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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의 피로 구원하신 하나님
24: 1-11
1.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인과 함께 여호와에게로 올라와 멀리서 경배하고
2. 너 모세만 여호와에게 가까이 나아오고 그들은 가까이 나아오지 말며 백성은 너와 함께 올라오지 말찌니라
3.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고하매 그들이 한 소리로 응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4.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산 아래 단을 쌓고 이스라엘 십 이 지파대로 열 두 기둥을 세우고
5. 이스라엘 자손의 청년들을 보내어 번제와 소로 화목제를 여호와께 드리게 하고
6. 모세가 피를 취하여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단에 뿌리고
7. 언약서를 가져 백성에게 낭독하여 들리매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8. 모세가 그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려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9.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인이 올라가서
10. 이스라엘 하나님을 보니 그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듯하고 하늘 같이 청명하더라
11.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보고 먹고 마셨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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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 연휴를 잘 보내셨습니까?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구원받은 이 하나만은 잊지 않고, 간직하고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일이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나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의식은 더욱 새롭게 생각나고, 구원의 흔적이 마음 깊이 새겨져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 노는 재미에 빠지면 성경도 멀리하게 되고, 기도도 사라지고, 교회도 억지로 나오게 됩니다.
사람이 돈쓰고 다니고, 식도락을 즐기고, 오락의 시간을 가지고, 사람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는 것들, 물론 당연히 해야하지만 지나치지 않아야 합니다. 한 마디로 도를 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천국을 말씀하시는 우리 주님께서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가 진주를 구하러 다니는 중에 정말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는 빨리 집으로 돌아가서 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들였습니다. 가장 값진 진주를 소유하고 보니, 전에 소장하고 있던 다른 진주들이나, 재물은 아무런 가치가 없어 보였습니다.
이 세상을 다 주어도 바꿀 수 없는 가장 값진 진주이신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소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어야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이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값진 진주가 되십니다.
천국을 말씀하시는 우리 주님께서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남의 밭에 들어가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일하는 중에 땅을 깊이 파고, 돌을 꺼내려고 하는데, 그 밑에 엄청난 보물이 숨겨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우선 원상대로 숨겨두었습니다. 그리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버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천천히 그 밭에서 보화를 캐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 사람의 윤리의식을 비판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천국은 보화이기에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차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엄청난 보화를 가진 사람들이요, 값진 진주를 소장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정체성, 우리는 구원의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정말 어디를 가던지 예수 믿는 사람이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매일 고백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이 주님을 말하면서 나를 구원하신 주님이라고 하는 말을 귀하게 여기고 듣기 좋아하십니다.
(롬10:9-10)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마음으로만 믿으려 하지 말고, 물론 마음으로 믿지만,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의 확신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만 고백하는 사람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입술로 고백할 수 있어야 그 사랑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마10:32-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우리는 자신을 한번 되돌아 보아야 합니다.
나는 어떠한 상황과 형편에서도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드러내고 믿는 편인가?
아니면 전혀 믿는다는 말을 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편인가 하는 것입니다. 상황에 따라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은 경우에는 나도 예수 믿는다고 하고, 예수 믿는 이들이 적은 경우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회색적인 사람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기독교인들이 자기가 믿는 사람이라고 드러내지 않았다고 하면 우리는 전혀 믿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드러내는 사람들이 많아야 합니다.
오늘의 많은 성도들이 자신이 그리스도인인 것을 담대히 드러내지 못하는 것은 구원의 확신이 없기 때문이며, 죄에 대하여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구원과 죄의 문제는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다 해결하신 문제인데, 성경의 지식이 빈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특권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오늘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 무엇인지를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과연 어떤 것인지를 들어나 보자는 식으로 믿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를 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정말 우리의 삶이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계신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항상 들려지고, 우리의 전 생활 속에서 성령의 역사가 생생히 일어나야 합니다. 형식만 가지고 있는 껍데기 신앙이 아니라, 내용이 알차고, 속이 들어차 있는 신앙이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지지 못하여 불행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이미 소유한 것을 미쳐 깨닫지 못하여 불행이라고 봅니다. 많은 배우지 못하여 불행이라고 생각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전혀 아닙니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활용하지 못하고, 배운 대로 실천하지 못하여 불행한 것입니다. 이제 신앙생활하는데 무엇을 몰라서 불행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그대로 생활하지 못하여 불행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부어주셨습니다. 이미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서 감사하여야 합니다.
오늘은 성경을 통털어 가장 중요한 구속사의 핵심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언약의 피로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의 제목을 "언약의 피로 구원하시는 하나님"이라고 정하여 보았습니다.
먼저 언약 즉 계약이라는 용어를 알아야 합니다.
언약이란 사람 사이에서 맺는 협약입니다.
간단한 약속에서부터 생명을 좌우할 수 있는 맹약까지 모두 언약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셈족인 히브리인에게 있어서 언약이란 엄숙한 구속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약속을 맺었으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행한 엄숙한 약속이었고, 두고두고 구속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고대의 셈족에 있어 엄숙한 구속력을 가지는 언약의 개념이 아랍인들 간에 널리 시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혈맹이라는 언약이 있었습니다. 상대방의 피를 마시므로 형제가 된다고 하는 언약이었습니다.
이러한 혈맹에는 그들의 신까지도 인정하는 생명의 교제라는 차원에서 이제 둘이 아니라, 하나되는 언약이었습니다.
이러한 언약을 서로 비준하는 의식을 거행하였는데, 그것은 짐승을 잡아 둘로 나누어 가졌으며, 하나되었다고 하는 의미에서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었습니다. 짐승을 잡아 몸을 쪼개어 나누는 것은 죽음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언약이라는 히브리어 "베리트"는 "짜른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계약의 당사자가 이 계약을 어기고 파기할 때는 마땅한 죽음이 기다린다고 하는 뜻이었습니다. 히브리인들은 이렇게 생명을 걸고 계약을 맺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창15장에 보면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언약을 체결하는 광경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때 아브라함은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았습니다. 소와 양과 염소는 쪼개어 놨는데 그만 새들은 쪼개지 않고 목만 비틀어 죽여 놓았습니다. 조그만 새들인데 죽었으면 그만이지, 어떻게 배를 갈라 둘로 쪼개어 놓느냐 하는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그 새라도 다 쪼갰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쪼개진 고기 사이로 하나님의 현현의 상징인 횃불이 지나가면서 고기를 태웠습니다.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갔습니다. 이것을 언약의식 "Covenant Ceremony"라고 합니다. 횃불이 지나갔다는 것은 하나님이 지나가심입니다.
당시 언약의식을 보면 서로가 어떤 약속을 하고 두 사람이 신 앞에서 고기를 두 부분으로 짤라 쪼개고 고기 사이로 지나갑니다. '만약 이 언약을 지키지 않는다면 네가 이 쪼개진 짐승처럼 죽게될 것이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서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이 고기처럼 쪼개진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서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었습니다.
이것을 구약이라고 합니다. 구약은 그림자요, 예언적인 성격이 강하며, 신약은 실체요, 성취라는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구약은 신약의 완성을 전제로 하고 주어진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구약 그 자체로 완성이 아니라,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시작이었고, 한 과정이었습니다. 구속사의 마침은 십자가 상의 예수님의 죽으심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계약을 체결하는 광경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제 모세는 백성의 대표들과 함께 산 위에 올라오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의 계약을 체결하시려는 공식적인 행사였습니다. 언약 의식을 행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제사장으로 임명받을 아론과 그의 큰 아들과 둘째 아들 나답과 아비후 그리고, 이스라엘의 장로 70인과 함께 여호와께 올라와 멀리서 경배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때 백성들은 아예 시내산에 가까이 올라오지 못하게 하였고, 백성의 장로들은 산 위에 올라가서 하나님 앞에 조금 더 가까이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만은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에게 나아갈 때에는 경건함을 유지하여야 합니다.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엄숙한 경외심을 가지고 겸손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들이 오랫동안 믿고, 교회에 직분에 익숙할수록 하나님 앞에서 경거망동하고, 경건치 않게 행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요, 업신여기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람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고, 거리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가는 사람은 자기의 집을 떠나고, 군중을 떠나고, 홀로 올라가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오직 한 사람 대표자만이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가고, 나머지는 멀리서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고 계약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먼저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시고, 전하여 전 국민이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들었습니다. 우리는 알고 따라가야지, 모르고 따라갈 수는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백성들이 맹목적으로 따라오지 않도록 먼저 말씀을 주셨습니다. 모르면서 따르거나 헌신하라고 하지 않고, 먼저 계약의 내용을 잘 알아듣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율법의 말씀을 기쁘게 복종할 것인지, 아니면 전혀 따르지 아니할 것인지를 결정하게 하였습니다.
계약을 맺으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출20:1-2을 보면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고 하셨습니다.
십계명을 주시는 하나님은 이미 이스라엘을 구원해주신 하나님이십니다. 구원의 주님이요, 사랑의 주님이 되십니다. 율법을 주시고, 십계명을 주시는 분은 우리를 구원해주신 하나님이시고, 우리를 위하여 주시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율법을 지켜야만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구원받았으니, 구원받은 사람으로 살라는 뜻으로 주신 것이 율법이요, 십계명이었습니다.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19:5-6)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행하라고 하시는 것은 구원받은 이후에 더욱 크게 사용하시고 당신의 자녀들에게 복을 주시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을 전해들은 이스라엘은 일제히 응답하여 말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시내산에서 계약을 체결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12지파대로 12기둥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제단을 쌓았습니다. 12기둥과 제단은 서로 마주보게 하였을 것입니다. 12기둥은 계약의 상대자인 이스라엘 백성이었습니다. 그리고 제단은 하나님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그 양자 사이에 왔다 갔다 하면서 계약을 체결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장로들은 기둥 곁에 서고, 모세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제단 앞에 서 있었습니다.
모세는 청년들을 보내어 소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게 하였습니다. 6절입니다. "모세가 피를 가지고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제단에 뿌리고, 반은 가지고" 있습니다.
모세는 언약서를 가져다가 읽었습니다. 이것은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의 말씀이었습니다. 모세는 아마 진지하면서도 강력한 어조로 낭독하였습니다. 이제 어쩔 것이냐는 것입니다. 이 때 백성들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라고 응답하였습니다. 모세는 남은 피를 가지고 백성들에게 뿌렸습니다.
8절입니다.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고 외쳤습니다. 이것으로 언약은 체결되었고, 언약의 후속 조치인 식사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도 언약을 맺을 때는 강력한 의미를 담은 심각한 체결의식을 거행하지만, 이후 두 당사자는 기쁜 마음으로 함께 음식을 나누며 우의를 다지는 것이었습니다.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장로 70인은 산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 아래를 보니 마치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같이 청명하였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사람을 바라보시면서 하나님을 보았다고 손을 대지 않으시고, 그들은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식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시내산에서 세운 언약을 구약이라고 하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돌아가심으로 세우신 언약을 새언약이라고 합니다.
구약 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새 언약을 세우실 것을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선지자 예례미야를 통하여 새언약을 세울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렘31:31-3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은 성실하게 그 언약을 지키어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부부
라는 상징을 가지고 설명한다면 한 아내의 남편으로 그 언약을 지키어 최선을 다하였는데도, 이스라엘은 정결한 아내로서의 언약을 깨뜨렸습니다.
신약의 레위기라고 할 수 있는 히브리서에 보면 히8:7에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라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라고 하셨습니다.
첫 번에 주신 언약이 완전하지 못하였음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분명히 이 언약을 체결한 양자 중 어느 한 쪽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언약이란 두 사람 사이의 약속으로서 그 약속은 쌍방이 상호 동의한다는 조건에서 성립되는 것인데, 한 쪽이 그 조건에 위대되는 경우에 그 계약은 무효가 되기 때문입니다. 선민으로 택함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은 언약에 불순종하므로써 그 언약을 온전치 못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함으로 첫 번의 언약이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언약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언약을 대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최선의 최선의 방책으로 첫 번의 언약, 율법이 가르치고 있는 죄의 형벌을 해결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영혼을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신 것을 후회하신 적도 있었습니다. 죄가 관영하여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모든 사람을 죽이는 대신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죽으신 것은 나를 위한 죽음이요, 예수님께서 피를 흘려 생명을 버리신 것은 나를 위한 피흠림이었다고 하는 것을 믿는 사람은 구원하시기로 하셨습니다. 그 첫 번째 맺은 언약으로 인간을 구원하려고 하셨는데, 그러한 계약이 오히려 사람을 속박하고, 죽음으로 인도하는 근거가 되고 말았습니다.
율법으로는 의인이 하나도 없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죄 아래 갇히고 말았습니다. 율법은 생명이 아니라, 사망을 가져다 주고 있었습니다. 율법은 본래 그러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주신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먼저 설교를 시작하면서 구약의 모든 사건은 신약에 온전한 것을 전제로 하여 말씀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계획과 경륜 속에서 옛 언약, 첫 번째 언약은 새 언약을 전제로 주신 것이었습니다.
인간이 엄청난 죄를 지었어도 하나님은 결코 인간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의지를 외쳤습니다.
(사54:10) "산들이 떠나며 언덕들은 옮겨질지라도 나의 자비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화평의 언약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시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이 처음 범죄하였을 때 이미 여자의 후손으로 오시는 이로 악한 사탄을 멸하고 인간을 구원하시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구약의 언약, 시내산 언약은 피를 흘리므로 대속하시는 우리 주님의 십자가를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노력을 담보로 하여 구원을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임으로 구원을 선물로 받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성만찬을 거행하시면서 눅22:20에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라고 선언하셨습니다. "피흘림이 없은 즉 사함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생명은 생명으로 속하는데,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주님이 십자가에서 그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는 생명을 구속받은 것입니다.
히9:18에 "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니니"라고 하셨습니다.
모세가 소를 잡아 담은 피를 제단에 뿌리고, 사람들에게 뿌림으로 언약을 맺었습니다. 이것은 장차 우리 주님의 피흘리심으로 구원하시겠다는 예표였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구원의 확신을 가져야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첫 번의 언약은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제한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제한을 두시지 않았다고 하여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과 맺은 언약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새 언약은 오고 오는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과 맺은 것입니다. 누구든지 주님을 자기의 주님으로 영접하기만 하면 구원받는 역사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을 온전히 사랑해야 합니다. 세상을 사랑하고 주님을 덜 사랑하던 우리의 형식적인 믿음이 죽어야 주님이 살아 역사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자존심도 십자가 앞에 내어놓아야 합니다.
주님이 자존심을 살리려고 했으면 죽으실 수 없었습니다. 우리의 욕심, 우리의 혈기 다 십자가에 내어놓아야 죽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요6:53)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보혈을 믿고 그 보혈의 은총을 하나님의 선물로 받아 간직하여야 합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여러분의 지식으로 구원받지 못합니다.
여러분, 고상한 인격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어떤 연조를 자랑하고, 직분을 가지고도 안됩니다. 혹 하나님 앞에 헌신하였고, 헌금생활에 힘썼다고 하여도 그것 감사의 조건은 될 수 있어도,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주님을 영접하여야 합니다. 주님을 나의 주님으로, 주님이 나의 죄를 다 짊어지고 죽으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인생을 살면서 진정한 행복을 누리고, 자유를 누리고 싶습니까? 우리 주님을 영접하지 않으면 행복이 없습니다. 꿈이 없습니다. 의도 없습니다. 바르게 살 수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 살아계시면서 우리는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언약의 피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은혜목회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