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9. 26. 07;00
계절은 늘 신비롭다.
추석이 지나자 가는 여름 아쉬워 낮에는 더위가 심술을 부리지만
아침저녁으론 제법 써늘한 기운이 돈다.
툭~툭 딱~딱♬
여명 빛 사라진 숲 속 여기저기에서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아람 벌어진 산밤 떨어지는 소리는 산길을 외롭지 않게 한다.
매미소리는 일제히 사라졌고, 여치, 귀뚜라미 등 풀벌레 노래소리가
그 틈을 메꾼다.
2~3일 동안 예초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산길에 핀 금계국이
다 사라졌다.
일자리 통계를 위한 임시 취업자들이 예초기를 마구 돌려 산길의 잡초가
다 잘려나가고 한구석에 겨우 남은 '금불초'를 만난다.
< 금불초 >
잡초(雜草)의 개념은 무엇일까.
농사에 방해되는 풀을 잡초라 했던가?
요즘 한참 피기 시작하는 벌개미취, 쑥부쟁이, 감국, 산국이 다 국화 종류라
이 꽃들은 국화로 대접을 받고, '금계국'이나 '털별꽃아재비'는 잡초로
취급을 당한다.
사람들은 인간의 활동을 방해한다고, 농작물 경작지를 침범한다고 웬만한
풀은 다 잡초로 분류를 했다.
어떤 잡초들은 처음에 예상하지 못했던 가치가 발견되어 대접을 받기도
하지만 웬만한 풀은 조금 무성하게 자랐다고 예초기를 동원해 마구 잘라
버리는 거다.
인부들이야 지시에 따르기만 하면 되니 무슨 죄가 있을까만은 아무런
기준 없이 마구 잘리는 풀과 야생화를 보면 괜히 속상해진다.
< 서양 등골나물 >
요즘 자생하는 '코스모스'는 보기 힘들다.
관상용으로 심어야 겨우 보는 코스모스와 달리 '금계국'은 스스로 여기저기에
많이 피어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다.
언젠가 한국인이 가장 궁금해하는 꽃 10개가 포털사이트에 떴었다.
그중 1위인 '금계국'에 가까이 다가가자,
이슬 젖은 금계국이 상큼한 국화 향기를 내뿜는다.
금계국은 가운데 붉은 점이 강한 큰금계국과 금계국으로 분류하는데,
북미가 원산인 외래종으로 기생초, 금불초와는 다르다.
< 금계국 >
< 기생초 >
모퉁이를 돌자 두 번째로 많은 질문을 받는 '개망초'가 하얀 꽃을 피우고
은은한 향기를 보낸다.
조선 개화기 나라가 망할 때 전국에 퍼졌다해서 붙은 이름인 개망초의
생명력은 바랭이와 맞먹을 정도로 상상을 초월한다.
전국 산야의 어느 곳이든지 피는 개망초 꽃은 '망초'보다 더 예뻐도
'개망초'라는 이름을 얻었고 '계란빵'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식물이나 꽃의 이름에 '개'자가 붙으면 볼품이 없거나 본래의 것과 같지만
어딘지 모르게 조금 부족하던지 못하다는 뜻으로 쓰며 개나리, 개보리뺑이,
개쑥부쟁이가 이에 해당한다.
<개망초>
3위는 뭐였더라, 잠시 기억을 더듬는다.
최근에 찍은 기억이 없어서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만들었던
'산딸나무' 사진을 한참이나 찾았다.
사진 갤러리에서는 이미 삭제되었고, 2019. 5. 19일 쓴 느림의 미학 454편
<약비>에서 간신히 산딸나무 사진을 찾은 거다.
<2019. 5. 19 촬영 산딸나무>
4위는 '큰개불알꽃'으로 빠르면 2월부터 보이는데 '불알'이라는 이름이
붙어 다소 민망하다.
개불알꽃은 여름이 되면 하고현상(夏枯現象)으로 가장 먼저 땅속에 숨어
다음 해를 기약하며 힘을 기른다.
열매가 개불알같이 늘어져 개불알꽃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데, 요즘
'봄까치꽃'으로 바꾸자는 활동이 왕성하지만 국제 식물학회에 한번 등록되면
쉽게 바꾸지 못한다니 아쉽다.
< 큰 개불알꽃 >
5위는 '조팝나무 꽃'이다.
4~5월 우리나라 어느 곳이던지 산과 들에 피는 조팝나무 꽃을 볼 수 있으며,
어떤 사람들은 싸리나무라고 하는데 콩과의 싸리나무와 장미과의 조팝나무는
엄연히 다르다.
별주부전에서
<소상강 기러기는 가노라고 하직하고,
강남서 나오는 제비는 왔노라고 현신하고,
'조팝나무'에 비쭉새(직박구리) 울고 함박꽃에 뒤웅 벌이요,
방울새 떨렁, 물떼새 찍걱, 접둥새 접둥, 뻐꾹새 벅벅, 까마귀 골각, 비둘기
국국 슬피 우니 근들 아니 경(景) 일소냐~>라는 대목이 나온다.
별주부가 토끼의 생간(生肝)을 구하러 육지에 올라와 세상을 처음 둘러보는
장면에서 '조팝나무'가 나오는데, 별주부전에도 나올 만큼 우리와 친근한
나무로 참조팝, 꼬리조팝, 갈기조팝, 둥근잎조팝을 찍은 기억이 난다.
< 조팝나무 >
6위는 '샤스타데이지'이다.
6~9월 흰색의 꽃이 줄기 끝에 피는 국화과 원예종인데 꽃이 국화과 구절초와
비슷하여 여름 구절초라고도 하는 외래종이다.
샤스타는 미국 인디언 말로 흰색이라는 뜻이며,
샤스타 산은 만년설이 있는 화산으로 늘 눈이 쌓여있어 흰 산(White
mountain)이란 별명이 붙었다.
마디가 9개인 구절초와는 조금 다른데 1890년 미국의 식물학자가 여러 종의
데이지를 교배해 만들었기에 원산지가 미국이다.
우리나라 단군 신화에서 나오는 곰(熊)은 100일 동안 마늘과 쑥을 먹고
인간인 웅녀(熊女)로 환생하는데 여기에서 곰이 먹은 쑥은 '구절초'를 말한다.
7위는 내가 사랑하는 '수레국화'이다.
유럽 지중해가 원산인 원예종이지만 요즘 야생에서 많이 자라고 관상용으로
인기를 끈다.
독일의 국화(國花)로 지정된 수레국화,
보랏빛을 띤 청색 수레국화를 볼 때마다 참 신비하다는 생각이 드는 꽃이다.
< 수레국화 >
8위는 '나비 바늘꽃'으로 불리는 '가우라'이다.
흰색은 백접초, 분홍색은 홍접초라고도 불리는데, 한강이나 남산공원
들머리에서 흔히 만날 수 있으며 내가 찍은 이 꽃은 '분홍나비 바늘꽃'
즉 홍접초이다.
< 홍접초; 분홍나비 바늘꽃 >
9위는 시골에서 생울타리로 많이 심는 '명자나무'의 빨간 꽃인데 흔하지만
최근 만나지를 못해 촬영을 하지 못했다.
10위는 '병꽃나무 꽃'이다.
2018년 9월 19일 황간 월류봉 정상 근처에서 만난 붉은 병꽃나무가 생각난다.
오대산 상왕봉에서 만났던 '미스김 라일락'인 '흰정향나무 꽃' 사진은 남아
있는데 바로 그 옆에서 찍은 '흰병꽃나무' 사진은 사라졌다.
아직도 내 가슴속에 '흰병꽃나무'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있으니 언젠가
'털진달래꽃'과 함께 다시 만날 수 있겠지.
<2018. 9.19 황간 월류봉 정상 근처에서 찍은 붉은병꽃>
07;30
10위까지 꽃을 생각하다가 예초기의 칼날을 피한 '털별꽃 아재비'를 만났다.
3mm도 되지 않는 작은 꽃에 아재비라는 이름이 어쩌다 붙었을까.
아재비라는 말은 아저씨, 아주머니를 낮추어 이르는 말이다.
아재비라는 이름이 붙은 꽃으로 '미나리 아재비', 꿩의다리 아재비'
'큰벼룩 아재비' '맥문 아재비' '물꽈리 아재비' 등이 있다.
< 털별꽃 아재비 >
망초, 개망초, 바랭이, 왕바랭이, 서양 등골나물 등은 잡초의 대명사지만
비록 잡초라도 다음 식물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풀이다.
여린 '망초', '닭의장풀'은 배고픈 보릿고개 시절 죽을 끓일 때 넣는 훌륭한
구황식물(求荒植物)이었으며,
'붉은서나물'은 붉은색을 내는 자연 염색의 염료로 이용하였고,
'질경이'는 지친 말을 다시 일으킬 정도로 힘을 주는 식물로 '차전초'라는
별명이 붙었다.
'가막사리'는 폐암치료제의 원료로 연구 중이고,
밤에 문을 뚫는다 해서 '야관문'이라 불리는 '비수리'는 천연 비아그라로
술을 담아 자기 전 한잔씩 마시면 발기부전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까마중'은 안토시아닌이 풍부해 눈 건강에 도움이 되고,
'둥굴레'는 차로 마시고,
'소리쟁이'는 위를 좋게 해 변비를 없애주며,
'개똥쑥'은 해열과 진통,
'쇠비름'은 어혈을 풀어줘 소변을 잘 나오게 한다.
'이질풀'은 말라리아와 설사 치료제,
'여뀌'는 마취제와 여뀌즙으로 술을 빚는 여뀌누룩을 만들며,
'쑥'은 피를 맑게 해 주고,
'엉겅퀴' 역시 간 해독과 피를 맑게 해 주며,
'민들레' 또한 천연 간 해독제로 사랑을 받는다.
이처럼 인간에 도움이 되어도 잡초로 분류되어 지금 내 앞에서 마구 잘려
폐기물 자루 속으로 사라진 풀의 이름을 불러본다.
적하수오, 비수리, 개똥쑥, 강아지풀, 사데풀, 조밥나물, 붉은서나물, 동고사,
줄, 사초, 억새, 기름새, 여뀌, 닭의장풀, 나팔꽃, 메꽃, 유홍초, 박주가리,
가막사리, 환삼, 쇠비름, 질경이, 둥굴레, 까마중, 쑥, 꼭두서니, 선칼퀴,
서양등골나물, 민들레, 바랭이, 왕바랭이 등 대충 세어도 30종류가 넘는다.
논두렁, 밭두렁에서 경작을 위해 잡초를 베어내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산길에서조차 마구 자르는 것은 인간의 욕심이다.
잡초가 무성한 산길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실험 결과에 의하면 모든 식물이 감정을 느낀다는데 사람의 손에 의해
말끔하게 정리된 산길을 걸으며 잡초의 비애(悲哀)를 생각한다.
2021. 9. 26.
석천 흥만 졸필
첫댓글 잡초 종류가 넘 많아 머리에 쥐난다.... 그래도 보고 들은 잡초들도 꽤있어 반갑다..... 아무리 예초기로 잘라도 시간이되면 다시 우리들 곁으로 오는게 잡초다.... 약으로 아예 씨를 말리는것보다 인간적이지....ㅎㅎ 하루 빨리 흰병 꽃나무,털진달래꽃을 만나기를 바란다.
2018.7.18 봉화 각화산에서
ㆍ털진달래꽃ㆍ은 찍었어
그 이후엔 못만났고
2019. 6.26일 영월 마대산 중턱에서 '꼬리 진달래 꽃을 찍었고
와! 대단하다. 식물에 대한 해박한 지식에 경탄한다 내가 좋아하는 조팝나무에 대한 설명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