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표
- 일시 : 2020. 10. 9일(한글날) 09:30~14:30
- 장소 : 관음사-탐라계곡-신령바위-수로-노루물-칼선내폭포-일제갱도-
소산이오름-산천단-곰솔나무-오라 정실마을 월정사-오라민오름
이동시간
09:30~09:50 제주대 입구서 만나
09:50~10:00 관음사 주차장으로 이동(산천단 주차장 차량 1대 대기)
10:00~12:00 아라동 역사문화 길 칼선내까지 모니터링
12:00~13:00 일제갱도-소산이오름-산천단과 천연기념물 곰솔나무
13:00~13:10 식당으로 이동(정실마을 곤드레 밥 식당)
13:10~14:00 점심식사
오라동 모니터링
14:00~14:30 월정사 모니터링
14:30 ~ 일정 마무리
참고 : 기록할 내용은
개별보고서 주제
용범 : 관음사
학곤 : 탐라계곡, 신령바위, 노루물, 칼선내폭포, 일제갱도
지헤 : 소산이오름과 산천단, 곰솔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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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동
금희 : 월정사
상호 : 오라민오름
원순 : 오라동 최익현 유배길과 4.3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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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대표사찰 (조계종) 觀音寺
위치 : 제주시 아라1동 387.
유형: 불교유적 (사찰-절)
시대 : 조선
내용
창건 : 고려시대
재창건 : 1908년
제주시에서 약 6km 지점 남쪽 한라산 아래에 관음사라는 절이 있다. 조선 숙종28년(1702) 조정의 불교탄압으로 인하여 폐사되었다. 고려 때 불교가 발전하였고 조선에 와서는 불교를 탄압하여 유교를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그리하여 정책적으로 이형상 제주목사 시(1702) 제주의 사찰(5개소)과 신당(129개소)을 불태워 버리고 승려들도 일부만 남기고 농민으로 돌려보낸다.
창건동기
안봉려관에 의하여 재 창건을 한 후 제주불교의 효시가 되었다. 안봉려관은 제주시 화북동에서 1865년 6월 14일 출생하여 1901년 白衣觀音이 나타나 ·發心出家(발심출가) 하여 중생제도에 헌신하라·는 현몽을 받고 1907년 12월 1일 제주를 출발하여 전남 해남군 대둔산에 있는 대흥사로 갔다. 대흥사는 백제시대 창건된 사찰로 1607년 서산대사의 문하들 가운데 13대종사. 12대강사가 배출되어 조선후기 불교가 발전하기 시작한다. 안봉려관은 이곳에서 주지스님의 ·나병·을 고쳐드린 것이 인연이 되어 1907년 12월 8일 受戒式(수계식)이 이루어졌다. 恩師(은사)는 유장노니스님이시고 戒師(계사)는 晴峯和常(청봉화상)이었다. 이듬해 1월 제주로 온 안봉려관은 화북동 집에 불상을 봉안하고 창건 준비를 하고 있었다. 1908년 4월 8일 경찬제(慶讚齊)를 하는데 마을사람들의 비난에 못 이겨 한라산으로 입산한다.
안봉려관은 산천단과 아미산(아라 영평 지경에 오름)을 오고가며 석굴에 의지하여 은거생활을 하고 있는데 대흥사에서 가사불사를 마친 운대사스님이 안봉려관을 찾아 1908년 5월 제주에 도착한다. 한라산에 피신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산천단에서 3일 기도를 드렸다. 회향하려 하자 우연하게 안봉려관을 5월 5일에 만났다. 안봉려관은 운대사스님에게서 발의를 받고 창건결심을 한다.
1908년 10월 16일 결제일을 기하여 현 관음사 도량안에 있는 석굴에 의존하여 창건하였다. 2년 후 대흥사에서 안봉려관을 돕기 위하여 박만화 율사스님이 이회명 일승선사를 모시고 제주에 왔다. 이들은 1910년 4월 8일 정조 안도월 스님을 이회명스님의 상좌로 戒하여 초대 주지로 임명하였다. 안도월 스님은 장정명 송파. 오일화 명륜스님을 상좌 하여 관음사 도량불사를 수행하였다.
1924년 11월 25일 제주도사 전전을 기성회장으로 하여 불교협회 창설
1925년 4월 8일 제주시 이도1동 1362번지포교당(현 불교회관) 창설
1925년 10월 1일 대흥사에 모셨던 관음상을 포교당에 봉안
1936년 김영희 처사의 도움으로 아라동 산 66번지 아미산 일대 5천보를 관음
사 명으로 등기
1936년 5월 안도월 스님 입적
1938년 5월 29일 안봉려관 스님 입적
1938년 5월 30일 화재로 소실
1941년 국성해 스님. 홍법선 스님이 목수 32인을 대리고 제주에 와서 재건
1943년 제주관음사로 승격됨.
1946년 일제 때 제정되었던 본말사 제도폐지. 교무원을 포교당에 두고 업무
게시
1949년 1월 15일 제주항쟁 때 완전소실
1954년 7월 15일 홍법선, 이순전, 김순정, 이화선, 고선봉 스님들의 도남동
856번지 제2관음사을 재건(지금의 보현사 임)
1955년 초대법왕 서경보 스님 증명, 김설호 스님을 모시고 봉불식 거행
1964년 관음사 재건을 위한 ·복구기성회· 조직하여 아라동 387번지에 관음사
기공식
1969년 대웅전 준공
1970년 나한전
1971년 선원. 일주문
1972년 천왕문, 갑진년 대웅전 을묘년 범종, 정사년 서향삼성각 건립.
입구에 세워진 안봉려관 공덕비는 1948년 오이화스님이 조각하다 완성하지 못한 것을 주지 서경보스님이 1975년 완성하여 세운 것이다. 본래 관음사 지붕은 넓적한 돌로 만들어져 있었다고 전한다. 꿈에 관음보살이 나타나 근처 냇가에 기왓장으로 쓸 만한 돌들이 있으니 갖다 불전 짓도록 하여라는 현몽에 의하여 지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어 안타깝다.
제주 4·3과 관음사
1948년 4월 3일 제주4·3이 발발하고 1948년 11월 17일부터 제주산간일대를 초토화가 벌어질 때 1949년 2월 12일 군경토벌대가 유격대의 근거지를 없애노라 관음사 건물을 모두 불태워 버린 것이다. 이때 대흥사에서 가져온 목불상이 불에 휩싸이는데 부처가 노했는지 몸체가 떨리고 눈에서 광채를 내며 ·펑·하며 폭파되자 하늘에서 천둥 번개를 치며 비가 내렸다 전한다. 그런데 당시에 목불은 제주시 포교당으로 옮겨져 1999년 문화재로 등록되었다.
이 불상(목불)은 1696년 전남 영암군 성도암에서 제작된 것인데 봉려관스님이 관음사로 옮겨와 봉안한 것이라고 전한다. 현재 관음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23교구 본사를 맡고 있으며 말사로 보덕사를 비롯하여 27개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