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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보안당국이 지난 달 시베리아 '과학 도시' 노보시비르스크에 있는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시베리아 지부 소속 과학자 발레리 즈베긴체프(Валерий Звегинцев)를 국가 반역 혐의로 체포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동료 과학자들이 지난 15일 공개 서한을 통해 즈베긴체프의 체포에 항의하면서다. 그는 이론·응용역학연구소에서 극초음속 미사일 기술을 연구해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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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지검 공공수사부는 지난 10일 민주노총 전직 조직쟁의국장 석모 씨와, 전직 보건의료노조 조직실장 김모 씨, 전직 금속노조 부위원장, 평화쉼터 대표 신모 씨 등 4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해외에서 북한 공작원과 접선하고 지령을 받은 혐의다.
전쟁 중인 러시아는 지난해 8월 국가 반역법을 더욱 강화했다. 상식적으로는 당연한 조치다. 우리나라는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북한 찬양 등 혐의로 검거된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이 최근 5년 중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임 문재인 정부와는 확연히 다른 현 정부의 대북정책및 방향을 감안하면 이 또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게 상식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본격 투입된 러시아 극초음속 미사일 '킨잘'/유튜브 캡처
러시아에서 극초음속기술 개발 과학자들이 체포된 것은 지난해 6월부터. 체포된 뒤 가택연금상태에 들어간 과학자 즈베긴체프가 소속된 이론·응용역학연구소의 수석 연구원 아나톨리 마슬로프는 지난해 6월 극초음속 미사일 연구와 관련한 국가 기밀 정보를 외부(중국?)에 유출한 혐의로 체포됐다. 사흘 뒤에는 인근에 있는 레이저물리연구소의 양자역학 과학자 드미트리 콜케르가 중국의 보안당국과 협력한 혐의로 끌려갔다.
안타깝게도 콜케르는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이 노보시비르스크의 한 병원에서 암 투병 중인 그를 강제로 비행기에 태워 모스크바로 이송하는 바람에 이틀 만에 사망했다. 그의 아들 막심은 SNS를 통해 “FSB가 아버지를 죽였다”고 분개했다. FSB는 그가 중국을 위해 간첩 활동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했다고 한다.
FSB가 사흘 간격으로 각기 다른 연구소의 과학자 두 명을 같은 혐의(반역죄)로 체포한 것은 두 사람을 '공범'으로 보고 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당시는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을 위한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해지던 상황이었다. 극초음속 미사일은 마하5(음속의 5배) 이상의 속도로 날아가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등 현재의 첨단 미사일 방어 시스템로도 요격이 어렵다는 평가를 받는다.
러시아의 첨단 과학단지, 아카뎀고로도크가 있는 시베리아 노보시비르스크의 기차역 광장/바이러 자료사진
지금까지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에 성공한 나라는 러시아와 중국, 미국에 불과할 정도다. 미 공군은 지난해 12월에야 “B-52H 전략 폭격기가 완전체의 AGM-183A ARRW (극초음속) 미사일을 성공적으로 발사했다”고 발표했다. 중국은 지난 2021년 새로운 극초음속미사일을 우주로 발사해 지구를 거의 한 바퀴 돈 뒤 목표물을 타격하는 시험 발사를 실시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러시아는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서가고 있다. 러시아는 극초음속 순항미사일(HCM)인 지르콘과 극초음속 활공체(HGV) 탑재형 미사일인 아방가르드 등을 이미 실전 배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의 선진 초음속 기술을 탈취하려는 시도가 번번이 이뤄지고 있을 것이라는 상상이 가능하다.
한달 쯤 뒤인 지난해 8월, 문제가 된 이론·응용역학연구소의 소장마저 FSB에 끌려갔다. 알렉산드르 시프류크 소장이 앞선 두 사람과 같은(반역) 혐의로 체포돼 악명높은 KGB 감옥인 모스크바의 레포르토보 구치소에 수감된 것이다. 그는 극초음속 상태를 시뮬레이션하는 풍동(風洞·인공으로 바람을 일으켜 기류가 물체에 미치는 작용 등을 실험하는 터널) 실험실을 이끌며 극초음속 비행체 개발에 참여했다. 특히 나노 기술을 기반으로 새로운 유형의 열선 풍속 센서를 개발한 것으로 유명하다. 수석연구원에 이어 소장까지 체포된 이론·응용역학연구소는 말 그대로 풍비박산(風飛雹散)이 됐다.
이 연구소의 한 직원은 시프류크 소장도 앞서 체포된 수석연구원 아나톨리 마슬로프와 같은 혐의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공범이거나 기밀 자료 유출을 묵인한 혐의로 추정된다.
러시아 극초음속 미사일 '찌르꼰'과 '낀잘' 연구자들이 반역 혐의로 체포됐다. 이들은 종신형에 처해질 수 있다/젠(dzen.ru) 노보스티 캡처
이후 잠잠하던 이론·응용역학연구소에서 또 즈베긴체프가 반역 혐의를 받고 가택연금됐다. rbc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즈베긴체프는 300여편 이상의 논문을 펴낸 과학자다. 그는 이란의 한 학술지에 역학 관련 논문을 게재한 일로 국가 기밀을 유출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체포된 이 연구소의 소장과 수석연구원과는 다른 성격의 행위인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의 개정된 형법에 따르면 국가기밀 유출로 반역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최대 종신형에 처해질 수 있다.
동료 과학자들이 띄운 공개 편지. 반역혐의로 체포된 동료 3명의 얼굴을 앞세웠다/캡처
현지 동료 과학자들의 반발도 크다. 과학자들은 당국에 보낸 공개 항의 서한에서 "체포된 과학자들은 눈부신 성과를 일궜으며, 평생을 러시아 과학계에 헌신했다"며 "이들이 공개적으로 발표한 자료들은 모두 보안 관련 확인 절차를 거쳤다"고 주장했다. 또 뛰어난 젊은 과학도들이 함께 일하기를 두려워한다"며 "과학자들이 조국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것과 반역이 어떻게 구분되는지 법률적으로 명확한 설명을 해달라"고 촉구했다.
인권단체를 이끄는 드미트리 자이르벡은 "올해 들어 과학자 체포가 30건 발생했다"며 "확인되지 않은 사례까지 더하면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러시아 과학을 발전시키고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위해 일해온, 세계적인 명성의 과학자들이 왜 투옥되는지는 오직 신만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과학자들에 대한 유무죄는 법원이 판단한다"며 "(판결을) 지켜보자"고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몰고온 러시아 군산복합체 과학자들의 '수난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