간만이라도 멈추고자 항상 성실하게 노력만 한다면 우리 생애의 많은 문제들은 훨씬 유리하게 해결될 수 있고 , 많은 가정들이 보다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으며, 수많은 고통도 모면할 수가 있을 것이다.
3, 즉석에서 심사숙고
우리가 행하는 행동의 참된 동기를 사전에 확인하는 데 성공하기만 하면, 그 틈을 활용해서 과연 그 일이 수행할 가치가 있는지 여부를 재빨리 반성해 볼 수가 있다. 이것이 우리의 세 번째 과업이다.
우리가 고통의 두 뿌리인 갈애와 증오 중 어느 것이 지금 우리를 이런저런 행동으로 내모는 동기 내지 추진력인지 확인하면 그것을 더 이상 붙들고 씨름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그 행위를 하지 않은 채 그만 두어 버리기가 매우 수월하다.
그러나 그처럼 인지認知를 해도 여전히 욕구나 반감 또는 증오가 수그러지지 않고 지속될 때는 모든 숙고 능력과 상상력을 다 동원해서라도, 그 같은 현혹된 마음 상태가 빚는 행동이 가져올 고약한 사태를 마음에 떠올려 보도록 노력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 그 욕구나 증오를 나 자신으로 혼동하지 말고 객관적 대상으로 계속 주시하고 있노라면, 그것이 희미하게 사라져 가는 모습을 반드시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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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오후 6시 30분, <자비명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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