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부산 벡스코에서는 유라시아 철도 운송 현안을 논의하는 ‘제50차 국제철도협력기구(OSJD) 장관회의’가 열렸다. 북한 측의 방해로 가까스로 OSJD에 가입한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장관 회의를 개최한다는 것과 전쟁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정부 대표단이 한 자리에 모인다는 것만으로도 관심을 모았다.
또 우크라이나 대표단은 회의를 전후해 HD현대의 조선소와 건설기계 사업장, 현대로템 공장 등을 둘러보면서 전후 재건사업에 관한 한-우크라 협력 가능성을 타진했다.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러시아-CIS 학과가 매월 발간하는 '러시아CIS 토크' (Russia-CIS Talk)는 2023년 제 9호(2023년 9월 1일자, https://ruscis.hufs.ac.kr)에서 제50차 국제철도협력기구(OSJD) 장관회의가 우리나라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기회를 제공할 것인지를 심층 분석했다. 문영일씨(석박사통합과정, 러시아CIS 경제 전공)가 쓴 '2023년 부산 OSJD 장관회의, 한국에 어떤 기회의 창이 열리나?'다. 이 글을 소개한다/편집자.
◇OSJD 장관회의란
OSJD는 국제철도협력기구를 가리키는 러시아어의 약칭 'ОСЖД'를 라틴 문자(영어)로 옮긴 것이다. 이 기구는 국제 여객과 화물 운송 등을 관장하기 위해 지난 1956년 소련과 동유럽 공산권 국가들을 중심으로 출범했고, 현재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5개국이 포함된 CIS(독립국가연합) 국가 대다수와 중국 몽골 남북한 등 30개국이 정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지난 6월 13~15일 사흘간 부산에서 국제철도 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회의 중 하나인 '제50차 OSJD 장관회의'가 열렸다. 장관회의는 OSJD 철도망을 관장하는 정부기관의 수장(한국의 경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참여하는 최고 의사결정기구로, 매년 6월경에 열린다. 이번 회의에는 한국과 러시아 중국 등 19개국 장관이 참석해 12개 의제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국제철도화물운송협정 및 국제철도여객운송협정 가입이 첫 번째 의제로 상정되어 만장일치로 승인됐다. 해당 협정들은 철도를 이용한 국제운송에서 OSJD 회원국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운송 규칙으로, 이에 가입한다는 것은 향후 한국의 국제철도운송에 필요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OSJD 장관회의 총회/출처:국토교통부
또한 해당 협정들과는 별도로, 6월 12일자로 '복합운송협정'(공식 명칭은 유럽 아시아 복합운송의 조직 및 운영에 관한 협정) 가입이 결정됨으로써 회원국들의 명시적인 반대가 없는 한, 45일 이후에는 해당 협정의 국제철도노선(OSJD 회랑)에 한국의 주요 복합운송노선(수도권-부산항-중국, 수도권-부산항-러시아)도 등록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발 국제 물류의 가능성 모색
중앙아시아는 말 그대로 유라시아 대륙의 중앙 내륙에 위치하여 해상으로 직접 연결하는 출입구가 없다. 그래서 반드시 내륙운송수단(철도와 도로 등)을 이용해 화물과 여객을 수송해야 한다. 이런 지리적 위치는 중장거리 운송에서 유리한 철도가 필연적으로 경쟁력을 갖는 구간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유럽간 컨테이너 열차가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다. 이 노선은 2018년부터 연평균 21% 성장을 기록하면서 2022년에는 1만6,562회의 컨테이너 열차가 약 16억1천만 TEU의 컨테이너를 수송했다. 주요 수송 품목은 자동차, 부품, 의류, 액세서리 등으로 모두 53개에 이른다.
한편. 한국에서 중앙아시아로 수출하는 화물은 연간 약 10만 TEU수준이며, 그중에서 비중이 가장 높은 품목은 자동차 부품이다. 한국산 자동차의 주요 부품을 중앙아시아로 수송하고 중앙아시아 현지 공장에서 자동차를 조립해 판매하는 구조인데, 이를 한국에서 중앙아시아로 수송하기 위한 주요 수송로로 크게 중국을 거치는 TCR(Trans-China Railway)과 러시아를 거치는 TSR(Trans-Siberia Railway) 노선이 이용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중국이 자국의 철도수송 화물을 우선 처리(순위: ①유럽행 →②러시아행 →③중국발 CIS행 →④제 3국발 CIS 행)하면서 한국 화물의 운송 순위를 뒤로 미루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의 물류사와 제조사의 입장에서는 화물의 도착 시점을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게 됐다. 이런 불확실성은 결국 물류사와 제조사의 전체적인 생산 비용을 상승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국내 물류사는 비록 TEU당 수송비가 TCR보다 약 30%가량 높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적시성과 예측 가능성을 담보한 TSR 노선을 주요 물류 수송로로 사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류사와의 소통을 통해 이런 어려움을 파악한 국토교통부와 한국철도공사는 OSJD에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고 있다. OSJD는 매년 ‘국제철도 운송 물동량 회의'를 열어 회원국 철도 운영사들이 OSJD 국제철도노선를 이용하는 연간 수송 물동량을 사전에 확정하도록 한다. 이 회의에서 회원국들은 철도 수송은 물론이고. 철도와 해상을 연계하는 복합운송과 관련된 물동량도 함께 확정한다.
OSJD '복합운송협정' 가입은 OSJD 공식 국제철도노선에 한국의 철도노선과 항구를 포함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매년 열리는 물동량 회의에서 우리 정부가 참여해 TCR을 이용하는 한국발 물동량의 적시성과 예측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측면 에서 한국의 복합운송협정 가입은 세계 10위권 경제 규모로 볼 때, 한국에만 아니라 주변 국가들에도 대단히 큰 의미를 띤다고 할 수 있다.
유라시아 국제철도노선(OSJD 철도회랑) /출처:국제철도협력기구(OSJD)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실질적으로 유라시아 대륙과 단절된 남북 분단의 현실에서 한국으로서는 철도운송과 해상운송을 결합한 노선이 OSJD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된다는 사실, 즉 '복합운송협정' 가입은 향후 유라시아 대륙을 향한 우리의 물류 수송량 증대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유라시아 물류와 관련해 한국에 제공되는 이런 기회의 창을 활짝 열기 위해 우리 정부는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우선, 정부 차원에서 국토교통부는 OSJD 정부 협정의 국회 비준을 위한 협정 재개정 사항의 검토, 번역 및 관련 기관(외교부 법제처 국회) 설명 등을 차질없이 진행해야 할 것이다. 철도 운영 기관으로서 한국철도공사는 정부 협정의 국회 비준 이후, 철도 운영사 대상의 OSJD 협약 (운임·정산 등 7개) 가입을 위한 내부 준비 작업에도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복합운송협정' 가입에 따른 국제철도의 복합운송 현실화를 위해 관련국(TCR: 한국 중국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TSR::한국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철도 운영 기관과의 실무 협의체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2024년으로 예정된 OSJD 물동량 회의에 참여해 한국발 수출 물동량을 최대한 확보하는 노력도 적극적으로 펼쳐야 할 것이다.
OSJD내에서는 .회원국 사이에 자국의 국익 확보를 위한 치열한 각축전이 예상되므로, 이에 대한 치밀한 대응책 강구도 필요해 보인다. 장기적으로는 TKR(한반도종단철도)을 통한 국제철도 화물열차 운행에 대비한 내부적 절차 마련과 환경 조성, 유라시아 물류 허브로서의 확고한 국제적 위상 제고를 위해 관련 기관의 다양한 선행 연구도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