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과 착한 행실(마5:13-16)
2026.3.1, 3.1절 기념예배, 김상수목사(안흥교회)
3월이 시작되고 봄이 왔지만 아직 기온 차이가 심하다. 기온과 관련된 도구 중에 온도계와 온도조절기가 있다. 이 두 가지는 명칭은 비슷하지만 용도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온도계는 단지 기온의 영향을 받아 움직일 뿐이지만, 온도조절기는 온도를 조절한다. 사람도 온도계 같은 사람이 있고, 온도조절기 같은 사람이 있다. 성도란 복음으로 세상을 향해 온도조절기 같은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오늘은 3.1절이기도 하다. 1919년 3.1절 당시의 성도들은 온도조절기와 같은 삶을 살았다. 오늘 우리들이 이렇게 되어야 한다.
오늘 본문 말씀은 산상수훈 중의 일부의 말씀이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예수님은 예수님의 제자들(성도들)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온도조절기의 역할과 같은 맥락의 또 다른 표현들을 말씀해 주셨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은 이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는 말씀이다(마5:13-14).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You are the salt of the earth)”(마5:13)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You are the light of the world)”(마5:14)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은 ‘앞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은 이미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는 것을 강조하셨다. 이것이 세상 속에서의 성도들의 정체성이고 역할이다. 성도들은 참 빛(true light)이신 예수님을 증언하는 증인들(witness of the light)이다(요1:4-13).
그런데 16절 말씀을 보면, 주님은 결론적으로 이처럼 우리들에게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야할 가장 중요한 이유와 방법을 말씀해 주셨다. 그것이 무엇인지 다 같이 마태복음 5장 16절 말씀을 읽어 보자.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이 말씀을 자세히 보면, 사람들 앞에서 ‘빛을 비치게 하는 것’과 그들로 하여금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게 하는 것’은 같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착한 행실”을 보여주는 것이 곧 소금의 맛을 내고, 빛을 비치게 하는 구별된 삶이다. . 그리고 이를 통해서 사람들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된다 것이다(칭찬, “예수 믿는 사람은 역시 다르구먼”, “저 사람을 보니 하나님이 진짜 살아 계시구먼” 등). 이처럼 구별된 착한 행실을 보여 줄 때, 전도도 자연스럽게 되어지게 된다. 이것은 역으로 말하면 착한 행실을 보여주지 못하면, 전도는커녕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이 되어버린다는 말씀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소금과 빛으로서 보여주고, 비춰야 할 “착한 행실”이란 무엇일까? 여기에 쓰인 “착한 행실(카라 에르가, καλὰ ἔργα)”의 원뜻은 ‘좋은 열매’ 즉 아무런 보상을 바라지 않는 사랑의 열매’를 말한다. 이러한 착한 행실 즉 사랑의 열매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처럼 환대로 표현되어야 한다(눅10:25-37,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이렇게 하는 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만드는 일이다.
하나님의 사람 사도 바울은 세상의 소금과 빛인 성도들이 보여줘야 할 사랑의 구체적인 행실들을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명쾌하게 제시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고린도전서 13장 4-7절 말씀을 읽어 보자.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13:4-7)
그런데 이러한 사랑의 모습들 중에서도 3.1절인 오늘 이 시간에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간직한 사람들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불의(부정한 행위)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6절)한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흔히 하나님의 사랑을 부정한 행위나 불의까지 묵인하거나 동조하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실제로 사도 바울 당시에 고린도교회는 불의에 동조하고 기뻐하고 묵인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교회가 혼란스럽고 지탄을 받았었다. 오늘 이 시대에도 정의로운 하나님의 성품에 위배는 일들에 대해서 묵인하거나 동조하고 심지어 정치이념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세우면서 사회 분열을 가중 시키는 모습들에 많다.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들이다.
그러나 성경은 오히려 그리스도의 사랑을 간직한 사람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오히려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고 말씀한다. 이것을 불의한 세상에 대한 ‘영적인 반대정신(反對精神)’이며, ‘영적패기(靈的覇氣)’이며, 영적기백(靈的氣魄)이다. 3.1운동은 전후한 한국교회와 성도들은 주님이 기뻐하는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잘 담당했다. 우리들은 그들의 착한 행실을 본받고, 그 모습을 오늘 이 시대 내 삶 속에서 회복해야 한다.
3.1운동 전후한 시기에 기독교 인구는 전체 인구의 약 1.3-1.5%(총인구 1700만 명 중 23만 명)에 불과 했다. 그런데도 민족대표 33인 중에 절반 가까운 16명이 기독교인들이었다. 1.3%가 98.7%에 거룩한 영향을 준 것이다. 이는 당시 기독교인들의 소금과 빛의 역할이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 당시의 대부분의 한국교회와 성도들은 일본 천황숭배를 강요하고, 총칼을 앞세워 불법적으로 국권찬탈의 일제와 매국노들의 불의에 대해서 단호하게 반대의사를 표현했다. 3.1운동 일어나고 그 분위가가 확산되어 것에 당시의 교회조직이 큰 기여를 했다. 3.1운동 당시의 기독교에는 전국적으로 연결된 교회조직과 곳곳에 세운 학교들을 통한 근대적 교육망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선교사들을 통한 미국을 비롯한 그들의 파견국들과 국제적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래서 교회조직을 통해서 독립선언서가 비밀리에 빠른 속도로 전달되고, 서로 시위 날짜를 조율하거나 해외에 알리기도 했다.
이러한 교회의 역할은 우리가 살고 있는 충남 서해안 지역(내포, 예산, 홍성, 서산, 태안 등)에서도 동일했다. 특히 각 교회의 남여선교회를 중심으로 태극기를 제작하거나 식량을 제공하는 등의 조력이 컸다. 서산지역의 경우에 당시 서산 읍내 예배당 인물들이 주도했다. 특히 독실한 기독교인 이었던 서산 읍내 면장 유득상(柳得相)은 서울에서 내려온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아 교회 청년들과 함께 밤을 새워 복사했고, 1919년 4월 초에 서산 장날을 기해 수천 명의 군중과 함께 만세를 외쳤다. 서산 지역의 한 기록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일본 경찰들이 교회에 들이닥쳤을 때 교인들이 긴박하게 독립선언서를 숨기고 성경 구절을 암송하며 예배드리는 척하여 위기를 넘겼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태안 지역의 경우는 태안의 기독교계는 서울에서 전달받은 독립선언서에 공감하고 당시 태안 출신으로 33인 중 한 분이었던 옥파 이종일 선생(천도교인)과 3.1운동을 위해 깊이 교류한 것으로 전해진다.
3.1운동을 전후해서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일제의 불의에 항거했던 태안 출신의 기독교인들이 있었다. 그중에 대표적인 분이 2025년 8월에 120년 만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한국으로 유해가 봉환된 우운 문양목(文讓穆, 1869~1940) 선생이다. 그는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받았다. 그는 1894년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했었고, 일제의 탄압을 피해 1905년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리고 1906년부터 샌프란시스코, LA 등지에서 국권회복을 위해 헌신했다. 중국 상해와 만주 등을 오가면서도 항일무장투쟁을 지원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그는 미국에서주일학교 교사로 헌신하면서 기독교를 통해 민족의 희망과 활로를 찾고자 했다. 그에 대해서 오마이뉴스(ohmynews)에서는 이렇게 보도하기도 했다.
“100년사 속 우운 선생은 교회 신도이면서 주일 한글학교 교사, 그리고 미주에서 발행된 한인 최초의 한글잡지이자 기독교 문서였을 뿐만 아니라 20세기 한인 이민사회를 이끌어간 지도자들의 신앙과 사상의 기초를 닦은 정신적인 초석이었던 <대도>에서 자신의 신앙과 사상을 담은 글을 발표하는 등 <대도>의 발간으로 기독교를 통한 민족의 희망과 활로를 찾는 글을 싣기도 했다. 이 책자는 향후 우운 선생 기념관이 건립된다면 윌리엄 문의 살아생전 인터뷰 영상과 함께 기념관에 기증할 예정이다.”(오마이뉴스, 2025.8.2기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지역 주민들이여, 하나님은 우리를 온도조절기와 존재로 특히 주님의 말씀처럼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불러 주셨다(마5:13-14). 3.1운동과 일제강점기에 일제의 불의에 항거하고 그리스도의 진리와 함께 기뻐하기를 힘썼던 성도들의 모습은 성경이 말씀하는 진정한 ‘착한 행실’과 ‘사랑의 열매’가 무엇인지, 참된 영적인 반대정신과 패기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이러한 주님의 가르침과 믿음의 선배들의 모습들을 본받아서 이 동네와 직장과 관계 속에서 소금과 빛으로서 구별된 삶을 살아가자. .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므로, 우리들도 얼마든지 적은 인원이라 할지도 이 지역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충분히 감당해 낼 수 있다. 또 그렇게 해야 한다. 그래서 그들로 하나님의 영광을 알게 하고, 복음전도의 문도 더 활짝 열리게 하자.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