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밥그릇밥상식사량??! 대식가들이었다?!
섭일기 ・ 2020. 10. 15.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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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러분들 !!
밥은 잘 드시고 계시나용?ㅋㅋㅋㅋㅋㅋㅋ저도 점심을 먹기 전이라 너무 배가 고픈데요~~ 오늘의 포스팅은
조선시대에 우리 조상님들이 얼마나 드셨는지 알아보기 위함입니다~
재미로 준비했지만! 정보들이 있으니 봐주세요 ㅎㅎㅎㅎㅎ
오늘의 포스팅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 하루도 화이팅!
역사적 근거에 따르면, 현재 쓰는 일반적인 밥그릇의 크기는 350g이 들어갈 정도이지만, 조선시대에는 690g, 고려시대에는 1,040g, 고구려 시대에는 무려 1,300g의 밥그릇이 발굴되었다. 게다가 삼국유사에서 김춘추가 하루에 먹는 양이 엄청나다.
왕은 하루에 드시길 쌀 3말[2] 과 꿩 9마리를 잡수셨는데, 경신년에 백제를 멸망시킨 뒤에는 점심은 그만두고 아침과 저녁만 하였다. 그래도 계산하여 보면 하루에 쌀이 6말, 술이 6말, 그리고 꿩이 10마리였다.[3] 성 안의 시장 물가는 베 1필에 벼가 30석 또는 50석이었으니 백성들은 성군의 시대라고 말하였다. ─ 삼국유사
조선시대 실학자인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식에 힘쓰는 건 으뜸이다. (유구국)]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을 보고 '밥을 떠서 실컷 먹으니 어찌 가난하지 않겠는가?'라며 비웃었다."이라 기록했다.
20세기 초 한국에 진출한 베네딕토회 독일인 수도자들.
조선 말쯤에 한국에 머문 성 다블뤼 안 안토니오 주교의 기록에서도 대식을 하는 조선인들의 일화를 확인 할 수 있다.
다식에 대해서는 대신과 평민의 구별이 없다. 조선 사람들은 많이 먹는 것이 곧 명예로운 것으로 여기며, 식사의 질 보다는 양을 중시한다. 조선 사람들은 식사를 하면서 수다를 떠는 법이 없다. 노동하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식사량은 1리터의 쌀밥으로, 이는 아주 큰 사발을 꽉 채운다. 각자가 한 사발씩을 다 먹어치워도 충분하지 않으며, 계속 먹을 준비가 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2~3인분 이상을 쉽게 먹어치운다. 우리 신자들 중의 한 사람은 나이가 30세에서 45세 가량 되는데, 그는 어떤 내기에서 7인분까지 먹었다. 이것은 그가 마신 막걸리 사발의 수는 계산하지 않은 것이다. 64세에서 65세가 된 어느 노인은 식욕이 없다 하면서도 다섯 사발을 비웠다. 조선 사람들은 열 사발을 감당하는 자를 장사라고 부른다.
소를 잡을 일이 있어 쇠고기가 마음껏 제공되면 아무도 고기로 꽉찬 접시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과일을 대접할 경우, 예를 들어 큰 복숭아를 내놓을 때에 가장 절제하는 사람도 10개 정도는 먹으며, 종종 30개, 40개, 50개까지 먹는 사람도 있다. 참외를 먹을 경우 보통 10개 정도 먹지만 때때로 20개나 30개를 먹어치우기도 한다.
조선의 어머니들은, 아이의 배를 손으로 두들겨 보면서 뱃속이 가득해지는 최후까지 밥을 채워 넣는다. 때때로 숟가락 자루로 아이의 배를 두드려 보다가 속이 꽉 찼을 때에 비로소 밥 먹이는 것을 중단한다. 누군가를 잘 대접해야 할 때는 닭 1마리를 통째로 내놓는다. 아무도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말할 필요도 없이 각자는 그것을 다 먹어치운다.[10] 쇠고기나 개고기도 큼직하게 썰어서 양껏 내놓는다. 그래야만 사람들은 고기를 먹었다고 여긴다. 특히 곱창과 생선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요리이다. 하지만 조선인들이 이를 식탁에 올리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보자마자 먹어치운다. 왜냐하면 조선인들은 자제할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조선인들의 집에는 비축식량이 없으며, 손에 넣는 즉시 먹어치운다. 물론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찬장이나 식량 창고가 없으므로 음식을 보관할 수 없다. 게다가 이 나라는 기후가 매우 습하기 때문에 음식물이 금방 부패한다.
그리고 취할 정도로 술을 마시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임금이나 영의정도 공공연히 폭음을 한다. 술에 취하면 정신을 잃고 바닥에 뒹굴거나, 술을 깨기 위해 잠을 잔다. 그래도 아무도 놀라거나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고, 혼자 쉬도록 내버려둔다. 우리 눈으로 볼 때 이것은 큰 타락이다. 그러나 이 나라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관습이다. 그래서 허용되며 아주 고상한 일이 된다.
구한말 조선을 여행했던 오스트리아의 귀족 출신 여행가인 에른스트 폰 헤세 바르텍(1854~1918)도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조선인들이 대식가라는 점에서, 비교할 만한 대상이 없었다. 내가 일본에 갔었을 때, 일본인들은 자신의 이웃이 자신들보다 3배 가량 더 많이 먹는다고 내게 말했었는데, 나중에 제물포 개항장에 와 보니, 정말로 그랬다. 중국인과 일본인들은 일정한 시각에 식사를 하는 반면, 조선인들은 때를 가리지 않고 식사를 하는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의 밥이, 붉은 고추 한 줌과 함께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이었다.
영국 출신 여행가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과 선교사 그리피스 존의 여행기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조선인들은 보통 한 끼에 3~4인분의 양을 먹어치우며, 3~4명이 앉아 있으면, 그 자리에서 20~25개의 복숭아와 참외가 없어지는 것이 다반사이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
조선인들은 보통 일본인들의 2배를 먹는다.
그리피스 존
이러한 기록들은 정말로 많습니다.
정말 그러했을까??
네 정말 그러했습니다. 일단 많은 기록들이 있어서 부정할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의 할아버지에게 예전에 물어본적이 있습니다. 정말인지요.
우선 저희 할아버지는 시골에서 평생을 보내셨기에 농업에 종사하셨고 육체적으로 일을 많이 하였으니
할아버지와 식구들 할아버지의 아버지나 할아버지. 동내사람들들 평균치가 많습니다.
할아머지께서 말씀하시길, 참고로 할아버지는 1919년 출생이시고 저의 증조할아버지는 조선말인 1890년생 이십니다. 물론 지금은 하늘에 계시지만, 예전에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 우리땐 정말 먹을게 보리밥같은거 뿐이었다. 쌀밥은 귀했다. 고기는 구경도 못하고 살았고 라면도 한평생 늙어서 먹어보았다. 어릴적 큰 잔치때 고깃국이 나왔는데 고기는 먹지 않는건주 알고 빼낸사람도 있었다. 안먹어봐서 몰랐기 때문이다. 오직 영양분이라고 쌀과 짠지(김치)같은거 밖에 없었고 간식도 없고,
밥과 물뿐이니. 지금 기준 최소 5공기. 6공기는 먹은거 같다. 그게 한끼다.
나보다 어렵고 가난한 사람은 물론 배고파도 그렇게 먹지 못하고 굶었다. 나 젊을적엔 공식적으로 없어진 양반이라는게 비공식적으론 행세했다, 보통 양반가문이 아닌 높았기 때문에 그게 가능한건데 그들은 자랑하려고 하루 5끼도 먹는다. 품파는 사람들은 하루 2번 아침.저녁만 먹었지만 엄청 많이 먹었다. "
라고 하셨습니다.
고모들한테 물어보니...고모들도 여자인데도 어릴적 4-5공기 드셨다고 하네요. 지금기준.
먹을게 고모들기준 밥과 국. 어쩌다 고구마가 끝이었다고 하네요.
조선시대이전 정말 대식가가 맞는듯합니다.
이순신이 하루5홉을 주고도 병사들이 굶주린다고 표현했죠. 지금기준 3공기인데도요.
그 당시 보리밥은 영양분이 정말로 없었다는걸 기준으로 하셔야합니다.
여러분들은 혹시 하루에 얼마나 드시나용? 배부르게 드셔서 하루 든든하게 보내시길!!
[출처] 조선시대밥그릇밥상식사량??! 대식가들이었다?!|작성자 섭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