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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과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11월 16일 안식일 / 일몰: 오후 5시 20분)
연구 범위: 요 8:54-58, 창 12:3, 롬 4:1-5, 요 12:1-8, 19:4-22, 20:19-31, 단 2:, 7:
기억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요 20:29).
요한복음에서는 책 전반에 걸쳐 서로 다른 배경, 신념, 경험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예수님이 누구인지 증언하고 있다.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36).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요 1:41). "모세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요 1:45).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요 1:49).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요 4:29).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요 4:42).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요 6:68).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요 11:27).
"내가 눈멀었으나 지금은 보는 것이니이다"(요 9:25, 흠정역). "보라 너희 왕이로다" (요 19:14).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요 19:6).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 20:28).
이 사람들은 누구였으며 그들이 예수의 신원에 대해 이렇게 증언한 이유는 무엇인가?
*학습 목표
깨닫기: 요한은 예수님을 직접 보지 못한 세대가 믿을 수 있도록 증거를 제공한다.
느끼기: 요한의 때에는 그저 믿었던 예언, 말씀이 오늘날 성취된 것을 알 수 있다.
행하기: 예수님을 직접 보지 못할지라도 말씀을 통해 믿으며 예수께서 구주이심을 세상에 증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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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습니까?(요 8:58)
*답: 그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약속된 메시아라는 의미다.
3. 향유를 부은 마리아에게 하신 말씀은 그분이 어떤 분임을 말하고 있습니까?(요 12:7)
*답: 죽으시고 장사되고 부활하실 구주이심을 말한다.
4. 빌라도의 증언과는 다른 행동은 결국 그의 어떠함을 보여주고 있습니까?(요 18:37)
*답: 정의를 따르기보다 자기의 현실적 이익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사람이다.
5. 예수님은 왜 도마에게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더 복되다고 말씀하셨습니까?(요 20:29)
*답: 후세대 사람들은 도마와 같은 경험을 하지 못할 것을 미리 말씀하셨다.
7. 예수를 직접 본 도마나 제자보다 우리가 가진 증거가 더 많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답: 예언된 말씀이 진리이며 사실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결론: 요한은 예수를 직접 보지 못한 이후 세대가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여러 사람을 통해 증언한다. 아브라함은 그 구원을 미리보고 기뻐하였고 로마 관원 빌라도의 증언도 예수님에 대한 신빙성을 더해 준다. 예수님은 직접 보지 못하지만 믿는 자가 더 복되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그분이 하신 말씀이 성취된 것을 보면서 예수님을 직접 만난 제자들보다 더 많은 증거를 가지고 예수님이 메시아이신 것을 믿고 따를 수 있다.
11월 10일(일) 아브라함도 미리 보고 기뻐함
예수님은 당신께서 누구인지 선포하는 데 주저함이 없으셨고, 아브라함처럼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난 증인들을 통해서도 당신이 누구인지 증거하게 하셨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요 8:56).
아브라함의 증언이 요한복음에 포함되었을 정도로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창 12:3, 18:16-18, 26:4, 마 1:1, 행 3:25)
[창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창18:16~18] 그 사람들이 거기서 일어나서 소돔으로 향하고 아브라함은 그들을 전송하러 함께 나가니라 1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18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창26:4]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마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행3:25] 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셨으니,
*답: 메시아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실 것을 예언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예표와 약속을 통하여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갈 3:8)셨다. 그러므로 그 부조의 믿음은 오실 구주에게 고정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유대인들에게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요 8:56)고 말씀하셨다. 이삭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려진 어린양은 우리 대신 희생당하시기로 되어 있던 하나님의 아들을 상징하였다. 인간이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여 죽을 운명에 처했을 때 하늘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쳐다보며 죄인에게 ‘살라. 내가 대속물을 찾았노라’고 말씀하신다"(부조와 선지자, 154).
아브라함은 유대 민족의 조상이다. 그는 자신을 통해 모든 민족이 복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다. 이 복은 그의 혈통을 통해 태어난 메시아를 통해 이루어졌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들의 조상이기도 하다(히 11:8, 17-19). 약속의 아들인 이삭(창 22:)을 기꺼이 희생하려 한 그의 모습은 믿음의 증거일 뿐만 아니라 구원의 계획을 보여주는 창이었다.
예수께서 너희 조상 아브라함이 나의 때 볼 것을 보고 기뻐하였다(요 8:56)고 말씀하시자 지도자들은 "네가 아직 오십 세도 못 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요 8:57)라고 대답했다.
예수님의 대답은 놀라웠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요 8:58).
예수님은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하신 말씀을 연상시키는 표현을 사용하셨다. 이것은 예수 자신이 스스로 존재하는 하나님이라는 주장이었다.
이 말을 들은 유대 지도자들이 그분을 "돌을 들어 치려 하"(요 8:59)였던 것은 그분의 말씀의 의미를 분명히 이해했기 때문이다.
<교훈> 아브라함이 보고 기뻐했던 구원은 메시아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며 예수님은 아브라함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심으로 당신의 신적 근원에 대해 말씀하셨다.
<부가설명> 요한복음은 8:58에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라고 기록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당연히 ‘내가 있었느니라’라고 읽는 경우가 허다하다. ‘내가 있느니라’는 헬라어로 ‘에고 에이미-εγω ειμι’로서 현재형이다. 이 표현은 출애굽기 3:14에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하신 것과 같은 표현이다. 히브리어로 ‘예흐웨 아쉐르 예흐웨’인데 ‘나는 있는자’라는 뜻이다. ‘여호와영어로는 I AM이다. 존재하는 자라는 뜻이다. 요한 8장에서 예수님은 출애굽기에서 모세에게 하신 그 말씀을 하신 것이다. 예수님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선포하신 것이다.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고 했는데, 요10장에서 있었던 사건으로 이 장면을 풀이해보면,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을 인하여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참람함을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요10:33). 이 말에 의하면 예수님이 하나님이라고 했기에 돌로 치려고 했다. 8장에서도 예수께서 자신이 여호와라고 하시니 돌을 들어 치려고 한 것이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결정할 때도 같았다. “이에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저가 참람한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참람한 말을 들었도다
66 생각이 어떠하뇨 대답하여 가로되 저는 사형에 해당하니라 하고”(마26:64,66). 예수께서 친히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인정했을 때 이런 결정을 한 것이다. 그들이 아브라함을 몰랐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이 당시 유대인 지도자들과 같은 인식에 머물러 있지 않는지?
<영감의 교훈> 그리스도를 본 아브라함 - “이 무서운 시련이 아브라함에게 이른 것은 그에게 그리스도의 날을 보고 타락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가장 수치스러운 죽음을 당하도록 당신의 독생자를 주신,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깨닫도록 하시기 위함이었다. 아브라함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주어진 교훈 중에서 가장 큰 교훈을 하나님에게서 배웠다. 죽기 전에 그리스도를 볼 수 있게 해 달라는 그의 기도는 응답 되었다. 아브라함은 그리스도를 보았다”(시대의 소망, 469).
<기도>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눈을 가지고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며 살기 원합니다. 저희 눈에 보이는 것은 힘겨운 세상의 일들이지만 믿음을 주셔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선하고 아름다운 것을 바라고 소망할 수 있도록 은혜를 더해 주옵소서.
11월 11일(월) 마리아의 증언
유월절 6일 전, 예수께서는 마리아와 마르다, 그리고 다시 생명을 주었던 오빠 나사로를 찾아오셨다. 문둥병에서 고침을 받은 시몬은 예수께서 자신을 위해 행하신 일에 감사하며 잔치를 베풀었다. 마르다가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고 나사로는 손님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 있었다(요 12:1-8).
마리아가 한 행동의 의미는 무엇이었는가? 이 행동은 어떻게 예수님이 실제로 어떤 분인지를 나타내는 증거가 되었는가?(요 12:1-3)
[요12:1~3]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2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그 향유는 일반 노동자의 1년 치 임금에 해당하는 매우 값비싼 것이었다. 마리아는 아마도 자신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오빠를 다시 살려주신 구주께 감사를 표시하기 위한 선물로 준비했을 것이다. 그녀는 언젠가 예수님의 장례를 치르게 될 때 이 예물을 사용하기를 바랐다. 그런데 예수께서 곧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으실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렇다면 마리아는 그분께 가장 먼저 영광을 돌리기를 원했다.
마리아가 원하던 일이 아니었지만,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요 12:3)게 되어 그녀의 행동이 주목받게 되었다고 요한은 기록한다. 유다는 향유를 팔아서 그 수익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즉시 책망했다. 예수께서는 "그녀를 가만 두어라 나를 장사지낼 날을 대비하여 그녀가 이것을 간직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너희와 함께 있지는 아니하니라"(요 12:7, 8, 흠정역)라고 말씀하심으로 마리아를 안심시키셨다.
복음서를 관통하며 반복되는 주제는 예수님이 사람들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 아신다는 것이다(요 2:24, 25; 요 6:70, 71; 요 13:11; 요 16:19). 시몬의 잔치에서 예수님은 유다의 속에 무엇이 있는지를 아신다. 요한은 유다가 이기적인 도둑임을 기록해 두었다(요 12:6).
“구주의 시신에 아낌없이 부으려고 했었던 향기로운 선물을 그녀는 산 몸에 부은 것이다. 장사 때에 사용했다면 무덤을 채웠을 뿐이겠지만 지금 이 향기는 마리아의 믿음과 사랑의 보증으로서 예수의 마음을 기쁘게 하였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당신이 받으실 큰 시련의 어두움으로 내려가실 때에 당신이 구속하신 자들에게서 받으시게 될 열렬한 사랑에서 우러나온 그 행위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가셨다"(시대의 소망, 560).
<교훈> 향유를 깨트려 부었을 때 다른 이는 비난했지만 주님은 마음을 아시고 그 행위를 기념하셨다. 이는 그녀의 순수한 사랑의 증거로 그분의 마음에 기쁨이 되었다.
<부가설명> 예수님은 마리아의 구주였다. 그가 일곱 귀신에게 시달리고 있을 때 예수께서는 일곱 번이나 귀신을 명하여 쫓아내셨다. 그래서 그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 그는 막달라 마리아라고 불리는 여자였다. 그의 생전에는 나사로의 누이였다는 것을 제자들이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요한이 요한복음을 기록할 때는 이미 그가 잠든 후였던 것 같다. 마태 마가는 시몬의 집에서 기름 부은 여자, 누가는 죄인 여자로만 기록하였다(마26:7, 막14:3, 눅7:36, 요12:3). 이 장면들을 다 살피면 이 죄인 여자가 곧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여자와 요8장의 간음 현장에서 잡힌 여자가 동일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재림교회 주석 5권에 기록된 복음조화를 살피면 요8장은 사마리아와 베뢰아에서의 봉사 (AD 30년 가을~AD 31년 유월절) 기간에 있었던 83번쩨 사건이고 막달라 마리아는 이 사건 전인 갈릴리의 봉사(AD 29년 두 번째 유월절~AD 30년 세 번째 유월절) 이미 예수님께 봉사하고 있는 여자들 중에 있었다. 복음 조화 50번째 사건이다. 이 기간은 1년 차이다. 요8장 사건 일년 전에 이미 예수님을 따르며 봉사하고 있었다. 그는 자기를 죄와 사망에서 구한 예수님을 목숨을 다해 사랑했고 그가 메시아라는 확신으로 기름을 부었고 그 향기는 지금도 우리의 가슴에 풍기고 있다. 우리도 예수님의 향기를 풍기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영감의 교훈> 향유를 부은 동기 - “마리아는 예수님에게서 그의 죽음이 가까움을 알리시는 말씀을 듣자 깊은 사랑과 슬픔으로 예수에게 경의를 표하기를 원하였다. 개인적으로 크게 희생하여 그는 예수의 몸에 부을 ‘값진 향유’ 한 옥합을 샀다. 그러나 지금 많은 사람은 예수께서 왕이 되시려고 한다고 선언하고 있었다. 마리아의 슬픔은 기쁨으로 변하였으며 그는 제일 먼저 주님께 영광 돌리기를 열망하였다. 옥합을 깨뜨리고 그는 향유를 예수의 머리와 발에 부었다”(시대의 소망, 559).
<기도> 주께서 우리 마음을 살피시고 헤아리심을 감사합니다. 많은 일로 수고하고 노력하였지만, 주님 앞에는 숨길 것이 없사오니 저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부족한 종이지만 주님의 손을 꼭 잡은 믿음의 종 되게 도와주옵소서.
11월 12일(화) 무심코 한 빌라도의 증언
요한은 예수님을 체포하여 재판에 세우고 사형을 선고하려는 종교 지도자들의 시도를 거듭해서 기록한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자주 말씀하시는 주제는 십자가를 의미하는 “그분의 때,” 곧 그분의 시간이 아직 이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요 2:4; 7:6, 8, 30; 12:7, 23, 27; 13:1; 17:1).
이제는 때가 이르렀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체포되어 안나스에게, 그다음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끌려가셨고, 빌라도 앞으로는 두 번 이끌려가셨다.
요한은 각계각층의 많은 증인의 기록을 통해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하게 하였다. 요한은 이제 예수님을 재판한 총독 빌라도를 불러낸다. 요한복음의 다른 증인들은 대부분 유대인과 평민이기 때문에 로마인이자 총독이며 재판관이었던 빌라도의 증언은 매우 중요한 증언이었다.
빌라도의 판결은 요한복음의 주제와 어떻게 연결되는가?(요 18:38, 19:4-22).
[요18:38]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요19:4~22]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하더라 5 이에 예수께서 가시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 6 대제사장들과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 7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그가 당연히 죽을 것은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 8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여 9 다시 관정에 들어가서 예수께 말하되 너는 어디로부터냐 하되 예수께서 대답하여 주지 아니하시는지라 10 빌라도가 이르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1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 하시니라 12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13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가서 돌을 깐 뜰(히브리 말로 가바다)에 있는 재판석에 앉아 있더라 14 이 날은 유월절의 준비일이요 때는 제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15 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16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 주니라 17 그들이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히브리 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가시니 18 그들이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새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우편에 못 박으니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 19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20 예수께서 못 박히신 곳이 성에서 가까운 고로 많은 유대인이 이 패를 읽는데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되었더라 21 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라 쓰지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라 하니 22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쓸 것을 썼다 하니라.
*답: 세상 죄를 지시고 속죄하시는 분이시며 참 유대인의 왕이신 사실을 드러냈다.
예수님은 금요일 이른 아침에 빌라도에게 끌려가셨다(요 18:28).
빌라도의 계획은 죄수를 빨리 판결해서 사형장으로 보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의 태도는 빌라도의 주의를 끌었다. 총독은 예수를 면밀히 심문했고,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요 18:37)는다는 그분의 말씀을 들었다.
결국 총독은 예수를 사형에 처하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세 번이나 예수의 무죄를 선언했다(요 18:38; 요 19:4, 6). 그리고 십자가 위에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요 19:19)이라는 명패를 써서 예수가 누구이신지에 대한 그의 증언을 남겼다. 그러나 빌라도는 그리스도의 무죄를 증언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예수를 사형에 처했다.
빌라도는 진리 그 자체이신 분이 자신 앞에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폭도들이 그분을 괴롭히도록 허용하였고, 결국 예수에게 사형을 선고한 것은 빌라도였다! 이 얼마나 양심과 마음이 옳다고 말하는 것을 거스른 참담한 사례인가.
<교훈> 빌라도는 예수에게 무죄를 선언하고 그분의 명패에 자신의 증언을 남겼다. 그럼에도 사형을 선고한 것은 그의 양심과 마음의 음성을 거스른 참담한 사례이다.
<부가설명> 빌라도는 참으로 곤혹스러운 자리에 앉았다. 그는 예수님이 무죄하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의 아내까지 와서 꿈에 나타난 사실을 이야기했다. 그는 물로 손을 씻으며 이 사건에 대하여 자기에게 책임이 없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결정은 그가 해야 했다. 성경은 군중의 소리가 빌라도의 양심을 이겼다고 기록했다(눅23:23). 군중의 소리 분위기의 소리가 양심의 소리를 압도했다. 사탄의 전략이 먹힌 것이다. 사탄은 역사의 종말에 자기 때가 얼마 안 남은 것을 알고 교회를 핍박하려고 입을 물을 강처럼 토해낸다(계12:12~15). 예수께서는 자기 때에 십자가를 지셨다. 사탄은 자기 때가 닥치기 전에 하나님의 참교회를 물에 침몰시키려 한다. 입으로 토하는 물이 무엇일까? 군중의 소리가 아닐까? 성경은 하나님의 장엄하고 웅장한 소리를 많은 물소리 같다고 표현한다(계1:15, 14:2, 19:6). 사탄은 입으로 물을 강같이 토한다. 오늘날 세상에는 진리를 대적하는 소리가 강물같이 쏟아진다. 교회는 진리를 버리고 소리에 묻힌다. 빌라도가 군중 소리에 압도되어 진리를 버린 것과 흡사한 일이 교회에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우리 귀를 주님께 바치고 문설주에 대고 뚫어야 하지 않을까?
<영감의 교훈> 빌라도의 죄 - “비록 빌라도가 예수의 피 값을 고소하는 자들 곧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라고 부르짖던 군중들에게 돌렸다 할지라도 그가 무죄한 것은 아니다. 그도 그리스도의 피에 대한 죄가 있다. 그는 이기적인 야망을 위해서 그리고 이 세상의 치리자로부터 받는 영예를 사랑했기 때문에 무죄한 사람을 죽게 했던 것이다. 만일 빌라도가 자신의 양심을 따라 행동했더라면 그는 예수를 정죄하는 일에 관여하지 않았을 것이다”(초기 문집, 174).
<기도> 살면서 옳다고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행동할 때가 있습니다. 바르게 행동하고 싶지만 환경과 개인적인 연약함으로 잘못한 것을 용서해 주옵소서. 복잡한 세상에 있으니 지혜를 주셔서 어떻게 행하며, 주님께 충성할지 날마다 가르쳐 주옵소서.
11월 13일(수) 도마의 증언
요한복음 20:19-31을 읽어 보라. 도마의 이야기에서 믿음과 의심에 대해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도마는 어떤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는가?
[요20:19~31]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24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30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답: 믿음은 보지 못하지만, 증거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도마는 먼저 확인하고 믿기로 했다. 보고 믿는 태도를 예수께서는 그리 좋게 여기지 않으신 것 같다.
그리스도는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그들은 두려움에 떨며 한 방에 모여 숨어있었다. 하지만 도마는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나중에야 다른 제자들로부터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들었지만 그는 여전히 실의 가운데 있었다. 도마가 기대했던 하나님 나라의 모습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예수님은 왜 자신만 빼놓고 모든 사람에게 당신을 보이셨을까 하는 의문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도마는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요 20:25)다고 말했다.
도마는 자신이 믿는 조건을 말한 셈이다. 믿음에 대한 이런 태도는 요한복음에 반복해서 등장한다. 니고데모는 예수님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라고 질문했다(요 3:4). 우물가의 여인은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요 4:11) 물었고 떡과 물고기를 먹은 군중은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요 6:30)라고 말했다.
요한복음은 이러한 "보고 나서 믿는" 관점을 반대한다. 예수께서 부활 후 도마를 만나셨을 때 그분은 그에게 와서 부활한 몸을 보고 만져보라고 권하셨다. 하지만 이내 예수님은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요 20:29)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의 믿음의 기초가 될 만한 충분한 증거도 주시지 않은 채 우리에게 믿으라고 요구하시지 않는다. 그분의 존재, 품성, 말씀의 진실성은 모두 우리의 이성(異性)에 호소하는 증거로 말미암아 세워지며 그 증거는 넉넉하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의심의 가능성을 제거하지 않으셨다. 우리의 믿음은 증거 위에 세울 것이나 실증 위에 세우는 것이 아니다"(정로의 계단, 105).
하나님의 말씀과 창조, 그리고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차고 넘치는 증거를 받았다.
<교훈> 믿음의 증거가 있지만, 성경은 보고 나서 믿는 관점을 반박한다. 주님은 도마에게 만져보고 믿는 자가 되라 하셨지만 보지 못하고 믿는 자는 더 복되다 하셨다.
<부가설명> 사람들은 도마를 의심쟁이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도마는 의심 때문에 확인에 나섰다. 그래서 나는 도마를 확인주의자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말씀으로 확인하는 정신이 필요하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후13:5). 성경은 이렇게 확인하라고 권고한다. 베레아 사람들은 이런 확인주의자들이었다. 그러나 도마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 확인되지 않으면 믿을 수 없다는 정신이다. 확인하고 믿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을 확인하는 정신이다. 그래야 소망의 이유를 묻는 자에게 대답할 말이 확실해진다(벧전3:15). 도마는 확인했지만 믿고 있는 것을 확인한 것이 아니고 믿기 위하여 확인한 것이다. 그가 결국 믿음을 고백했으나 예수께서는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이 복되다고 하셨다. 베드로는 그의 편지를 받는 사람들에게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1:8,9). 베드로의 편지를 받은 사람이나 우리는 같은 처지에 있다. 우리는 도마보다 복이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는 믿음으로 충성하자.
<영감의 교훈> “도마는 자기 믿음의 조건을 요구하는 데 있어서 매우 분별이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관대한 사랑과 이해심으로 모든 장벽을 무너뜨리셨다. 불신은 언쟁으로는 거의 정복될 수 없다. 그렇게 하면 도리어 자기 자신을 변호하고 새로운 구실과 핑계를 찾는다. 그러나 사랑과 자비가 넘치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신 구주로 나타내 주면 한때 원치 않던 많은 사람의 입술에서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한 도마의 고백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시대의 소망, 808).
<기도> 우리도 도마처럼 조건을 두고 믿음을 거래하고 이야기할 때가 있습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우리에게 주시는 십자가의 사랑을 헛되게 만드는 저희의 연약함과 고집을 용서하여 주시며 주님을 더욱 신뢰하고 따르도록 믿음을 더해 주옵소서.
11월 14일(목) 예수에 대한 우리의 증언
요한이 예수의 증인들을 거듭 소개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압도적인 결론을 제시하기 위함이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0, 31).
당신이 그곳에 직접 있었다고 상상해 보라. 예수께서 행하시는 기적들을 내 눈으로 직접 본다면 우리도 요한처럼 확실히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기 쉽지만, 어떤 면에서 우리에게는 기적을 직접 본 사람들보다 예수를 믿어야 할 더 많은 이유가 있다. 왜 그런가?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없었지만, 오늘날 우리에게는 있는 것 중에서 우리가 믿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어떤 것이 있는가?(마 24:2, 24:14, 24:6-8 참조)
[마24:2,14]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24:6~8]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8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답: 예수님의 예언과 그 역사적 성취.
우리에게는 요한복음의 분명한 기록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다른 성경 기자들이 예언한 성전 파괴(마 24:2), 온 세상으로 복음의 전파(마 24:14), 큰 배도(살후 2:3), 세상이 악해지고 계속 타락하는 것(마 24:6-8) 등 많은 것이 성취된 것을 확인할 수 있는 특권이 있다.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 기간 내내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은 조롱당하는 소수였으며 인간적인 기준에서만 본다면 오래 전에 역사에서 사라졌어야 할 무리였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은 어떻게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질 것을 알 수 있었던가? 그리고 그들이 아는 대로 다 성취되었다. 사실 오늘날 우리가 신앙을 가진 것 자체가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될 것이라는 예수님 예언의 성취인 것이다.
그리고 약 2천 년이 지난 오늘, 예수님을 따르는 자로서 우리는 예수님과 그분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을 증거하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나다나엘이나 니고데모 그리고 사마리아 여인과 같은 이들에게 있었던 일을 추론하거나, 또는 바리새인과의 이야기를 통해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확신하게 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통해 성경을 읽음으로 예수님을 세상의 구세주로 받아들이게 된다.
우리 각자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각 사람이 가지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우리 자신의 증언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우리의 이야기는 죽은 자가 살아나거나 날 때부터 눈먼 사람이 치유되는 것만큼 극적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런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요한복음의 사람들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알고, 자신의 방식으로 그분을 증거하는 것이다.
<교훈> 다른 증거들보다 성령을 통해 성경을 읽음으로 예수를 구주로 받아들이고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우리도 복음서의 사람들처럼 그분에 대해 증거 할 수 있다.
<부가설명> 먼 후대의 사람들이 역사적 사건을 아는 것은 역사를 기록한 책을 읽기 때문이다. 그 기록을 인정하지 않고 믿지 않으면 역사적 사건은 내게 한낱 허황한 이야깃거리일 뿐이다. 예수께서는 “지금부터 일이 이루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이름은 일이 이룰 때에 내가 그인 줄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로라”(요13:19), “이제 일이 이루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이룰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요14:29)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성경에 예언된 말씀들이 역사적으로 정확하게 이루어진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 기록은 교회가 기록한 것이 아니다. 세상 역사가들이 기록했다. 그런데 그것들이 성경에 예언한 내용을 그대로 성취한 것을 보여준다. 또한 예수께서는 친히 하신 말씀대로 부활하셔서 많은 사람들에게 부활하신 사실을 확실히 증명하셨다. 예수님의 부활은 모든 사람이 믿을만한 증거이다(행17:31).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 당시 사람들보다 훨씬 더 확신할 수 있다. 이런 것을 보시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요20:29)라고 하셨다. 증거에 의한 확신에서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충성하자.
<영감의 교훈> 충분한 증거를 주시지만 - “그분은 겸손한 마음과 배우고자 하는 정신으로 주의 깊이 살펴보아야 할 증거를 주신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증명력을 보고 결정해야 한다. 하나님은 정직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믿을 수 있는 충분한 증거를 주신다. 그러나 자신의 유한한 이해력에 분명히 밝혀질 수 없는 것들이 약간 있다는 이유로 설득력 있는 증거로부터 돌아서는 자는 불신과 의심의 차갑고 냉랭한 공기 속에 머물게 되고, 믿음의 파선을 당하게 될 것이다”(교회 증언 5권, 675).
<기도> 무언가 극적인 것이 필요한 것처럼 혹은 부족한 것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랑에 얼마나 감사하며 영광을 돌렸는지 생각하면 부끄럽습니다. 제 삶을 채우신 주님의 사랑과 돌보시는 증거에 감사와 찬양드립니다.
11월 15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하여
부조와 선지자 13장 "믿음의 시험," 시대의 소망 77장 "빌라도의 법정에서"를 읽어 보라.
도마는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서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부르짖었다.
예수께서는 그의 고백을 받으셨으나 그의 불신을 부드럽게 책망하셨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만일 도마가 형제들의 증거하는 말을 듣고 기꺼이 믿었더라면 그의 신앙은 그리스도께 더욱 큰 기쁨이 되었을 것이다. 만일 지금 이 세상이 도마의 모본을 따른다면 아무도 믿어 구원에 이를 수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은 다 다른 사람의 증언을 통해서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의심하는 많은 사람들이 만일 저희가 도마가 그의 동료들에게서 받았던 것과 같은 증거를 받는다면 저희는 믿을 것이라고 하면서 스스로를 변명한다. 그들은 저희가 도마에게 주어졌던 것보다 더욱 많은 증거를 받은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도마와 같이 의심의 원인이 모두 제거되기를 기다리는 많은 이들의 바램은 결코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점차적으로 불신에 굳어지게 된다. 어두운 면을 바라보고 불평과 원망에 자신을 내어 주는 자들은 저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의심의 종자를 뿌리고 있으며 결국 의심의 수확물을 거두게 될 것이다. 믿음과 확신이 가장 필요한 때에 많은 사람이 소망하고 믿는 일에 너무나 무력한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시대의 소망, 807).
함께하는 토의를 위해
1. 아브라함의 믿음의 표현과 도마의 믿음은 본질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가? 우리는 그들의 차이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답: 아브라함은 갈바를 알지 못했으나 믿고 나갔다. 도마는 자기 체험을 중히 여겼다.
2. 교과시간에 요한복음에서 본 증인들처럼 예수님을 증거해 보라. 이야기는 다르지만, 우리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각자의 이야기가 어떻게 같은 주님을 증거하고 있는가?
*답: 각자가 경험한 말씀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3.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이냐”라는 매우 철학적인 질문을 던졌다. 요한복음에서 공부한 모든 것에 비추어 그 질문에 답해 보라.
*답: 진리는 예수님 자신이다. 진리는 지식이 아니라 인격이다.
4. 다니엘서 2장과 7장의 예언을 보라. 예수님 당시 사람들도 이 두 장을 알고 있었지만, 그 성취를 알지 못했다. 당시의 사람들보다 믿을 수 있는 더 많은 이유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오늘날 우리는 그들보다 어떤 큰 이점이 있는가?
*답: 예언과 그 역사적 성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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