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초석: 교회신문 > 제 1248호 꿈은 우릴 버린 적이 없다 (고전15:1~22)
3년 동안 예수님과 동고동락했던 베드로에게는 원대한 꿈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를 부르실 때,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4:19)고 하셨기에 바로 대단한 뭔가를 이룰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전 재산인 배를 미련 없이 버리고 예수를 좇았습니다.
그런데 그 스승이 죄인들과 함께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었기에, 그런 분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에 큰 충격을 먹었습니다. 아울러 베드로의 모든 꿈은 와장창 산산조각이 났고, 더욱이 어린 비자 앞에서 스승인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죄책감까지 겹쳐 깊은 실의에 빠졌습니다.
그런 베드로에게 어느 날 부활하신 예수님이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그에게 물고기를 구워 허기를 채워주신 후에 묻습니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이나 동일하게 물으셨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눈물을 흘리며 대답합니다.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요21:17). 그러자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 양을 먹이라”(요21:15).
예수님은 물고기로 육신의 배만 채워주신 것이 아니라 고팠던 영혼의 굶주림을 채워주신 것입니다. 죽어버린 베드로의 꿈, 잃어버린 베드로의 꿈을 부활시키신 것입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달라졌습니다. 그물을 쳐놓고 배에서 시간이나 죽이던 베드로가 아닌 정말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 예수님이 ‘내 양을 먹이라’ 하신 명령을 목숨을 바쳐 수행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은 꿈과 이상의 소생(蘇生)과 회복(回復)을 의미합니다. 먼저는 육체를 벗은 후 다시 사는 세상에 대한 꿈이 부활해야 합니다. 천국에 대한 꿈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왜 신앙이 미적지근한지 압니까? 다시 사는 꿈, 천국에서 영원히 산다는 꿈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을 믿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게 너무 막연하다 보니 그 꿈이 사그라지다가 죽어버린 것입니다.
개구리를 처음부터 뜨거운 물에 넣으면 ‘아~ 뜨거~’ 하고 바로 튀어나옵니다. 그러나 처음에 미지근한 물에 넣으면 개구리는 눈을 감고 따뜻함을 즐깁니다. 그러다 개구리는 점점 그 물이 뜨거워져도 인식하지 못해 결국 삶아져 죽고 맙니다. ‘죽으면 끝이 아니라 주님처럼 우리의 영혼이 부활한다’는 그 꿈이 점점 사라지면 결국 개구리처럼 영적으로 죽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영이 다시 살아 영원히 천국에서 사는 꿈만 꾼 것이 아니라 거기에 누릴 상까지 꿈꿨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것을 뒤로하고 달렸던 것입니다. 그것이 없다면 뭣 하러 자청하여 좁은 길, 인고의 길, 순교의 길을 가겠느냐고 그는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고전15:14).
그러나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부활 후에는 심판이 있다’(히9:27)는 것과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4:7~8)는 꿈이 있기에 만물의 찌끼처럼 여김을 받아도 그 길을 흔쾌히 간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사신 것처럼 여러분도 다시 사는 것을 믿습니까? 우리의 본향이 하늘에 있음을 믿습니까? 이것이 꿈과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 풍조에 흔들리지 않고,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치우치지 않고 천국을 향하여 올곧게 갈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말입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3:13~14).
둘째, 우리의 꿈이 부활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1장에 마리아와 마르다의 오라버니인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은 지 사흘이 되어서야 그 집에 당도하셨습니다. 오매불망 예수님만 기다리던 마르다는 예수님을 보자, “주께서 여기 계셨다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을 텐데요.”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주님이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을 들은 마르다가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요11:24)라고 답하자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라고 말씀하십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내세는 물론이요, 현세의 부활을 의미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답답하신 예수님은 마르다 같은 자들을 깨우치기 위해 죽은 나사로를 그 자리에서 살리셨습니다.
부활의 역사는 지금 우리 삶에서도 일어나야 한다고 주님이 말씀하시는데 다들 안 믿습니다.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서 썩은 냄새가 나는데 무슨 부활이냐?’, ‘부도나서 파산한 기업이 어떻게 부활하냐?’, ‘이미 풍비박산된 가정이 어떻게 부활하냐?’, ‘암 말기인데 어떻게 건강을 되찾겠느냐?’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상황을 보지 않으시고 ‘믿으면 부활의 영광을 본다.’고 말씀하십니다. 네 꿈이 부활하면, 네 생각이 부활하면, 네 믿음이 부활하면 죽은 나사로가 살아난 것처럼 네 기업이, 네 가정이, 네 육체가 부활한다고 하십니다.
선천적으로 소경이었던 바디매오가 눈을 뜬 기적은 바디매오의 꿈이 살아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솔직히 날 때부터 소경이면 눈 뜬다는 꿈을 갖기 어렵습니다. 그저 운명처럼 삶을 받아들이게 되지요. 그러나 바디매오는 달랐습니다. 눈을 뜨고야 말겠다는 꿈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그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묻자, 그는 거침없이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막10:51)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의 삶에 부활이 찾아왔습니다.
열두 해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있었습니다. 해볼 것 다 해보고, 약이란 약은 다 먹어봤으나 효험이 없었습니다. 열두 해가 짧은 세월은 아닌지라 이제 웬만하면 ‘이대로 살아야 하는구나.’ 할 테지만, 그녀에게는 여전히 ‘완치’라는 꿈이 살아있었고,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마9:21)는 그녀의 꿈이 그녀를 움직여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니 그 많은 인파 가운데서도 유일하게 예수님의 능력이 나와 그녀의 삶에 부활이 찾아온 것입니다.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건강하게 되는 것이었습니까? 잘 사는 것이었습니까? 당신의 기업이 불일 듯 일어나는 것이었습니까? 교회가 부흥하는 것이었습니까? 그런데 그 꿈이 지금 죽었지 않습니까?
‘해봤지만 안 돼.’ 하며 꿈을 버렸지 않습니까? 여러분, 꿈은 여러분을 버린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꿈을 버렸기에 부활의 역사가 여러분의 삶에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삶이 부활하기를 원합니까? 먼저 꿈이 부활해야 합니다. 꿈이 부활하면 생각이 변하고, 생각이 변하면 행동이 변하고, 행동이 변하면 삶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현실을 보세요. 꿈은 사치입니다.”, “내 주제에 무슨 꿈을 꿀 수 있나요?” 하십니까?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 있지 않습니까. 성령입니다. 성령을 받은 자는 곧 불가능이 없으신 하나님의 영을 받은 자이므로, 우리 역시 불가능이 없게 됩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는 말씀은 성령 받은 자에게 하신 말씀이고,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요14:12)라는 말씀 역시 성령 받은 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은 사도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고 외친 것입니다.
꿈을 버리지 마세요. 꿈이 없는 자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저는 이 부활절을 맞아 당신의 꿈이 부활하기를 기도합니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15:13). 할렐루야!
꿈을 잃은 자에게 기대할 것은 없다
뿌리가 썩은 나무에 물을 주지 말라
♣ 은혜로운 찬양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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